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공간, 서늘하게 불어오는 여름의 향기,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종이책의 냄새.
나츠는 이 공간이 좋았다. 은은하게 풍기는 종이의 냄새라던가, 사람이 없어서 한적한 시간이라던가. 도서관이란 조용함과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조용한 자신의 성격과 매우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딩딩딩
" 어라, 벌써 시간이... "
" 나츠~~! "
" 레, 레이... 쉿! "
" 뭐 어때~ 지금 아무도 없는걸. "
마지막 수업이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도서관의 문을 박차고 열며 들어오는 여학생이 있었다.
나츠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고, 누구인지 알아차리자마자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쉿,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다. 쩔쩔매고 있는 나츠의 모습에도 레이는 풍성한 금발을 휘날리며 나츠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와락 안았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안겼지만, 나츠는 레이를 밀어내지 않았다.
레이의 말대로 지금은 도서관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츠와 레이뿐이었다. 레이가 나츠의 품에 안긴 채 뺨을 비비적거리며 칭얼거렸다. 나츠는 남아있던 자료를 정리하며 레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문득 나츠는 오늘 레이가 일찍 왔다는 걸 깨닫고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 레이, 오늘은... 일찍 마쳤네? "
" 응. 나츠 보고 싶어서 빨리 왔어! "
" 다, 다른 사람들은? "
" 아~ 알아서 갔겠지. 나츠,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 줘. "
" 학생회장? "
" 까, 깜짝이야... 부회장, 무슨 일이야? "
레이는 나츠의 부드러운 손길에 기분 좋은 듯 더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행당을 물어보는 나츠의 말에 레이는 인상을 찡그리고 볼을 부풀리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잠시 레이를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츠에게 엉겨 붙으며 늘어지던 레이는 금세 빠릿하게 자세를 바꾸며 학생회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나츠와 떨어지며, 부회장에게로 가 말을 이었다. 그런 레이의 모습을 나츠가 멍하니 보았다. 레이는 나가기 전에 부회장을 먼저 내보낸 뒤 문을 닫으며 고개를 돌려 나츠를 보았다.
" 나츠, 조금만 기다려 줘. 같이 하교하자. "
" ... 으응... "
나츠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리둥절했지만, 오래간만에 학생회장스러운 레이의 모습을 보아서 좋았다.
두근거리는 심장께를 붙잡으며 떨리는 눈으로 생각했다. '아, 저렇게 사랑스러운 레이와 내가 비밀 연애라니...' 나츠의 생각처럼 두 사람은 학교의 모두에게 비밀로 한 상태로 사귀고 있었다.
비밀 연애라는 게 마냥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레이는 학생회장으로 바쁜 사람이었고, 사람이 많은 곳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므로. 거기다 나츠는 조용한 곳을 좋아했고, 크게 보자면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츠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하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아~ 나츠, 많이 기다렸지? "
" 아냐, 천천히 오지 그랬어? "
" 하지만 나츠가 기다리잖아. "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급하게 달려온 건지 레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던 나츠는 다가오는 레이에게 손수건과 시원한 물을 건네주었다. 나츠에게서 손수건을 받은 레이는 흐르는 땀을 닦아낸 뒤 물병을 보았다.
옅은 녹빛의 텀블러, 그것은 마치 나츠의 눈동자와 닮아있었다.
어느 정도 비어 있는 물병에 레이가 웃으며 나츠의 앞에 텀블러를 흔들었다. 레이의 말에 나츠가 얼굴을 붉히며 다급하게 텀블러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레이가 몸을 돌리며 나츠의 손길을 피했다.
" 나츠, 이거 나츠가 입 댔던 텀블러지? 내가 마시면 간접키스인 거네? "
" 뭐, 뭐? 레이...!! 다시 돌려줘! "
" 이미 늦었어~ "
등을 돌리던 레이는 나츠가 다시 손을 뻗기 전에 텀블러에 입을 대고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는 레이의 모습에 나츠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텀블러를 건넨 것이었는데, 레이의 말을 듣고 나니 계속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시선이 자꾸 레이의 입술로 향했다.
누군가에겐 조용하고 편하기도 한 도서관, 그곳에서 나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레이가 물을 다 마신 뒤 가방을 챙기며 활발하게 웃었다.
투덜거리는 나츠를 달래어 주며 레이와 나츠는 사이좋게 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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