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키의 생각을 들으면서 쿠로는 자신이 한참이나 치아키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뉘우쳤다.
잠에서 깨어난 쿠로는 자면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낸 뒤 옷을 갈아입고 등교 대신 병원으로 향했다. 치아키에게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였다.황급히 달려 병원에 도착하고는 겨우 숨을 돌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프론트로 달려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 후,,, 혹시 모리사와 환자는 몇 호실에... "
" 아, 모리사와 환자님은 701호에 있습니다. "
간호사에게 호수를 듣자마자 달렸다. 하지만 쿠로는 701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닦아내고 긴장이 풀릴 때쯤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문을 열자 병실 안에는 혼자서 링거를 맞으며 히어로 방송을 보고 있는 치아키가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로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꿈에서 보았던 치아키의 모습과 비교되었다.
선배들에 의해 꿈이 짓밟히고 있던 소년은 아직도 히어로의 꿈을 꾸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의사에게도 심지어 간호사조차에게도 최대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착한 아이로서 아픈 걸 참고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가 마음이 시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히어로 방송을 보고 있는 치아키를 보자니 자신의 선배들이 쳤던 사고를 수습하고 연습실에서 혼자서 연습하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즐겁게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을 바라던, 희망을 가지고 웅크리던 그 모습이 말이다.
그 모습과 겹친 탓일까, 쿠로는 다급하지만, 조심스럽게 치아키의 이름을 불렀다.
" 모리사와. "
" ...어? 쿠로? "
쿠로의 등장에 치아키는 많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당황한 기색을 비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치아키는 다급하게 화면을 껐다. 들키면 안 되는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쿠로는 가까이 다가가 치아키를 보며 상비용 의자에 앉았다.
분명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치아키를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물쭈물하기만 몇 분,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만 흐르고 있었다.어색한 기류를 참지 못했던 치아키가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
" 쿠로, 여긴 어쩐 일인가 "
" 무슨 일이긴. 친구 병문안 왔지. "
쿠로의 입에서 나온 친구라는 단어에 치아키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며 자신은 건강하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며칠 사이 조금 야윈 몸과 링거를 꽂고 있는 팔은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학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치아키의 모습에 쿠로는 괜찮다며 말을 돌렸다.치아키가 찾았던 고양이의 안부라던가, 슈퍼 할머니의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다른 이들 모두가 치아키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자 그의 표정이 순간적이지만 흐려졌었다.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 쿠로. 나를 위해 거짓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
" 거짓이라니? "
" 모두가 나를 걱정할 리 없지. "
치아키의 말에 쿠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딱히 아니라는 반박을 하지 못했고, 제 말이 맞다는 증거를 내밀지 못했으니 말할 수 없었다.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치아키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말을 바꾸었다.
" 슈퍼 할머니라면 옆 방에 입원해 계시는데 가끔 산책을 같이 가서 좋다. "
" 그래? 아, 언제 퇴원 가능하다던가? "
" 음, 퇴원은 모른다! "
걱정하는 마음에 퇴원 일정을 물어보자 당당하게 모른다고 답하는 치아키의 모습에 쿠로는 너답다는 듯 웃었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이긴 했지만, 입원해 있는 동안 옆 실의 슈퍼 할머니와 산책하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이야기해주었다.
치아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쿠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쿠로는 집에 간다는 말을 꺼냈다. 치아키가 언제 퇴원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하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치아키에게는 다음에 시간 내서 다른 녀석들과 함께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났다.
빨갛게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덮고 있던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거짓된 걱정은... "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위령비에서는 저번과 같이 밝은 빛이 비석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비석 주위를 돌던 빛은 강한 빛을 내뿜다가 사그라들었다. 빛이 사그라든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픈 게 나은 치아키가 정상적으로 등교했다. 그날이 있고 난 이후로 유메노사키 학원에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치아키를 신경 쓰고,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치아키와 함께하면서 웃고 있는 유성대를 지켜보던 농구부원들의 시선은 평소와 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질투하고 있는 농구부대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위령비가 이상해진 이후로 과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학생들이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농구부 부장인 치아키를 존경하는 대원들, 스바루와 마오를 제외한 모두가 치아키와 함께하는 유성대를 부러워하며 질투하고 있었다. 치아키와 있는 그 모습을 질투했고, 그 질투를 아무런 죄 없는 미도리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대원들이 미도리를 폭행하며 비난했고, 미도리는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 왜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건데! "
" 부장의 옆은 내 자리인데. "
질투에 잠긴 두 사람의 비난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테토라와 시노부였다.
테토라가 두 사람을 막아서고 함께 왔던 시노부가 선배와 선생님을 불렀다. 그 소식을 뒤늦게 들은 치아키까지 달려와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치아키는 예전의 자신이 떠올라 파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심호흡하고 미도리를 일으켜주며 부축해 주었다.지금 상황이 전부 자신을 존경한다는 이름하에 모두가 이렇게 되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미도리를 간호실로 데려가 침대에 앉히고는 조심스럽게 안아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타카미네, 미안하다... "
" 모리사와 선배가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
치아키는 미도리를 치료해준 이후 모두의 앞에서 미도리를 괴롭혔던 이들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괴롭혔던 대원들을 만나는 걸 극구 반대했다. 그런데도 치아키가 고집을 부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다라와 쿠로가 함께 가는 것으로 허락하게 되었다.
치아키가 혹여나 조금이라도 무너지거나 눈물을 흘린다면 대원들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다.치아키를 만난 대원들은 하나같이 어두워진 낯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물쩍거리는 말투로 말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 저, 저희가 왜... 그랬는지... "
" 미, 미, 미도리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부장! "
" 너희... 그건 내가 말할 수 없는 문제다. "
대원들을 만나면서 가장 힘겨워하던 사람은 치아키였다.
과거의 잔해에 울렁거리는 속내를 감추고, 부장으로서 그들의 앞에 섰던 거였지만 그마저도 무리하고 있었다. 미도리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대원들을 다독이긴 했지만, 겨우 참고 있었다.
치아키를 지켜보던 마다라와 쿠로는 대원들에게 가라고 말한 뒤 힘겨워하는 치아키가 편히 울 수 있도록 안아주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치아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도저히 치아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쿠로가 치아키를 보며 말했다.
" 모리사와. 이번 방학 때 모두와 여행을 가지 않겠어? "
" 여행...? "
" 아무리 히어로여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지. "
" 휴식 여행인가. 음, 그거 좋겠군. "
쿠로의 의견에 치아키가 동의했다. 쿠로와 마다라의 시선이 맞닿고 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오후,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하교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다. 3-A반을 합쳐 모든 유닛 학생이 빈 교실에 모여 대화하기 시작했다.
넓은 칠판에는 '치아키와 함께 휴식 여행을 떠날 사람 정하기'라고 적혀 있었다.
교탁 앞으로 나온 사람은 의외로 진이었다. 모두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은 마른기침을 몇 번 내뱉은 뒤 말했다.
" 큼, 모두 알다시피 이번 주제는 치아키와 함께 휴식 여행을 떠날 사람을 정하는 건데... "
" 내가 가지. "
" 나도. "
" 잠깐, 잠깐. 갈 수 있는 인원은 치아키 포함 7명, 그리고 인솔할 어른 2명뿐이야. 잘 정해야 해. "
" 일단 모리사와 선배와 가까운 유성대 전원 포함하죠? "
" ... 반박을 할 수가 없군. "
진의 말에 하나둘 손을 들면서 자신이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앞뒤 없이 손을 드는 탓에 진이 상황을 정리하며 인원수를 정리하자 이때다 싶었던 미도리가 손을 들고서 말했다. 휴식이다 보니 그와 가까운 유성대 전원이 함께 가는 것.
그 말에 모두가 반박할 수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뒤늦게 무언가 떠오른 진이 말했다.
" 아, 인솔할 어른 2명은 치아키가 데려온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좋고, 갈 수 있는 2명만 정하면 돼. "
" 이거 참... "
한참을 서로가 가겠다고 말씨름을 하다가 겨우 정해진 사람은 쿠로와 레이였다.
진지함과는 달리 가위바위보로 이긴 두 사람을 정했을 뿐이었다. 레이는 낮게 웃으며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고, 쿠로는 벌써 챙겨가야 할 것과 어디를 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영부영 정해진 인원을 뒤로하고 모두가 하교했다.한편, 아카이 쪽에서도 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늦은 오후, 치아키에게서 날아온 문자가 원인이었다.
[ 아카이 씨, 이번 여름 방학 때 7명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인솔해주실 어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2분이면 된다고 하는데, 가능하실까요! - PM 05 : 34 ]
[ 우선 녀석들에게 말해보고 연락해줄게. - PM 05 : 40 ]
문자 이후로 무조건 1인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후루야와 마츠다, 말하지 않지만 가고 싶어 하는 아카이와 다테, 내심 가고 싶은 하기와 라와 히로미츠. 성인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유치한 대화를 주고받았다.그들은 가위바위보가 아닌 제비뽑기로 정했지만, 그마저도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운 좋게도 뽑힌 사람은 아카이와 후루야였다.
아카이는 자신이 뽑은 종이를 보며 조용히 웃었고, 후루야는 만세를 외쳤다.
아카이는 핸드폰을 꺼내 치아키에게 문자를 보냈다.
[ 모리사와, 나와 후루야 레이가 갈 것 같다. - PM 07 : 24 ]
[ 감사합니다! - PM 07 : 26 ]
인원이 정해진 이후엔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였다.
방학을 하기 전, 이번에는 치아키를 포함해 여행을 가기로 했던 유성대와 레이, 쿠로가 빈 반에 모여 앉아있었다. 치아키가 탁상 앞에 서서 말했다.
" 방학 때 놀러가는 곳, 추천받는다! "
" 음... 무난하게 놀이공원은 어때요? "
" 온천. 피곤할 테니까. "
" 콘서트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
" 뷔페는 어때요? "
사람들이 내던 각자의 의견을 칠판에 옮겨적던 치아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투표로 정하자고 말했다.
모두에게 빈 종이를 나누어주며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적자고 말했다.
몇 분 뒤, 모두가 종이를 고이 접어 한데 모았다. 치아키가 한 장씩 펼쳐 선을 그었고, 의외로 놀이공원과 온천이 표가 몰렸다. 마지막 종이를 펼친 치아키가 온천에 선을 그으면서 놀이공원과 온천은 동점이 되고 말았다.결국 모두의 의견을 모아 여행은 도쿄의 놀이공원과 온천이었다.
투표를 마친 이후 시간이 흘러 유메노사키 학원은 방학을 맞이했고, 이번에는 언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기에 모두 모여서 정하기로 했다.장소를 정하던 그날 정해도 되었을 테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행을 가기 전 방학 때 한 번이라도 치아키를 보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게는 아프진 않은지, 괜찮은 건지 걱정이 들어 확인차 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진실로 보고 싶어 했다.
" 하필이면 여름이라 성수기이긴 하지만... 언제가 좋을까? "
" 음... 우선 치아키가 오면 정하지. "
" 아. 찬성~ 부장 오면 정하는 걸로! "
치아키가 오기 이전부터 다들 모여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유성대와 레이, 쿠로에 일부로 시간까지 빼고 나온 아카이와 후루야까지. 아카이와 후루야는 예외라고 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소라면 이러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방학을 맞이하고 일주일 만에 보는 치아키였기에 보고 싶은 마음뿐이라 일찍 모인 거였다.
유성대는 모이자마자 서로 잘 지내고 있냐 물어보기도 하고 방학 숙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사이 마지막으로 치아키까지 도착하자 모두가 모였다.
더운 날씨에 달려왔을 치아키를 위해 아이스티를 내밀어주며 미도리가 물어보았다.
" 모리사와 선배, 언제 가고 싶으세요? "
" 음, 음! 캬...!! 음... 너네는 언제 가고 싶은가? "
" 우리는 괜찮으니 모리사와가 가고 싶은 날짜 알려주면 돼. "
" 으음... 그러면 다음 주는 어떨까! "
" 괜찮네. "
미도리의 질문에 아이스티를 벌컥 들이켜 마시던 치아키는 전부 다 마시고 나서야 답을 주었다.
질문에 질문으로 받아치는 치아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네가 가고 싶은 날짜를 알려달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얼음으로 인해 습기가 송골송골 맺힌 잔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치아키가 다음 주라고 말을 꺼내자 쿠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의 동의에 모두가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뜻은 곧 찬성이라는 말이었다.
언제 갈지 정해진 뒤로는 모두가 휴대전화를 들었다.아카이와 후루야는 다음 주에 시간을 빼기 위해 상사에게 연락을 돌렸고, 아이들 역시 가족들에게 다음 주에 여행을 가기로 정했다는 연락을 보냈다.
치아키 역시 가족들에게 다음 주에 가게 되었다는 연락을 남겼다.
" 그럼 이제 정했으니 옷이나 사러 가볼까. "
" 모리사와, 너도 가자. "
" 옷? 음... 좋다! 갈까! "
1박 2일로 정해졌던 여행의 목적지와 날짜가 정해지자 그다음 목적은 당연하게도 입고 갈 옷의 여부였다.물론 입고 갈 옷이야 있긴 했지만, 무릇 새롭게 떠나는 여행이라면 새 옷을 입고 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라고 했다. 부득이하게도 비번이 아니었던 아카이와 후루야였기에 날짜를 정하고 난 뒤 다시 서로 복귀해야 했지만, 방학이었던 치아키와 일행들은 옷을 사기 위해 번화가를 누볐다.
서로의 옷을 살펴봐 주며 여행에 가서 입을 옷을 각자 사기 시작했다.
모두가 치아키에게 정해달라는 듯 질문을 해서 치아키는 혼란스러웠지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모두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게 기쁜 나머지 웃고 말았다.
" 하하, 카나타는 이게 어울리겠군! 나구모는 이게 어떤가? "
" 엑. 진심... 인가요. 리더... "
" 대장... 이건 좀... "
치아키가 장난삼아 고른 옷에 카나타와 테토라가 사색이 된 채 반응을 보이자 모두가 웃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 주가 빠르게 다가왔다. 치아키는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싸던 도중 문득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생각났다. 모두가 저를 걱정하고 있다던 쿠로의 말에도 그를 믿지 못하고 거짓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손에 쥐고 있던 옷을 곱게 접은 뒤 가방 안으로 넣었다. 새로 샀던 옷들과 속옷, 세안 도구들, 여행 간다고 해서 받은 용돈까지. 준비는 완벽했다.얼굴을 붉힌 채 팔짱을 끼고서 콧방귀를 꼈다.
이것보다 완벽한 준비는 없을 것이다.
" 음!! 완벽하군! "
옷을 고르느라 지저분해진 다른 옷까지 완전히 정리한 뒤 침대에 누운 치아키는 한참이나 말없이 천장을 보았다.잠들기 전 이런 행복한 하루하루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잠든 치아키의 주변으로 위령비 근처를 맴돌던 빛 덩어리들이 돌면서 반짝거렸다.
' 이제 울지마, 히어로. '
' 힘내! 리더! '
' 이제 행복해야 해. '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더 크게 반짝거리던 빛은 그게 마지막이었던 모양인지 금세 사그라들었고, 끝내 사라졌다.빛이 사라지자 치아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고, 마치 행복한 꿈을 꾸는 듯 그렇게 치아키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가방과 캐리어를 이끌고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평소보다 더 몸 상태가 좋았던 치아키는 밝게 웃으며 일행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 모리사와. 기분 좋아 보이는데? "
" 그러게, 치아키. 좋은 일 있었어? "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던 아카이와 후루야가 치아키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름이다 보니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주고 싶었던 모양인지 아카이는 치아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그림자를 만들어주었다.뒤늦게 도착한 유성대와 레이, 쿠로가 다가와 치아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카이와 후루야가 가지고 온 차량을 타고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카이의 차에 치아키, 레이, 쿠로가 타게 되었고, 후루야의 차에 카나타, 테토라, 미도리, 시노부가 타게 되었다.놀이공원에 가기 전에 먼저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놀기로 정했다.
1박 2일이었기에 시간을 아깝지 않게 놀기 위함이었다.
숙소는 거실을 중심으로 큰방과 작은 방이 연결되어있고 창가 쪽으로 테라스가 나 있는 형식이었다.
" 역시 잠자리는 익숙한 유성대로... "
" 그건 양보 못 하지. "
잠자리는 자연스럽게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아카이와 후루야, 레이, 쿠로가 같은 방이었고, 유성대가 같은 방에서 묵게 되었다.
제비뽑기를 했을 뿐인데 유성대끼리 모였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시노부와 테토라가 들뜨며 치아키의 곁에서 조잘거렸다.다다미가 깔린 옛 가옥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방에 고이 접힌 두툼한 이불들을 보며 이불 위로 누워보기도 했다.
짐을 풀면서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서로가 가져온 짐이 어떤 게 있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짐을 거의 다 풀어갈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들겨왔다.
" 짐은 다 풀었나 보군. "
" 예!! "
" 이제 놀이공원으로 놀러 가볼까. "
" Yes! "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 아이처럼 신나게 웃었다.
치아키는 내심 괜히 여행을 가자고 한 건 아니었는지 걱정이 앞섰지만,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었다.무겁게 왔던 도착과는 달리 가볍게 출발했다.
아까와 같이 차량에 탑승하고, 40분 정도 달려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치아키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란 시노부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웃으며 매표소로 다가가 성인 2명과 학생 7명분의 자유이용권을 결제 후 입장하기 위해 대기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고는 하지만 대규모 놀이공원인 만큼 대기하는 사람 역시 많았기에 기다리는 이들처럼 기다려야만 했다.손목에 자유이용권을 두르고서 한 명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 와...!! "
입장하고, 크고 웅장한 놀이공원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기구를 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에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선물 가게라는 가게를 발견한 후루야가 치아키의 손을 잡고는 이끌었다.
" 치아키, 우리 저기 가보자. 놀이공원 오면 가야 하는 곳이야. "
" 기프트... 샵? "
" 어, 어? 같이 가요! 모리사와 선배! "
후루야의 생각대로 치아키를 이끌고 가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샵 안으로 들어온 후루야는 사슴 머리띠를 하나 잡아 치아키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머리끝을 정리해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후루야의 다정한 손길과 귀엽다며 칭찬하는 말에 치아키는 부끄러워졌다.
그 탓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치아키, 귀엽네~ 사슴이랑 어울려. "
" 음... 후루야 씨도 잘 어울리네요. "
귀엽다는 말에 부끄럽긴 했지만, 사슴 머리띠 옆에 있던 고양이 머리띠를 발견하고는 바로 후루야의 머리에 똑같이 씌워주었다.후루야의 머리 위로 씌워지는 머리띠를 부럽다는 듯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치아키는 걸려있는 머리띠를 둘러보다가 떠오른 게 있었던 모양인지 몇 개를 챙겨 일행들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한 명씩 머리 위로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테토라에게는 백호 머리띠를, 미도리에게는 강아지 머리띠를, 카나타에게는 양 머리띠를, 시노부는 다람쥐 머리띠를, 아카이와 레이, 쿠로는 각자의 색에 맞는 늑대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모두가 머리띠를 쓰고 있는 걸 보면서 치카이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 푸흡... 다들 잘... 어울리는데! "
" ... 잘... 어울리긴 하네. "
치아키가 웃는 걸 보고서는 도저히 머리띠를 벗을 수 없었던 일행들은 그가 만족할 때까지 끼고 있기로 했다.그렇게 머리띠를 전원 착용한 채 결제 후 샵에서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 어트랙션 구간에 도착했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했다며, 입장할 때 안내 지도를 챙긴 시노부가 당당한 표정으로 지도를 꺼내 들었다.
" 길 안내 하겠소이다! "
" 센고쿠가 길 안내를 잘할지 걱정이군. "
누구 하나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치아키와 함께 움직였다.
대부분은 아카이와 레이가 기구를 타지 않고 아래에서 기다리는 입장이었지만, 치아키는 일행들과 번갈아 가며 신나게 기구를 타기 시작했다.쉴 틈은 없다는 걸 알려줄 모양인지 미친 듯이 놀이기구를 탔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일하게 아이들과 함께 탔던 후루야는 제 선택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는 편이었는데, 젊은 애들이란.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답지 않게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 치아키! 자, 잠깐만 쉬고 놀자. 마실 것도 있고 먹을 것도 있잖아. "
" 음, 음... 그게 좋겠군! 다들 잠깐 쉴까! "
기구를 타던 인원 중에서 힘들어 보이는 건 후루야뿐이었다.
아무래도 유성대는 전원 히어로다 보니 체력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쿠로 역시 아이돌이라 체력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후루야가 체력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는 공안치고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다만 장소와 기분이 따라주지 못했던 것뿐.
의자에 앉아 지친 몸을 앉히고 늘어진 후루야는 치아키가 사다 준 파파야 주스를 마시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에 치아키가 움찔거리자 후루야는 손을 저으며 웃었다.
" 이렇게 체력 떨어질 정도로 논 건 오랜만이라 그래. "
" 하지만... "
" 괜찮다니까. 나 쉬는 동안 너희들끼리 더 놀고 와. "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기구를 타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는 기본이오, 자이로드롭에 이어 바이킹은 종류별로 탔다. 체력의 한계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치아키와 아이들은 후루야와 아카이, 레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식사는 간단하게 놀이공원 부지 내에 있는 음식점을 찾기로 했다.
대규모 놀이공원이라면 음식점은 기본적으로 다양하게 준비해두는 게 기본이었다.
아카이의 추천에 따라 스테이크 정식으로 배를 채우고 그들만의 2차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
신나게 놀았던 모양인지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기댄 채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어트랙션 투어를 강행하고, 저녁에 열리는 퍼레이드까지 즐겼으니 말 다 했다. 모두의 머리에는 동물 머리띠가, 양 뺨에는 페이스 페인팅이 얼룩져 있었고 양손에는 풍선과 장난감이 쥐어져 있었다.거기다 신나서 지친 얼굴까지. 무대를 뛰고 나서 잠들기 전의 얼굴이었다.
운전하던 아카이는 백미러로 잠든 치아키를 보면서 만족했다.
숙소로 돌아와선 녹초가 된 몸을 풀기 전에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거실에 차려진 정식을 다 같이 모여서 먹으니 모두가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 치아키, 오늘 하루 즐거웠니? "
" ...으음, 음! 엄청! "
후루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치아키는 입 안에 씹던 음식을 삼켜내고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맑게 웃으며 엄청 즐거웠다는 뒷말로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는 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치아키의 미소에 모두가 안도했다. 혹여나 무리해서 가는 건 아닌지, 힘들었는데 억지로 참은 건 아닌 건지 걱정되고 고민했었다.하지만 치아키의 입으로 그게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니 안심되었다.
모두가 밥을 맛있게 먹고 몸풀이로 가벼운 게임을 하며 놀다가 잠든 깊은 밤.
오늘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인지 아직 흥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치아키가 테라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곁에 누군가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짙은 청남색으로 가라앉은 밤하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던 모양이었다.
'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아도 되는 걸까. '
' 지금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 아닐까? '
치아키는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았기에, 오히려 너무 좋아서 지금이 현실이 아닌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입을 꾹 다물고 하늘에 수 놓인 별만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을 레이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치아키의 곁으로 다가와 맞은편에 앉아서 치아키를 보았다.
치아키는 누군가 제 앞에 앉았지만, 그게 레이가 아닌 쿠로 일 거라 생각하며 말했다.
" 전에 병원에서 했던 말 말이다. "
" ... "
" 거짓이 아니었어. 모두가 날... 걱정하고 있었다. "
" ... 그래, 모두가 널 걱정했지. 특히 내가 더. "
생각 없이 내뱉고 있던 치아키는 생각했던 쿠로의 목소리가 아닌 레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황하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 앉은 레이를 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더니 레이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이어 말했다.
치아키는 그 목소리가 조곤조곤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감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니까 나에게 조금 더 기대도 괜찮다네. "
" ... 사쿠마. "
레이의 말에 감동한 치아키가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닦고 있으니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양쪽의 방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이 기대어 오는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거였다.
맨 아래에 깔린 테토라와 시노부가 힘들다며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벙쪄있던 치아키가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치아키가 웃기 시작하니 무표정하던 아카이마저 피식 바람 새는 소리로 웃을 정도였다.
모두가 웃는 모습을 보며 레이는 한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고개를 절레 저어댔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치아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잊지 말게나. 기대어도 좋으니. "
" 음, 고맙다. 사쿠마! "
레이의 걱정에 보답이라도 해주는 듯 치아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아키의 미소에 더 이상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러운 거실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레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치아키도 이제는 다투고 있는 유성대를 말리러 가야 했다.투닥거리고 있는 걸 보고 웃다가 즐거운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었다.
치아키의 큰 사투 끝에 모두가 함께 잠들 수 있었다.겨우 다시 잠들고 시간이 지나 아침이 다가왔다.
따스한 햇살이 창살을 통과하며 치아키의 눈가를 간지럽혔다.
따사로운 햇볕에 눈을 뜬 치아키는 길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긁적이자 먼저 일어난 시노부가 치아키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질해주었다.
" 대장 공도 아침은 약하구려! "
" 으응... 다른 애들은...? "
" 신카이 공과 미도리 군은 기상했소이다만... 테토라 군은 아직이올시다! "
" 그래... "
" 대장 공! 히어로는 언제나 멋진 모습이오! "
시노부의 부드러운 손길에 졸음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한 치아키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말은 히어로를 담고 있지만 손길은 소중한 형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는 다정한 손길이었다. 빗질이 끝나자 꾸벅꾸벅 졸던 치아키 역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가 잠에서 깨어난 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온천을 즐기기로 했다.
옆구리에는 온천에서 나누어 주는 기본 용품이 들어가 있는 바구니와 수건을 챙겼다. 가는 길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남탕에 들어갔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모두가 간단하게만 씻고 욕조에 들어가 나른한 몸을 풀어주었다.탕에 구비되어 있는 습식 사우나까지 전부 즐긴 뒤에 청결제와 샴푸로 깨끗이 머리까지 감은 후에 유카타로 갈아입고 나왔다.
모두 씻고 나서 온천에서 가장 큰 다용도실에 가보기로 했다.
" 와... 여긴... 그냥 게임장인데요? "
" 재밌겠네. "
다용도실에는 탁구장, 다양한 종류의 게임기, 손으로 움직여서 하는 미니 축구, 간이 노래방 기기, 등등 다양한 게 있었다.9명 중 7명이 아이돌이 본업인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방 기기로 발걸음이 향했다. 몇 곡을 부르다 말고 심심했던 모양인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내기를 하자는 말이 나왔다.
팀을 나누어 누가 치아키와 같은 팀으로서 탁구를 할 수 있나, 라는 주제를 가진 내기였다.
당연히 높은 점수를 낸 사람이 우승이었다.몇 번의 노래를 부른 결과 우승은 유성대였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던 치아키가 웃으며 말했다.
" 9명이니 숫자가 안 맞겠군. 그러니 내가 심판을 하겠다! "
숫자가 맞지 않는다며 공평해야 한다는 이유로 치아키는 자신이 시합을 보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치아키의 말에 다들 각자의 목표를 마음에 품었다.
" 진 사람은 나랑 미니 축구 한판, 이긴 사람은 족욕을 하러 가는 건 어떤가. "
" 좋아. 절대 이겨주겠어. "
" 둘 다 좋은 거 같은데... "
"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하겠죠. "
탁구하게 된 일행들의 심정으로는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유성대는 치아키와의 족욕을 할 거라는 생각으로 시합에 집중했다. 여러 번의 랠리를 이어갔고, 용호상박으로 치열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이긴 사람은 유성대였다.
후루야가 계속 이어진 경기 탓에 지쳐선 소파에 기대며 투덜거렸다.
" 하... 역시 젊은 애들은 못 따라가네... "
" 현역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
" 맞아요. 후루야 씨, 엄청나게 강하던데요! "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치아키는 진 팀을 상대로 미니 축구를 한판 해준 뒤에 유성대와 족욕탕으로 향했다. 유카타를 살짝 걷어 올린 뒤 족욕탕에 발을 담갔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뺄 생각은 없었다.
물 위로 나무판을 띄워서 그 위로 삶은 달걀과 녹차를 올려두었다.
족욕을 하면서 간간이 먹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족욕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치아키는 막상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뭘 할지 고민했다.
' 음...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볼까. '
귀한 방학이라는 시간에 저와 함께 놀러 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던 치아키는 일행들 몰래 빠져나와 선물 가게로 향했다.다들 바쁘게 놀고 있어서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에게 신경 써주고 좋아해 주는 모두에게 작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도 해줄까 싶은 마음에 선물 가게 거리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의 벽이라는 게 존재했다.선물 가게에 적혀있는 금액들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학생의 용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들이 많았다.
" 으음... "
결국 치아키는 사고 싶었던 큰 선물들을 포기하고 작은 걸 고르기로 했다.
들고 온 용돈은 적었고, 주어야 할 사람은 많았으니 작은 선물로 인원에 맞춰 나누어 주기로 정했다.
모두에게 줄 선물이라는 생각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게 되었다.그런 치아키의 뒤에서 몰래 지켜보는 일행들이 있었다.
" 대체 뭘 사길래 저렇게 진지한 거죠? "
" 어떤 놈인진 몰라도... 받기 전에 큰일 날 걸? "
" 뭘 사려는 걸까요? "
치아키와 어느 정도 떨어진 구간에서 누가 보면 수상하리만치 이상하게 입은 일행들이 모여 작당하듯 말했다.저들끼리 쑥덕거리다가 치아키가 가는 곳마다 뒤따라갔다.
치아키는 열심히 둘러보다가 결국 선물용으로 작은 열쇠고리를 사기로 정했다.
모두를 닮은 선물이 그것 뿐이기도 했다. 저렴하기도 했고. 동물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를 하나씩 사서 개별 포장 후 숙소로 돌아갔다.
" 어, 어! 모리사와 선배 이동해요! "
" 따라가! "
갑작스러운 발걸음에 당황했지만, 일행들 역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먼저 도착한 사람은 치아키였다. 치아키는 조용히 방 문을 열고 들어가 각자를 닮은 열쇠고리를 가방 안에 몰래 넣어두고는 모르는 척했다.
남은 인형들은 학원으로 돌아가면 기다려 주었던 이들에게 나누어줄 것이었다.뒤늦게 들어온 일행들이 모르는 척을 애쓰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 했기에 모두가 가방을 정리하다가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 이건... '
비닐팩에 소중히 포장되어있는 열쇠고리를 보며 모두가 웃었다.
유성대는 치아키의 가족 같은 마음을 담아서, 레이와 쿠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애정을 담아서, 아카이와 후루야는 아끼는 동생이 뿌듯해하는 마음을 담아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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