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다일과 라그라스는 연인 사이였고, 같은 반이었다.
매년 계절 중에서 여름마다 하는 축제에 반 친구들이 전부 놀러 가자는 말이 나와 학교가 마치면 하교하면서 축제에 놀러 가기로 했다. 라그라스는 자기 친구들과 함께 움직였고, 엘리다일은 제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학교 마치고 움직이기로 한 반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고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평소처럼 달려나가지 않았다. 모두가 다 같이 가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모여 발걸음을 움직였다.
다 같이 마을로 내려가고 있지만 각자 친한 사람들끼리 붙어서 이야기하면서 내려갔다.
" 아~ 축제 재밌겠지? "
" 그러게. 재밌을 거야. "
마을에 도착해서 모여서 단체로 노는 게 아니라 각자 흩어져서 놀기로 했다.
라그라스는 힐끔 엘리다일을 보다가 친구들이랑 축제 즐기기 위해 움직였다. 움직이면서 간식도 먹었다가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순간 옆으로 웬 남자가 지나가면서 라그라스의 어깨를 강하게 밀치고 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질 뻔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엘리다일이 라그라스를 잡아주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붉힌 라그라스가 엘리다일을 보았다.
엘리다일은 그저 인상 찡그리다가 지나가는 남자를 보는데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 소매치기야!! "
" 어? "
엘리다일의 옆에 있던 친구 하나가 급하게 달려가 소매치기를 잡았다.
엘리다일은 제 친구가 소매치기범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라그라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 ...괜찮냐? "
" ... "
엘리다일의 말에 아직 진정되지 않아 여전히 놀란 라그라스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으니 엘리다일이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 잠시만 기다려. "
" 으응... "
" 라그라스, 괜찮아? "
" 어우, 진짜.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 "
" 다치진 않았니? "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엘리다일은 어디론가 향했다.
엘리다일이 완전히 사라지자 다른 친구들이 라그라스에게로 다가와서 괜찮냐 물어보았다. 그녀들의 물음에 라그라스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애써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꼬리를 올려 겨우 웃고 있지만 라그라스의 속은 저를 넘어트리고 간 소매치기범에 대해 심한 말을 하고 있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웬 남자 무리들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 저, 안녕하세요. 예쁘셔서 그런데 오늘 같이 노시겠어요? "
" 아, 아뇨. 괜찮아요. "
" 그러지 마시고... "
" 아뇨. 됐다구요. "
" 말귀를 못알아듣네. 저기 맛있는 곳 아니까 가자고. 적당히 튕기고. "
" 아니, 싫다잖아요! "
낯선 남자가 라그라스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윽박을 지르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나서주었다.
남자의 힘이 손목을 압박해오는 게 아팠던 모양인지 라그라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까 소매치기범이 밀치면서 넘어진 탓에 손목이 접질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때 잠깐 사라졌던 엘리다일이 거친 숨을 쉬면서 인상을 찡그린 채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 싫다잖아. 안 놔? "
" 네가 뭔 상관이냐? 남친이라도 돼? "
" 그러면 어쩔건데. "
서로 눈빛을 주거니 받거니 노려보는데 엘리다일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져갔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여름 축제라고 사람들이 퇴근하고 나서 나타난 것 같았다.
갑자기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엘리다일과 라그라스,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다 흩어졌다.
억지로 붙잡던 남자도 인파에 휩쓸려서 사라지고 말았다. 갑자기 몰려왔던 인파는 썰물 빠지듯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당황하고 있던 라그라스도 인파에 휩쓸려갈 뻔했지만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 휩쓸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 엘리...? "
" 조심해. "
라그라스를 붙잡아 준 사람은 바로 엘리다일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올 때 엘리다일이 라그라스를 잡아주었기 때문에 엘리다일과 라그라스가 함께 휩쓸려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작은 시냇가를 건너는 돌다리 위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남아있는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살짝 어색했다. 엘리다일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라그라스는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렸다.
라그라스가 먼저 용기 내서 말했다.
" 친구들이 안 보이네. "
" 그러게. 찾기도 힘들겠다. "
" 그, 그럼 둘이서 다닐래? "
" ...그럴까. "
엘리다일은 혹여나 아까처럼 못된 놈들이 라그라스에게 껄떡거릴까 봐서 같이 다니자고 말했다.
얼떨결에 데이트하게 된 두 사람은 먹거리 부스부터 가보기로 했다. 마을 축제치고는 준비가 잘 되어있었다. 음식 부스마다 중복되는 것 없이 다양하게 판매하는 것부터가 그러했다.
떡볶이도 팔고, 솜사탕도 팔고, 탕후루도 팔고, 샌드위치나 파전, 에이드, 등등 많이 팔았고 있었다.
성인들이 마실 수 있는 맥주도 팔고 안주거리인 꼬치도 팔고 여러 가지를 팔았다.
라그라스가 엘리다일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말했다.
"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 "
" 아니, 뭘. "
" 내가 보답으로 맛있는 거 사줄게! "
" 안 그래도... "
엘리다일이 안 그래도 된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라그라스가 엘리다일의 손을 잡더니 뛰기 시작했다.
엘리다일은 라그라스가 제 손을 잡은 걸 보았다. 뛰어가면서도 맞잡은 두 손에 얼굴이 빨개졌다. 라그라스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렸다.
그러다 라그라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엘리다일을 보며 물어보았다.
" 먹고 싶은 거 있어? "
" 딱히 없는데... "
" 으음... 그러면 마실 거? "
라그라스의 말에 엘리다일은 마지못해 고개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주었다.
결국 에이드 가게에서 각자의 에이드를 사서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 축제라 어 트랙션으로 사격, 물총쏘기, 뽑기 등등 많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두 사람에겐 신기할 뿐이었다.
어색한 걸 풀기 위해 라그라스는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는 엘리다일의 손을 잡은 채 한 가게 앞에 섰다. 그 가게는 풍선을 다트로 맞추어 상품을 받아 가는 게임이었다.
엘리다일이 라그라스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 할 수 있겠어? "
" 서로 해보는 건 어때? "
그렇게 두 사람만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10개에 2천 원이라는 말에 2명분인 4천 원 내자 두 사람의 앞으로 다트 10개가 담긴 상자가 나오고 각자 판 앞에서 풍선 터트리기 시작했다. 10개 다 터트리면 중간 크기의 곰 인형이 상품이었다.
라그라스는 그걸 노리고 신중하게 다트를 던졌다.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다트를 던진 결과는 엘리다일이 이기고 말았다. 엘리다일이 다트 8개, 라그라스가 5개를 맞추었다.
라그라스에게는 아쉬운 결과였다.
가게의 주인은 엘리다일에겐 중간보다 작은 인형을, 라그라스에겐 키링을 주며 말했다.
" 여자친구에게 주려고 열심히 한 모양이지? "
" ... 예? "
" 그, 그런... "
라그라스가 아쉽다는 듯 엘리다일의 품에 안긴 인형을 보았다. 엘리다일은 자기가 받았던 인형을 보다가 라그라스에게 인형 주었다. 놀란 라그라스가 엘리다일을 보며 되물었다.
" 어? 이거 줘도 돼? "
" 어. 너 해. "
엘리다일의 말에 감동 먹은 라그라스가 뺨을 붉히며 곰 인형 꼬옥 끌어안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음식 부스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여자애들이 같이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남자애들 역시 거들었다.
" 어머어머 너네 뭐야~? "
" 우리 몰래 데이트 했어? "
" 어얼. 얌전한 놈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
" 그, 그런 거 아니야! "
라그라스가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라며 말했고, 엘리다일은 아무 말 없이 고개 돌렸다.
이렇게 모인 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애들 의견에 찬성하고 다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처음은 배를 채우기 위해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좌석 잡고 앉았는데 한 여자애가 인형에 대해 물어왔다.
" 그 인형 뭐야~? "
그 질문에 당황한 라그라스는 어쩌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라그라스의 머릿속은 어질어질한 상태였기에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엘리다일이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앨리다일의 시선이 난감해 하고 있는 라그라스에게 닿았다.
인상을 쓰지 않아도 험악해 보이는 앨리다일의 표정이 라그라스의 눈에는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 라그라스가 풍선 터트리기로 딴 거야. "
" 아하. "
그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인형 이야기를 떠나 다른 대화를 하고 있으니 기다리고 있던 떡볶이랑 어묵이 나왔고, 다들 맛있기 먹었다.
가벼운 떡볶이조차 매웠던 모양인지 다른 친구들은 숨을 들이켜며 혓바닥을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 쓰으, 하... 아! 매워! "
" 왜? 맛있는데. "
" 아냐... 엄청 매워! 습, 하... "
라그라스는 조금 매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매운 게 아닌데 왜 저리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애들이 헉헉거리며 힘들어하자 앨리다일은 떡볶이에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맛있는 모양인지 떡볶이 안에 계란도 으깨서 버무려가지고 맛있게 먹고 근처에 있던 달고나 뽑기 하러가기로 했다. 부스 앞에 사람이 많아 대기하기로 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대기가 끝나고 차례가 와서 여자들 먼저 하기로 했다.
남자애들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여자애들끼리 누가 먼저 달고나를 완성하나 내기하기로 했다.
라그라스도 자리에 앉아서 달고나 받는데 하필 어려운 별 모양이 당첨되고 말았다. 하지만 라그라스는 진지하게 바늘을 받아 초집중하고서 별 선 따라 긁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자락에 달고나가 부서지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여자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아쉽다는 듯 여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기다리던 남자들 차례가 왔다.
다른 남자들은 승부욕이 제대로 붙어서 시작하는데 엘리다일만 대충 하려고 했다.
그때 지켜보던 라그라스가 엘리다일을 응원했다.
" 힘내, 엘리야! "
" 아... "
이길 생각이 없었던 엘리다일이 짧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집중해서 달고나를 깨기 시작했다.
다른 남자들은 다 실패했지만, 유일하게 앨리다일만 성공했다. 성공한 보상으로 큰 잉어엿을 받았다.
엘리다일은 바로 라그라스에게 큰 잉어엿을 선물했다.
" 받아도 괜찮아? "
" 응. 너 해. "
라그라스는 그렇게 엘리다일이 주는 잉어엿을 받았다.
모두가 축제에 정신없을 때 두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서 슬쩍 빠지기로 했다. 아까 많은 인파 때문에 두 사람만 남았던 다리를 건너가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 많던 인파가 단번에 사라지자 라그라스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 이상하네... 주변이 조용해. "
" 시간이 늦어서 그런 거 아니야? "
" 아. 그러네. 벌써 9시구나? "
" 그리고 축제 끝에는 폭죽 터트리잖아. "
엘리다일의 말에 라그라스는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마을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축제의 꽃을 까먹다니. 폭죽이 터지는 밤 시간에 입을 맞추면 좋은 관계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라그라스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위로 폭죽이 조금씩 펑펑 터지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을 바라보며 서로 눈치 보더니 앨리다일이 먼저 슬쩍 라그라스의 손잡아 주었다. 앨리다일의 용기에 라그라스는 얼굴을 붉히고 자기도 용기 내기로 했다.
발끝을 세워 앨리다일의 뺨에 쪽 소리 나도록 입 맞추었다. 그녀의 입맞춤에 놀란 앨리다일이 라그라스를를 보자 라그라스 역시 빨개진 얼굴로 앨리다일을 보았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놀란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행복한 듯 웃음을 지었다.
" 내일은 단 둘이서 나올까? "
" 그래, 그러자. 둘이서. "
두 사람은 폭죽이 터지는 아래에서 이마를 맞댄 채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은 따로 만나자는 앨리다일의 말에 라그라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강하게 서로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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