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 실험체이자 클론인 아마라기 헤이시 1과 헤이시 2는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가는 실험의 수위에 어딘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정확하게는 처음 느껴보고 생각하는 감정이라 딱 이거다! 하고서 무어라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그런 불안한 감정이었지만 정확하게 생각하고 느끼며 알 수 있는 건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고 그럴수록 불안감 역시 커질 거라는 건 변함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 이걸 회의감이라고 하던가 '
헤이시 1은 사전에서 찾아보았던 단어가 지금 감정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클론으로서 항상 보는 말단이나 조직원들이 하는 실험 같은 것들이나 그 실험에 관해 적혀있는 일지를 정리하면서 내용을 볼 때마다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건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불이 붙은 것처럼 번져갔다. 그들의 말로는 세계를 위한 것이다,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지를 읽어보고 실험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그들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거로도 세계를 위한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나라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왔다. 거기다가 저를 포함한 모든 클론은 항상 정해진 시간대에 기상을 해야 하는 것도, 특정 시간마다 약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도,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 진행되는 트레이닝의 강도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는 것과 매주 같은 식단으로 나오는 메뉴, 같은 취미 생활, 같은 시간에 취침해야 한다는 것까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이상하고, 의문투성이뿐이었다.
가장 먼저 그걸 눈치챈 사람은 다름 아닌 헤이시 1이었다. 그는 영특한 사람이었으니 묘한 기시감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의심하였다. 그는 조용히 남들과 같은 평소대로의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생활에 관한 회의감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 이건... 아니지. 아니야. "
그 회의감은 곧 탈출을 계획하게 도와주었다.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 등 모든 것들을 파악한 후 혼자서 헤쳐 나갔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건물 구조의 확인과 나갈 수 있는 출구 조사였다.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원의 카드 키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의구심을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하자 날이 갈수록 그는 말 수가 줄어들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헤이시 2였다. 아무래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 클론이고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지켜보는 인물이다 보니 그가 왜 그러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 잠깐의 쉬는 시간에 헤이시 1은 쉬고 있었다. 그때 헤이시 2가 헤이시 1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헤이시 1의 앞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 요즘 뭐 하고 다니냐? "
" 뭐가? "
" 뭐긴. 너 요즘 뭐 하는 거 같던데 "
" ... 실험에 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어. "
" 뭐? "
처음에 헤이시 2의 말투는 마치 그의 말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치처럼 들렸다. 하지만 대화를 몇 번 하고 나니 헤이시 2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헤이시 1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는 처음과는 다른 이해한다는 투의 말이었다. 헤이시 2는 누군가를 의식이라도 하는 듯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헤이시 2의 목소리에 헤이시1은 몸을 순간적이긴 했지만 굳혔다. 헤이시 1의 눈동자가 데굴 굴러 헤이시 2를 보았다. 덩달아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 그건 나도 느꼈어. "
" 뭐? 너도 느꼈다고? "
" 그래. "
헤이시1과 헤이시 2의 시선이 맞닿았다.
두 사람은 시선이 맞닿음으로써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자 헤이시 1은 주변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이시 2의 어깨를 다독이듯 툭툭 두들겼다. 낮게 깔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모두가 잠드는 시간, 소등 시간 이후에 내 방으로 와. "
헤이시1의 말에 헤이시 2는 대답을 할 필요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항상 그들은 같은 시간에 불이 꺼지고 잠을 자기에 그 시간이 언제인지 이해했다는 행동이었다. 헤이시 1은 모든 일상을 마치고 소등시간이 다가오자 자신이 이제까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헤이시 2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 시간, 소등되고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 암흑만 남아있는 시간에 헤이시 2가 조용히 헤이시 1의 방으로 들어왔다.
헤이시 2가 들어오자 헤이시 1은 가벼운 목 짓을 했고, 헤이시 2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헤이시 1은 테이블 위로 자신이 그간 찾아두었던 재료들과 장비, 지도를 펼쳤다. 헤이시 2는 생각보다 상세한 헤이시 1의 준비성에 조금 놀랐다.
헤이시 1은 테이블 위로 펼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 방향을 알려주었다.
"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 이쪽으로 간 다음 이렇게, 이쪽에서 꺾으면 출구가 나와. 거기로 가면 돼. "
" 생각보다 쉽네? "
" 그런데 문제가 있어. "
" 뭔데? "
" 중간에 있는 이 문. 이 문을 열기 위해선 말단이 아닌 조직원의 카드키가 필요해. "
"그러면 나가는 당일에 진행하면 되겠네. "
" 나도 그 생각이야. "
헤이시 1과 헤이시 2는 대화를 통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펼쳐진 지도는 이미 머릿속에 외워둔 상태였다.
소지품으로 칼과 총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카드키를 얻을 때 쓰기로 정했다. 헤이시 1과 헤이시 2는 탈출을 위한 날짜를 정해야 했는데 그날을 언제로 잡을지 고민이었다. 그때 헤이시 2가 말했다.
" 그냥 내일 바로 실행할까? "
" 아직 준비가... "
" 어떤 준비? 네 말대로라면 여기로 나가기만 하면 되고, 우린 힘을 쓸 수 있는데. "
헤이시 1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헤이시 2가 하는 말 역시 틀리진 않았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헤이시 2의 말대로 힘을 쓸 수 있기에 바로 내일 탈출을 실행하기로 했다. 헤이시 1과 헤이시 2는 내일 보자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인사했다. 헤이시 2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헤이시 1은 테이블 위를 정리한 뒤 침대로 들어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
다음 날, 두 사람은 계획했던 걸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 점심시간이 지난 쉬는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유시간이라고 해 봤자 조직원들과 클론들, 실험체들이 모두 다 같이 모여 잡담을 나누는 유일한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시간이 드물다. 모두가 다 같이 모여있는 곳에서 목표물인 카드키를 얻기 위해 움직였다.
헤이시 2가 먼저 행동으로 모두의 시선을 돌리게 되면 헤이시 1이 카드키를 가지고 있는 조직원에게 다가가 몰래 빼돌리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안전하게 카드 키를 빼앗고 헤이시 1과 헤이시 2는 소란스러워진 휴식 공간을 나왔다. 그 뒤로는 모두의 눈을 피해 조직원실로 들어가 조직원들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안전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온 두 사람은 외워두었던 지도의 길대로 걷기 시작했다.
" 윽...?! "
외워두었던 지도의 길대로 따라 향하는 길에 하필 헤이시 1이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동시에 들고 있던 직원 키까지 떨구었다. 그걸 지나가던 직원 하나가 보고 말았다.
두 사람이 직원 키를 가지고 있는 걸 본 직원은 바로 무전기를 들고 외쳤다.
치직
" 여기 탈출 하려는 ㅇ...!! "
[ 무슨 일인가! 탈출하려는... ]
직원이 외치는 순간 헤이시 2가 빠르게 다가와 주먹을 날렸다.
그 탓에 무전기를 들고 있던 직원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전기에서는 치직거리는 소음을 내며 답을 했지만 이내 끝까지 듣지 못했다. 헤이시 2가 주먹을 날려서 직원을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 헤이시 1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 키를 챙긴 뒤 헤이시 2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무전기를 밟아버렸다. 무전기를 밟음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하얗던 복도는 경고등으로 반짝거리는 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의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큰 사이렌 소리도 함께 나왔다.
" 쳇, 가자. "
헤이시 2는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움직이자고 말했다.
그 상황을 인정한 헤이시 1이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외웠던 길대로 달리고 모퉁이를 돌아 카드키로 문을 여는 것까지 성공했다.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것은 총을 든 정찰병들이었다. 경고음이 울리자마자 준비를 했던 모양인지 문을 열자마자 나타났다. 수비 태세로 바로 총을 쏠 것같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 역시 공격 태세로 주먹을 들어보이자 정찰병들 뒤에서 확성기로 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조직원인 것 같았다.
[ 클론들. 공격태세를 멈추고 순순히 잡혀라. ]
" 젠장, 행동은 빨라가지고. "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눈빛만으로도 통한 모양인지 주먹을 쥐더니 적들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투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향했다. 겨우 계단까지 와서 문을 열기 전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헤이시 1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이시 2는 마치 그 모습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보인다는 착각을 느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단순한 착각일 거라고 굳게 믿어버리고 만 것이다. 살아서 나가자고 했으니 분명 살아 나가서 평범한 일상을 즐기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 꼭 살아서 나가자. "
" 그래. "
" ... 여기까지 나와 함께 도전해줘서 고맙다. "
헤이시 1이 문고리를 잡다가 고개를 돌려 헤이시 2를 보고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헤이시 2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헤이시 1이 문을 열자 아까와 같이 정찰병이 가득했다. 헤이시 1이 먼저 말도 없이 정찰병을 향해 뛰어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헤이시 2 역시 뒤따라 공격에 가담했다. 커다란 출구 앞에서 몰린 채 정찰병들을 상대하기엔 두 사람은 이미 꽤 지쳐있는 상태였다. 쿨럭 피를 토하던 헤이시 1은 자신은 이미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출구 옆에 비상 오픈이라고 적혀있는 레버를 당겨 문을 열었다. 한 순간에 몰렸던 정찰병들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쿠구궁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굳게 닫혀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투하던 두 사람은 문이 열리는 걸 보았다. 헤이시 1이 헤이시 2를 보고서 외쳤다. 다급해 보이는 표정도 함께였다.
" 먼저 나가!! "
" ... 빨리 너도 나와! "
" 미안하다. "
" 뭐? ... 문 열어! 열라고! "
먼저 나가라는 헤이시 1의 말에 헤이시 2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나갔다. 나간 상태에서 헤이시 1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내렸던 레버를 다시 밀어 올릴 뿐이었다.
다시 큰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혀갔다. 헤이시 2는 그의 판단에 놀라 버럭 소리쳤다. 비상 레버라더니 그게 맞았던 모양인지 빠르게 닫혔다. 문이 아슬하게 다 닫히기 전, 치열하게 전투하고 있던 헤이시 1이 헤이시 2를 보며 말했다.
살아달라고, 자기 몫까지 살아달라는 애처로운 마지막 소원같이 헤이시 2에게 웃으며 말했다. 헤이시 2는 서서히 닫혀가는 문을 보며 눈을 크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 살아! 내 몫까지! "
" 열으라고!! "
헤이시 2는 다급하게 주먹으로 문을 쳤지만 열리지 않았다.
자기는 이제 곧 죽는다고 외치면서도 정찰병과의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헤이시 2는 인상을 쓰면서도 헤이시 1의 말대로 살기 위해 달렸다. 달리고 달려 숲 안으로 들어갔다. 헤이시 1은 헤이시 2가 안전하게 벗어날 때까지만 버티자. 라는 생각으로 정찰병들을 하나씩 쓰러트려 갔다.
그러다 큰 총성이 들리자 헤이시 1의 입에서는 쿨럭 피가 토해졌다. 헤이시 1은 자기 심장을 관통한 상처를 보다 맥없이 쓰러졌다. 누군가가 쏜 총알이 헤이시 1의 심장을 관통했다.
아무리 클론이라고 하지만 심장을 꿰뚫은 총알은 치명상이었다.
' 밖으로 나가서 평범한 생활을 해보고 싶었는데... '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헤이시 1은 그렇게 죽었다. 자신의 꿈은 이뤄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숨을 거두었다. 헤이시 1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찰병들 사이로 조직원들이 달려와서 헤이시 1을 살펴보았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큰일 났다는 듯 무전기를 통해 대화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이시 1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헤이시 2는 달리고 달려 마을에 겨우 도착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옷을 받아 입거나 음식을 겨우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 호외요! 호외! "
마을에 뿌려지는 신문을 주워 읽어보니, 탈출하려던 위험 실험체, 사살!이라는 큰 제목과 함께 1면을 장식했다. 사진에는 헤이시 1로 보이는 모자이크 된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그 신문이 뿌려지고 난 이후 마을에서 헤이시 2의 행방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오리무중이 되어버린 그의 행방은 묘연했고, 찾을 수도 없었다.
마을에서 입에 입을 타고 흐른 소문에 의하면 헤이시 2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
이후 마을 외곽에서는 신분을 알 수 없는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시체의 얼굴은 일방적인 구타로 인해 불어 터진 얼굴로 인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맞은 건지 미상으로 밝혀졌다. 범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고 수색해본 결과 외곽까지 간 것도 그 사람 혼자였고, 수사대 외의 발자국이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남자의 사인은 일방적인 과잉 구타로 인한 출혈사였다.
약물이 섞여 있긴 했지만, 구타 탓에 사망했다는 것이 정확했다.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 시각은 신문으로 사살된 실험체 이야기가 나온 지 3일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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