▷포의 시점
한가로운 오후의 어느 날. 무적의 5인방과 대련과 수련이 끝난 뒤 포는 시내에 자리 잡은 아버지, 핑의 국숫집으로 향했다.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며 안아달라고 요청해오는 마을 주민들과 어린아이들 때문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아버지라면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는다. 마을 아이들의 옷에 사인해주고 나자 주변에서 한 아이가 들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엄마! 엄마! 이것 봐요! 이게 무슨 털이에요?''어머~ 그건 공작 깃털인데 왜 여기 있을까?''공작이 뭐예요?''심지어 하얀...'포는 아이와 부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이의 손에는 기다랗고 하얗지만 빨간 무늬가 새겨진 알비노 공작의 깃털이 쥐어져 있었다. 그 깃털에 포는 저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이너피스로 평화를 찾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고개를 세차게 저어댔다. 비틀거리는 포의 행동에 곁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놀라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넸다.'용의 전사님! 괜찮으세요?''포! 괜찮아?'아, 네...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웠나 봅니다. 수련이 힘들잖아요.'그 말을 마지막으로 포는 깃털을 보며 떠올린 기억을 애써 지우며 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국숫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숫집 옆 대나무 숲에서 다시 보이는 깃털을 포는 멍하니 보았다. 그러다가 국숫집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의 괴성에 화들짝 놀란 포가 다급하게 뛰어갔다. 용의 전사라는 제 위치로 인해 이미 한 번 납치당한 적이 있던 아버지였기에 포는 심각하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아빠!! 아빠, 어디 계ㅅ...?''...포?!'"...아빠? 지금 뭐 하시는...'입구부터 한산하기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급하게 올라간 국숫집 2층에서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포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일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차이나 복을 입고 있는 거위, 즉 포의 아버지인 핑의 곁에는 하얀 알비노 공작이 느긋한 얼굴에 살짝 짜증이 섞인 시선으로 포를 보고 있었다. 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기가 막힌 타이밍이군, 판다.''포, 포...! 이건 말이다. 그러니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보고만 있는 포와 어떻게든 설명하려 당황하는 핑, 그리고 뻔뻔한 셴만 남아있었다.
▷ 핑의 시점
이른 오전부터 일어나 정신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뒷문을 통해 아침 일찍 들어오는 야채들을 안으로 들이며 마을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국수를 만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자 불티나게 팔리던 국수들을 먹기 위해 오던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갑자기 비워진 시간은 허무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국수 장인인 핑을 얕보지 말라고! 허무하기는커녕 저녁 파트에서 팔 국수 재료와 국물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 뒤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줄도 모른 채.'흠... 낡았군.''꽤액?!!?''고작 이런 걸로 놀라다니, 거위.'열심히 국물을 만들던 핑의 뒤로 하얀 털을 휘두르며 등장한 셴이 날카롭고 덤덤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핑이 그만 실수로 국자를 놓쳤고, 그 국자가 그대로 국물 안으로 잠겨버린 것은 핑이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국수 국물 단지를 뒤로 숨긴 채 놀란 핑이 덜덜 떨면서 셴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낡은 국숫집과는 달리 너무 비교될 정도로 하얗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공작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핑은 부리를 달달달 떨면서 말했다.'여, 여, 여, 여긴 왜 왔어?''왜긴 왜겠어. 거위, 네가 오질 않으니 왔겠지.''곧 있으면 포가 올 텐데...!!'핑의 말에 바람 새는 소리로 웃으며 답해주던 셴은 곧이어 들려오는 핑의 아들 찾는 말에 단번에 정색이 되어 차갑게 식어갔다. 그걸 알 리 없던 핑은 빠르게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셴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보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중, 고민하고 있던 핑의 곁으로 셴이 다가와 벽 끝으로 몰고 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핑의 얼굴 옆으로 날개 같은 칼이 박혔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핑은 침을 꿀꺽 삼키다가 아랫부리가 떡하니 벌리며 소리쳤다.'꽤액!!!''귀 아프니까 소리를 그만 지르ㅈ...''아빠!!'핑은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와중에 눈앞에 있는 공작도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저를 찾는 아들의 목소리가 더 신경 쓰였다. 지금 이 상황을 보였다가는...
▷ 셴의 시점
공멘성 안에 의자에 앉아 있던 셴은 생각에 잠겼다. 하루가 멀다고 저를 찾아와 시끄럽게 굴고 부산을 떨던 거위 한 마리가 곁에 없으니 이리 조용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거위 하나쯤이야, 하고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서 그 용의 전사를 키워낸 거위라기에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었다. 며칠 곁에 두었다가 돌려보냈더니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이봐, 늑대. 갈 준비를 하도록.''어, 어디를 가십니까...?''어디긴.'낮게 깔린 눈동자가 향한 곳은 핑의 국숫집이 있는 대륙 너머였다. 그렇게 셴은 소리 소문없이 핑의 국숫집 가게로 찾아왔다. 공 멘 성의 주인으로서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었던 셴의 입장에서는 핑의 국숫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에는 낡아빠졌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었다. 한가로이 식당을 둘러보던 셴은 1층 부엌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절로 발걸음을 향했다.'흐흠~ 흠~''...'핑의 노랫소리에 셴은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공멘성에서부터 이리 찾아오면서도 평소의 무관심이 조금 관심이 생길까 하던 찰나였거늘. 저따위의 생각은 고사하고 국수 국물 만든다는 것에 저리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를 참고 인기척을 먼저 냈다.'흠... 낡아빠졌군.''꽤액?!!?''고작 이런 걸로 놀라다니, 거위.'제 목소리에 놀란 핑의 모습에 셴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핑과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 무관심이란 오로지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핑이 놀라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풀렸던 셴은 덜덜 떨리는 부리로 말을 하는 핑을 보았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 나름대로의 희열을 자극했지만, 그마저도 아들인 포로 인한 것이었다. 순간 욱한 감정에 깃털처럼 생긴 검을 던지며 핑을 벽으로 몰았다.'꽤액!!!''귀 아프니까 소리를 그만 지르ㅈ...''아빠!!'귀가 따끔거리는 탓에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내뱉다가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혀를 찼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큰 덩치의 판다를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기가 막힌 타이밍이군, 판다.''포, 포...! 이건 말이다. 그러니까...'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핑은 포에게 당황해서 횡설수설 설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얼빠진 표정의 포와 식은땀만 잔뜩 흘리고 있는 핑을 보았다. 그 모습에 콧방귀를 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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