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공간,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원탁 책상에 둘러진 빈 의자가 몇 개 있었지만, 대부분이 누군가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육중한 문이 열리고 푸른 망토를 두른 금발 남자가 들어왔다.
자리에 서 있던 한 사람이 마른기침하면서 말했다.
" 크흠, 왕께서 납시었다. 다들 착석하도록 하세요. "
" ... 모두 앉도록. "
어수선하다고 느낄 정도로 시끄럽던 홀이 왕의 등장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홀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왕, 아서에게로 향했다. 모든 기사들이 아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서와 함께 들어온 기사들이 빈자리에 들어가 아서가 앉기를 기다렸다.
아서가 자리에 앉자,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12기사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아서의 곁에는 멀린도 함께였다. 아서는 멀린을 한 번 보다가 입을 열었다.
" 군사 회의를 시작하겠다. "
" 왕의 말대로 군사 회의를 해야 하니 안건을 꺼내보도록 하렴. "
" 저... 이번 원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
" ... 그게 좋겠군. 모두 기탄없는 의견을 들려주길 바란다. "
" 예!! "
군사 회의를 시작한다는 말에도 기사들은 하나같이 아서만 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멀린이 마른기침하며 안건을 꺼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베디비어가 손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번 원정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베디비어의 의견에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서를 지켜보기만 하던 기사들이 하나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모든 기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아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은 아서가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웃음을 감추었다.
아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지켜보다가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을 짚었다.
" ... 그러면 가웨인, 말해보도록. "
" 크흠! 이번 원정에는 저번처럼 무겁게 가는 것 말고 가볍게 준비해서 가는 건 어떻습니까? "
" 흠, 괜찮은 안건인 것 같군. "
아서가 가웨인을 부르자 모든 기사들이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대신 그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가웨인을 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인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가웨인이 나름 진지하게 내민 의견에 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은 안건이라며 동의했다.
아서가 자신의 의견이 괜찮다고 말해주자, 가웨인은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기사들을 보았다. 그러고 나선 자랑이라도 하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가웨인의 행동을 지켜보던 다른 기사들이 하나같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자신의 의견도 들어달라는 듯 회의에 열렬한 반응이 나오자 아서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까와 같은 상황이 그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당황한 아서가 마른기침하며 고민했다.
" 케이가 말해보도록. "
" 왕이시여! 저번에도 케이를 부르시더니...!! "
" 또 케이입니까?! "
아서가 케이를 부르자 기사들이 난동을 부리듯 말했다.
저번 군사 회의에도 케이를 불렀던 아서였다. 그래서 기사들이 또 케이를 부르는 거냐며 난동을 부리듯 말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왕이 입가를 가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 그야... 다들 이름이 너무 힘들다. "
" 왕이시여! 이번에 제 이름을 쉽게 개명하겠습니다! "
"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바꾸고 오겠습니다!! "
" 다들 조용!! 아직 회의 중이란다. "
" 큼... "
" 그리고 오죽 너희 이름이 어려우면 아서가 너희 이름을 기억 못 하겠니. "
" 으윽... "
아서가 기사들의 이름이 힘들다는 걸 말하자 그 말에 상처받은 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외쳤다. 자신의 이름을 개명 시키겠다는 기사도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미 나가려고 하던 기사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멀린이 큰 소리로 외쳤다. 멀린의 외침에 모든 기사들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조용해지자 멀린이 입을 열었다.
오죽하면 아서가 그러겠냐며 아서와 기사들, 둘 다 엿 먹이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말에 아서까지 당황하고 있으니 멀린이 큭큭 웃으면서 아서를 보며 말했다.
" 아서, 이제 네 기사들의 이름은 외워야 할 때 아니야? "
" ... 그래도 어느 정도 외운 사람도 있다. "
" 크흠... "
멀린과 아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들은 온 집중을 다 하고 있었다.
아서의 입에서 나올 기사의 이름이 너무나도 궁금한 탓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서는 멀린을 보며 자신이 기억하는 기사의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아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모두가 잔뜩 긴장해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서는 생각이 나는 기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읊다가 퍼시벌을 마지막으로 말이 멈추고 말았다.
" ... 가웨인, 란슬롯, 베디비어, 케이, 퍼시벌... ... "
" 휴... "
" 푸흡, 큽... "
" 와, 왕이시여... "
" 앞으로는 이름을 외우고 다니겠다. "
아서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천차만별로 나뉘었다.
지켜보고 있던 아그라베인과 트리스탄, 모드레드, 갤러해드, 가레스, 가헤리스, 팔라메데스가 각자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아서를 보았다.
아서에게 이름이 불리지 못한 기사들이 비탄에 빠진 듯 다급해진 목소리로 아서를 불렀다.
아서는 괜히 미안해진 듯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보다가 짧게 침음했다. 아서는 앞으로 이름을 외우고 다니겠다고 말하며 기사들의 앞에서 약속했다.
아서가 약속을 하고 나서야 기사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었다.
아서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멀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는 이 녀석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겠다. "
" ... 나는 조금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네. "
" 그러면 나에게도 조금 알려주는 게 어떤가. "
" 그걸 내가 굳이? 너는 왕이니까 이해해 보려고 해보는 게 어떻겠나. "
" 하... "
아서가 멀린을 보며 자신은 기사들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걸 듣고 있던 멀린이 기사들을 보더니 아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아서가 멀린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서의 말에 멀린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멀린은 아서에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린의 행동에 아서는 주먹을 꽉 쥐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서에게 멀린이 너무나도 얄미웠기 때문이었다.
아서의 오른쪽에 있던 베디비어가 아서를 보며 말했다.
" 왕이시여,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셔 주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하하, 베디비어는 자주 보았으니까. "
" ...!! 앞으로는 더 자주 보도록 하겠습니다! "
" 그럼 저도 앞으로 자주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왕이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실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 왕이시여,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
감사하다는 베디비어의 말에 아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서의 말에 감격한 베디비어가 이어 말했다. 감격에 찬 목소리와 표정에 아서가 웃었다. 아서가 베디비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5명이 하나같이 외쳤다.
커다란 외침에 아서가 흠칫 놀랐다.
어째서인지 분명 원정에 관해 회의하기로 했는데 점점 왕이 시들 거리며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멀린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해야겠구나. "
" ... "
멀린의 말이 끝나자 아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이 들어왔던 문으로 나갔다.
다른 기사들도 일어나더니 아서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서는 천천히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서의 발걸음이 멈추자 뒤따라가던 다른 기사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아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보았다.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모를 기사들이 보이자 아서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마치 강아지처럼 뒤따라오는 기사들의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는 착각을 느꼈다.
아서는 마른기침을 한 뒤 기사들을 향해 물어보았다.
" 왜 따라오고 있는 건가? "
" 저희도 왕과 더 자주 보고 싶습니다. "
" 왕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
" ... 하하, 충직한 녀석들이로군. "
아서의 말에 기사들이 자신도 왕과 더 자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걸 듣고 있던 아서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어서 아서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제일 앞에 있던 아그라베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 이럴 시간에 훈련을 더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
" 음... 왕의 말씀이 옳습니다! "
" ... 너희들은 안 가고 뭘 하려는 건가? "
" ... 나중에 뵙겠습니다. "
아서의 말에 공감한 몇몇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훈련하러 가버렸다.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기사들은 멀뚱히 자신의 왕을 보았다. 그러자 아서가 기사들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안 가냐는 아서의 말에 남아있던 기사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발걸음을 돌려 아서와 멀어졌다.
아서는 모든 기사들이 다 떠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린다는 듯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묵묵히 복도를 걷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쉬기 위해서였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창밖에서 기사들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을 보니 자신의 말대로 기사들이 훈련하고 있던 것이었다.
"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
똑똑
" 들어오도록. "
" ... "
" 무슨 일로 왔는가, 왕비. "
" ... "
아서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기사들의 모습에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서의 방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서가 들어오라고 말하니 무거운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서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고, 들어온 사람은 조용히 아서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는 곁으로 다가온 사람이 누군지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아서의 곁에 있던 기네비어가 움찔거리더니 한참을 말없이 아서와 함께 창밖을 보았다.
기네비어의 시선이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아서는 기네비어의 시선이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시선 하나만으로 무어라 말하기엔 너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으니까.
그저 묵묵하게 기네비어와 함께 창밖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먼저 발걸음을 옮긴 사람은 아서였다.
" 먼저 가보도록 하겠네. "
" ... 예. "
아서가 먼저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로 가는 길목에 기사들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기만 할 뿐이었다. 기네비어의 행동 때문에 생각이 너무 깊어져서 기사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기사들이 아서를 발견하고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그를 따라갔다.
어쩌다 보니 아까 복도에서 아서의 뒤를 따르던 모습이 다시 재현되었다. 아까랑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서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기사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저 기네비어의 일로 생각이 깊어졌을 뿐이었는데, 기사들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걷기만 했다. 기사들은 아서가 자신들을 알은 채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하는 모습에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서는 집무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놀랐다. 많은 기사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 ... 지금 뭐 하는 건가? 왜 따라온 거지? "
" 왕의 뒤를 따라왔을 뿐입니다. "
아서는 자신의 뒤를 따라온 기사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온 기사들은 하나같이 충직한 자들이었다. 자신을 믿고 그저 따라오기만 하는 이들이었다. 아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서는 자신이 이끄는 브리튼의 멸망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혼자 알고 있으며 자신을 눌렀다. 의미 없는 발버둥은 하지 않기 위해 그저 버틸 생각이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뒤를 따라와 주는 기사들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버티기만 하지 말고, 멸망을 피하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많은 기사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왔다는 것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왜 따라왔냐는 아서의 질문에 기사들은 입을 모아 왕의 뒤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서의 바로 뒤에 있던 가웨인이 아서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 왕이시여, 괜찮으신겁니까? "
" ... "
"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
" 괜찮네. "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는 가웨인의 말에 아서는 움찔거렸다.
자신의 상태를 바로 알아차린 가웨인이 신기하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손사래까지 치는 아서의 모습에 모든 기사들의 표정이 걱정으로 변했다.
아서가 하다못해 기사들을 보며 짧게 말했다.
" 그리 걱정이 되거든 짐이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느냐. "
" 예! "
" 그럼 연무장으로 가도록 하지. "
그렇게 해서 아서와 기사들이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모인 아서와 기사들은 각자 몸을 풀며 준비하기 바빴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의 분위기는 한층 더 엄숙한 상태였다.
찬 바람이 불어오고 아서가 칼집에서 엑스칼리버를 꺼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연무장 근처로 많은 평기사들과 하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할 일을 마친 멀린이 잠시 쉬기 위해 나왔다가 북적거리는 인파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지켜보더니 중얼거렸다.
" 저긴 왜 저렇게 사람이 모여 있는 걸까. "
" 여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
" 아, 멀린 님. 지금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훈련하는 걸 보려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
" 아서가? "
멀린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평기사가 멀린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말에 놀란 멀린이 사람들 사이를 더 비집고 들어가서 중앙에 모인 아서와 기사들을 보았다. 멀린이 아는 평소의 아서라면 짓궂어서 장난을 치고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진지한 아서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렇게 멀린이 아서와 기사들을 말릴 시간도 없이 아서와 기사들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아서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더니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그러자 검의 풍압에 밀려나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이 존재했다. 대련이라고 하기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던 시합이 끝나고 연무장에는 흙먼지가 나부꼈다.
대전이 끝나자 멀린이 아서의 곁으로 다가갔다.
" 오늘 이상한 거 같은데 괜찮은 거 맞니? "
" ... 그렇게 티가 많이 나는가? "
" 오늘따라 유독 더 잘 보이는구나. "
" ... "
" 지나가던 평기사들도 알아볼 정도였으니. "
" ... 기네비어가... "
" 무슨 일이길래 그러니? "
" ... 아무것도 아니다. "
아서는 다가온 멀린이 건넨 말에 하인이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냐는 물음에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따라 유독 더 잘 보인다는 말과 지나가던 사람조차 알아볼 정도라고 하니 아서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아서는 마른기침하면서 고개를 돌렸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멀린을 보면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걸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서의 행동에 오히려 더 궁금해져 버린 멀린이 아서를 붙잡고 다그쳐 봤지만, 아서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멀린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평소에 실없는 장난을 치며 짓궂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멀린은 그런 아서가 더 신경 쓰였다.
" 정말 아무 일 없는 거니? "
" ... 그래, 짐은 괜찮다. "
" 아무리 왕이어도 결국 사람이야.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
" ... "
아서는 멀린이 자신을 향해 걱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왕도 결국 사람이라는 말이 왜 그리 와닿던지. 기네비어의 입에서 듣길 바랐던 말이 멀린의 입에서 나왔다.
아서는 땀을 닦던 수건을 다시 하인에게 돌려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재정비를 하고 있는 기사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집무실 창가를 보았다.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창가에 있던 기네비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서는 그 사실에 위로라도 받은 듯 안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안심해 버렸다는 사실 하나로 단번에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
.
.
아서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기사들 사이에서 기네비어와 란슬롯의 관계가 흉흉한 소문이 되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돌고 돌아 아서와 멀린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실상이 파악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들려선 안 되는 소문이었다.
왕비인 기네비어와 왕의 충신인 란슬롯의 불륜관계라는 소문은 더 이상 퍼져선 안 될 이야기였다. 모두가 알아도 모르는 체하며 쉬쉬하고 있는데 우연히 아그라베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소문이 성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고 말았다.
아서와 멀린이 막을 새도 없이 커져 버렸다.
" 그래서 이번 안건은... "
" 왕이시여, 소문의 진상을 밝혀주십시오. "
" ... "
결국 그 소문은 원탁 회의가 열릴때 나와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회의장에서 불쾌한 소문이 나오자 시끄럽던 홀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소문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트리스탄이었다.
아서는 며칠 전, 집무실로 찾아와 왕은 사람들의 감정을 모른다고 외치던 트리스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가 이야기를 꺼내니 아서는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트리스탄의 의견에 동의하며 함께 항의한 사람이 아그라베인이었다.
아서는 믿고 있는 기사 두 명이 이런 말을 꺼내니 착잡해졌다.
" ... "
" 왕이시여!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모든 건... 제 탓입니다! "
" ... "
" 충동적이긴 했으나 감히 왕의 여자를 건드렸습니다. 저를 벌해주십시오! "
" ... 하 "
아서가 고개를 돌려 소문의 주범인 란슬롯을 보았다.
트리스탄과 아그라베인의 항의에 당황하고 있던 란슬롯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아서에게 사죄를 청했다.
란슬롯의 행동으로 인해 소문만 무성했던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아서는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불륜이 그저 소문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란슬롯은 자신을 벌해달라며 청했다.
란슬롯의 행동에 모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서는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믿고 있던 기사와 기네비어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날, 창밖을 통해 기네비어가 보고 있던 사람이 란슬롯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어쩌면 훨씬 더 전부터, 라는 불온한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지켜보던 멀린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아서가 멀린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 이 모든 상황을 모두 입 밖으로 내뱉지 말도록. "
" ... 왕이시여! 어찌 불온한 자를...! "
" 명령이다. "
갑작스러운 아서의 함구 명령에 기사들이 반박하려 들었다.
하지만 아서가 단호하게 명령이라는 말을 내뱉자 반박하려던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란슬롯을 노려보았다.
아서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결국 모르는 척하기를 택했다.
원탁회의는 흐지부지 끝을 맺어버렸고, 홀에 있던 모든 기사가 원탁의 방을 나갔다. 모든 기사가 나가고 홀로 남은 아서가 의자에 기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브리튼은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
머지않아 멸망할 것이라는 게 예감이 되었다. 눈에 너무 뻔히 보일 정도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 하... "
그래서 잔잔하게, 조용하게 멸망이 오기까지 인성까지 내려두고 참으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믿고 의지해야 할 기사들이 하는 행동들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아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암담했다.
혼자 발버둥 쳐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육중한 문이 조용히 열리고 가웨인이 들어오더니 아서의 곁에 앉았다.
아서는 가웨인이 자신의 곁에 앉았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무시하기엔 가웨인의 존재가 너무나도 컸다.
조용히 있던 가웨인이 입을 열고 말했다.
" 왕이시여, 충신이 된 입장으로서 감히 간언해도 되겠습니까. "
" ... 해보도록. "
" 감사합니다. "
충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간언해도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한참을 묵언하고 있던 아서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 간언을 허락했다. 그러자 가웨인이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진지한 얼굴로 아서를 보며 말했다.
" 기네비어 왕비를 유폐시키고 란슬롯을 감옥에 가두셔야 합니다. "
" ...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
" 왕께서 그러지 않으신다면 다른 기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입니다. "
" ... "
" 어떤 자는 감히 왕을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자는 반란을 꿈꿀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
" 아서? "
가웨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기네비어를 유폐시키고 란슬롯을 감옥에 가두라고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서가 가웨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가웨인이 마른침을 삼키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서는 그가 했던 말대로 가웨인의 충언을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웨인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조금 더 강하게 충언하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멀린이 들어왔다.
입구에서 아서와 가웨인을 지켜보고 있던 멀린이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다가온 멀린은 아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 아까 대련할 때부터 신경이 쓰여서 와봤어. "
" ... "
" 아, 가웨인도 있었구나. "
" ...예. "
아서가 신경 쓰였다며 멀린이 아서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멀린은 뒤늦게 가웨인을 발견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가웨인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볍게 목례로 답했다. 멀린과 가웨인은 한 사람을 왕으로 모시고 있었을 뿐, 서로 그리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친한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가웨인은 아서를 보며 강경하게 나왔다.
" 당장이라도 왕께서 란슬롯을 붙잡아 감옥에 구금하라고 하신다면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
" ... 그래도 짐이 너희 덕분에 버틸 수 있구나. "
" ... "
진지한 표정의 가웨인을 지켜보던 아서는 그처럼 충직한 신하들이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서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멀린과 가웨인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을 듣고 있는 초대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란슬롯이었다. 란슬롯은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두운 복도에서 아서와 멀린, 가웨인이 나누는 모든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면서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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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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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되고 아서가 익숙하다는 듯 갑옷을 입고 있었다.
원정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기네비어는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참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실상 이 공간 속에서 가장 불안해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문만 무성하게 돌던 관계가 원탁회의에서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걸 듣게 되었다. 그래서 기네비어는 혹여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아서가 자신을 버릴까 그게 두려웠다. 항상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주던 아서를 두고서 감히 왕비라는 자가 불륜을 저질렀으니까. 자신에게 돌아올 것들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 ... 비록 그대와 란슬롯과의 관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고 짐은 괜찮다. "
" ... 무사히 다녀오세요. "
" 다녀오도록 하지. "
아서는 원정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서 기네비어를 보았다.
누가 보거든 불쌍한 여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서는 짧게 숨을 내뱉은 뒤 기네비어를 향해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서 나가버렸다.
방에 홀로 남은 기네비어는 아서의 태도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버려지면 어쩌나 싶어 걱정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자신의 불륜 따위 아서에겐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와 동시에 비참함을 느꼈다.
자신의 왕이자 남편인 아서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기네비어는 주먹을 꽉 쥐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서가 완전히 나가기 직전에 기네비어는 몸을 돌려 그에게 무사히 다녀오라고 말했다.
아서는 원정을 떠나는데, 가웨인과 멀린이랑 함께 떠나기로 했다.
" 준비는 끝난 건가? "
" 예! 바로 출발하면 됩니다. "
" 멀린, 힘들면 마차를 타도... "
" 아니. 오늘은 말을 타고 가고 싶으니, 마차를 타라는 말은 참으렴. "
아서는 원정을 떠나기 전 베디비어에게 임의로 대행권을 맡기고 떠났다.
아서가 원정을 떠난 그다음 날, 아서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에서 날아온 소식지에는 란슬롯이 사고를 쳤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란슬롯이 아그라베인을 죽였다는 소식이었다.
이유는 아그라베인이 기네비어를 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서와 가웨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소식지만 보고 있으니, 곁에 있던 멀린이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말했다.
" 원정을 빨리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
" ... 아그라베인... "
" ... "
아서는 며칠 전, 자신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그라베인이 떠올랐다. 고문 감독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던 그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그는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짚었다.
브리튼에서 큰 죄로 해당되는 것 중 하나가 동료 살해죄였다. 같은 원탁의 기사를 죽였다는 사실이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하였다. 아서는 결국 베디비어에게 란슬롯을 동료 살해죄로 구금하고, 기네비어를 유폐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신을 묶은 새가 아서의 걱정과 근심을 안고서 광활한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서가 보낸 서신을 받은 베디비어는 그의 명령대로 란슬롯을 구금하고 기네비어를 유폐시켰다.
" ... 이번 원정은 더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지. "
" 예! "
" 가웨인, 그대 덕분이다. 평소처럼 길게 잡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원정이구나. "
" ...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아서는 문득 저번 원탁회의에서 원정을 가볍게 가자던 가웨인의 의견이 떠올랐다.
착잡한 표정으로 가웨인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가웨인의 일그러진 표정이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는 듯 말해주었다.
아서가 구금 명령과 유폐 명령을 내린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베디비어에게서 새로운 연락이 왔다. 란슬롯이 기사도가 발휘된 건지 유폐된 기네비어를 구출하기 위해 탈옥을 시도 했고, 그게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직 란슬롯이 잡히지 않았다는 말도 있었다.
평기사를 풀어 이른 시일 내로 잡겠다는 말까지. 아서는 원정을 더 빠르고 다급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자신이 성을 비우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 원정이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도록... "
" 왕이시여! 대행자로부터 서신이 왔습니다! "
" ... 아... "
아서가 원정을 정리하고 다시 성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마지막 서신을 가진 새가 다급하게 아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란슬롯을 막기 위해 가레스가 파견되었으나 란슬롯이 가레스를 죽이고 기네비어와 함께 국외 도주를 했다는 서신이었다. 아서는 서신을 읽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성의 소식은 그를 암담하게 만들었다.
서신 속에 있는 가레스는 자신의 곁에 있는 가웨인의 동생이었다. 가웨인에게 동생이 란슬롯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이런 못난 왕 하나 때문에 가족을 잃은 충직한 기사에게 미안했다.
아서는 이 모든 상황이 전부 꿈이길 간절하게 원했다. 그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
" 가웨인. "
" 예, 왕이시여. "
" ... "
아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서는 자신의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 처참하고 허탈하게 무너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성으로 돌아가는 원정대 속에서 아서는 생각에 잠겼다.
가웨인을 부르긴 했지만, 그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문득 국외로 도망쳤다던 기네비어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 짐이 네게 못 해준 게 무엇이 있더냐. 네게 부족하지 않으려 그리 노력했는데. '
그런 동시에 아서는 란슬롯에게 실망을 느꼈다.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함께 살아남은 자신의 기사이자 동료이자 친우였던 자였다. 그런데 감히 왕의 여자를 탐해놓고서 벌하라고 간곡히 청하더니, 그 왕비와 함께 국외로 도망을 쳤다. 거기에 함께하던 동료까지 살해하고서.
아서는 뿌득, 이가 갈렸다.
그토록 믿고 의지해오던 이들이 이리 쉽게 제게 칼을 겨누는데. 아서는 순간 회의감에 휩싸였다. 곁에 있는 멀린이라던가, 가웨인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곁을 지켜주는 많은 이들이 남아있었지만, 그럼에도 믿었던 이들이 자신을 저버렸다는 게 너무 분통스럽고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아서는 왕이었기에 자신을 믿고 따르는 가웨인에게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아서는 가웨인을 불렀고, 가웨인은 밝은 표정으로 아서의 곁으로 다가왔다.
밝은 가웨인의 표정에 아서는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왕이니까.
" 가웨인. "
" 예! 왕이시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
" ... 란슬롯이... ... 기네비어와 국외로 도주했다는군. "
" ... 그럴 것 같았습니다. "
" ... ... 도주하기 전에 그들을 막은 자가 있었다. "
" 누군지 모르겠지만... "
" 가레스라더군. "
" ... "
가웨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왕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왕께서는 지금 분명 란슬롯과 왕비가 국외로 도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막은 자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이 국외로 도주에 성공했다는 건...
가웨인의 눈동자가 점점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이 굳게 닫힌 상태에서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아서가 마지막 말을 꺼냈다.
" ... 란슬롯이 가레스를 죽였다. "
" ... 왕이시여, 제가 먼저... 성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
아서의 말 한마디에 가웨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멍하니 있던 가웨인이 아서에게 청했다. 가웨인의 청에 아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웨인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더니 말을 이끌고 단번에 달려 나갔다. 아서는 가웨인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의 신하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토록이나 무력한 왕이 있을 수가 있는가.
자신을 한탄하며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서가 성에 도착했을 때는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성이 어수선했다.
베디비어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정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알아본 결과 모드레드가 반란을 일으켰다. 아서는 결국 반란을 일으킨 모드레드를 롱고미니아드로 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서가 나서 상황을 정리하자 순식간에 반란군이 정리되었다.
" 조금... 지치는구나. "
" 아서, 부상이 크니 말하지 마렴. "
" ... 쉬어야겠다. "
모드레드와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었던 것이 생각보다 컸다.
원정의 피로와 여행의 피로, 거기다 부상까지 겹친 아서는 결국 침상에 눕게 되었다. 누워있는 아서의 곁으로 멀린이 다가왔다. 멀린이 아서를 보며 입을 열었다.
" 아서, 너는... 브리튼의 멸망을 예상하였던 거니? "
" ... 하지만 짐도 브리튼이 이토록 허무하고 처참하게 망할 줄은 몰랐다. "
" ... 왕이시여. "
멀린의 질문에 지쳐있던 아서가 힘없이 살짝 웃었다.
아서는 힘겹게 답을 한 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았다. 그때 먼저 떠났던 가웨인이 방으로 들어와 아서를 불렀다.
하지만 지쳐 잠이 든 건지, 아니면 마지막이었던 모양인 건지 아서는 답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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