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릉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연이 부스스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연은 햇빛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치우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수선하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 방은 조금 독특해 보였다.
늦은 아침이었지만, 연은 등교를 하기 위해 하나, 둘 챙기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선 연은 자신의 새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나누어 땋아내리고, 대부분이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힙한 옷을 입었다. 그런 뒤 늘어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연의 곁으로 큰 승용차가 지나갔다.
연의 자전거 속도에 맞춰 차가 천천히 달리더니 창문이 내려갔다.
그 안에서는 연도 알 정도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 Hey! "
" ... "
" 그만둬, 제이콥. "
" 기다려 봐, 잭. "
연은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일부러 무시했다.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운전석에 있는 제이콥의 행동에 승대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말렸지만, 먹히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이던 승대에게있어 연은 처음 보는 학생과 유사했다.
인사를 한 적도 없었고,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없었으며 그 흔한 노는 것조차 함께 하지 않았었다. 그에 반해 연에게 있어 승대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승대는 학교에서 럭비부의 주장인데다가 매년 열리는 파티에서 킹카 자리를 차지하는 인싸중의 인싸였기 때문이었다.
알고 싶지 않아도 학교를 다니면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자칭 고스족인 자신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승대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는 제이콥이 타고 있었다.
승대를 향해 가만히 있어 보라던 제이콥은 연을 향해 성희롱하듯이 말했다.
" Hey! 레베카! 한 번 대주면 차에 태워줄게! "
" ... "
" 그딴 자전거 말고 내 다리 위에 앉아서 가는 건 어때? "
" ... Fuck! "
" 제이콥, 그러지 마. "
" 하하! "
성희롱하는 발언에 연은 아연실색이 되어서는 딱 한 마디만 내뱉었다.
연의 욕설에 제이콥에 하하,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승대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운전석에 있는 제이콥도 승대처럼 인싸에 가까운 남자였지만, 그의 소문은 그리 좋지 못한 편에 속했다.
그에 반해 승대는 인싸임에도 불구하고 인성이 바르고 착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연의 자전거가 비틀거리자 보고 있던 승대가 입을 열고 말을 걸었다.
" Sorry, 연. 학교에서 보자 ."
" ...?? "
그 말이 끝나고 곧바로 유리창이 다시 닫혔다.
강하게 코팅이 된 유리창이라 승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살펴보기도 전에 차는 썡하니 가버리고 말았다. 멀리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차를 지켜보던 연은 묵직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승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면 인사를 나눈 적도, 같이 논 적도 없었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중저음의 톤으로 원래 이름이 불리자 듣기 좋았다.
미국에 와서는 부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듣기 힘들었던 한국 이름이 정겨웠다.
멍하니 있던 연은 시계를 보더니 페달을 빠르게 밟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한 연은 자전거를 보관소에 맡긴 뒤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럭비부의 시합이 있는 날이어서 그런 지 다들 한껏 들떠 있었다. 연이 복도를 따라 걷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 이번 시합은 누가 이길까? "
"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잭이랑 제이콥이 있는 우리 팀이지. "
" 그치? 내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네~ "
연은 멍청한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의 캐비닛 앞에 도착했다.
캐비닛을을 열고 가방을 넣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연을 불렀다. 캐비넷 안에 넣은 가방에서 수업에 필요한 책과 필통만 들고서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보았다.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연과는 달리 화려하고 화사한 밝은 컬러로 꾸민 사람이 연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르면서 마치 시그널 사인처럼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치더며 박수를 했다. 마지막에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엄지손가락만 올려 손가락 싸움을 했다.
이긴 사람은 연의 친구였다.
" 레베카! 리비! 오랜만이야~ "
" 루이. 방학 동안 잘 지냈어? "
" 완전 호러였지. 으~ "
"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
" 아, 그런데 리비. 오늘 시합 볼 거야? "
루이는 학교에서 연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연에게 리비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한국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불러주려고 노력한 고마운 친구이기도 했다.
연은 자신과는 달리 하이텐션인 루이를 보며 살포시 웃었다.
연에게 다가와 손장난을 끝낸 뒤 와락 끌어안던 루이는 연에게 오늘 럭비 시합을 볼 거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연은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며 쉽게 답을 주지 못했다.
한 번 떠올린 기억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승대가 자신을 감싸주며 미안하다고 말한 것과 학교에서 보자고 한 건 무슨 이유였을까, 단순한 친절이었나? 아니면 승대가 나를...
연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 리비? "
" 아, 루이. 그건 아직 고민 중이야. "
" What~? 리비~ 우리 같이 가자. 응? 응?? "
" 일단 수업 끝나고 말해줄게. "
연이 아직 고민 중이라고 말하자 루이가 애교 섞인 말투로 연의 팔에 매달리듯이 안기며 말했다.
연은 자신이 루이의 애교에 약하다는 걸 인정하는 듯 수업 끝나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걷다가 교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연이 책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연의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연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그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아까 아침에 보았고, 연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주범인 승대였다. 연은 의외의 인물이 말을 걸었다고 생각하며 무슨 일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승대를 보았다.
연의 모습에 승대는 웃으면서 다시 재차 말했다.
" 아침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
" ... 그래서? "
" 아, 오늘 시합이 있는데... 알아? 나는 그 시합에 네가 꼭 보러 와줬으면 하거든. "
" 내가 왜? "
" 음... 나는 네가 파티에도 와줬으면 좋겠어. "
" uh? "
승대는 웃으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기에 시합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승대의 말을 듣던 연이 생각을 하다가 반문했다. 자신이 왜 거기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가 컸다.
애초에 승대가 왜 나를 콕 집어서 오라고 하는지조차도 의문이었다.
승대는 연의 반응이 처음이라는 듯 당황했다.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연에게만 들릴 정도로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티에도 왔으면 한다는 말과 떨어지는 승대의 모습에 연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승대가 훅하고 들어올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답을 듣지도 않고 웃는 얼굴을 한 번 보여주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 역시 잘생긴 놈은 위험해. '
수업을 하는 내내 심장이 좀처럼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자 내린 결론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던지라 당황한 연은 몰래 힐끔거리며 승대를 보았다. 수업을 하는 내내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힐끔거리며 시선이 승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승대도 시선을 느끼는 건지 가끔 고개를 돌리면 시선이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승대는 신사적이고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러면 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다급하게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연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 여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
모든 수업을 마쳤지만 연은 수업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친구인 루이의 손길에 이끌려 럭비부 시합을 보게 되었다. 싱숭생숭한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시합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눈에 잘 들어왔다. 무엇보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승대를 찾고 있었다.
넓은 광야 같은 필드와 그 위에 어깨 보호구를 껴 상체가 잔뜩 커진 남자들이 모여 공 하나만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 보호구까지 꼈으니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연은 무의식중에 승대를 찾아버리고 말았다.
그가 몇 번 선수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루이의 손에 이끌려 오긴 했지만, 연은 나름 시합을 재밌게 보았다. 겉으로 막 소리를 쳐서 응원하거나 그런 수준은 아니었지만 속으로 간절하게 응원했다.
공을 빼앗기면 아쉬워하기도 하고, 골인하면 화색이 돌면서 반기기도 했다.
" 리비! 어때! 재밌지? 오길 잘 했지? "
" 응, 루이. 재밌네. "
시합은 승대의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승리를 만끽하던 승대는 관중석에 있는 연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순간이었지만 승대와 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승대가 화사하게 웃어주는데 연은 그 미소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연의 곁에 있던 루이가 이번에는 파티에 가자고 연을 꼬셨다.
" 리비! 파티에 가자~ 응? "
" 루이, 나 집에 갈... "
" 이번 파티는 잭 집에서 열린데! 아까 보니까 잭이랑 뭔가 있던 거 같던데... "
" 가, 갈게! 가! 가면 되잖아. "
" 아싸! 역시 리비가 제일 좋아! "
루이의 입에서 승대의 미국 이름이 나오자 연의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캐물어오는 루이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연은 하는 수없이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녁에 승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결국 참석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플라스틱 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인싸인 승대가 여는 파티이다 보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겨우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 좀 지나갈게. "
" Hey! Hey!! "
" 윽... "
연은 부딪혀오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힘겹게 안으로 들어왔다.
주방에서 콜라를 한 잔 얻어낸 뒤 어지럽고 시끄러운 공간을 피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함께 오지고 칭얼대던 루이는 피터와 눈이 맞아 이미 파티 중앙에서 몸을 비비며 놀기 바빠 보였다.
2층을 둘러보던 연은 다른 방은 전부 다 활짝 열려있었는데 딱 한 문만 닫혀있는 걸 보았다.
조용한 곳에 혼자 있고 싶었던 연은 닫혀있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은 시끌벅적하던 밖과는 달리 엄청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마음에 든 연이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콜라를 홀짝거렸다.
창밖은 클럽처럼 비까뻔쩍한 빛을 내며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연은 그 광경을 보며 지금 자신이 있는 이 방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연은 자신의 팔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다.
" 리...!! ㄹ비...!! "
" 으음... "
연은 잠결에 어떠한 소음을 들었고, 그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마치 무언가가 몸을 묶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온몸이 파티 끈으로 묶여있었다.
그걸 보고 공포를 느낀 연이 바르작거리며 바둥거렸다.
주변을 살필 정신 따윈 없었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점 방 쪽으로 묵직한 발걸음까지 들여오자 덜컥 겁이 났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승대였다.
연에게 가까이 다가온 승대는 파티 끈을 풀어주며 말했다.
" 질 나쁜 녀석들이 파티에서 자고 있는 너를 아니꼽게 봤나 봐. "
" 하아... 하... "
" 장난치고 있던 걸 루이스가 발견하고 말리는 소음에 내가 내쫓았어. "
" ... 루이가? "
" 그래, 파티는 끝났고. 일단 내려가자. "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승대의 말에 연의 머릿속에는 루이가 떠올랐다.
아까 잠결에 들었던 루이의 목소리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파티 끈이 전부 풀리고 승대가 연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은 주방으로 내려갔고, 승대가 떨고 있는 연을 위해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타주었다.
진정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는 연의 모습에 승대가 어깨를 감싸주면서 토닥여주었다.
그러다가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연은 점점 다가오는 승대의 얼굴에도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렸다. 비록 짧았지만, 엄연한 키스였다.
.
.
.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연은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평소보다 더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제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온 건지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나는 건 오로지 승대와 입을 맞춘 기억뿐이었다.
연은 괜히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알람이 삐비빅 울리자 정신을 차린 연은 허둥지둥 등교 준비를 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익숙한 차가 한 대 지나갔다.
하지만 다른 점은 어제처럼 제이콥이 운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승대가 운전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이콥은 차에 타고 있지도 않았다.
" 연아, 자전거 타고 가면 지각할 거 같은데 태워줄게. 같이 가자. "
" ... 아니, 괜찮아. "
" 정말 같이 안 가도 괜찮겠어? "
" 응. "
제이콥이 없다는 건 그러려니 하겠지만, 당황스러웠던 점은 승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구는 행동에 오히려 연의 심정만 복잡해져갔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이라도 그에게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꾸미기까지 했는데.
그래봤자 다른 사람에겐 검은색의 칙칙한 의상일 뿐일 테지만.
연은 단호하게 승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연의 거절에 당황한 승대는 씩 웃어 보였다. 항상 흔쾌히 허락만 받아왔던 삶에서 유일한 거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절이라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이상했다. 연에게 거절당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호쾌하게 웃던 승대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 그럼 교실에서 보자. "
" ... "
혼자 말하고는 쌩하니 가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연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승대와 이야기를 하면서 숨을 힘겹게 참고 있었다. 혹여나 제 심장소리가 밖까지 나가버릴까 봐서. 그 순간 자전거가 비틀거렸다. 연이 다급하게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학교에 도착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준비하는데 항상 떨어져서 친구들과 앉던 승대가 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 뭐야? 너 왜 여기에 앉아? "
" 음... 너랑 친해지기 위해서? "
" What? "
승대의 행동에 당황한 연이 작은 목소리로 왜 앉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의 말에 승대가 싱그러운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 의문형의 답에 연은 수업 내내 또다시 집중할 수 없었다. 승대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연은 수업을 마치고 도망치듯이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 구석에 있는 공원 계단에 앉아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이 위로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 ? "
" Hey~ 잘 지냈어? 레베카. "
" 제이콥? "
그림자가 지는 게 뭔가 싶어 연은 고개를 들었다.
연에게 다가온 사람은 어제 운전석에서 운전하던 제이콥과 그와 함께 다니는 패거리들이었다.
연에게 점점 다가오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제이콥이 목덜미를 만지더니 성질내듯이 말했다.
" 하... 너 때문에 다 망쳤어. "
" 뭐? 무슨 개소리야? "
" 어제 일 때문에 잭이랑 틀어졌다고! "
" 그게 왜 내 탓인 건데? "
제이콥은 연을 탓하며 말했다.
그걸 듣고 있던 연은 무슨 개소리냐며 따졌다. 그러자 제이콥은 더 화를 냈고, 주먹을 꽉 쥐고서 휘두르려고 했다.
연은 끝까지 제이콥을 노려보다가 주먹이 다가올 때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다가오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질 않았다.
슬쩍 눈을 떠보니 승대가 제이콥의 주먹을 막고 있었다.
승대의 행동에 울컥한 제이콥이 울분을 토했다.
" 뭐야, 너! 그년이랑 자기라도 했어?! 왜 자꾸 걜 감싸는 건데?! "
" ... 나 혼자 얠 좋아하고 있는 거야. "
" 어? "
제이콥은 승대가 자신을 내친 것도 모자라 주먹까지 막아버리니까 악바리가 생겨났다.
험한 말을 하며 승대를 노려보자 승대는 연을 힐끗 보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연은 눈이 커질 정도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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