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는 편
부제 : 믿었던 자의 배신
결과부터 말하자면 혜정과 유나는 쇼핑을 얼마 하지 못했다.
한 브랜드에서 결제를 하려고 할 때, 감이 좋은 작은 신비에게 발각되었는데 작은 은비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였다. 유나의 지름신 강림에 어떻게 말리지, 하고 있던 혜정으로선 반가운 사실이었다.
그렇게 들킨 이후 한바탕 다른 사람들도 합세하려 너나 할 것 없이 혜정의 옷을 꾸며주었다.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했던 혜정이었다. 하지만 거절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카드가 등장해서 결제하는 게 아닌가. 분명 선물을 받는 건 기쁘고 좋았지만, 점점 쌓여가는 상자를 보니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쇼핑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사람이 사람인지라 자연스럽게 의자 숫자가 많고 공간도 넓은 비지니스 룸으로 안내받았다. 헤정은 살면서 처음 들어가 보는 비니지스 룸이 신기하기만 했다.
" 아무래도.... "
" 그렇지, 혜정이도 알 권리가... "
" 네? 저요? "
혜정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살펴보다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뜸을 들이던 사람들은 서로 눈빛 교환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말하면 중구난방 해질 테니, 소정이 대표로 설명하기로 했다. 소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이 담긴 그녀의 표정에 혜정이 의문을 가지고 갸웃거렸다.
왜 그러냐는 듯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혜정의 표정이 설명을 들을수록 점점 굳어졌다. 혜정이 들은 건 자신이 아파서 등교도 못 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였다.
혜정이 충격받은 건 아무래도 담임이자 자신을 챙겨줬던 이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 혜정아, 놀라지 말고 들어... "
" 네? "
" 이 선생님이 네 담임 선생님이시지? "
" 네, 그렇죠...? 저 찬물 세례 받았을 때도 도와주신 선생님이세요. "
" 그 선생님이 너 병가 냈을 때... "
" 네?? "
그 충격은 데이트를 끝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많은 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이건 대체 뭐냐며 무슨 돈으로 샀냐고 집요하게 물어도 혜정은 답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멍하니 있는 혜정의 모습에 어머니는 무언가의 직감으로 지금 혜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도 모르는 혜민은 많은 옷들에 신나서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보던 어머니는 혜정을 방으로 돌려보내고, 그녀가 들고 왔던 가방을 주지 않고 들고 있는 혜민의 등짝을 때리며 말렸다. 혜정이 멍하니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의 표정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혜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예전에 자신을 도와주던 이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 혜, 혜정아... 너 괜찮니?? ]
[ 이 일은 선생님이 책임지고 징벌하도록 하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
[ 이 선생님께서... 가해 학생들을 봐줘야 한다고... ]
[ 선생의 입장으로 말하는 거라더라...? 일단 학주 선생님이랑 우리가 말려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
찬물을 뒤집어 썼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도와주었던 사람이 이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도 아니고 이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내일 학교로 등교하게 된다면 이 선생님과 대면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선물 받은 옷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
.
.
다음 날, 혜정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나가려고 할 때, 어머니가 웬일로 평소보다 일찍 나가냐는 말에 혜정이 웃으며 오늘 당번이라서 그렇다며 언니들이 오면 먼저 등교했다고 말해달라더니 그대로 등교해 버렸다.
남겨진 어머니는 얘가 어제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하며 걱정에 잠겼다.
혜정은 항상 댄스부 선배들과 함께 등교하던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선생님께서 책임지고 징벌 내리게 하시겠다더니 이런 뜻이었을까?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혜정은 가방을 댄스부 동아리 실에 두고서 교무실로 향했다.
" 어머, 혜정이 아니니? "
" 혹시 담임 선생님 계실까요? "
" 잠깐 들어와서 기다리렴, 아직 출근 전이시란다. "
" 아... 감사합니다. "
교무실에 도착한 혜정은 다른 선생님이 주시는 녹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자신이 처음으로 이곳에 전학 와서 믿었던 어른이자 선생님이었기에 쉽게 믿음을 버리긴 힘들었다.
이 선생님이 그렇게 한 이유를 찾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필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생각을 굴리고 또 굴렸다. 교무실 문이 열리고 이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혜정의 모습을 보았다.
혜정의 앞에는 오래되었는지 다 식어버린 녹차가 보였다.
혜정은 생각에 빠져있느라 녹차에 입도 대지 않았다. 정색하고 있던 이 선생님이 혜정에게 다가오며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에 혜정은 역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 어머, 무슨 일이니? 혜정아. "
" 아... 선생님. "
혜정에게 녹차를 내어주던 선생님이 힐끗 두 사람을 보았다.
이 선생님과 혜정은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건지 교무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혜정과 등교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예원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혜정의 어머니가 나왔다.
" 아, 안녕하세요! 혜정이 있어요? "
" 어머... 맞다, 혜정이 오늘 당번이라며 먼저 등교했단다. "
" 네? "
" 무슨 일... 있는 거니? "
"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
예원은 혜정이 있냐며 등교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혜정의 어머니는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놀라는 제스처를 보이며 예원에게 혜정이 먼저 등교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말에 놀란 예원이 되물어보았다.
혜정은 사건 이후로 계속 동아리실에서 공부를 하는 탓에 당번이라는 걸 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에게 괜한 걱정을 심어주기 싫었던 예원이 고개를 저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혜정의 집을 벗어났다.
예원이 빨리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혜정의 어머니는 괜히 걱정이 커져갔다.
" 무슨 일이 있는 거려나... "
예원은 혜정의 집에서 벗어나 항상 걸어가던 거리를 따라 학교에 도착했다.
혜정의 반에 갔을 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이미 등교한 학생들이 예원을 둘러싸며 다가왔다. 예원은 괜히 반부터 왔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단체 톡방에 혜정이 오늘 먼저 등교했다고 하는데, 지금 교실에는 없다고.
학생들한테 발이 묶였으니, 혜정이가 갈 법한 곳에 가서 찾아달라는 말을 보냈다. 연락을 보내자마자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이 와서 찾아본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예원이 자신을 둘러싼 학생들을 상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조용히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 혜정아~ 여기... 없는데? "
" 혜정아~ "
" 선생님, 혹시 오늘 혜정이 여기 왔다 갔나요? "
" 혜정아!! "
소정과 예린, 큰 은비, 유나, 작은 은비가 각자 움직이며 혜정을 찾아 나섰다.
중등부 건물 내를 돌아다닌다거나 보건실도 가보고, 운동장을 꼼꼼하게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나서도 혜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6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갔던 곳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갔던 곳에는 혜정이 없다는 이야기뿐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들은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혜정아, 어디에 있는 거야! 누군가가 본다면 아직 중학생이라고 해도 엄연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데,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었다.
그게 문제가 없는 학생이라면 걱정되지 않았을 테지만.
혜정은 상황이 너무 달랐다. 잠시 한눈을 떼어냈다고 하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서 눈앞에 두지 않으면 묘하게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그건 6명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어머, 너네 여기서 뭐 하니? 고등부 학생들이 중등부까지. "
" 아... 선생님, 혜정이 찾고 있었어요. "
" 혜정이? 아까 교무실에 왔던데... "
" 교무실이요?? "
" 어머... "
6명이 모여 이마를 맞댄 채 혜정이 또 갈만한 곳을 떠올리려고 할 때였다.
한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혜정을 봤다고 말했다. 드디어 혜정에 관한 결과가 나오자 화들짝 놀란 6명이 동시에 선생님을 향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러자 놀란 선생님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기 시작하면서 교무실로 향할 때였다.
교무실 앞에는 교무실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 선생님과 그 앞에 서서 해맑게 웃고 있는 혜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6명이 먼저랄 것도 없이 혜정을 부르며 다가갔다.
소정이 이 선생님을 경계하며 혜정의 팔을 붙잡았는데, 혜정이 그녀의 손길을 쳐냈다.
" 혜정아...? "
" 하... 왜 그래요? "
" 아니... 아침에 네가 안 보여서... "
" 제가 애예요? 무엇보다 엄마한테 말하고 왔는데... "
" ... 혜정아, 너 왜 그래? "
" 됐어요. 오늘은 저 반에서 수업받을게요. "
" 어? 혜정아?? "
소정은 자신의 손을 쳐내고, 차갑게 식어버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혜정의 시선에 움찔거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6명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혜정을 보았다. 혜정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격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작은 은비가 인상을 찡그리며 이 선생님을 노려보며 혜정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혜정이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반에서 수업을 받는다며 발걸음을 돌려 가버렸다. 소정이 혜정의 뒤를 따라가려고 할 때, 이 선생님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상냥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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