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는 제 사장인 희재를 보았다.
그녀는 평소에 드세고 잔인한 사람이었지만, 제 사람 한정해서 다정하고 챙길 줄 아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빛이라고는 창밖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고 먼지에 습기까지 도는 지저분한 창고 같은 건물이었지만, 요즘 희재는 이곳에 자주 머물러 있는다.
어째서인지 안드레이 강이 그런 일을 당하고 난 뒤로 희재는 자주 이곳에 왔다.
인애는 희재가 이곳에 자주 오는 것을 보아 희재과 안드레이만의 무언가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말해주질 않으니 그저 심증일 뿐이었지만.
" 사장님, 오늘도 여기에 계시네요. "
" 얘야... 더 독한 술 아이 없니. "
" 오늘 많이 드신 거 같은데요? "
" ... 하, 그냥 달라. "
인애는 희재곁에 있는 테이블 위에 어지럽혀진 술병들을 보았다.
맥주와 소주는 기본이고 위스키에 독하다는 양주까지 있었다. 얼음 바구니가 없는 걸 보니 그냥 마신 게 분명했다. 자고 일어나면 속이 엄청 쓰릴 것 같은데.
희재를 향한 걱정에 많이 마셨다고 용기 내 말해보지만, 희재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짧은 한숨과 함께 가벼운 손짓을 하며 술을 달라고 했다. 인애는 이런 희재의 모습이 낯설었다. 항상 철저하고 냉정하며 관리가 철저하던 사람의 이런 모습은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그만큼 저를 가까이 두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오늘만이에요. "
" ... 이래 놓구서 달라고 하면 줄기잖아. 아이 그래? "
" 맞는 말이지만... 사장님이 걱정되서 그래요. "
" 얘야,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우. "
냉장고 안에서 가장 독한 술을 가져다주면서도 인애는 능청스레 희재과 대화했다.
오늘만이라는 말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으며 말하는 희재의 말에 진심을 담아 답했다. 그녀의 말에 희재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 가죽 소파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진 몸으로 유리잔을 둘러보던 희재는 인애가 내준 술병을 보았다. 그러고는 빈 병을 치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리운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졌다.
울컥 차오르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유리잔을 벽에 냅다 던져버렸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고 유리는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졌다. 놀란 인애가 어깨를 힘껏 움츠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 꺄악!!! "
" ... 일 없다. 그만 가라우. "
" 괘, 괜찮아요... 이것만 치우고... "
" ... "
희재를 힐끗 겁에 질린 인애를 보았다.
바들바들 떠는 꼴이 마치 어린 양 같지 않던가. 희재가 인애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겁이 많아 덜덜 떨어대면서도 굳이 제 곁을 지키는 아이.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아 다른 이들과의 일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제 곁에서 보조 하나는 기막히게 하는 조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지만, 제 곁에 남아있으려고 하는 그 모습에서 자꾸 안드레이의 모습이 겹쳤다.
인애는 말이 없는 희재의 모습에서 긍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건 긍정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희재의 곁에서 보필한 지 몇 년이 채 되지도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희재의 기분은 잘 맞추었다.
" 그, 사장님... "
" ... 그것만 치우고 가라. "
인애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10년 이상 곁에 있었던 직원들조차 희재의 기분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는데, 10년도 채 되지 않는 그녀가 희재의 기분을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안드레이가 있긴 했지만, 지금의 그는 이곳에 없었다.
빈 병을 치우면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희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인애가 언제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면 굳건한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한 없이 약해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안드레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희재가 술병째로 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며 인애는 생각했다.
" 다 치웠어요. "
" 수고했다. "
" 저, 그... 사장님! 그... 이야기... 하지 않으실래요? "
" ? "
" 힘들 때 곁에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 엄청나게 위로된대요. "
" ... 하, 그럼 조잘거려 보라우. "
희재곁에 있던 테이블을 병 하나만 남겨두고서 깔끔하게 치운 인애는 고민했다.
이래도 돌아가기엔 희재의 등이 너무 씁쓸해 보여 인애의 발목을 붙잡아왔다. 그런 그녀를 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인애는 용기를 희재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희재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뭐라 씨불이냐는 표정이었다. 인애는 이럴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을 읽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와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녀의 앞에서 떠는 모습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떨리는 손을 꽉 붙잡았다.
" 그... 이, 이제부터는... 어쩌실 생각... 이세요? "
" 떠나야겠지. "
" 저도 데려가실 거죠? "
" 얘야, 내가 가는 길은 보통 길이 아니다. 너처럼 어린아이는 힘들 거다. "
" 사장님이 계시잖아요. "
" ... "
희재의 허락에 인애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으로 어쩔 거냐는 물음에 술 한 모금을 마시던 희재는 허공을 보며 넋두리처럼 말했다. 떠날 거라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 인애가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데려갈 거냐는 인애의 질문에 희재는 기가 찬다는 듯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인애는 포기를 모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답에 희재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이제는 제가 제대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서 넘어온 한국에서도 춥고, 배가 고팠다.
" 얘야, 그래서 나랑 가겠다는 거니? 그 앞이 지옥일 텐데. "
" 안드레이 씨의 마지막을 그렇게 챙겨주신 사장님이시라면, 내 마지막을 맡겨도 좋다고 생각해요. "
" ... "
" 아닌가요? "
희재는 인애가 부끄러움과 겁이 많지만, 가끔 보여주는 용기를 좋아했다.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용기가 없다면 감히 누가 희재의 앞에서 안드레이의 이야기를 과감히 꺼내겠는가.
희재는 그런 부분에서 인애의 용기를 높히 샀다.
그게 아니냐며 되물어보던 인애는 이게 아닌가 싶어 뻘쭘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처음, 그러니까 막 입사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희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마찰도 수없이 존재했다. 여러 고난을 이기고서 여기까지 온 게 인애였다.
여전히 낯을 가리는 듯 인애는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 아니면... 뭐... "
" 얘야. 내 사람은 내가 지키지 아이 하겠니. "
" 그렇죠? "
" 너는 걱정하지 말라. 내가 지키니. "
인애가 말끝을 흐리자 희재가 답했다.
되물어보는 인애의 말에 희재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낸 뒤 말했다. 북한 말투 특유의 딱딱하고 건조한 말이었지만, 그 말속에 있는 뜻을 알고 있었다.
희재의 답변에 인애는 어색하던 티를 벗어내고 웃었다.
술 한 병을 다 마셔가던 희재는 아쉽다는 듯 병을 보다가 인애를 보았다. 하지만 인애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보고 있으면 분명 술을 더 달라고 할 게 뻔했기에 애써 외면했다.
인애가 생각했던 게 맞았던 모양인지 희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치만서도... 안드레이의 복수는 해야 하지 않간? "
" ... 위험할 거예요. "
" 복수는 해야지. 그캐야 안드레이가 저승에서도 눈을 감을 거다. "
" 응원은 못 해주지만... 다치지 말아요. 사장님. "
어느새 빈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치며 희재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녹음본이 있었지만, 정작 그 상대가 누군지 몰라 제대로 된 복수조차 하지 못했다. 희재는 그것이 원통했다. 제 사람을 죽인 인간에게 복수조차 못하는 무력감이 지독했다.
인애는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듣기만 했다.
희재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치지 말라고만 전했다. 무섭고 겁도 많은 아이가 저에게 다치지 말라고 말했다. 희재는 다치지 않는 것만큼은 지킬 생각이었다.
" 그러니 한 병 더... "
" 더 이상은 안 돼요. "
" 안드레이 보다 더하는데 "
" 사장님 걱정돼서 그렇죠. "
희재는 인애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인애는 안 된다면서 딱 잘라 말했다. 희재가 이마를 긁적거리며 말하자 인애가 걱정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답했다.
걱정이라는 단어는 희재에게 있어 낯선 단어였다.
자신에게는 없는 다정함과 용기가 있는 인애가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은데, 그 다정함과 용기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 텐데. 가끔 인애를 보면 어릴 적 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묘하게 챙겨주게 된다.
" 다음에 복수가 끝나면요. 우리 바다 보러 갈래요? "
" 바다? "
" 네. 바다요. 여름이면 시원할 거고, 겨울 바다도 나름대로 운치 있죠. "
" 바다라... "
인애의 말에 희재는 고민에 잠겼다.
북한에 있을 때도, 남한에 있을 때도 그녀에게 바다란 암흑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보는 바다 따위 있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밀항하기 위해 깊은 밤 중에 움직여야 했기에 바다는 암흑 그 자체였다. 빛 한 줄기 없는 북한이라 심연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렸다.
죽기 살기로 내려온 남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약 밀거래를 하기 위해 운항을 받던 바다 역시 검은색이었다. 흔한 동화 속에 나오는 푸른 바다는 본 적 없었다. 인애의 말에 고민하던 희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복수가 끝이 나거든 인애와 함께 바다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이제 그만 주무세요. 사장님. "
" ... "
" 며칠째 주무시지 못하셨잖아요. "
" 얘야, 내가 자기 전까지 곁에 있어라. "
" 물론이죠. "
안드레이 없이 잠들기 힘들었던 희재는 인애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희재의 말에 인애는 기꺼이 그러겠다는 듯 밝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인애는 희재의 손등 위로 제 손을 포갠 채 토닥여 주었다.
평소라면 쳐냈을 희재였지만, 며칠째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진 탓일까.
인애의 다정한 손길을 희재는 쳐내지 않았다. 자기 전까지 곁에 있어 준다는 말 덕분일까, 희재는 잠들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비해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잘 자요. 사장님. "
희재가 안드레이의 일로 잠이 들지 못하는 밤이 여러 차례 지나고 나서였다.
그토록 바라던 복수의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신주혁, 그러니까 정윤호가 재판이 끝난 후 화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희재가 안드레이의 복수를 위해 그를 죽였다.
희재는 정윤호가 완전히 싸늘한 시체가 되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목덜미를 물어 피까지 냈던 탓에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항상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희재의 생각과는 달리 인애가 그곳에 있었다.
" ... 얘야, 너는 왜 아직 이곳에 있니. "
" 그야 사장님이 이곳에 계시니까요 "
" 이제 끝났다. 안드레이의 복수가. "
" 수고하셨어요. 사장님. "
희재는 피가 잔뜩 묻은 제 곁으로 다가오는 인애를 밀어내지 않았다.
수고했다며 곱고 예쁜 손수건으로 묻은 피를 닦아내는 인애를 보던 희재는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탓에 비틀거리던 희재가 쓰러질 뻔했다.
곁에 있던 인애가 다급하게 부축해주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인애는 지쳐 잠이 든 희재를 힘겹게 침대에 눕혀주며 그녀의 옷과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 주었다. 잠든 희재의 모습을 지긋이 보는 시선은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희재그녀가 울고 싶을 텐데 울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인애 역시 성인이었고,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은 쉽게 울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저 속으로만 눈물을 흘리며 그 속을 삭힐 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
" 사장님 일어나시면 바다에 가자고 해야지. "
술 없이 겨우 잠든 희재의 모습을 보며 인애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비록 지금은 사장과 조수의 위치였지만, 인애는 희재를 응원했고, 애정했으며, 안타까워했고 안쓰러워했다.
인애는 희재가 조금 더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리저리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져갔다. 늦어버린 시간에 인애는 걱정이 앞섰다. 희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바다는 어두컴컴한 바다가 아니라 밝은 태양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바다였다. 시간이 이리 늦어진 탓에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잠은 다 잔 모양인지 희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 ... 왜 아직 이곳이 있니? "
" 아, 일어나셨어요? 식사부터 하시죠. "
" ... 왜 아이 갔어? "
" 사장님이 계시는 곳이 제가 있을 곳인걸요. "
희재는 아직 제 곁을 떠나지 않은 인애를 보며 물었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 인애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누구보다 더 먼저 희재를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마치 오산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인애는 남아있었다.
먼저 떠나버린 다른 녀석들보다 더 꿋꿋하게.
식탁 위로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희재는 왜 안 갔느냐고 따지듯 인애에게 물어보았다. 정작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지만. 인애의 대답에 희재는 인애가 차려준 밥을 먹기 시작했다.
힐끗 창밖을 보다 밤이 깊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다 문득 저번에 했던 인애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모든 복수가 끝나고 나면 바다를 보러 가자던, 그 약속.
" ... 아침에 바다... 보러가지 않갔어? "
" 어머, 아침에 괜찮으세요? "
" 이젠 남는 게 시간 아이겠어. "
" 그래요. 아침에 도시락 싸서 바다를 보러 가요. "
밖은 이미 깜깜하게 물들어 네온사인만 빛내고 있었다.
아침에 바다를 보러 가자는 희재의 말에 인애는 웃으며 답했다. 안드레이의 일 이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점점 피폐해져 가던 그녀가 처음으로 나가자고 하는 말이었다.
무리해서라도 나갈 생각이 가득한 인애였다.
도시락을 어떤 걸로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는 인애를 지켜보던 희재가 다시 창밖을 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목숨을 걸어 겨우 도착했던 그때도 이렇게 어두웠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어둠이 그리 무섭지만은 않다는 것.
" 아침에 다시 깨우라. "
" 네, 사장님. "
희재는 아침에 다시 깨우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인애는 조금 불안했다. 혹여나 희재그녀가 복수를 끝냈다고 해서 자신의 앞일까지 포기했을까 봐서. 하지만 처음으로 부탁하는 모습에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희재이기에 그럴 일이 없다는걸.
인애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희재의 방을 슬며시 열어 그녀가 잠든 걸 확인한 이후에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인애가 준비한 건 김밥과 유부초밥이었다.
도시락을 준비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다.
" 사장님, 아침이에요. "
" 이미 일어나있었다. "
" 빠르시네요. "
인애가 문을 열고 희재를 깨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어느새 준비까지 마친 모양인지 외출복까지 입은 이후였다. 어색하게 웃던 인애는 저 역시나 옷을 차려입고 준비했던 도시락을 들고서 희재과 함께 외출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에 가는 거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모래사장을 밟으며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돗자리를 깔고 자리 잡아 앉았다. 희재는 무릎을 굽히고 팔로 감싼 채 바다를 보았다.
그사이 인애가 돗자리 위로 준비했던 김밥과 유부초밥을 꺼내었다.
" 사장님, 제가 준비했어요. 좀 드셔보세요. "
" ... 이걸? "
" 네. 맛은... 평범하겠지만요. "
인애가 준비했다는 말에 희재는 음식과 인애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인애의 손가락에 가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되었던 모양인지 반창고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짧은 숨을 내뱉은 희재가 김밥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희재가 김밥을 집어 먹는 모습에 내심 조마조마해진 인애가 그녀를 보았다. 희재의 입에 맞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두 손을 모아 간절한 눈빛으로 보았다.
" ... 맛은 있는 모양이니. "
" 다행이네요! "
예전이었더라면 오해했을 법한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은 채 김밥을 먹으며 반짝거리는 바다를 보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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