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드림/231129] 일상 생활

나비의 보관함 2025. 2. 4. 03:20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다툼이 끝난 이후로 화해하고 나서 다시 잘 지내게 되었다.

결국 화해하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쿠라이의 속에는 미치나가를 향한 원망이 없잖아 있었다. 소중한 가족을 사라지게 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사그라들 수 없는 감정이었다.

대신 그걸 속으로 숨기고 화해했을 뿐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다. 그 일이 있었지만, 이후 두 사람은 화해를 통해 급격하게 친해졌고, 친해지고 나서는 사귀는 사이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치나가는 공사장에서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사귀게 된 이후로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

미치나가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쿠라이를 생각하며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사쿠라이를 불렀다.

 

 

" 다녀왔어, 타이쿤. "

 

 

하지만 항상 돌아오던 답이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트를 들려 사가지고왔던 것들을 부엌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혹시 일찍 잠든 건가 싶은 마음에 큰 방으로 가보았다.

문을 열면서 사쿠라이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큰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모습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 같았다. 그 모습에 미치나가는 크게 당황했다. 휴대폰을 꺼내서 사쿠라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미치나가는 무작정 집에서 사쿠라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괜히 밖으로 나가서 사쿠라이를 찾으러 다녔다가 괜히 엇갈리기라도 한다면?

미치나가는 그게 싫었기에 합리적으로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결론이었다.

사쿠라이를 기다리는 게 어느새 12시를 넘어 새벽을 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쿠라이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미치나가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엄청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가 더 지나고 난 이후에야 현관문이 열렸다.

 

 

" ... 타이쿤! "

" 어라, 미치나가? "

" 너... "

"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

 

 

문이 열리는 소리에 미치나가의 몸이 반사적으로 튕기듯이 일어났다 .

현관에 서서 누가 들어오는지 지켜보았다. 사쿠라이가 돌아왔다. 허무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온 사쿠라이가 신발을 벗고 있었다. 사쿠라이는 현관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는 미치나가의 모습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보아도 미치나가는 답이 없었다.

미치나가는 한참이나 사쿠라이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사쿠라이를 안아주었다. 꽉 자신의 품에 가두듯이 안아주면서 사쿠라이의 목가에 얼굴을 비볐다. 품에서 사쿠라이를 떼어낸 뒤에 그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상처를 입진 않았는지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 아니, 대체 무슨 일이야? "

" 하... 타이쿤, 연락 좀 제대로 받아. "

" ... 미안해, 미치나가. "

 

 

미치나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쿠라이는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묵묵하게 답이 없던 미치나가는 사쿠라이에게 연락 좀 잘 받으라는 말만 하고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치나가의 행동에 사쿠라이는 어리둥절하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미치나가를 다시 보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깔끔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에 비해 휴대폰에는 부재중 통화가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사쿠라이는 부재중을 확인하고 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미치나가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 미치나가는 여전히 사쿠라이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턱까지 괴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하루 종일 연락되지 않았던 것도, 자신에게 아무런 말 없이 나갔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착하는 건 아니었지만, 혼자서 걱정하게 되는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치나가는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사쿠라이가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쿠라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가 연락 없이 외출한 적은 없었다.

 

 

" 정말 미안해, 응? 미치나가. "

" ... "

" 일자리 알아보기 위해서 나갔다가 그게 좀 길어지고, 겨우 건진 일자리가 바빠서 연락을 못 봤어. "

" ... "

" 앞으로는 자주 연락을 보도록 할게. 응? "

" ... 정말 잘 볼 거야? "

 

 

사쿠라이는 고개를 돌리고서 자신을 보지 않는 미치나가의 모습에, 옆에 앉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나서 사쿠라이는 변명하듯이 말을 늘어놓았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바빠서,  마지막으로 연락을 자주 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계속되는 사쿠라이의 사과에 미치나가가 고개를 돌려 사쿠라이를 보았다.

정말 자주 볼 거냐는 미치나 가의 말에 사쿠라이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의 답에 알겠다는 듯 그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미치나가의 짧은 입맞춤에 사쿠라이가 웃다가 입을 달싹였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하루 종일 일을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녔고, 겨우 구한 일에 이리저리 바쁘게 치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연락을 하지 못한 거였다.

사쿠라이는 미치나가에게 문득 생각난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 저녁은 먹었어? "

" 아직. "

" 어? 그럼, 뭐라도 먹을래? "

" 아니. 차라리 내일 먹자.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 "

" ... 으음... 그래, 내일 먹자. 아침에 맛있는 걸로 해줄게. "

 

 

미치나가의 짧은 입맞춤에 사쿠라이가 웃으며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미치나가는 그 질문에 한참이나 사쿠라이를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아직이라고 답했다. 그 말에 당황한 사쿠라이가 뭐라도 먹겠냐고 물어보았고, 미치나가는 고개를 저으며 내일 먹자고 했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미치나가의 말에 사쿠라이는 시계를 보았고, 벌써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황한 사쿠라이는 미치나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사쿠라이는 미치나가에게 아침에 맛있는 걸 해주겠다고 약속하게 되었다.

사쿠라이의 말에 미치나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침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으음... "

 

 

다음 날, 아침. 미치나가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따스한 햇볕과 코끝을 자극하는 노릇한 생선 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맛있는 국 냄새가 나기도 하고, 포슬포슬 갓 지은 밥 냄새가 허기진 배를 자극해 왔다. 침대에서 일어난 미치나가는 부스스한 채로 침실을 나섰다.

부엌에는 앞치마를 매고 밥을 하고 있는 사쿠라이의 모습이 보였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의 뒤로 다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치나가가 자신의 목가에 이마를 비벼오자, 사쿠라이는 그에게 잘 잤냐고 물어보았다.

어째선지 미치나가가 잠이 못 깬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잘 잤어? "

" 그럭저럭. "

" 일단 밥부터 먹자. "

" 그래. "

" 뭐해? 앉아. 밥 먹어야지. "

 

 

잘 잤냐는 물음에 미치나가는 그럭저럭이라고 답했다.

그의 답에 사쿠라이는 일단 밥부터 먹자고 말했다. 사쿠라이가 정성을 다해 상을 차리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반찬 가지의 수가 많아진 상태가 되자 미치나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어제 자신에게 미안해하던 사쿠라이가 다시 떠올랐다.

가만히 서 있는 미치나가의 모습에 사쿠라이가 그를 보았다.

사쿠라이가 뭐 하냐며 앉으라고 수저를 주었다. 미치나가는 마주 보고 앉는 자리에 사쿠라이의 수저도 정갈하게 내려두었다. 기다리고 있으니, 사쿠라이가 된장국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가볍게 아침 밥을 먹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치나가가 설거지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려고 할 때, 사쿠라이가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 비켜, 차라리 출근할 준비를 하는 게 어때? "

" ... 알았어. "

 

 

차라리 출근 준비를 하라는 사쿠라이의 말에 미치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출근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준비를 마친 미치나가가 나서려고 하니 사쿠라이가 미치나가를 말로 붙잡았다.

사쿠라이의 말에 미치나가는 그를 보며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저 웃음뿐이었다.

사쿠라이가 답을 주지 않아서 미치나가에게는 의문과 궁금증만 남아있었다. 그는 의문만 가진 채 출근해야 하는 회사로 향했다.

 

 

" 아, 미치나가. 마치면 연락해. "

" 어? 왜? "

" 후후... "

 

 

출근하려던 그의 발걸음이 가던 도중에 계속 멈추었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했다.

미치나가는 출근하면서 왜 사쿠라이가 연락하라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참아야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사쿠라이가 왜 연락을 달라고 했을까, 궁금증 때문에 도저히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가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미치나가는 마치기 전에 사쿠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신호가 가다가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미치나가는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왜 연락하라고 한 거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미치나가는 아침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궁금증만 더해져 갈 뿐이었다. 돌아오는 답이 간단하니 더 궁금하기만 했다.

 

 

" 지금 마쳤어. 왜 연락하라고 한 거야? "

[ 그냥. 일단 나와볼래? ]

" 어? "

[ 나와보면 알아. ]

" ... 뭐야, 타이쿤. "

" 오늘도 수고했어, 미치나가. "

"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

" 그냥, 우리가 그동안 밖에서 제대로 외식해 본 적 없잖아. 오늘 밖에서 놀다가 들어가자. "

" 그래, 그러자. "

 

 

그냥이라고 답하던 사쿠라이가 나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뭘까, 생각이 들었던 미치나가는 작업실을 나섰다. 그런데 바로 입구에 사쿠라이가 웃으며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벽에 기댄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사쿠라이의 모습에 미치나가는 놀라고 말았다.

놀란 미치나가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쿠라이가 외식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미치나가는 그게 사쿠라이의 데이트 신청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미치나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했다.

사쿠라이는 미치나가의 곁으로 다가와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시내로 나가서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맛있어 보이는 맛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근처의 공원을 거닐었다.

시간이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하고 조용한 공원이었다.

미치나가는 나란히 걸어가다가 허공을 보며 사쿠라이의 손을 은근슬쩍 잡았다.

 

 

" 크흠... "

" ... 어라, 이 손은 뭐야? "

" ... 이럴 땐 모르는 척 좀 해. "

" 그건 좀? "

 

 

미치나가가 손을 잡아 오자 사쿠라이는 흠칫 떨었지만, 금세 장난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붙잡은 손을 내빼지 않고 같이 잡아주었다. 말장난을 서로 주고받았다. 미치나가는 자신의 손에서 사쿠라이의 온기가 느껴지자 흐뭇하게 웃었다.

적적한 공원을 두 사람은 조용히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걷는데 사쿠라이의 콧등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차가운 느낌이 닿았다가 녹아내리는 느낌에 사쿠라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새까만 하늘 위로 하얀 눈들이 하나하나 내리기 시작했다.

사쿠라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눈이라는 걸 깨닫고 해맑게 웃었다.

 

 

" 미치나가! 눈 온다! "

" ... 진짜네? "

" 첫눈을 같이 보다니 굉장히 운이 좋은데? "

" 그러면 금방 추워지겠네. 이거 써. "

" 너는? "

" 나는 괜찮아. "

 

 

사쿠라이의 외침에 미치나가도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보았다.

눈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자 미치나가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사쿠라이의 목에 둘러주었다. 춥다면서 쓰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사쿠라이는 가만히 있다가 빤히 보았다.

그의 말대로 조금씩 차가워지는 공기에 사쿠라이의 뺨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코끝이 시려서 붉게 물들 정도였다.

얼마나 추웠냐면 두 사람의 입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사쿠라이가 후, 짧게 숨을 내뱉으면 하얀 입김이 나와 허공에서 흩어지다가 사라졌다. 미치나가도 마찬가지로 숨을 내쉴 때마다 똑같았다.

똑같이 하얀 입김이 나왔다가 흩어졌다.

큰 눈송이가 하나 내려오더니 미치나가의 콧등에 붙었다. 녹지 않고 그대로 콧등에 매달려 있는 눈송이에 사쿠라이가 미치나가를 보며 웃었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왜 웃는지 의문이었다.

 

 

" 타이쿤? "

" 푸핫, 미치나가. 지금 되게 귀여운 거 알아? "

" 뭐? "

" 하하. 이제 집에 갈까? "

" 그럴까. 집에 가서 팝콘이랑 같이 영화나 볼래? "

" 그래, 그러자. "

 

 

미치나가는 갑자기 웃는 사쿠라이의 모습에 이유를 몰랐지만, 그가 웃는다는 것에 같이 웃었다.

사쿠라이가 미치나가의 코에 붙은 눈송이를 털어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는 사쿠라이의 말에 미치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팝콘과 영화라는 단어에 사쿠라이가 그러자고 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집으로 가서 씻었다. 미치나가가 팝콘을 준비하고, 사쿠라이가 영화를 골랐다. 곧 크리스마스였기에 나름대로 두 사람만의 데이트였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팝콘을 품에 안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미치나가가 팔을 어색하게 소파 위로 걸쳤다. 사쿠라이가 그 행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미치나가의 품에 안기듯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대로 미치나가는 사쿠라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영화를 보았다.

미치나가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사쿠라이가 기대어 오자 내심 기뻤다.

 

 

" ... "

" ... "

[ 모두, 조심... ]

 

 

두 사람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고 있다 보니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다가 팝콘을 집는 손이 겹치면 멋쩍게 웃다가 영화를 보았다. 사쿠라이가 먼저 팝콘을 집어서 미치나가의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짧게 입을 맞추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엔딩 크래딧이 올라왔다. 미치나가는 웃으면서 재밌었다고 사쿠라이에게 말했다. 사쿠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고 자러 가자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 영화 재밌었어. "

" 그치? 보기 잘한 거 같아. "

" 이제 자러 가자. "

" 다음에 시간이 되면 영화관에서 영화 보자. "

" 그래. "

 

 

잠자리에 누운 사쿠라이는 미치나가의 옆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쿠라이의 말에 미치나가는 다시 입을 맞추면서 그러자고 답했다. 침대에 누운 미치나가가 사쿠라이에게 팔베개까지 해주었다.

미치나가가 먼저 잠이 들었고, 곁에 있던 사쿠라이는 잠들지 못한 채 잠든 미치나가를 보았다.

사쿠라이는 미치나가가 밉다가도 좋아서,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를 잃게 했다는 것에 원망스럽다가도 그를 사랑하는 감정이 살아나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누나를 잃은 이후부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시 잠이 들더라도 금방 잠에서 깨어나 새벽을 보내야만 하던 날이 수두룩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미치나가를 원망만 하며 보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원망은 사람을 망치게 한다는 건 거짓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사쿠라이였다. 사쿠라이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 ... 으음... "

 

 

다음 날, 주말이었기에 미치나가는 쉬는 날이었지만, 평소 출근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했기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먼저 일어난 미치나가는 잠들어 있는 사쿠라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맞춤에 사쿠라이가 앓는 듯한 잠꼬대를 했다. 사쿠라이의 잠꼬대에 미치나가는 움찔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방을 벗어났다. 멀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곧 있을 크리스마스가 중요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쿠라이와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큰 대목이었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자는 사이에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 전구를 준비했다.

창고에 몰래 숨겨둔 다음 사쿠라이를 깨웠다. 그를 깨운 뒤 곧 외출할 테니까 잠에서 깨고 준비하라는 말을 남겼다. 비몽사몽인 사쿠라이는 당황했다.

 

 

" 타이쿤, 일어나. 곧 외출할 테니까 잠에서 깨. 준비해야지. "

" 으응... 어디 가는데...? "

" 그건... "

 

 

어디를 가냐는 물음에 미치나가는 마치 어제의 복수라도 하는 듯 답을 주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사쿠라이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옷을 어떻게든 갈아입은 사쿠라이는 미치나가가 가자는 대로 끌려가듯 따라가게 되었다.

따라가는 중에도 크게 하품을 할 정도로 졸음이 몰려왔다.

그런데 미치나가와 함께 도착한 곳에서 그 모든 잠들이 확 깨버리고 말았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영화관이었다. 그제야 사쿠라이는 어젯밤 잠들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가듯이, 그저 흐르는 것처럼 말한 것이었다.

놀란 사쿠라이가 가만히 있으니 미치나가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 어제 영화관 가자고 했잖아. "

" 아니, 난... 그게... 꼭 오늘이었던 건 아니었는데... "

" 뭐 볼래? "

" ... 나는... "

 

 

어색한 듯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이던 미치나가가 말하자 사쿠라이는 그게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그게 오늘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치나가가 자신의 말을 지켜주려고 했다는 게 의외였다. 그래서 더 크게 감동이 다가온 듯했다.

사쿠라이는 미치나가를 보며 뭘 볼 건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다툼 아닌 다툼을 나누게 되었는데, 약간 커플이 투닥거리면서 꽁냥거리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다툼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직원이 두 사람에게 영화를 추천해 주기로 했다.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직원이 나서서 영화를 추천해 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더 다투었다간 언성을 높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추천해 줄 걸 보기 위해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 어? 이게... "

" ... 커플석? "

 

 

그런데 직원이 두 사람의 자리를 연인석으로 잡아준 게 문제였다.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듯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좌석은 따로 앉을 생각이었는데, 하필 연인석이라는 것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 취소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앉아서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영화를 보는 내내 서로가 신경 쓰이는 바람에 영화에 영 집중을 하지 못했다. 팝콘통 안에서 미치나가의 손과 사쿠라이의 손이 겹치기라도 하면 서로 움찔거렸다.

허공에서 시선이 닿으면 그대로 눈을 돌렸다.

긴 상영시간 동안 두 사람은 쉬운 대화조차 하지 않고, 시선조차 겹치지 않은 채 잠깐이라도 닿았다 싶으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었다.

 

 

[ ... 사랑해요, 허니. ]

[ 오, 달링. 나도 그대를 사랑하오. ]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여전히 두 사람의 얼굴은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듯 흐뭇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미치나가가 용기를 내서 사쿠라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손을 맞잡은 상태였다. 미치나가는 긴장한 나머지 맞잡은 손에서 계속 식은땀이 나오니까 오히려 더 긴장되었다.

까맣게 가라앉은 밤하늘 아래에서 두 사람은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보았다.

 

 

" 미치나가... "

" ... 타이쿤. "

 

 

사쿠라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미치나가의 올곧은 시선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미치나가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다가오자, 사쿠라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미치나가는 사쿠라이가 눈을 감는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짧게 입을 맞추었다.

짧게 입을 맞추었다가 길게 키스를 이어갔다.

미치나가의 손이 사쿠라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미치나가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진한 키스로 변했다. 미치나가의 혀가 놀란 탓에 살짝 벌어진 사쿠라이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밤길에 유일하게 비추는 가로등 아래에서 두 사람은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서로를 탐닉하듯 깊은 입맞춤을 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미치나가와 사쿠라이는 입술이 떨어지자, 서로의 시선을 훑어보듯 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끄럽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다. 

그건 집에 들어가고 나서도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