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 랭크 1
두 사람의 첫만남의 계기, 그것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적어도 유키 마코토의 입장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였지만. 마나츠 미노리, 그녀는 과거 섀도타임 당시 이와토다이 역 근처를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상징화되는 것을 보고 패닉이 와버렸었다.
그러던 그때, 스트레가에서 그녀를 발견했고 마나츠가 페르소나 각성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단순하고 순진해서 꾀어내기 좋은 먹잇감. 마나츠는 그들에게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보기 좋게 구슬려진 말에 넘어가 버린 어리고 순한 양. 그런 그녀에게 SEES가 나쁜 사람들이라 세뇌했다.
세뇌된 마나츠는 SEES가 나쁘다고 판단했으며 그런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 그들에게 다가갔다.
SEES 중 전학생이자 가장 만만해 보이는 마코토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가기로 했다. 말이 나쁜 마음이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저지하겠다는 사명감에서 나온 마음이었다.
자신이 세뇌당한 것조차 모르지만, 마나츠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안녕하세요? 전학생인가요? "
" ... "
" 인사 안 받아주려나요. "
" 아무래도 상관없어. "
" 저는 마나츠 미노리! 편하게 미노리라고 불러주세요. "
사실 마코토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조차 마나츠는 잔뜩 겁에 먹은 상태였다.
처음 보는 낯선 상대에게 선뜻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SEES를 저지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성격을 완전히 정반대로 돌렸다. 얌전한 성격에서 잔망스러운 성격으로.
소심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에서 끼를 부리고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그게 먹힌 건지 아닌 건지. 마코토의 표정은 워낙 무표정해서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마코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꿋꿋하게 마코토에게 끼를 부리며 가까워지기 위해 다가갔다.
그녀는 계속 무뚝뚝하고 반응이 적은 마코토의 모습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역시... 나쁜 놈이니까 이 정도로는 안 넘어오는구나. '
그것이 작은 계기가 되어 마나츠가 마코토에게 꾸준히 다가가는 일상을 만들어주었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사흘이 되는 날에도, 일주일이 지나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다가오는 마나츠의 행동에 마코토는 그녀가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수상할 정도로 자주 눈에 띄는 1학년이라니.
평소에 아무리 돌아다녀도 1학년은 그녀 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의심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코토의 입장에서는 뭐가 어떻게 되든 좋았기에 신경 끄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시간에 맞춰 다가오던 마나츠가 모습이라도 안 보이는 날에는 신경 쓰여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 이상하지, 왜... "
" ... 이상하네. "
신경 쓰이는 건 비단 마코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마나츠 역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탓에 마코토를 못 보는 날이 오면 그녀도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이 온통 마코토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SEES에 있는 녀석이 좋은 녀석일 리 없다고 되뇌어보지만, 머리와는 달리 몸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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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두 사람은 초반과 똑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도 있었다. 그건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자세히 봐야지만 알 수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어색하기만 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던 두 사람의 관계는 며칠 사이에 상당히 바뀌었다.
겉으로 봤을 땐 저번과 똑같아 보인다고 하겠지만, 편하게 변한 마나츠의 눈빛, 한 번씩 씰룩이는 마코토의 입꼬리, 조금 길어진 그의 답,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 대화가 바뀐 걸 알려주었다.
" 유키 선배, 물고기 좋아하세요? "
" 응. "
" 그럼 아쿠아리움은요? "
" 응. "
" 저는 어때요? "
" 응. ... 응? "
이젠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물론 마나츠 쪽에서의 일방적인 장난에 가까웠고, 마코토는 그 장난을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마코토가 반응해 주는 장난은 이런 식으로 마나츠가 자신은 어떠냐고 물어올 때였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정 변화조차 적은 마코토지만, 마나츠의 이런 말에는 움찔거렸다.
잔뜩 굳어버린 마코토를 풀 수 있는 건 여전히 마나츠였다. 마나츠가 웃으며 장난이라고 말해야지만 마코토가 옅은 숨을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며칠 가까이 한 덕인지 마나츠는 마코토의 반응에 대해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다.
방금 그 반응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오해하기 십상이었지만, 자신은 달랐다.
' 어쩌면 가능성 있겠는걸? '
원래의 계획대로 마코토를 꼬셔서 SEES, 그들의 물을 흐린다는 작전은 쉽게 진행될 것 같았다.
마나츠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정작 마코토는 아무런 생각조차 없었다. 그리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오늘처럼 매일같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덕분인지 마나츠는 자연스럽게 SEES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히 스트레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 따윈 할 수 없었다. 저들이 그저 경계하고 있어서 가면을 쓰고 대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 ... 마나츠. "
" 어? 미노리라고 불러주세요! 마코토 선배! "
" ...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
" 상관있다고요!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주구장창 입에 담아 노래를 불렀던 요비스테였다.
마나츠는 마코토에게 자신의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마코토는 그걸 듣고도 요비스테를 해주지 않았었다. 몇 번을 독촉한 탓에 한참을 해줄 것처럼 뜸 들이더니 결국 해주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었지만 마나츠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기필코 요비스테해서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 다짐하기까지 했다. 마나츠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다짐을 하자 그 모습을 전부 마코토가 지켜보고 있었다.
" ... "
" 아자! 마코토 선배에게 이름으로 불릴 때까지! "
사실 마나츠가 그러는 동안 마코토는 속으로 여러 번, 마나츠의 이름을 되뇌었다.
언젠가 입 밖으로 내뱉게 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며 이름 부르는 걸 연습했다. 계속 되뇌다 보니 마코토는 괜스레 뺨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괜히 죄 없는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커뮤 랭크 3
몇 번인지 세어보지조차 않았을 만남, 그러던 중에 마나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평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항상 나타났던 시간보다 늦게 나타났고, 조금 다급하게 달려왔으나 애써 멀쩡한 척했고, 어제랑 다르게 한참이나 입술을 벙긋거리던 마코토의 모습 정도?
" 헤헤, 마코토 선배! 제가 늦었죠? "
" ... "
" 어라... 혹시 너무 늦게 와서 화났어요? "
" 아니. "
" 으음, 그럼... 뭘까요...? "
" ... 미노리. "
" 어? 뭐라고요? 마코토 선배!! 다시 말해주세요! "
언제 만나자고 약속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항상 같은 시간마다 나타났었기에 괜히 다른 시간에 나타나면 미안해졌다.
그래서 마나츠는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이 없는 마코토의 모습에 마나츠가 장난스럽게 화났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마코토가 마나츠를 빤히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짧고 간단한 답에 마나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코토를 보았다.
마나츠가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을 때, 가만히 있던 마코토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마나츠는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놀란 눈으로 마코토를 보며 다시 말해달라며 매달렸다.
" ... "
" 아, 마코토 선배!! "
하지만 그녀의 애원에도 정작 마코토는 다시 미노리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마나츠는 마코토의 입에서 다시 자신의 이름을 듣기 위해 계속해서 마코토의 팔을 붙든 채 불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마코토는 고개를 아예 돌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속으로만 되뇌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부터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문제는 왜 뜨거워지고 있는 건지 본인이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에 힐끔, 고개를 돌려 마나츠에게 시선을 주었다. 얼굴을 보고 있는 건 또 괜찮아 보였다.
" ... 가자, 미노리. "
" 마코토 선배!! "
마코토는 자신의 팔에 매달리듯 안겨있는 마나츠를 두고서 빠르게 몸을 일으키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그의 행동에 마나츠도 잇따라 일어나더니 마코토의 뒤를 따라 달렸다. 키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마나츠는 앞서가고 있는 마코토를 향해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외쳤다.
" 마코토 선배!! 다음에 만나면 우리 아쿠아리움에 가요! "
" ... 응. "
" 정말요?! "
" 응. "
마나츠는 그가 들어주지 않으리라 예상하고서 말한 데이트 약속에 제대로 답이 돌아오자, 크게 놀랐다.
순간 멈춰진 발걸음에 거리는 더 벌어졌고, 마나츠는 허겁지겁 마코토의 뒤를 따라갔다. 마코토는 앞만 보며 걸어갔고, 그의 뒤를 마나츠가 애타게 선배! 라고 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커뮤 랭크 4
오늘은 두 사람이 일전에 데이트를 하자고 약속을 잡았던 날이었다.
가장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사람은 마코토였다. 마코토는 시계탑 앞에서 이어폰을 낀 채 기대어 마나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 정각, 시계탑에 도착한 마나츠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코토를 발견했다.
마코토를 향해 걸어가던 마나츠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팔을 흔들고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바람이 살짝 불어와 마코토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그 순간 마나츠는 발랄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람에 흐트러지는 순간 햇빛에 비춰 푸른빛이 감도는 남색 머리카락, 언뜻 느껴지는 차갑고 도시적인 분위기, 선이 가늘고 중성적인 외모. 얼굴을 감싸듯 불어오는 바람에 마나츠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처음과 많이 달라진 감정이 점점 격해지자, 얼굴에 열이 몰렸다.
" 아... 이럴 때가 아닌데... "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바닥에 뿌리라도 박힌 듯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당장 이 감정에서 달아나야지만 하는데, 눈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코토의 모습을 보니 오도 가도 못했다.
모든 순간이 슬로우 화면으로 변하면서 마코토의 고개가 마나츠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마코토가 마나츠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마코토가 다가오는 순간순간이 마나츠에게 있어 설레는 순간이었다. 마나츠가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던 마코토가 가만히 그녀를 보며 고개만 갸웃거렸다.
마나츠는 자신이 깨달은 감정을 애써 감추며 웃었다.
" 왔어? "
" 네! 마코토 선배! 이제 갈까요? "
" 응. "
마나츠는 자신의 감정이 마코토에게 들키지 않길 바랐다.
처음 접근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기에 마나츠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형용할 수 없도록 자꾸 변하는 기분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코토는 모를 어색한 순간에 두 사람이 함께 실내로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온 주변이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마나츠는 고개를 돌려 수족관 한 가운데에 있는 마코토의 모습을 보았다. 물이 빛에 반사되어 마코토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 오묘한 분위기가 마코토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물고기는 열대 물고기래요. "
" 응. "
" 마코토 선배! 저기, 거북이 지나가요! "
마나츠는 오늘 하루, 자신이 깨달아버린 감정을 다시 깊숙이 묻어버리고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마나츠가 신나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마코토의 시선이 계속해서 마나츠를 따라다녔다. 마코토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마나츠에게 향했다.
아쿠아리움에서 데이트를 하는 내내 두 사람은 평소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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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 데이트가 지난 이후,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마나츠가 마코토와 거리를 조금 두는 쪽으로 변했다. 처음에 마나츠가 거리를 두기 시작했을 때 마코토는 의문을 가졌다. 평소에 거리낌 없이 다가오던 마나츠가 이젠 되려 거리를 두고 있으니.
처음에 가지고 있던 의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던 찰나에 묻어두었던 의심이 다시 피어오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마코토는 자신의 감정도 모른 채 마나츠를 의심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더운 여름이 되었을 때였다. 너무 더워서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때 오랜만에 보는 마나츠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타났다.
" ... 미노리, 오랜만이야. "
" 네, 마코토 선배! 오랜만이네요. 아이스크림 하나 드실래요? "
" 응. "
" 어떤 거 드실래요? "
" 아무거나 좋아. "
마나츠는 마코토를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이전에 느꼈던 설렘이 느껴지지 않아 평소처럼 대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두 사람을 향했고, 그림자 하나 없는 곳에서 땀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 마코토가 마나츠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마나츠의 뺨에 묻어나오는 아이스크림을 빤히 지켜보았다. 마나츠는 자신의 뺨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마코토는 뺨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보며 저대로 두었다간 끈적해질 텐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마나츠의 뺨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었다.
" 마코토 선배? "
" ...! "
당황하기는 마나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깊숙이 묻어놨던 마코토를 향한 그 감정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마나츠의 얼굴은 더위인지 열기인지 모를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마코토 역시나 귀 끝을 붉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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