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린 가운데 누군가 서있다가 쓰러졌다.
어린 시로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눈을 떴다. 병실에 홀로 남겨진 시로는 생각에 잠겼다.
' 나 혼자 남아버렸어.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
시로는 자기 혼자만 남아버린 것에 대해 좌절하면서도 모두를 구하지 못한 것에 서글픔을 느꼈다.
성인조차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을 어린 시로가 하고 있다는 것도 잠시 시로는 울분을 참기 위해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설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시로가 다시 잠들려고 하면 또다시 사람들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반복해서 볼 것 같은 느낌에 쉽사리 잠들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 우윽... "
그러다 어린 시로가 기절하듯이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뜬 건 어느 정도 큰 시로였다. 학생이 된 시로는 여느 때와 같이 창고에서 작업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던 거였다.
악몽 탓인지 식은땀이 가득 그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잠에서 급하게 깨어난 시로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턱 끝에 맺혀 떨어지기 전에 닦아내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을 구부리고 팔꿈치를 무릎에 기댄 채 이마를 짚었다.
깊은 속에서부터 진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악몽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너무 지독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악몽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시로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 하... 어? 아서? "
" 일어난 건가, 마스터. "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있던 곳은 창고였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 정신이 든 시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독한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악몽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런 시로의 곁에는 아서가 있었다.
아서가 시로에게 조용히 뜨거운 차가 든 찻잔을 건네주었다. 시로는 아서가 곁에 있다는 게 의문이긴 했지만, 그가 주는 찻잔을 받았다.
뜨거웠기에 조심스럽게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마셨다.
" 무슨 차야? "
" 녹차라고 적혀있던데. "
" 아... 고마워, 세이버. "
시로는 따뜻한 차가 속으로 들어오니 조금 진정이 된 모양인지 짧게 숨을 내쉬고 아서를 보았다.
짧게 숨을 내쉬고 남은 차를 마셨다. 전부 마신 뒤에 아서를 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시로가 다 마신 찻잔을 아서에게 돌려주었다. 아서는 그걸 받아 쟁반 위에 올려두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아서가 조심스럽게 시로를 향해 물어보았다.
" ... 시로, 악몽이라도 꿨어? "
" ... 하하,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닐 수도 있어. "
" 시로, 괜찮아. 누구나 하나쯤은 힘들고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까. "
" ... 세이버. "
악몽이라도 꿨냐는 아서의 물음에 시로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이내 어설프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시로가 말하기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서는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띄우고서 시로를 보았다.
그는 시로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넸다.
아서의 말에 시로는 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보았다.
시로는 누군가에게도 위로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릴 적 일이기도 했고, 누가 말한들 자신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서가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건네니 뭔가 울컥한 감정이 올라와 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서는 분명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을 떨리게 할 정도로 미남이었다.
" 세이버... 고마워. "
" 별거 아니야. "
" ... "
" 왜 그래? 시로. "
" 아무것도 아니야. "
시로는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부정하면서 단순히 아서가 잘생겨서 이렇게 떨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절대 자신이 그에게 반한 게 아니라고 부정했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살짝 붉어진 뺨을 문질렀다.
시로가 그러고 있는 동안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아서가 시로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로는 그 와중에도 아서가 목소리까지 좋다며 속으로 딴짓 걸기를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던 시로는 아서를 빤히 보았다.
아서를 보고 있자니 그를 소환했을 당시가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소환했을 때가 아니라 강제 소환이 되었을 때. 아발론의 존재로 인해 아서가 소환되었을 때 말이다.
갑작스러운 상황과 죽음 직전까지 놓였을 때, 나타난 아서의 존재가 시로에겐 어떻게 느껴졌을지.
시로는 자신도 모르게 아서의 얼굴을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금발, 푸른빛과 녹 빛이 어우러지는 청록색의 눈동자. 다부진 몸과 다정한 미소, 만약 아서가 현실에 있었더라면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시로? "
" ... "
아서의 부름에도 시로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인해 답을 해주지 못했다.
시로는 아서를 처음 만났던 날,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때의 상황이 현실성이 없었기도 했고, 아서를 처음 봤던 날은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랜서에게 심장을 뚫리고 죽을 뻔했던, 아니 정확하게는 한 번 죽었던 게 떠올랐다.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던 자신의 몸과 죽기 직전까지 느꼈던 통증, 몸 안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가던 피의 감촉이 고스란히 기억났다.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아 몸이 떨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 뒤이어 찾아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살아났을 때 보였던 건 붉은 보석으로 된 목걸이가 전부였다. 시로에게 있어 끔찍해서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딱 두 개가 있다면 하나는 어릴 적 있었던 화재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랜서에게 심장이 뚫려 죽임을 당했던 그때였다.
" 큭... "
" 시로, 괜찮은 거야? "
랜서에게 심장이 뚫리던 감각이 떠오르자 시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 듯 파르르 떨었다.
시로는 자신의 팔을 문지르며 괜찮냐는 아서의 물음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다시 회상에 잠겼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랜서가 싫었다.
그 새빨갛던 창이 자신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고,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던 건 차가운 학교 복도에 흥건하게 고여가던 뜨거운 자신의 피였다.
그리고 흐릿한 눈앞에 마치 자신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서있던 랜서의 발이었다.
점점 빛을 잃어가던 눈동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어둠에 잠식되었던 그때. 흐릿한 시야 속에서 보이던 소녀가 외치던 슬픔이 머금어진 목소리도, 아직 방법이 남아있다던 말 이후로 보이던 붉은 보석까지.
그 기억 하나가 일상생활도 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숨을 조여왔었다.
겉으로 아닌 척하는 시로였지만, 그를 곁에서 자주 보고 시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다 눈치챌 수 있는 정도였다. 다만 랜서에게 당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디 안 좋은 건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일 뿐이었다.
시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억을 되뇌며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시로에게 있어 힘든 일이었다.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날카롭고 붉은 창 끝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다짐하며 외치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 저딴 놈에게 죽을 수 없어...!! "
아직까지도 그 순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자고로 망각의 존재라고 들었다. 잘 잊어먹는 게 사람일 텐데, 이상하게도 자신은 모든 걸 기억했고, 잊지 못했다.
시로에게 있어서 그날은 달빛 한 조각조차 잊을 수 없었다.
선명하고, 충격적이고, 평화롭던 일상을 깨져버린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다시 살아났을 땐 그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분명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곳은 학교 복도였다.
다시 눈을 뜨니 보이는 곳은 여전히 학교 복도였다. 막혔던 숨통이 급작스럽게 트이자 거칠어진 호흡과 여전히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은 묵직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기에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무언가를 깨닫기도 전에 시로는 바로 일어나려고 했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 으윽... "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는 와중에도 시로는 인상을 찡그리며 앞을 보았다. 땅에 떨어져 있던 붉은 보석 목걸이를 보았다.
시로는 그 목걸이를 챙겨서 힘겹게 일어났다.
그는 무작정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았던 걸 다시 되뇌었다.
" 난 살해 당할 뻔 한 게 아니라 살해 당했던 거였어...! "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깨닫고 그 누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시로의 생각은 갑자기 쳐들어온 랜서의 공격으로 인해 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시로는 급하게 주변에 있던 무기를 쥐지만 쉽지 않았다. 상대는 창을 들고 있었고, 자신은 창에 비해 상대조차 되지 않는 무기였다.
랜서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정신도 없었다.
" 하루에 같은 인간을 두 번 죽이게 되다니 말이야. "
" 크윽... "
" 네 녀석도 참 운이 없군. "
" ... 트렌스 온. "
시로는 자기암시 영창을 말하고 강화된 무기로 랜서를 상대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트라우마로 잡힐 법 했던 창을 아슬하게 피했다. 피했다고는 하지만 상처를 입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로는 랜서를 피하기 위해 유리를 깨고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그마저도 결국 랜서에게 걷어차이게 되었다.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걷어차인 시로는 멀리 날아갔다.
시로가 다급하게 일어나 창고로 피하게 되었지만, 날아오는 창을 피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랜서의 말도 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 소질은 괜찮은 것 같지만서도. "
" 으윽... "
시로는 자신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건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앞에 있는 랜서를 상대해야만 했다. 말을 끝낸 랜서가 자세를 잡고 있는 모습에 욱한 시로가 자신이 창에 찔린 부분을 가리며 말했다.
" 웃기지 마... 누군가 나를 도와줬단 말이다! "
" 흠? "
"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너 같은 놈에겐! "
시로는 외치는 순간 무언가 자신의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순식간에 자기 영창을 사용했을 때의 감각과 유사한 느낌이 났고, 보이지 않는 아발론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누군가 나타나 시로의 앞에서 랜서의 창을 막아냈다.
푸른빛의 안개가 흩날리면서 투명한 검을 쥔 상대가 서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상태 탓에 시로는 멍하니 상대를 보았다.
그때 상대가 입을 열었다.
" 묻겠어.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
" 어...? "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흩날리는 금발, 선명하게 자신을 보는 청록색 눈동자에 시로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을 등진 채 진중한 표장으로 눌어오는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었다. 너무 놀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시로는 그저 눈을 꿈뻑거리며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 마스, 터? "
" 세번트 세이버. 소환에 따라 찾아왔어. "
" 어? "
" 마스터, 지시를...! "
벙쪄있는 시로의 모습에도 아서는 자신을 세이버라고 소개했다.
여전히 표정 하나 변화 없이 익숙하다는 듯 소개를 끝낸 아서는 투명한 검을 쥐고서 몸을 돌려 마당에 있는 랜서를 보았다.
조금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 그대로 그가 말했다.
" 지금부터 내 검은 당신과 함께하며 당신의 운명은 나와 함께해. "
" ... "
" 여기에 계약은 완료되었어. "
" 어? 계약? "
아서가 말하기 시작하자 푸른빛은 다시 사납게 일렁거렸다.
아서는 다시 투명한 검을 꽉 쥐고서 그대로 창고를 뛰쳐나가버렸다. 아서가 검을 쥔 채 랜서와 싸우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멍하니 있던 시로는 계약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뛰쳐나가는 아서의 뒤를 쫓았다.
아서의 말에 당황한 시로가 뛰쳐나간 아서의 뒤를 따라 창고의 입구까지 나갔다.
" 계약이라니, 무슨...!! "
하지만 이내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시로의 입은 꾹 다물리고 말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아서와 랜서의 대결은 눈으로 좇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간혹 보여주는 대치 상황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허공에서 스파크가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그 이후에 눈으로 좇으면 또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허공에는 창과 검이 부딪히는 스파크가 여러 번 튀었다.
" 보이지 않는 검...? "
" 비겁한 놈! 자신의 보구를 드러내지 않다니 무슨 짓이냐! "
" 그렇게 생각하나? 랜서. "
" 어떤 무기인지 보여라! "
" 글쎄, 어떨까. 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이게 검일 수도 있고, 창일 수도 있다. 어쩌면 활일 수도 있겠지. "
" 크윽... 웃기지 마라, 세이버. "
붉은빛과 푸른빛이 계속 반복되면서 스파크를 튀기는데 시로는 그걸 겨우 쫓아갈 뿐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만 도저히 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들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랜서가 자세를 잡기 시작하자 창 끝이 엄청나게 붉어지면서 일렁거리는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아서는 그걸 막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랜서의 거친 공격에 아서가 내동댕이 쳐지다시피 바닥을 뒹굴었다.
먼지가 걷어지자 주저앉은 채 상처를 감싸고 있는 아서의 모습이 드러났다.
" 피했구나, 세이버...! "
" 큭... 지금의 그건 인과의 역전! "
" 나의 필살, 게이볼그를... "
" 네 놈은 아일랜드의 빛의 왕자인가! "
" 이거 실수했군. "
실수했다던 랜서는 고개를 설레 젓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스터가 겁쟁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랜서의 말을 아서와 시로는 듣기만 했다.
" 그래, 창을 피했다면 돌아오라고 웃기는 소릴 지껄이는 군. "
" 도망가는 거냐! 랜서! "
" 쫓아올 거라면 상관하진 않겠다. 하지만 쫓아온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
발길을 돌리는 랜서의 모습에 아서가 도망치는 거냐고 외쳤다.
그러자 랜서가 발걸음을 멈추고 험악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서 가버렸다.
시로는 랜서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이후에야 아서에게 달려가며 그를 불렀다.
" 세이버! "
" 윽... "
" 너는 대체... 뭐야? "
" 보시다시피 서번트, 세이버. "
" 아, 나는 시로. 에미야 시로. "
" 세이버라고 불러주시면 돼. 시로. "
시로가 가까이 다가오자 아서의 다친 상처가 순식간에 나더니 부서졌던 갑옷까지 수리가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로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그 물음에 아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서의 답에 시로는 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세이버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 말에 시로는 달빛을 등지고 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시로와 아서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아서가 밖에 적이 둘이나 있다며 담장을 넘어가버렸다.
" 아직이야. 아직 밖에 적이나 둘이나 있어. "
" 세이버?! "
담장을 넘어 가버리는 아서의 모습에 시로도 뒤따라갔다.
아서가 다른 누군가와 전투를 하는 모습에 다급하게 그만두라고 외쳤다. 그러자 아서의 몸이 강제로 멈추었다.
" 세이버! 멈춰...!! "
" 윽... 이 두 사람은 적이야. 시로! "
" 흠... 뭐야, 에미야 시로잖아? "
" ... 토, 토오사카?! "
시로와 아서의 실랑이 사이에서 토오사카가 말을 꺼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토오사카 린이었다. 랜서와의 전투 이후 아서가 급하게 뛰쳐나가 린과 아쳐를 공격한 상황이었다.
시로는 상대가 토오사카라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시로가 아서를 말리고 토오사카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로가 부쉈던 유리판을 린이 고쳐주었다.
아서는 시로의 뒤에서 묵묵히 시로와 토오사카가 대화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토오사카가 유리를 고쳐주면서 이런 것 정도는 시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 헉, 토오사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
" 이 정도는 기본이라 너도 할 수 있는데? "
" 굉장해! 나는 이런 일 못하거든. "
" 뭐? 초보였어? "
토오사카가 유리를 고쳐주면서 이런 것 정도는 시로도 할 수 있다고 하자 시로는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고 듣던 게 답답했던 토오사카가 중얼거렸다.
" 하... 어째서 이런 녀석에게 세이버가 불리는 거야. "
" 뭐? "
" 아니야. "
토오사카의 말에 시로가 의문을 표했다.
토오사카는 힐끗 갑갑한 시로를 보았다. 시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토오사카를 보았다.
토오사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 넌 지금 네가 무슨 입장에 처해있는지 모르지? "
" 입장이라니? "
" 너는 어떤 게임에 말려든 거야. 성배 전쟁이라고 하는 7명의 마스터가 죽고 죽이는. "
" 성배 전쟁? 죽고 죽이는?? "
토오사카의 질문에 시로가 의문을 가지고 말했다.
어떤 게임에 말렸다는 토오사카가 설명을 이어가자 시로는 크게 당황했다.
순식간에 소름이 돋아 입을 벌린 채 토오사카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로는 자신이 마스터로 선택되어 성배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에 많이 당황하게 되었다.
" 어딘가에 성흔 표식이 있을 거야. 그건 영주... "
" 이건가? "
시로는 토오사카가 말하는 성흔이라는 걸 보았다.
자신의 손등이 뜨겁게 느껴지더니 새겨졌던 흔적이었다. 이어지는 토오사카의 말에 시로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아서를 보았다.
" 마스터에게 서번트가 주어지는데, 7명의 마스터가 있다는 말이야. "
" ... 너도 있어? "
" 나도 엄연히 마스터야. 그 성흔으로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이왕이면 2번까지만 하도록 해. "
" 토오사카! "
시로가 아서를 보자 아서는 입꼬리를 호선을 그리며 웃는 얼굴로 시로를 보았다.
이야기를 끝낸 토오사카가 마지막 경고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다 이야기를 끝낸 토오사카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서 아서를 보았다.
" 당신은 불완전한 모양이네. 마스터와 연결된 선이 없어. "
" 예, 시로에게는 저를 실체화시킬 마력이 없습니다. "
" 하... 내가 너의 마스터라면 둘 다 간단히 해결될텐데. "
" 그거 내가 부적합하다는 소리야? "
" 당연하잖아, 엉터리! "
토오사카의 말에 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정작 시로는 저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서가 시로의 마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토오사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 말에 욱했던 시로가 토오사카에게 되물어보았다.
그러자 토오사카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오사카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 슬슬 가보자. "
" 가다니, 어디로? "
" 이 싸움을 감독하는 녀석이 있는 곳. "
슬슬 가보자는 토오사카의 말에 시로가 되물어보았다.
토오사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씩 웃었다.
시로는 토오사카의 웃음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오사카와 시로가 도착한 곳은 한 성당이었다.
달빛이 비쳐 푸른빛을 내는 어쩐지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조용한 성당처럼 보였다.
토오사카와 시로가 대화를 하면서 걸어가다가 싸움을 감독한다는 사람과 만났다.
" 네가 이번 세이버의 마스터냐. "
" 난 전혀 몰라. "
" 이거 린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
처음 만난 상대는 시로에게 자신이 코토미네 키레이라고 소개했다.
세이버의 마스터냐는 질문에 시로는 짧게 답했다.
그 말에 코토미네가 토오사카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를 이어가다가 코토미네는 시로에게 성배 전쟁과 서번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시로는 자신이 전혀 속해있지 않았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정보를 듣다 보니 10년 전의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의 화재가 성배 전쟁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시로는 성배 전쟁이니 서번트이니 모든 이야기가 복잡했지만, 10년 전의 이야기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 ... "
" 무슨 일이야? 에미야. "
" 아, 아니. 괜찮아. "
괜찮냐는 토오사카의 질문에 시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답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코토미네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시 한 번 묻겠다, 에미야 시로. "
" ...?! "
" 선택받은 마스터로써 이 성배 전쟁에서 싸울 의지가 있는가? "
" ... "
코토미네의 말이 끝나자 그 순간 달빛을 받아 푸르던 성당이 붉게 변했다.
코토미네가 시로에게 싸울 의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시로는 고민에 잠겼다. 성배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일상이 틀어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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