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40920]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는 건

나비의 보관함 2025. 2. 13. 15:16



 

에스텔과 에스티니앙은 집으로 돌아와 지친 피로를 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뻗어버린 상태였다. 에스텔은 자신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주말 동안은 일없이 푹 쉴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일정을 확인한 뒤 안심한 에스텔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에스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스티니앙이 상체를 일으키며 무릎에 팔꿈치를 기댄 채 턱을 괴고 그녀를 보았다. 궁금하던 것을 그대로 물어보았다. 

 

 

 

 

 

" 에스텔, 앞으로의 일정은 어때? "

 

" 음... 4일 동안 쉴 수 있어. "

 

" 그래? 시간 여유가 생겼군. "

 

 

 

 

 

에스텔의 말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에스티니앙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고민에 잠겨있는 에스티니앙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궁금하던 걸 포기하고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멍하니 있다가 눈을 감았더니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에스티니앙은 고민에 잠겨있다가 뒤늦게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다.

 

침대 위에서 어느새 잠들어버린 에스텔을 발견하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에 에스텔을 안아 들고서 침대에 똑바로 눕혀주었다. 

 

에스텔이 잘 자고 있는 모습에 많이 피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잘 자, 에스텔. "

 

 

 

 

 

그 이후로 에스티니앙은 주변에 어지럽혀진 짐을 정리하고서 자신도 에스텔의 곁에 누워서 잠들었다. 

 

 

 

.

 

.

 

.

 

 

 

에스텔이 눈을 떴을 땐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분명 오후여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지고, 지금은 달빛이 창문을 통해 넘어왔다. 에스텔은 달빛을 보면서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기억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예전의 기억이라면 이렇게까지 떠올리려고 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기억은 달랐다. 이상하게 생각한 에스텔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수첩을 꺼냈다. 

 

사락사락, 조용한 방안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음... 이상하다? "

 

 

 

 

 

수첩 안에 적혀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에스텔이 수첩 안에서 찾는 건 달빛이라는 키워드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첩을 뒤적거려도 달빛에 관해서 적혀있는 게 없었다. 분명 잊혀진 기억 중에서 달빛과 관련된 게 하나쯤은 있어야 정상이었다. 

 

에스텔이 끙끙거리며 기억을 되짚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느새 일어난 에스티니앙이 끙끙거리고 있는 에스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스텔은 에스티니앙이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수첩을 뒤적거리며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다 못한 에스티니앙이 입을 열어 말했다. 

 

 

 

 

 

" 에스텔. "

 

" 꺅!? "

 

" ... 미안, 놀란 모양인데. "

 

" 아... 에스티니앙. "

 

 

 

 

 

에스텔은 기억 되짚어보기에 열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에 에스텔이 들고 있던 수첩이 들어왔다. 얼마나 뒤적거린 건지 수첩 안에 있는 종이가 거의 헤진 상태였다. 

 

에스티니앙은 조용히 그녀의 곁에 앉아서 에스텔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가깝게 밀착되었고, 서로의 숨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에스텔이 당황해하면서 에스티니앙을 보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바르작거렸지만,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을 놓아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

 

에스텔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 에스티니앙, 이거 놔ㅈ... "

 

" ... "

 

 

 

 

 

두 사람의 사이에서 은근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상태라 아슬아슬했다. 순간적으로 에스텔이 몸을 뒤로 내빼면서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을 조용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가 아무런 말도 없는 상황에서 얌전히 안겨있기엔 많이 부끄러웠다. 

 

에스텔이 어색하게 웃으며 에스티니앙을 밀어내려고 했다. 에스티니앙은 가만히 그녀를 보기만 하다가 고개를 숙여 닿을 듯 말 듯하던 입술을 겹쳤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에 에스텔이 멍하니 에스티니앙을 보았다. 

 

 

 

 

 

" 뭔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

 

" 아... 응, 그렇지... "

 

" 어떤 게 기억 나지 않는데? "

 

" 그게... "

 

 

 

 

 

에스텔은 이미 자신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에스티니앙에게 비밀로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의 절반 이상,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날마다 그와 붙어있는 게 자신이었다. 그래서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문득 떠오른 기억의 단편에서 달빛을 보았고, 그 달빛이 언제 본 것인지를 떠올리려고 했다고.

 

그래서 수첩을 뒤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달빛에 관해서 적혀있는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에스티니앙이 눈동자를 굴려 창문을 보았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던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는 듯 창가를 넘어온 달빛이 보였다.

 

에스티니앙은 고개를 숙여 에스텔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 ...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가? "

 

" 응... 미안, 에스티니앙. "

 

" 미안할 건 아니지. 저번에 라벤더 숲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어. "

 

" 라벤더 숲? "

 

" ... 거기서부터인가. "

 

 

 

 

 

에스티니앙은 착잡한 마음으로 에스텔에게 정말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에스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짧게 한숨을 내쉬던 에스티니앙이 작은 힌트를 주었다. 기억의 조각에 힌트를 더한다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에스텔은 라벤더 숲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조차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반문해오자, 에스티니앙은 이제 놀라지도 않는 모양인지 짧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의 단단한 팔이 에스텔의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 에스텔은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에 버둥거리던 걸 멈추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에스티니앙이 고개를 들고 에스텔의 어깨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 그럼 당연하게도 약속한 것도 기억 못 하겠군. "

 

" 응... "

 

" 내가 잠시 사라졌던 날이었어. "

 

" 응? "

 

" 그때 기다리던 네가 날 찾아왔고, 밤에 라벤더 숲에서 다시 만났지. "

 

" 아. "

 

 

 

 

 

에스티니앙은 차근차근 에스텔이 스스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 덕분인 건지 아니면 자세한 내용 덕분인 건지 에스텔이 기억을 떠올렸다. 조각조각 난 기억들이 에스텔의 머릿속에서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었다. 

 

에스텔은 완전히 기억이 떠오른 건지 짧은 단말마를 내뱉었다. 

 

 

 

 

 

" 이제 기억나나? "

 

" 응, 고마워. 에스티니앙. "

 

" 또 잊어먹을지도 모르니 적어둬. "

 

" 응. "

 

" ... 에스텔, 좋아해. "

 

" 어? 뭐라고? "

 

 

 

 

 

에스티니앙의 말을 듣고 기억을 떠올린 에스텔이 다급하게 수첩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스티니앙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에스텔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집중한 탓인 건지 아니면 듣고도 모르는 척하고 싶은 건지. 에스텔이 되물어왔다. 

 

그녀의 반응에 에스티니앙은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웃으며 흘리거나 혹은 내일 기억하지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에스티니앙은 그녀가 온전한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반복해서 매일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 아무것도 아니다. "

 

" 뭐야, 싱겁게. "

 

 

 

 

 

하지만 애석하게도 에스티니앙의 마음이 전해지는 건 조금 더 먼 이야기였다.

 

이날 이후로 에스텔의 기억은 빠른 속도로 지워지기 시작한 탓에 에스텔이 제대로 기억하는 게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정말 가끔씩 수첩의 존재까지도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에스티니앙이 곁에서 수첩의 존재를 알려주긴 했으나, 처음에 한두 번이던 게 어느새 여러 번이 되었다. 

 

에스텔이 기억을 잃으면 잃을수록 에스티니앙의 마음이 전해지는 이야기는 더 멀어져만 갔다. 에스티니앙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보다 사실상 그녀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매일 곁에서 에스텔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