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21224] 애절한 마음

나비의 보관함 2025. 1. 16. 22:54


마지막 작전이 정해졌다.

에벨린과 쟝, 리코가 한 팀이 되어 진행하게 되었다. 리코는 탄창에 총알을 채우고 있었다. 힐끗거리며 에벨린과 쟝이 나누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에벨린은 높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쟝을 보았다.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인지를 하기도 이전부터 부모님끼리 친한 탓에 약혼 관계가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부터 제 곁에서 있어 주었던 유일한 제 사랑. 비록 그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에벨린은 꿋꿋했다. 에벨린은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 쟝... 만약에요. 아주 만약에 둘 다 살아 돌아온다면... "

" ...? "

" 살아 돌아오면 그때는... 고백해주세요. "

" ... "

 

에벨린은 쟝을 보던 시선을 옮겨 다시 하늘을 보았다.

차마 이 말을 내뱉은 이후로 쟝의 표정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점이 조금씩 떨려왔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에벨린은 쟝에게서 답을 듣지 않았다. 쟝의 입에서 혹여나 싫다거나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이라도 듣게 될까 싶은 마음에 그런 선택을 했다.

아무리 거절을 자주 당하고 미움을 받기도 했다지만 제 말에 직접적인 거절을 받으면 그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에벨린 씨, 괜찮으세요? "

" ... 리코, 저는 괜찮아요. "

 

사실 전혀 괜찮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어린아이 앞에서 내색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다고 답해버렸다. 에벨린과 리코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쟝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고민에 잠겼다. 어릴 적부터 함께하며 놀았던 아이, 제 약혼자라던 그 아이는 이제 여인이 되었고 그런 여인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감정이라는 게 한번 미워 버리면 도저히 그 인상을 되돌릴 수가 없는지라, 아니다. 이건 단순히 자신의 문제라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 고백이라... "

 

쟝은 한쪽 손을 주머니에서 빼내 꽉 쥐고서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에벨린을 보았다. 리코의 앞에 쪼그려 앉아선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무참한 짓을 해왔는지 깨달았다. 그걸 깨달아버린 지금, 살아 돌아온다고 해서 에벨린에게 고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거라면 몰라도 고백까지.

 

*

 

시간이 지나 모든 게 끝이 났다.

쟈코모 단테와의 최종전투가 끝나자 그로 인한 사상자와 생존자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에벨린은 비록 사무직이라는 하지만 보이스로 위치와 타계할 방법 같은 걸 알려주는 임시직을 맡았지만, 리코와 쟝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간절했다.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서 돌아오길 기도했다. 쟝의 형제인 죠제프와 그의 담당인 헨리에타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에벨린은 휘청거렸다.

 

" 아... "

" 에벨린, 괜찮니? " 

" 괘, 괜찮아요... "

 

누군가 에벨린을 부축해 주었지만 에벨린은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정신은 없었다.

수신기를 통해 쟝과 연락하고 있었는데,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신기에는 굉장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이후로 쟝과 연락이 되질 않는다. 조금씩 떨려오는 손은 좀처럼 진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에벨린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의료실 안으로 쟝과 리코가 들어왔다. 정확하게는 리코는 걸어서, 쟝은 들것에 실려 왔다.

화들짝 놀란 에벨린이 다급하게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침대 위로 눕혀진 쟝은 눈을 감고 있었다. 고이 잠든 그의 모습에 에벨린은 덜컥 겁이 났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죽어 나가는 이곳에서 저리 눈을 감고 있으니 죽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옆에 있던 리코가 조심스럽게 에벨린의 손을 붙잡았다.

 

" 괜찮아요. "

" 흡... 무슨,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 그게... "

 

쟝이 수술하러 들어갔을 때, 리코와 에벨린은 괜찮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쟈코모가 설치해둔 모든 함정과 방어선을 에벨린의 도움으로 돌파했고, 그를 찾는 데까지 성공했다. 리코는 쟝이 쟈코모의 퇴로를 막고 우회하도록 지시를 내려 그렇게 하는 도중에 자신은 수류탄 함정에 걸려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에벨린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선 리코의 손을 붙잡았다.

에벨린의 다정함에 리코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리코가 쓰러져 있는 동안 쟝이 쟈코모와 1:1 대면을 했지만, 칼을 맞고 쓰러지게 되면서 그를 인간 방패로 삼았다고 말했다.

리코의 말에 에벨린은 자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한동안 겪어보지 않았던 격렬한 분노였다.

 

"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요? "

" NTW-20를 발견해서... 쟝 씨의 명령으로 옆구리에... "

 

리코의 말에 에벨린은 쟝이라면 그러고 남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이어서 설명해주는 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에벨린은 마지막에 눈을 감으려는 쟝에게 했다는 말을 듣고 리코를 보았다. 에벨린은 그대로 리코를 끌어안았다.

 

" 고마워요. 쟝을 구해줘서. "

" 에벨린 씨... "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쟝의 수술은 안전하게 끝이 났다.

환자복을 입고서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쟝의 모습은 에벨린에게 있어 어색했지만, 그녀는 쟝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병간호를 . 그가 깨어났을 때 보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었으면 했다. 꽃병에 말라버린 물을 채우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 병실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 뒤에서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 쟝... "

" 누군가가 살라고 불러서 죽지 못했다. "

" ... 네, 저와 에벨린 씨를 위해 살아요. "

" 에벨린은... "

 

하나뿐이었던 바람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가 깨어났다는 것 하나만큼은 안도감이 들었다.

에벨린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꽃병을 들고 그의 앞으로 갔다. 물을 길러온 꽃병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고는 그를 보고 웃었다. 쟝이 손을 뻗어 에벨린의 손을 붙잡았다.

아직 통증이 다 나은 건 아니었는지 간간이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쟝은 후, 숨을 길게 내뱉더니 리코를 보다가 다시 에벨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하게 웃는 표정이었지만 에벨린은 그의 표정에서 쟝이 지금 많이 긴장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에벨린, 저와... 사귀어 주시겠습니까? "

" ... 쟝, 쟝...!! "

 

쟝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 오자 당황했던 에벨린은 쟝의 고백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의 고백에 얼굴을 붉히던 에벨린의 눈에는 어느 순간 눈물이 고였고,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리코는 상황을 지켜보더니 웃으며 조용히 사라졌다.

쟝은 부상으로 인해 잠들어 있을 때, 어둠 속에서 걷고 있었다. 마치 주마등처럼 걸을 때마다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그를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혼자 있던 에벨린과 놀아주었던 시절, 소피아와 연애를 하던 시절, 엔리카와 소피아가 제5공화국에 의해 사망한 시점, 그 힘든 시절 곁에 다가와 준 에벨린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때,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깎아내려 상처를 주기만 하던 시간, 이후의 시간이 나타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치 안개가 가득 깔린 짙은 늪 속에 잠겨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에벨린이 함께 했다. 수류탄 함정이 터지기 직전에 들려온 에벨린의 목소리에는 제 걱정이 가득했다.

 

' 쟝... 만약에요. 아주 만약에 둘 다 살아 돌아온다면... '

' 살아 돌아오면 그때는... 고백해주세요. '

 

무작정 걷기만 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도 제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여리디여린 여인의 곁으로 가야 했다. 더 이상 제 곁에 있는 사람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어둡기만 하던 주변이 환하게 빛을 내더니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보였다. 코를 찔러오는 알싸한 알콜향도 함께 났다. 흐릿한 시야 속에 들어오는 새하얀 눈송이 같은 머리카락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보였다.

아아, 나는 에벨린을 사랑하고 있구나.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