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지 로즈 타입

[GL/나페스/250111] 엄친딸, 그 언니들 9화

나비의 보관함 2025. 2. 28. 01:19

 

오늘부터 우리는 편



부제 : 달라진 혜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혜은이 냉정하게 몸을 돌리며 가버리는 모습은 6명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경계하고 있는 대상이 혜은이를 뒤쫓아가려는 발걸음을 가로막다니, 냉정한 혜은의 반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6명은 혀를 차며 그저 이 선생의 뒤로 혜은이 점점 멀어져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음 날 다시 만날 혜은에게 무언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기만 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녀들의 예상과는 달리 다음 날이 되어도 혜은에게 그 무엇도 들을 수 없었다. 그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몇 주가 지나도록 혜은은 가깝게 지내던 댄스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혜은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 혜은이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것 같지? "

" 그러게... 요즘 잘 못 먹나? "

" 언니들, 이제 신경 쓰지 말아요! 먼저 좋다고 떨어졌는데 왜 신경을 써요? "

" ... "

 

 

혜은이 댄스부를 나간 이후 댄스부 담당 고문 선생님께서 새로이 데려온 학생도 문제였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혜은을 걱정하고 있으면 언제나 그 여학생이 친한 척 말을 걸며 혜은이에게 신경 끄라며 난리를 피웠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여학생과 작은 은비 사이에서 묘한 신경전이 있었는데, 누르고 누르다 결국 터진 것이었다. 

작은 은비의 입장에서는 자꾸 혜은이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그 여학생이 탐탁지 않았고, 그걸 알고 있는 여학생이 멈추지 않고 계속 혜은이를 깎아내린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그 여학생이 참지 못하고 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 언니들도 걔 때문에 힘든 거 참고 계셨잖아요! 그런데 왜 아닌 척해요? "

" 우리가 언제 힘들어했다고... "

" 내가 왜 그 선생님이랑 거래를 했는데...!! 헙! "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

 

 

선생님, 거래. 이 두 단어가 6명의 귓가에 쏙 박혀버렸다.

여학생은 모두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인지 입을 틀어막고 도망치듯이 달아났다. 남겨진 6명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모여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여학생을 몰아붙이고 타박해 봤자 나오는 건 없을 게 분명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일명 여학생을 꼬셔라.

여학생의 입으로 모든 걸 알려줄 때까지 잘해주고 또 잘해주기로 했다.

모두가 돌아가며 그 여학생에게 잘해주며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은비는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꼬시는 걸 탐탁지 않았지만, 거래라는 맥락을 보건데 분명 혜은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대측에서 먼저 시작한 일이기에.

 

 

" 이 춤은 이렇게 하는 거야. "

" 언니... 고마워요. "

" 이거 마셔가면서 해. "

 

 

몇 주 동안 곁에서 챙겨주고, 같이 밥을 먹고 한 탓일까.

여학생은 이전에 자신이 말실수했던 걸 점점 잊어가고 있는 듯했다. 타이밍을 지켜보던 6명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여학생이 유독 예린과 가까워지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예린은 여학생과 가까이 지내기 싫었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 꾹 참아야만 했다.

그러다 여학생에게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여학생이 말하길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그 선생님이라고 했다. 어떤 선생님인지 말하진 않았지만,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혜은에게 목적이 있어 보이던 그 이 선생님뿐이었다.

여학생이 말하길 자신은 첫날부터 혜은이 댄스부와 가까이 지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사고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예린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거라고 말했다.

 

 

" ... 털어놓는다고 용서가 될 거 같니? "

" 하지만 언니... 언니도 제가 좋다고... "

" 미안하지만, 그 좋던 마음. 방금 이야기에 정떨어졌어. "

" 예, 예린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네? 죄송해요! "

" 아니. 넌 지금 내게 순간적으로 용서를 구할 뿐이잖아. 뭐가 잘못한 짓인지도 모르고. "

 

 

6명 중에서도 성격 좋고, 말랑하기로 소문난 예린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녀의 표정에 진실을 말하던 여학생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하얗게 질려가는 그 표정 속에서 예린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애처로운 부탁에도 예린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다.

혹여나 이 아이도 그 선생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거라면 어쩌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 여학생은 자신을 찾아온 선생의 말에 좋다고 넘어가서 혜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게, 예린의 마음을 돌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이 이상한 약물을 주며 혜은에게 먹이라는 명령에 그대로 했다는 말이 제일 어이가 없었다.

예린은 여학생이 붙잡아오는 손길을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 이상한 약을 먹였다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

" 뭘까... 무슨 약이길래 혜은이가 우리랑 떨어지는 거지? "

" 우리가 아는 혜은이라면... "

" ... 어쩌면요... 혜은이가 우리들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멀어진 건 아닐까요? "

" ... 그런 거라면 당장 말려야지. "

" 그렇다고 섣불리 다가갈 순 없는데, 항상 그 선생님이랑 붙어있으시잖아. "

 

 

예린이 그 여학생을 밀어낸 뒤로 학생은 댄스부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여섯 명이 모여 계획을 논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점은 그녀들이 혜은을 찾으러 갈 때면 항상 이 선생과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지레짐작일 지도 모르기에 섣불리 나설 순 없지만, 혜은이 더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느 날, 댄스부에 조금씩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도와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정보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걔 중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도 존재했다.

그들에게서 들은 정보로는 학교 내에서 마약성 약물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 ... 마약? 학교에서 마약이라니? "

" 이거... 소설 아니지? 현실이잖아. "

" 최근에 뉴스에서 나온 것도 있잖아요. 나비약이었던가... "

" 아~ 그 다이어트약? "

" 그런 거라면 혜은이 상태가 이해도 되는데. "

" 일단 정보를 더 모아보도록 할까? "

 

 

소정이 정보를 더 모아보자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6명은 각자 알아서 정보를 추려 주말에 만나 공유하기로 했다. 곧 있을 축제도, 수련회도, 수학여행까지도 모든 게 어그러졌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저 혜은이 무사히 자신들에게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특히 소정의 마음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첫날 느꼈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건 그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거였다. 소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혜은이 돌아왔을 때 맑은 얼굴로 맞이하기 위해 울음을 참기로 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예린도, 큰 은비도, 유나도, 작은 은비도, 예원도 같은 마음이었다.

매일, 매일. 정보를 수집하는 와중에도 혜은이 돌아오길 바랐다. 그러다 수련회를 떠나기 일주일 전, 우연찮게 지각한 혜은과 댄스부 그녀들이 마주 보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소정이 조심스럽게 나서서 혜은을 불렀다.

 

 

" 저... 혜은아, 잘... 지내는 거 맞지? "

" ... 상관하실 바 아니잖아요. "

" 호, 혹시 말이야! 우리가 위험해질까봐서... 그러는 거야? "

" 무대 준비나 열심히 하세요. "

" 이대로 널 보낼 순 없어, 미안해. 혜은아... "

" 아... "

 

 

잘 지내냐는 소정의 말에 혜은이 가만히 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답했다. 

낮게 눌린 목소리에 예원이 입을 달싹이다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혜은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혜은은 예원의 물음에 동문서답으로 답했다. 그 말이 곧 정답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차렸다.

유나가 혜은에게 빠르게 달려가서는 미안하다며 그녀의 뒷목을 정확하게 내려쳤다.

누가 체육 잘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서, 보다 정확했고 신속했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혜은이 정신을 잃으면서 앞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다행히도 유나가 혜은을 받쳐주며 다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본 혜은의 얼굴은 확실히 이전과 차이가 심했다.

 

 

" ... 심각한데? "

" 저희 아버지가 치과 의사시긴 한데... 일단 의사니까 데려가 볼까요? "

" 그러자, 큰 대학병원이니까 관련해서 알 수 있는 게 있을 테니까. "

" 바로 가죠! "

" 혜은이는 내가 업을게. "

 

 

감겨있는 혜은의 눈 밑은 검게 눌어붙은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 잡았고, 밥을 제때 챙기지 못하는 건지 뺨이 홀쭉해졌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짝 통통한 볼살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 마크가 사라진 것이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면 만져보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그런 뺨이었다.

모두의 표정에서 혜은을 향한 걱정이 묻어나왔다. 

예원이 자신의 아버지를 말하며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고, 쓰러진 혜은을 업는 건 유나였다. 큰 은비가 혜은을 업는 과정을 도와주었다. 6명은 혜은을 업은 채 근처에 있는 예원의 아버지가 계시는 대학 병원에 도착했다.

입구에 드러서는 순간 타이밍 좋게도 예원의 아버지를 만났다.

 

 

" 아빠! "

" 어라, 예원이 너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 거니? "

"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후배가 쓰러졌는데 상태 좀 봐주세요! "

" ... 내과에 아는 교수가 있으니 바로 진료해 보자꾸나. "

 

 

커피를 들고 나타난 예원의 아버지는 예원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급한 예원의 목소리에 유나의 등에 업힌 혜은을 보고서 상태를 보았다. 곧장 내과 교수에게로 가 의료실 침대에 눕히고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했다. 우선 계속 의료실에 둘 수 없어서 혜은을 병실에 입원시키기로 정했다.

혜은이 깨어났을 때 놀랄 것을 감안해 소정과 작은 은비, 유나가 곁에 남기로 했다.

예린과 큰 은비, 예원은 예원의 아버지에게 자초지종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녀들의 말을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았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