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는 어렸을 때부터 떠돌이 신세였다. 기억나지 않았던 시절부터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떠돌이로 살아왔다.
제가 태어난 생일도, 나이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지내고 있던 마을에서는 부모가 버리고 간 아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비비는 학교에 몰래 잠입하기로 했다. 떠돌이 생활로 인해 몸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고 더 이상 길거리에서 떠돌며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머물며 회복하기 위한 장소를 찾다가 들어온 게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였다. 정식 입학이 아닌 초대 받지 못한 손님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찾아온 학원장 크로울리는 그녀 곧바로 나가달라는 통보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갈 곳조차 없었던 비비는 학원장에게 간절하게 바라며 부탁했기에 겨우 사바나로 기숙사에 2학년으로 편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비비는 동아리로 육상부에 들어가기도 했다.
몸이 약해진 게 싫었기에 무작정 들어가 버린 곳이었지만. 처음에는 천천히 뛰는 것조차 버거워했지만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면서부턴 동아리 내 넘버원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레오나를 처음 만나게 된 장소는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 안쪽에 있는 식물원에서였다. 당시 비비는 편입 이후 사바나로 기숙사 학생들을 포함한 다른 기숙사생들에게까지 대놓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당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게 일상인 수준이었다.
" 헉, 헉... 후... 힘들어... "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도망 다니는 것도 질릴 정도였다. 비비는 도망을 다니다가 몸을 숨기려고 들어간 곳이 식물원이었다.
거기에 먼저 있던 레오나가 비비의 발소리와 인기척에 눈을 떴다. 식물원 안쪽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비비는 실내에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도망 다니느라 무릎도 까지고 머리까지 잔뜩 헝클어진 상태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비비는 얼떨떨하고 당황해버린 탓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긴장해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식물원 안에 학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울먹거린 채 벌벌 떨고 있던 비비의 모습을 보던 레오나는 특유의 나른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저 혼자 찔려버린 비비는 횡설수설 설명하기 바빴다.
" 누, 누가 들어있는 지 모, 몰랐어요! "
" ... "
" 몰, 몰래 들어와서... 죄송해요...!! "
" ...? "
" 조금만... 아주 조금만 숨어있게 해주세요... "
조금만 숨어있게 해달라며 간곡하게 부탁하는 비비의 모습에도 레오나는 시큰둥해 보였다.
그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비비는 레오나를 만났을 때 레오나가 무서워서 행동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레오나 본인은 추레한 행색으로 들어온 비비의 모습에 학생일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자세하게 살펴보고서야 알아차렸다. 같은 학교, 같은 기숙사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레오나는 비비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기다 소문난 그 문제의 편입생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잔뜩 겁에 질려선 덜덜 떨고 있으면서 바로 도망칠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만 숨어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 모습이 레오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레오나가 아무런 말이 없자 비비는 있어도 되는 거라는 무언의 허락이라 생각하고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숨었다. 이곳이라면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오들오들 떨리는 몸은 좀처럼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이제... 괜찮은 건가? 정말 괜찮은 거 맞나?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 '
불안에 떨고 있는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나가자니 밖에서 저를 찾기 위해 괴롭히는 녀석들이 돌아다닐 게 뻔한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뻔할 게 분명하니 나갈 수도 없었다. 그저 빨리 수업이 시작되길 바라며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정하려고 하지만 몸의 떨림은 가시질 않았다. 힐끗 떨어진 곳에 있는 레오나를 보았다. 여전히 조금의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비비는 차라리 밖에 있는 저를 괴롭히는 녀석들보다 안에 있는 저에게 관심조차 없는 이 사람이 더 편했다. 식물원 안이다 보니 포근한 온도와 풀 내음이 안정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비비는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진정된 모양인지 몸의 떨림은 잦아들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건지, 자신은 그저 잠깐이라도 쉬어가고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걸 원했을 뿐인데 주변에서는 왜 그걸 가만히 두질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왜 제게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계속 반복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깊어지자 어둡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물리치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때 비비의 머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비비는 혹여나 벌써 찾은 건가 싶어 겁에 질린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계속되는 생각에 울상이 되어 눈앞이 흐려진 상태다 보니 고개를 들고 보아도 누군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정확하게 누구인지 보기 위해 눈을 비벼대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
" ...?? "
" ... 쯧. "
목소리 주인은 멀찍이서 떨어져 반응조차 보이지 않던 레오나였다. 어느새 비비의 앞에 서선 길게 하품하다가 짧게 혀를 찼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눈동자를 굴리다가 비비의 곁에 앉았다. 비비는 제 곁에 앉는 레오나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저 곁에 앉아있을 뿐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비비의 안에서 불안감이 피어났다. 혹시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가? 당장 나가라고 하려는 건가? 지금은 안 되는데.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이어지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짧은 말이 들려왔다.
" 여기 있어. "
있으라는 레오나의 말에 비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왜 제 곁에 누워 자는 거지?
호기심이 듦과 동시에 묘하게 레오나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이 되어 기분이 간질거려왔다. 그렇게 있기를 시간이 흐르고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크게 울려오자 비비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치마에 묻은 흙먼지와 잔디를 털어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 고마워요. "
비비는 레오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식물원을 벗어났다.
잠든 척하고 있던 레오나는 식물원에서 비비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길게 하품하는 레오나의 모습에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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