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래 있었던 일정이 빠르게 끝난 탓에 시간이 비고 말았다.
이안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숨 한 자락을 후 내뱉었다. 추운 겨울이었던 탓에 입김이 길게 이어져 나왔다. 이안의 입에서 나온 입김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 이른 시작이었지만, 저녁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은 팔을 들어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갈 곳이 없어 가만히 있던 발걸음이 목적이 있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이어지는 발걸음은 근처에 있던 바를 향해 들어갔다. 딸랑, 바 문이 열리고 이안이 들어갔다.
가게로 이안이 들어오자, 홀을 청소하고 있던 사람이 익숙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 어, 이안 씨? 아직 하인리히 씨는 일하는 중이신데요. "
" 알아요. 제가 일찍 마쳐서... 한잔하면서 기다리려고요. "
" 아하~ 안 그래도 이번에 시작하신 작품 잘 보고 있어요. "
" 그래요? 고마워요. "
이안은 몇 번 대화를 나누더니 익숙하다는 듯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얼마 가지 않아 스태프 룸에서 아는 얼굴이 나왔다. 하인리히는 이 시간에 이안이 가게에 찾아왔다는 것에 놀란 건 지 한참이나 이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이게 무슨 장난인 거지? 하는 눈으로 한참이나 이안을 보았다.
그런 하인리히의 반응에 이안이 어설프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꿈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라는 이안의 말이 들려오자, 하인리히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인리히는 손을 닦던 수건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이안을 살펴보았다.
" 이안 씨...? "
" 네, 하인리히 씨. 지금은 꿈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에요. "
" 그러면 진짜 이안 씨...? "
" 그럼요. "
" 오늘 일찍 마쳤네요? "
" 그렇죠, 바텐더 씨. 추천하는 칵테일 부탁드려요. "
" 음... 좋아요. 이안 씨를 닮은 칵테일로 드리죠. "
이안의 안색을 살펴보던 하인리히는 이안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하인리히의 입맞춤에 이안이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안의 부탁에 하인리히는 레몬부터 꺼냈다. 이안은 제 말에 막힘없이 바로 레몬부터 선택한 하인리히의 행동에 괜히 기대되었다.
저를 닮은 칵테일을 준다는 말에 설렘까지 들었다.
턱까지 괴어가며 하인리히가 일하는 모습을 눈에 아로이 새겨 담았다. 고작 1분 사이에 하얗디하얀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글라스에 끼워진 조각 레몬까지 어울려 보였다.
하인리히가 조심스럽게 이안의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이안은 제 앞에 내밀어지는 새하얀 잔을 보다가 하인리히를 보았다. 저를 닮은 칵테일을 내준다더니 완전 하얀 칵테일을 내주었다.
" 화이트 레이디라는 칵테일... 인데 아무리 봐도 이안 씨와 어울리죠? "
" 그러게요. 고마워요. "
" 도수는 낮게 만들었으니 천천히 마셔봐요. "
천천히 마셔보라는 하인리히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칵테일을 천천히 음미하듯 마셔보았다. 상큼한 레몬과 달달한 것이 마치 음료 같은 칵테일이었다. 칵테일 속에 하인리히가 저를 어떻게 보는지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은 괜히 입맛을 다시며 칵테일 잔을 잠시 내려두었다.
괜히 좋아지는 기분에 하인리히를 보며 웃어주었다. 하인리히 역시 이안의 미소에 맞춰 웃음을 지었다. 이안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을 때 옷을 갈아입은 하인리히가 이안의 곁에 앉았다.
바텐더 복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은 하인리히의 모습에 이안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여나 제가 가게로 오는 바람에 그가 일을 더 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걱정이 담긴 이안의 말에 하인리히는 오히려 그를 안심 시키려는 듯 고개를 저어가며 답했다. 하인리히의 행동에 이안이 안심되었다.
이안이 칵테일 잔을 매만지다가 단번에 들이마셨다.
" 어...?? 오늘 일찍 가도 되는 건가요? "
" 괜찮아요. 오늘 손님도 적었으니까요. "
" 괜히 제가 와서... "
" 그런 거 아니에요. 이안 씨. "
칵테일 잔을 다 비운 이안은 하인리히의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기고 가게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과 길마다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했다.
이안은 앞만 보며 걸어가다가 하인리히를 보았다.
추운 겨울바람 때문에 코끝이 붉게 물들고 파르르 떨리는 눈썹과 입술이 보였다. 이안은 제 주머니에 있는 핫팩을 꺼내 하인리히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하늘에서는 마치 두 사람을 위한 듯 하얀 눈을 내려주었다.
겨울을 알리는 첫눈이 내리자, 이안은 신기하다는 듯 하늘을 보았다. 하인리히는 제 뺨에 닿는 핫팩과 이안의 손길에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고 있었다. 이안의 손등 위로 제 손을 올리고서 이안을 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하인리히는 참고 있던 웃음이 터지는 걸 느꼈다.
이안을 보고 있으니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숙여 이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차가운 기운이 살짝 닿았다가 사라졌다.
두 사람은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여 둘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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