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단, 라우리엘, 아이딘의 관계는 얽히고설켰지만 세 사람은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이딘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었고, 아직 자각하지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사랑을 하는 상태였다. 그런 행복만 가득할 것 같은 일상이 계속 이어졌다. 자유 용병인 카단의 파트너였기에 그를 따라 자유 퀘스트를 하기도 했다. 아이딘에게 있어 카단은 좋은 파트너이자 믿음직한 동료 정도였다. 믿음직하고 의심 하나 할 필요조차 없는 신뢰가 가장 높은 친구. 좋아하는 감정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로서, 동료로서 좋아하는 딱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딘을 향한 카단의 감정은 그 이상이었다. 정작 본인이 그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아이딘은 카단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그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우연히 둘이서만 식사를 나눌 때 했던 대화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카단 씨. 요즘 저랑 대화를 잘 안 하시네요? "
" 아이딘. 그건 아니지 않나. "
" 아니긴요. 지금도 보세요. "
" ... "
" 것 봐요. 시선도 안 주시는데요? "
대화를 할 수록 카단의 감정이 더 드러났다. 아이딘이 알 수 있었던 건 점점 붉어지는 카단의 귓바퀴 때문이었다.
더불어 미묘하게 구겨지는 표정으로는 그 감정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눈에 선한 그의 반응에 아이딘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괜히 아는 척해서 그의 감정을 받아줄 수 없을뿐더러 그 감정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이딘은 할 말을 잃은 이후 그릇 안에 들어있는 샐러드를 포크로 갉작거릴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라우리엘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이딘은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두고는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라우리엘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카단은 아이딘과 라우리엘의 대화를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두 사람의 관계에 누가 보아도 서로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서로 감정을 모르고 있다는 게 참으로 웃기지 않는가. 카단은 제 감정을 알고 있지만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알려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굳이 그런 친절을 베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까지 마치자 포크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멍하니 보는 카딘의 시선은 묘하게 일렁거렸다.
" 에스벤서, 카단. 식사하고 계셨습니까? "
" 네, 라우리엘도 같이 먹어요. "
" 출출하긴 합니다. "
라우리엘은 같이 먹자는 아이딘의 권유에 웃으며 아이딘과 카단의 사이에 앉았다.
아이딘은 제 옆에 앉는 라우리엘을 보다가 반대편에 앉아있는 카단을 보았다. 나긋하고 다정하며 연모하고 있는 라우리엘과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미스테리한 카단의 사이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라우리엘이 식사를 주문하고 탁자 위로 팔을 괴고는 웃는 얼굴로 아이딘을 보았다. 아이딘은 양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어설프게 웃었다. 새로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라우리엘은 자신 앞에 놓인 음식 일부를 덜어낸 뒤 아이딘의 앞으로 따로 담아낸 음식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딘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라우리엘을 보았다. 라우리엘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 저는 방금 카단과 먹었어요. 라우리엘 드세요. "
" 괜찮습니다. 저도 에스벤서가 먹는 걸 보고 싶은데요. "
" 으음... 그러면 조금만 먹을게요. "
" ... 배부르면 적당히 먹도록. "
라우리엘과 아이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카단이 낮게 읊조렸다. 아이딘은 카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우리엘이 준 그릇 안에 있는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버거우면 말하고 안 먹어도 될 문제니까. 조금씩 입에 넣자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아이딘은 어느 정도 먹고 난 이후에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 사이에 옆에서 그릇을 다 비워낸 라우리엘이 아이딘을 보고 있었다. 아이딘은 양쪽에서 보내오는 시선에 마른기침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감한 듯한 기색을 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하려는 찰나 직원이 고개를 저으며 이미 계산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딘이 화들짝 놀라고 있자 뒤에서 다가오던 라우리엘이 계산은 자신이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친 이후 근처의 숲에서 산책하기로 했다. 숲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에스벤서, 남은 시간동안 할 일이 있습니까? "
" 음... 없어요. "
" 그러면 함께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
" 그래요. 그러도록 해요. "
" ... 나도 함께 하겠다. "
" 뭐... 그러세요. "
라우리엘은 아이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아이딘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사실이 못내 짜증 났던 카단은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며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아이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또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이 난 건지. 무표정인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 있다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딘은 정말 그게 신기했다. 하지만 언제나 평화의 이면에는 불행도 함께했다.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던 행복의 시간이 깨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깨진 행복은 라우리엘의 죽임이었다. 빛의 눈에 있는 루페온의 힘을 흡수한 라우리엘이 나나브의 화살에 복부를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입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죽어가는 곳에는 아이딘과 카단도 함께였다.
라우리엘은 마지막으로 죽기 직전에 아이딘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서서히 감겨가는 눈을 힘겹게 뜨며 울컥 치솟는 피를 입에 머금은 채 말했다.
" 에스벤서... 커헉...! "
" 라, 라우리엘... 말 하지 말, 아요... 피, 피가... "
" 에스, 벤서... 사, 랑합니다... "
" 아, 안 돼...!! "
" 앞으로도... 사랑할 겁니다... "
라우리엘은 죽어가는 와중에서야 아이딘의 품에 안겨 기댄 채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고백하는 라우리엘의 모습에 아이딘은 크게 충격 먹고 말았다. 아이딘의 뺨을 감싸던 피에 젖은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라우리엘의 손이 떨어지면서 아이딘의 마음마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라우리엘이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그날 이후로 아이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라우리엘을 연모했던 라이딘이었기에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 어쩌면 트라우마가 될 수준으로.
그날 이후로 아이딘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전혀 먹지 않은 채 방에 박혀 식음을 전폐했다. 아이딘은 말이 좋아 식음 전폐였지 금방이라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못 죽어서 안달 난 그런 사람 말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지 않은 채 잠도 자지 않는 폐인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런 아이딘의 곁에선 카단이 많이 도움을 주었다.
" 아이딘.일어나. "
" ... 싫어요. "
" 일어나서 뭐라도 먹고, 움직여. "
" 싫다고 했어요. "
힘을 내라고 하기도 하고 곁에서 밥을 조금이라도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싫다고 말하는 아이딘을 거의 억지로 끌고 나가서 바람을 쐬어 주기도 하고 햇빛을 보게 해주기도 했다. 카단이 아이딘에게 그럴 때마다 아이딘은 눈물을 흘렸다. 연모하기만 하던 라우리엘이 죽었다는 사실과 이제는 함께 할 수 없고 제 곁에 없다는 현실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주는 카단의 모습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정도였다. 카단은 그런 아이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려오는 걸 느꼈다. 대신 눈물을 흘리고 싶고, 대신 아파해 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갈수록 심해져 가는 아이딘의 모습에 차라리 제가 라우리엘을 대신해서 죽었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마음이 아려오는 감각 역시나 좋아하는 감정을 숨겼을 때처럼 감추었다. 감정을 숨긴 채 아이딘의 곁에 남아 그를 보살피고 챙겨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제 곁에 남아있어 주는 카단의 행동에 아이딘은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자책해 보지만 감정이라는 게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고,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날도 있었다. 그러고 난 이후에 항상 아이딘은 가장 힘들어했다. 제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해 타인에게 분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 괜찮다, 아이딘. "
" 제가... 제가 안 괜찮아요. 카단 씨. "
" ... 시간이 많은 걸 해결해 준다더군. "
" 그 시간조차 악몽인 걸요. "
두 사람이 이따끔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다가가는 것은 카단이었고, 먼저 밀어내는 것은 아이딘이었다.
아이딘은 제 곁에서 어떻게든 저를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카단의 모습에 마음을 잡아보려고 노력했다. 아니, 했었다.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력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딘의 입장에서는 피나는 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을 한 편이었다.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더랬다. 누가 보았을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한 번 깨져버린 행복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딘가 불안정한 행복 속에서 아이딘은 계속해서 카단을 보며 라우리엘을 겹쳐 보기 시작했다. 자꾸만 카단의 모습 위로 라우리엘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마다 이건 카단에게도, 라우리엘에게도 몹쓸 짓이라는 걸 알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딘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라우리엘,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카단 역시 그런 자신이어도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걸 이제와서 깨달아 봤자 제 고백과 마음을 받아 줄 사람은 없고, 카단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라우리엘을 잊는 것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카단과 사랑을 나눈다? 그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 아이딘. 요즘은 조금 나아진 것 같군. "
" ... 카단 씨 덕분에요. "
" 그래. 앞으로 더 노력해보면 알겠지. "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건 카단에게서 라우리엘을 찾으며 대신 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눈과 마음은 자꾸만 카단에게서 라우리엘을 찾으며 겹쳐보았다. 이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이딘은 이제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져 가는 후유증에 아이딘의 기분은 끝도 없이 좋아졌다가 진창 나빠지기를 계속 반복했다. 나빠졌을 때에는 아이딘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히스테릭을 부리기도 했다. 한 날은 곁에 있어 주는 카단이 평소와는 달리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겨워졌던 아이딘은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며 모난 말을 내뱉었다. 듣고 있는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했다.
" 만약... 만약에. 제가 라우리엘처럼 된다면 그때는... "
" 말 하지 마. "
" 그때는 당신이 절 죽이세요. "
" ... 아이딘. "
아이딘은 제 말이 카단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알면서도 말을 했다.
점점 망가져 가는 제 곁을 지키는 그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기에 밀어내고자 했던 말이었다. 결코 계속 곁에서 지켜주길 원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단은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발언한 아이딘을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자각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이기에 아이딘의 말을 듣고 충격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었다. 충격에 빠진 얼굴로 카단은 아이딘에게 화를 냈다.
그 역시 아이딘처럼 금방 울 것같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외쳤다. 화를 내고 있긴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걱정과 애정이 함께 느껴졌다.
카단의 반응에 아이딘은 미간을 오만상 찌푸리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걸 참아냈다.
" 내가 어떻게 널 죽일 수 있겠어. "
" ... "
" 너를 죽이느니 차라리 나도 함께 죽겠다. "
" 카단 씨...!! "
무어라 형용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아이딘의 안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감정으로 인해 아이딘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예전의 그리웠던 평화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져만 갔다. 다시 되찾기 위해 손을 뻗어도 그 일상은 오히려 외면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걸 카단과 아이딘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서로 모르는 척하는 걸 택했다. 한 날은 아이딘의 의견으로 카단은 함께 자유 퀘스트를 떠나게 되었다. 아이딘이 그 퀘스트를 하자고 권유했던 이유는 이제 라우리엘을 정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퀘스트 내용과는 달리 실제 상황에서는 레벨이 너무나도 차이가 심했다. 가볍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높은 난이도로 돌아왔다. 마지막에 나타난 보스를 카단이 힘겹게 퇴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이딘이 큰 부상을 입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적의 화살이 관통한 탓에 아이딘은 쿨럭 피를 토해냈다.
" 쿨럭... "
" 아이딘, 숨을 쉬어라. "
" ... 카, 단 씨... "
아이딘은 제 손에 묻어나는 토혈을 보고서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과 관통한 탓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를 스스로가 잘 알았다. 곧 죽음이 저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카단이 전투를 끝내고 아이딘의 곁으로 달려오면서 회복 약을 쓰려고 했다. 회복 약을 쓰려고 하는 카단의 모습에 아이딘은 고개를 저으며 약을 밀어냈다. 아이딘의 표정은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 표정을 읽은 카단이 입술을 꾹 물고 인상을 찡그렸다.
" 소용없어요. "
" 하지만...!! "
" 아뇨, 전 곧 죽, 어요. 드디어... 라우리엘을... 보겠네요. "
" ... 네가 죽으면 나는...!! "
곧 라우리엘을 본다는 아이딘의 말에 카단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아이딘을 노려보았다.
카단의 다급한 말에 아이딘은 조용하고 차분한 숨을 내뱉었다. 이미 준비가 된 사람처럼 카단의 손을 잡아주곤 그를 다독여 주었다. 마치 소중한 걸 잃기 직전인 아이를 다독여 주듯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덤덤한 반응과 흐릿한 웃음 때문에 카단은 아이딘이 바로 사라질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곧 꺼져갈 생명이었지만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 괜찮아요. "
" 나는 너 없으면 안 된다. 아이딘. "
" 괜찮, 다니까요... "
카단의 애처로운 말에도 아이딘은 괜찮다며 답해주었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내뱉어 보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딘의 숨소리는 옅어지기 시작했다. 생명의 불이 조금씩 꺼져가고 있었다. 곧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딘은 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며칠 전, 제 곁에만 맴돌며 자신을 지켜주는 카단의 모습이 화가 나버리는 탓에 히스테릭을 부리며 했던 모진 말이 생각났다. 제가 라우리엘처럼 돼버린다면 당신의 손으로 죽여달라고 했던 바로 그 말. 그 말이 이제 와서야 너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들자 울컥 치솟는 감정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울먹거리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카단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딘의 모습에 역시 그는 살고 싶은 거라 생각하며 다시 회복제를 들었지만, 아이딘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의 거부에 카단은 아이딘을 끌어안았다. 아이딘이 편하게 안겨있길 바라는 마음에 무릎까지 꿇어가며 품에 그를 안아주었다. 아이딘은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힘겹게 손을 뻗어 카단의 뺨을 어루만졌다.
" 미안해요, 저번에 그런 말 한 거... "
" 아니. 말 하지 말도록. "
" 그건, 그건 실수였어요... 진심이 아니에요. "
" 그거야말로 괜찮다. "
" 카단 씨... "
아이딘은 점점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어떻게든 카단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담아내려고 애썼다.
죽음이 다가와 저를 데려가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저 드디어 죽음이 저에게로 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카단의 품에 안겨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여유까지 있었다.
그런 아이딘을 지켜보고 있는 카단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심장을 누군가가 생으로 쥐어뜯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덤덤하게 죽어가고 있는 아이딘을 살리고 싶지만, 그의 거부로 그럴 수 없다는 게 더더욱 미치게 했다.
만약 아이딘의 의견을 무시하고 살려낸다고 쳐도 살아난 이후에 그의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다. 혹여나 아이딘이 자신에게 왜 살렸냐고, 어째서 살린 거냐고 타박이라고 하는 순간 그걸 받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정도로 견뎌낼 수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품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아이딘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울지 않는 아이딘을 대신해 카단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카단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아이딘의 뺨 위로 뚝뚝 떨어졌다. 카단이 우는 모습에 아이딘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울지... 마요. 먼저... 큽, 가서... 커헉...!! 미안, 해요... "
" 괜찮다. 아이딘, 사랑해. 사랑한다. "
" 카단 씨... 알고... 있, 었... 후, 어요... "
" ... 아이딘. "
" 미, 안해요... 받아... 주지 못해서. "
숨을 겨우 쉬고 토혈까지 해가며 아이딘은 카단에게 용서를 구했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그 말에 카단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카단의 고백에 아이딘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중간중간 힘겹게 끊어지는 말이었지만 겨우 완성한 말은 알고 있었다였다. 그 대답 이후로 한참이나 조용하던 카단이 아이딘의 이름을 불렀다.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말에 카단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이딘에게 괜찮다고, 살아나서 대답해주어도 밀어내도 괜찮다고 답을 해야 하는데 서서히 꺼져가는 아이딘의 생명 앞에서 괜찮은 척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척 연기하며 보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싫다는 생각만 자꾸 맴돌았다. 카단은 아이딘을 꽉 끌어안으며 서글프게 외쳤다.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아버리는 탓에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가지 마, 아이딘. 내 곁에 있어라. "
" ... 미안해요, 카단 씨. "
" 내 곁에...!! "
아이딘은 카단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이딘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어버린 아이딘의 모습에 카단은 한참이나 멍하니 아이딘을 보았다. 동공이 풀린 채 그만 바라보고 있는 카단의 시선에는 아이딘만 담아내고 있었다. 아이딘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 안 돼. 안 돼... 아이딘, 아이딘... "
조용히 읊조리며 말하던 카단은 힘없는 아이딘의 손을 잡아 제 뺨에 대고서 문질러댔다.
하지만 아이딘의 손은 힘없이 툭 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잡아 올려 뺨에 대어보지만, 그의 손은 또다시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카단의 얼굴이 잔뜩 구겨져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었다면 애처로워 보이다 못해 제가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카단은 한참이나 아이딘의 식어버린 몸을 끌어안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식어버린 그 몸을 끌어안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둡게 가라앉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딘을 안은 채 카단은 어둠에 잡아 먹힌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로 두 사람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이딘의 사망은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카단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를 찾는다는 전단지만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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