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우리는
부제 :: 무대 위에서
이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 끝나고 난 뒤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여름이 되었고, 여름에는 수련회라는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은진의 일상은 다시 돌아왔다. 아침 등교를 할 땐 언니들과 함께 했고, 하교를 한 뒤에는 종종 시내에 나가 놀기도 했다.
오늘은 내일 있을 수련회에서 뛸 무대를 위해 마지막 확인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춤 연습을 하지 않은 게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은진의 춤실력은 그대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 은진아, 뭐야? 너 우리 몰래 연습이라도 했어? "
" 하아... 하... 네? "
" 전보다 엄청 실력이 늘었는데? "
" 정말요? "
" 응, 정말 늘었어. "
소정을 포함한 댄스부 사람들이 노래가 끝나자마자 은진을 둘러싸며 말했다.
칭찬의 향연이 끊이질 않자, 은진은 오히려 자신이 더 부끄러워졌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다시 해보자며 도닥여주던 사람들이 돌연 잘한다며 칭찬을 하니 당장 숨어버리고 싶었다.
연달아 몸을 움직인 탓인지 쉽게 나와버린 땀을 닦아내던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 번도 잘한다고 칭찬을 해준 적 없던 작은 은비가 은진에게 실력이 늘었다며 말해주었다. 그녀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고개를 돌렸지만, 빨갛게 익은 귀는 그대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발견한 건지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 내일 잘 할 수... 있겠죠? "
" 그럼, 그동안 엄청 준비했잖아. "
" 노력의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 말이에요... "
" 많이 걱정돼? "
" 아무래도요. "
" 괜찮아, 우리도 함께 하잖아. "
은진은 그래서 더 긴장된다는 걸 말하지 못했다.
그저 옅게 애써 웃으며 대화를 넘겼다. 이대로 둘 순 없어서 하교를 한 뒤에도 댄스부 동아리에 남아 춤 연습을 이어갔다.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친 동작에 호흡이 빨라져서 흉곽이 들썩거렸다.
이렇게 보니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늦은 시간까지 무언가에 집중하고,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자신의 주변에 신경을 써주는 언니들이 있다는 것도 좋았다.
물론 전학 오면서 겪은 왕따 경험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당하고 싶지 않았다.
" 뭐야, 은진이 너... 나름 잘 하고 있는 거네. "
중학생이 아직 할 생각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미래에도 자신이 춤을 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꿈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부모님이 깔아주시는 길대로만 걷고 있던 와중에 발견한 희미한 취미. 앞으로 춤에 대한 갈망이 어디까지 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대되는 건 똑같았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젠 익숙해져 버린 골목을 걷고 있을 때, 뒤를 쫓아오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걸으면 뒤에 따라오던 이도 천천히 걷고, 빠르게 뛰면 뒤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 ... 흡! 아, 아빠? "
" 은진아, 지금 집에 가는 길이니? "
" 네... 연습 좀 하느라고... "
"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
" 그렇죠? 내가 누구 딸내미인데~ "
" 그렇지. 아빠 딸내미지. "
은진은 뒤에서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겁에 질린 채 무작정 달렸다.
그러다 코너를 도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강하게 부닺힌 탓에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드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은진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은진이 아버지의 팔에 팔짱을 끼는 순간 등 뒤에서 쯧,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를 분명 들었다. 은진은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집으로 향하는 내내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순간 무작정 쫓아오기만 하던 사람이 자신과 아버자를 공격할 것만 같아서.
" 은진아... 잠시 이야기 좀 하자. "
" 네? "
" 너 꼭 수련회 가야겠니? "
" 여보, 학생 때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면서 그래. "
" 그래도... 은진이 아빠.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은진이한테 안 좋은 일만 일어나잖아요. "
" 우리가 은진이를 믿어줍시다. 응? "
가족끼리의 단란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거실에 모여 티비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부엌에서 과일을 내어오던 어머니가 은진을 보며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수련회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은진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공감할 순 없었다.
은진이 이렇다 할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나서서 어머니를 막아주셨다. 걱정이 많은 어머니를 안아주던 아버지가 은진이를 보며 먼저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은진이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버지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려주었다.
" 으음... 수련회에서는 조심해야겠네. "
야외 활동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실내라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진은 잠들기 전 캐리어와 가방에 들고 갈 잠옷과 생필품,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 안녕하세요!! 은진이 있나요? "
" 어머...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걸지도 모르겠구나. "
" 네? 걱정하셨어요? "
" 으응, 은진이가 요즘... 그렇잖니. 그래서 수련회 가지 말라고 했었단다. "
" 아... "
" 그래도! 너희가 있으니 안심이구나. 혜민아, 가서 언니 불러오렴. "
" ... 아씨, 이런 건 맨날 나만 시켜... "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웬일로 6명이 다 같이 은진의 집을 찾았다.
6명이 해맑게 웃으며 은진의 어머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은진의 어머니가 밝게 웃으며 안심하셨다.
혜민은 어머니의 심부름에 투덜거리더니 은진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자신의 언니를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은진이 어벙한 모습으로 혜민을 보았다.
" 언니야. 지금 언니네 선배들 왔어. 오늘 수련회라며? "
" 으응? 아... 아!!! 맞다! "
" 어휴... "
혜민은 은진을 깨운 뒤로 조용히 방을 나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은진은 허둥지둥 급하게 짐을 챙기고, 혹여나 빼먹은 게 없는지 이리저리 확인하고 나서야 현관 쪽으로 뛰어갔다. 현관이 6명이 전부 모여있는 걸 보고 놀라긴 했지만, 다급히 신발부터 신었다.
짐을 챙기고, 등을 돌려 어머니를 향해 웃었다.
" 엄마, 다녀올게요! "
" 그래... 무조건 조심하고, 언니들 곁에 꼭 붙어 다녀야 한다? 이건 용돈이니까 아껴 쓰고. "
" ㅎㅎ... 다녀오겠습니다~! "
" 은진아, 늦잠 잤어? "
" 쩡이는 잠꾸러기야. "
" 어제 너무 긴장했더니... "
은진의 어머니는 조금씩 닫히는 문틈 사이로 자신의 딸이 해맑게 웃으며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사한 이후로 저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는 건 또 얼마 만인 건지. 어제 막무가내로 막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도착한 학교, 은진은 언니들과 같은 버스에 탑승하고 싶었으나 자신은 아직 중학생이었기에 어쩔 수없이 중등부 버스에 탑승했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가려고 했지만, 반 학생들이 가만히 두질 않았다.
" 저기... 혹시 오늘 댄스부에서 무대 한다니? "
" 어? "
" 너도 댄스부잖아.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야. "
" 그야... 그렇긴 한데, 내가 왜 알려줘야 해? "
" 어? 아, 알려주면 좋지. 같은 반 친구끼리~ "
" 글쎄... 내가 너희한테 같은 반 친구이긴 했나? "
은진은 창밖을 보고 있다가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로 와서 앉는 여학생을 보았다.
친근하게 굴며 물어보는 말에 왜인지 자꾸 표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갔다. 전학생이어서, 감히 주제도 모르고 댄스부 언니들과 친하게 지내서.
여러 이유로 왕따를 시키고 따돌리던 이들이었다.
힐끗, 은진의 눈길이 주변을 살폈다. 댄스부에 관심이 있는 건지 다들 관심 없는 척해도 귀를 쫑긋거리며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날카로운 은진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어버버 거렸다.
은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 기대는 해보던가. "
" 정말? 고마워!! 자, 이거 너 먹어! "
" ... "
" 들었어? 댄스부 언니들 무대할지도 몰라! "
멍하게 있던 여학생은 은진의 말에 기쁜 듯 웃더니 그대로 은진을 끌어안았다.
당황스럽던 은진이 밀어내고 나서야 떨어졌다. 고맙다며 주고 간 빼빼로 과자에 은진은 실웃음만 지었다. 수련회 장소에 도착하고, 시간이 지나 레크리에이션 타임이 다가왔다.
수련회 사장이 내일 있을 수련이 힘들 테니, 오늘 저녁에만 허락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등부 댄스부 시간인데요! 오늘은 특별히!! 멘티인 중등부 학생과 콜라보를 했다고 합니다! "
" 와아아아!!!! "
" 중등부? 설마 그 전학생? "
" 허 참내... 지가 춰봤자 뭐 얼마나 잘 춘다고. "
무대의 시작을 알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반응은 반반이었다.
무대를 그대로 즐기려는 자와 은진의 등장이 고까워서 험담을 하는 자들. 무대가 열리고,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6명 사이에서 홀로 도도하게 서 있는 은진의 모습은 모든 학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반주가 시작되고, 은진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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