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미도 이야기이며 해당 이야기는 작품이 시작되기 전의 IF입니다※
서늘하게 차가운 바람과 흐느끼는 감정처럼 낮게 가라앉아 시야를 방해하는 먼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발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쿵쿵 울리는 소리 때문인지 머릿속이 웅웅울리고, 땅이 흔들리는 지진으로 인해 눈앞의 초점까지 흔들려서 중심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 정도였다.
습격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 건 일상과도 같은 일이어서 힘들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보급이 늦어지고, 지원도 거의 없다시피 한 탓에 습격자들과의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추세였다.
이대로 가다간 방어벽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고, 그로 인해 습격자들이 안으로 들어와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 젠장...!! "
" 국장님...! 여기에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평소 험한 말을 입에 담지 않기로 유명했던 국장이었다.
그런 그녀마저 험한 말을 입에 담아버릴 정도로 현재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국장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국장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옮겨 향한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뒀지만, 정작 그 누구도 가운데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국장은 그곳에서 발견한 어린 소녀를 보았다.
물빛 머리카락을 가졌고, 또래보다 많이 말라보이던 한참 어린 소녀를.
그 소녀가 바로 미노스 위기 관리국, 통칭 MBCC에서 지원 파견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과 물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인형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 국장은 가까이 다가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안녕, 어린 친구. "
" ... "
" 나와 함께하지 않겠니? "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국장의 모습에 고개를 들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보았다.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는데, 국장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 이름이 뭐야? 나는 편하게 국장이라고 부르면 돼. "
" ... 헤카테. "
" 헤카테라고 하는구나? "
국장의 말에 헤카테가 뜸을 들이다가 국장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으며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헤카테의 멍한 시선이 국장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소녀는 국장과 맞잡은 손을 놓더니 자신의 소매를 끌어 국장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국장은 헤카테의 행동에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헤카테의 소매에서 소량의 피가 묻어나오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아까의 그 난리 통에 어딘가 부딪혀서 다친 모양이었다.
국장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 어라, 고마워. 헤카테. "
" ... 아니에요. "
" 아무래도 상황이 이래서 정신이 없네. 혹시 족쇄를 해도 되겠니? "
" 네. "
" 정말 괜찮겠어? 최전선인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지원 보내줄 수도 있단다. 나는 충분히 널 보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고. "
" ... "
" 아직 어린 네가 이곳에 있기에 조금... 버겁지 않을까? "
" 괜찮아요. "
헤카테의 소매가 완전히 거두어지고 나서야 국장이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국장은 헤카테의 표정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장의 말에 헤카테는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헤카테의 빠른 답에 놀란 국장이 정말 괜찮은 게 맞냐고 물어보았다.
구구절절 이어지는 말들은 전부 헤카테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헤카테는 자신을 감염된 수감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봐주는 사람은 국장이 처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헤카테는 국장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뺨에 그 손을 올렸다.
" 헤카테. 족쇄로 너를 묶는다고 해서 널 묶는다는 게 아니란다. "
" 알아요. "
국장은 족쇄를 착용시키기 전, 괜한 오해를 받을까 싶어 헤카테에게 말했다.
헤카테는 국장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더라면 의심했겠지만, 어째서인지 국장이라 괜찮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국장은 헤카테의 어른스러운 반응에 살짝 놀랐다.
수감자들 중에서 이리 쉬이 허락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헤카테는 자신보다 한참 작았고, 어렸으며 어린 만큼 여린 아이였다.
" 잠시만 기다려줘, 헤카테. "
" ... "
국장은 헤카테의 뺨에서 손을 떼어내면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녀의 부탁과도 같은 말에 헤카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은 헤카테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이팅게일에게 연락을 보냈다.
" 지원을 보내줘서 고마워, 나이팅게일. 지금 MBCC도 지원을 보내주기 힘들 텐데 도와줘서 고마운데... 너무 어린 거 아니야? "
[ 지금... ]
헤카테는 자신과 떨어진 곳에서 본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국장을 보았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얼추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 수감자인 자신을 변이된 감염자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
다른 것도 아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 괜히 미안하네. MBCC도 너무한 것 같아. "
" ... "
" 전쟁 중에 만나게 되었지만, 잘 부탁할게. "
" ... "
" 그럼, 족쇄를 시작할게. "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국장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헤카테를 보고 말했다.
미노스 위기 관리국도 너무한 것 같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잘 부탁한다던 국장의 말에 헤카테는 조용히 답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국장이 헤카테에게 손을 뻗었다. 빛이 나더니 헤카테의 한쪽 눈에 검은 안대가 채워졌다. 헤카테는 통증도 없이 평화롭다는 표정으로 받아들이더니 눈을 뜨고 국장을 보았다.
국장은 헤카테를 보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괜찮니? 아프지는 않았고? "
국장은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보았고, 헤카테는 그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시 한번 폭탄으로 인해 땅이 크게 흔들렸다. 중심을 겨우 잡고 있던 국장이 손을 뻗어 헤카테를 가장 먼저 챙겼다.
헤카테는 국장의 품속에 안기듯이 있으면서 의외라는 듯 국장을 보았다.
지진처럼 흔들리던 땅울림이 끝이 나자, 국장이 헤카테를 보며 부탁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 속에서 미안한 감정이 두드러졌다.
" 보다시피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지만, 그건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처음에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
" ... "
" 파트너로서 도와줬으면 좋겠어. "
국장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헤카테는 국장의 얼굴,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눈썹까지 살펴보다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파트너라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카테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장소로 가더니 전투를 시작했다. 미노스 위기 관리국의 지원인 헤카테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지지부진하던 습격자들의 처리가 빨라지고, 전에는 없었던 쉬는 시간도 지금은 차 한 잔의 여유 정도는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게 전부 헤카테 덕분이었다.
그 이후로 헤카테는 국장의 파트너로서 국장이 가는 곳이면 전부 따라다녔다. 국장과 헤카테는 현장에서 유명해졌다.
" 국장님, 남아있는 일이 있습니다. "
" 아~... 조금만 쉴 게, 헤카테. "
" 그럼 조금만 쉬시고 하세요. "
헤카테는 자신이 들고 있던 쌓여있는 서류를 책상 위로 올리며 말했다.
며칠 연달아 서류에만 매달려 있던 국장은 지쳤던 모양인지 헤카테가 건네주는 서류를 보고 질렸다는 듯 엎드렸다.
두 사람이 유명해진 이유는 수감자인 헤카테가 국장을 이토록 잘 케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국장의 부관인 나이팅게일조차도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국장이 당시 습격자들과의 전투에서만 지원으로 온 헤카테를 받을 줄 알았지만, 그 이후로도 돌려보내지 않고 곁에 둔 채 계속 함께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현장의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한 소문이 돌았다.
" 그거 들었어? 미노스 관리국의 국장이 그렇게 수감자에게 잘해준다던데. "
" 나도 들었어. 보통 전쟁이 끝나면 수감자를 돌려보내는데 말이야. "
" 유명해졌더라. "
수감자들 사이에서 그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런 소문을 끼고 살게 된 국장은 헤카테에게서 겨우 허락받은 쉬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국장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헤카테를 보며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말과 함께.
헤카테는 일을 하다가 국장의 손짓에 하던 일을 멈추고 국장에게로 다가갔다.
헤카테가 국장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 헤카테, 이리 와봐. "
" 무슨 일이세요? "
" 우리 잠시 쉬고 하자. "
" 하지만... "
" 조금 쉬는 정도는 괜찮아. 아까 내가 거의 처리 다 해놨어. "
국장은 다가오는 헤카테의 손목을 붙잡으며 잠시 쉬자고 이야기했다.
벗어나려고 하는 헤카테의 손목을 잡아당겨 소녀를 의자에 앉혔다. 국장은 의자에 앉은 헤카테를 보며 시간이 참 많이 흐르긴 흘렀다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 만났던 헤카테는 말수가 적어도 너무 적었기에 오히려 걱정될 정도였다. 지금도 물론 적긴 했지만, 그때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그래도 좋고 싫음의 감정 표현을 해주기 시작한 게 기특했다.
국장은 테이블 위로 팔을 올려 턱을 괴고서 헤카테를 보며 웃었다. 그러면서 마시라고 찻잔을 내밀었다.
" 이거 마시면서 쉬어. "
" ... "
" 열심히 일해주는 건 좋지만, 적당히 쉬는 것도 나름 중요하거든. "
국장은 헤카테에게 쉬어 달라고 권유했다.
헤카테는 국장이 내미는 찻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자신에게 일을 더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쉬어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국장의 다독이는 말투에 헤카테가 앞에 있는 찻잔을 들고 마셨다.
국장은 헤카테가 마시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졌다.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 비하면 지금은 잘 큰 편이었다. 비쩍 말라 있던 그 아이가 지금은 자신의 곁에서 이리 잘 크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 시간을 한창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큰 울림이 퍼졌다. 땅이 크게 흔들리고 뒤이어 쾅!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 헤카테...!! "
" 국장님, 조심하세요. "
놀란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헤카테를 감싸고 주변을 살폈다.
건물이 크게 흔들리고 나더니 잠시 진정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잇따라 커다란 굉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미노스 위기 관리국이 흔들리다 못해 무너져 내릴 정도의 폭발이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국장이 헤카테의 손을 붙잡고 함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잔해가 국장을 향해 내려왔다.
헤카테가 기술을 쓰며 다급하게 국장을 불렀다.
" 국장님...!! "
국장이 등을 돌려 헤카테를 보려던 순간 국장의 눈앞이 까맣게 암전되고 말았다. 잠시 뒤 국장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앞에서 헤카테가 울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물빛 머리카락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의 화사하게 빛나던 회사 건물이 아닌 먼지가 나부끼는 회사가 보였다. 국장은 손을 뻗어 헤카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울지 말라고 말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마치 물을 잔뜩 먹어버린 솜처럼 무거웠고, 팔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거기다 눈꺼풀은 얼마나 무거웠던 건지.
잠시 떴던 눈이 버티지 못하고 다시 감겼다.
그 대신 국장은 속으로 되뇌었다.
' 헤카테, 울지 마... '
정작 헤카테에게는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이었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든 국장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있어야만 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낯선 천장이었다.
국장은 자신이 나온 곳이 회복 캡슐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여기저기 부서진 잔해는 이곳이 위험한 상태라는 걸 알려주기만 할 뿐이었다.
" ... 여긴? "
" 저기 있다!! MBCC의 국장을 붙잡아라! "
" 윽...?! "
멍하니 있는 국장의 앞으로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녀에게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바로 공격에 나섰다.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국장은 그대로 습격자들에게 납치당할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도 납치당할 뻔했던 타이밍에 나이팅게일과 미노스 위기 관리국의 수비팀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납치당하는 건 모면할 수 있었다.
" 국장님, 괜찮으세요? "
"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긴...? "
" 국장님...? "
하지만 모든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습격자에 의해 생체 정보를 강탈당한 탓에 관리국이 아수라장이 되었고, 수감자들이 탈출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국장은 기억을 잃었다. 나이팅게일은 국장에게 대피할 것을 권유했지만, 국장은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결국 나이팅게일이 졌다는 듯 국장에게 지하 감옥에 있는 수감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국장은 나이팅게일의 추천을 받아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헤카테를 만났다.
하지만 국장은 헤카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장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물빛 머리카락에 둔탁한 두통이 느껴졌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잊은 듯한 기분이 꽤 찝찝하게 만들었다.
" 저는 줄곧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기억 속의 소녀와는 달라 보였다.
키도, 덩치도, 무엇보다 목소리조차 달랐다. 정확한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과는 달랐다는 것만 남아있었다.
국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헤카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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