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BL/1차cp/230726] 콩깍지

나비의 보관함 2025. 2. 3. 13:22


*해당 커플링 외 다른 커플링이나 드림도 받고 있습니다.*

 

 

" 고릴라! "

" 뭐? "

 

 

치수가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바짝 긴장한 백호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을 잔뜩 주는 인상에 치수는 당황스러웠다. 잔뜩 얼굴과 귀를 붉히고서 쿵쿵 크게 발을 움직이며 다가온 백호는 치수의 앞에 멈추었다. 치수는 완전히 코앞까지 다가온 백호의 모습에 저까지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백호의 어깨너머로는 그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백호와 함께 다니는 양아치들이었다. 호열과 대남, 용팔, 구식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부끄러움은 없는 건지 큰 목소리로 치수를 부르고 있었다. 

 

 

" 고릴라!! 듣고 있냐?! "

" 똥강아지 녀석이...!! "

" 오, 오늘 하교할 때 같이 가!! "

" 엉? "

" 하교할 때 기다려!! "

" 어? 야, 야!! 강백호!! "

 

 

백호는 멍하니 있는 치수를 보며 버럭 소리쳤다. 

큰 소리에 흠칫 놀라던 치수가 멍한 표정을 풀고 백호를 보았다. 고릴라라는 단어에 욱해서 한 마디 하려다가 백호의 말에 올라오던 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백호는 치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후다닥 교실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저 멀리 가버린 이후였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듯 가버리는 백호의 모습에 치수가 따라나서보지만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당황한 치수가 멍하니 있자 언제 온 건지 준호가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 치수야, 방금 그거 백호 아니니? "

" 망할 똥강아지 녀석이긴 하지. "

" 하하, 백호가 마음에 든 말을 한 모양이구나? " 

" 그럴 리가 없잖아. "

 

 

준호는 치수의 퉁명스러운 말속에 있는 진심을 알아들었다는 듯 답했다. 

준호의 말에도 치수는 계속 퉁명스레 말했다. 백호가 교실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달아난 이후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가 말했던 하교 시간이 되었다. 

치수는 하교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고 하교를 하려고 했으나 귓가에 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하교할 때 기다리라며 도망치던 백호의 빨개진 목덜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치수는 가방을 메고 입구에서 백호를 기다려주었다. 

같이 기다리겠다던 준호를 먼저 돌려보내고 백호가 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며 하늘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치수의 뒤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와하하!! 고릴라! 역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고!! "

" 강백호, 왜 기다리라고 한 거냐? "

" 으눗...?! 그, 그건... 가면서 알려줄 테니까 그냥 따라와! "

" 하... "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던 백호는 치수의 말에 몸을 크게 움찔 떨며 말을 더듬거렸다. 

따라오라며 먼저 길을 나선 백호의 뒷모습을 보던 치수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겨 백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 강변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던 아까의 백호 행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치수의 곁에서 나란히 걷는 백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강변만 바라보고 있었다. 강변도로의 끝이 다가오자 치수는 백호를 불렀다. 

 

 

" 강백호.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었냐? "

" 누웃... 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

" 곧 헤어져야 할 길목이 나오는데. "

" 버, 벌써?! "

 

 

치수의 눈에 들어온 백호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새빨갛게 물든 노을처럼, 까까머리지만 여전히 빨간 백호의 머리카락처럼 붉은색이었다. 어디까지가 머리카락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빨개진 백호의 얼굴이 치수의 시선에 가득 찼다.

백호는 할 말이 목에 걸린 듯 말을 계속 반복하며 더듬거렸다. 

그런 백호의 모습에도 치수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백호에게 다그쳐봤자 서로 욱해서 싸울 게 뻔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얼굴이 저렇게까지 붉어진 백호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치수가 기다려준 만큼 백호는 용기 내어 말했다.

 

 

" ㅅ, 손, 손잡고... 가자고!! "

" ... 똥강아지 같은 녀석. "

" 누웃...!! 사나이 강백호라도! 다른 건 괜찮지만 애, 애인이랑은 설레서 힘들다고! "

" 강백호, 열심히 공부나 해라. "

" 훗, 농구는 열심히 하는 중이지. "

 

 

얼굴이 더 붉어진 백호가 버럭 소리쳤다. 

아마 강변 너머 반대편 도로에 건너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치수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지만, 손을 잡고 가자는 귀여운 부탁에 손을 내밀었다. 

친구들이나 부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 그게 바로 백호와 연인 관계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나 부원들조차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백호와 치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치수가 내밀어 준 손을 백호는 화색이 되어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 그, 내가 애인을 사귀면 하고 싶던 리스트가 있는데... 고릴라, 할까?! "

" 그게 뭐길래? "

" 여, 여기... "

 

 

리스트가 있다던 백호가 건넨 건 그가 말한 리스트가 적힌 종이였다.

치수는 종이를 받아 천천히 살펴보았다. 리스트에는 애인과 손잡기, 뽀뽀하기, 영화 보기, 농구하기 등등 건전하고 커플이라면 다 해볼 법한 행동들이 적혀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치수는 백호를 슥 보다가 다시 리스트를 보았다. 

손을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당겨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백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까이 붙은 탓에 백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 강백호,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온다면 하나씩 해주도록 할게. "

" 으눗...?!?! 그, 그건 치사하잖아!! 고릴라! "

" 애인과 함께 하고 싶다며? "

" 아, 됐어!! "

 

 

백호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 

설렘으로 가득 차 붉게 올라오던 홍조는 치수의 말에 하얗게 물들어갔다. 치사하다며 외치던 백호는 맞잡고 있던 손을 풀고 씩씩대며 먼저 앞서나갔다. 

됐다며 소리를 피고 앞서가는 백호의 모습에 치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성질을 내며 가버리는 백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치수는 발걸음을 옮기며 백호를 불렀다. 치수가 아무리 불러도 백호는 화만 낼 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