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는 편
부제 : 대단한 계획
은정의 감기로 인해 하루 병가를 내고, 6명이 단체로 그녀의 병문안을 갔던 날.
그날이 어느새 저번 주의 일이었다. 그날 은정의 방에서 다 같이 계획을 짜놓았던 걸 이제는 실행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할 때였다. 그 계획은 단순하게도 수련회에서 은정을 주인공으로 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은정이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 올라가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두에게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계획.
어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해 보일지는 몰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서 뭐라고 할 사람은 적으니까. 정공파로 밀고 나가는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정해진 이후로는 은정은 춤 연습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나마 자유로운 건 오전 수업 정도?
오전에는 댄스부 사람들이 돌아가며 은정의 수업을 진행했다. 지안은 국어, 하윤은 수학, 큰 예은는 사회, 수아는 영어, 작은 예은는 과학, 하윤이 도덕을 맡았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나서 모두와 춤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 하아... 하... 그런데 중학교랑 고등학교랑 같은 수련회... 가나요? "
" 후... 수련회는 같은 곳에 가긴 하는데, 거주하는 동이 다르지. 아무래도 트러블이 있을 수 있으니까. "
" 아하, 레크레이션은 같이 하고요? "
" 그렇지. 처음에는 같이 안 했는데, 중학생들이 자신들도 무대 보게 해달라고 했다네? "
" 이게 다 우리 댄스부의 힘이지. "
" 우와... "
식사 이후 한참 반주에 맞춰 춤을 추던 은정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힐끗 시선을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미 3시 29분이었다. 점심시간 이후로 3시간을 연달아 춤을 췄기 때문에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지쳐서 주저앉은 은정의 옆으로 서연이 다가와 질문에 답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쉬는 시간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 자, 다들 마지막으로 맞춰보고 집에 가자! "
" 네! "
지안이 박수를 치면서 모두를 불러 모았다.
통통 튀면서도 귀여운 반주가 흘러나오고, 은정이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춤을 맞춰가며 움직였다. 거친 움직임에 식었던 땀이 다시 났고 후반으로 갈수록 은정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비친 은정의 모습은 다른 댄스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해졌을 정도로 발전했다.
다른 사람들도 춤을 추는 동안 은정의 실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리던 사람들은 은정에게 다가와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모두가 밝게 웃으며 은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것봐, 연습하면 괜찮다니까? "
" 은정아! 엄청 늘었어! "
" 진짜로. 곧 대회 나가도 되겠는데? "
" 정말요...? "
" 노력한 결과는 배신하지 않아. "
" 수고했어, 은정아! "
그녀들의 말대로 은정이 노력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댄스부의 격려였기에 큰 만족을 얻은 은정이 해맑게 웃었다. 그날 마지막 춤 연습이 끝난 뒤로 하교하기 위해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 은정의 하교에 함께하기로 한 사람은 수아였다.
은정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밝게 반겨주며 정아, 하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은정은 수아와 조금 가까워진 거리에서 함께 걸었다. 하교를 준비하고 나오는 사이에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두 사람은 노을을 등지고서 공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수아는 은정의 곁에 붙어서 조잘조잘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 쩡아~ 내일 주말이잖아. "
" 네, 그렇죠? "
" 그럼 우리 수련회 갈 때 입을 옷이나 사러 갈까?? "
" 어... 그래도 돼요? "
" 그럼~ 난 처음 볼 때부터 가고 싶었는걸? "
수아의 데이트 신청에 은정이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은정은 오자마자 옷장을 뒤적거렸다. 친구들과 시내에서 놀 때도 이렇게까지 설레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왜인지 지금은 엄청 설렜다. 이대로 잠들면 분명 잠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두고서 이리저리 대보면서 전신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그때 힘겹게 문을 열고서 등장한 어린 동생이 은정을 보며 짜게 식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동생의 손에는 과일이 깎인 접시가 놓여져 있었다. 옷을 비교하고 있던 은정은 제 어린 동생에게 모습을 보여주며 물어보았다.
" 혜민아, 언니 내일 데이트가는데 어떤 게 어울려? "
" 언니... 그만하고 과일이나 먹으면서 공부해. "
" 너무하네! "
" 하... 엄마!! "
" 아, 알았어! "
은정은 자신의 동생인 혜민에게 물어본 걸 살짝 후회했다.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공부나 하라고 일침을 놓는 동생은 분명 초등학생 4학년이 분명했다. 은정은 혜민을 보며 즐겁다는 듯 키득 웃었다. 혜민은 슬쩍 은정의 표정을 살피다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혜민은 솔직히 요 며칠 이사하면서 자신의 언니에게 생겨난 일들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확인차 엄마에게서 과일을 빼앗아 자신이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걱정이 괜한 것임을 알자, 고개를 내저었다. 들고 온 과일 접시는 책상 위로 올려놓고서 냉큼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혜민이 문을 닫고 나갔음에도 은정은 여전히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 너네 언니, 어떠니? "
" 완전 괜찮던데. "
" 정말? 울고 있진 않고? "
" 응, 내일 데이트 간다고 패션쇼 중이야. "
" 어머... 친구들이랑도 안 그러더니. "
혜민은 부엌으로 나와서 요리를 하고 있던 엄마를 보았다.
테이블에 앉아 위에 놓인 과일을 집어 먹으며 자신이 보았던 은정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었다. 울고 있지 않냐는 엄마의 말에 혜민이 고개를 저으며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방 안에서 은정은 결국 처음 보았던 옷을 골라두고서 널브러진 옷을 정리해야 했다.
모두 정리하고 조금 쉬려고 했을 때, 띵띵! 소리를 내며 휴대폰 화면이 깜빡거렸다. 화면을 켜고 확인하자 수아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 내일 홍대에서 만나. ]
" 홍대? 명동이 아니라? "
[ 명동은 주말에도 사람이 많으니까. 내가 아는 홍대 옷집 있거든! ]
" 아하... "
[ 좋아요, 언니. 그러면 내일 홍대역 입구에서 봐요. ]
[ 좋아~ 그럼 내일 보자! 아참,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
[ ㅎㅎ 네~ ]
은정은 수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1시가 된 시계를 발견했다.
황급히 폰을 끄고 이불을 덮은 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눈을 뜬 은정이 전날 저녁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가방을 챙기려고 했으나, 어제 생각해 두었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은정은 방을 나서면서 거실과 베란다를 뒤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말고 나와 은정을 불렀다.
" 은정아, 뭐 찾니? "
" 내 분홍색 작은 손가방! "
" 어머... 그거 오늘 혜민이가 가져가던데? "
" 뭐어?! "
은정은 자신의 동생이 자신의 가방을 들고 나갔다는 말에 버럭 소리쳤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곧장 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은정은 씩씩거리면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온 은정은 다른 가방을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집에 남겨진 은정의 어머니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
.
.
[ 홍대 역 앞 ]
홍대 역 앞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은정은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오늘 용기를 내서 입어본 짧은 치마 때문에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추위를 느껴야 했다. 초여름이라 그리 춥진 않았지만, 쌀쌀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아직 차갑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오늘 아침부터 동생이 가방을 들고 나가버리는 탓에 은정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쩡아~!! "
" 수아 언니! 여기요! "
버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은정을 향해 달려갔다.
수아가 버스에서 내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수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은정은 역시 수아가 예쁘긴 하다며,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수아가 곧장 은정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붙잡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은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아를 보며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달렸다. 달리면서도 수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보았고, 수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 하필 오늘 만나는 거 애들한테 들켰단 말이야! 일단 만나는 시간을 1시간 뒤라고 속이긴 했는데... 오기 전에 도망쳐! "
" 같이... 쇼핑해도 되지 않아요? "
" 안돼! 난 은정이랑 둘이서만 하고 싶단 말이야! "
" 언니... "
먼저 앞서 달리던 수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켰다며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그 말에 당황한 은정이 같이 해도 괜찮다고 말하자, 수아가 고개를 저으며 그건 안 된다고 답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쇼핑 백화점 실내로 들어오고 나서야 두 사람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냅다 달린 탓에 거칠어진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때, 두 사람은 백화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은정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온통 명품뿐이라는 사실에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최대한 명품과 안 부딪히기 위해 몸을 애써 비틀어가며 피했다. 그때 한 가게 앞에 멈춰 선 수아가 은정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고가 있는 가게라는 건 명품이라는 뜻이었다.
" 어, 언니! 여긴... 제 용돈으로 못 사요! "
" 괜찮아~ 언니가 사줄게! "
" 네에?! "
안 들어가기 위해 버티던 은정은 수아가 사주겠다는 말에 휘청거렸다.
그 순간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면서 반쯤 포기하고 안을 돌아다녔다. 수아가 사준다고 해도 안 어울리고 안 받는다고 우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아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이리저리 은정의 몸 위로 옷을 올려보던 수아가 카드로 결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은정이 수아를 말리지도 못했다.
영수증으로 나와버린 금액을 확인한 은정이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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