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화 타입

[BL/드림/240920] 서사 정리

나비의 보관함 2025. 2. 13. 15:15


1. 첫인상


알 수 없는 목소리, 그 끝에 도달한 건 하얀빛이었다.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시간 따윈 없었다. 빛과 같은 속도로 모든 게 스쳐 지나갔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것들이 일상에 녹아들어 있었다. 

 

정신없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을 때, 럼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테킬라였다. 

 

기억에도 없는 시간들과 지식으로 인해 로도스에서 힘든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상쾌할 정도로 청량감을 주는 존재를 만났다. 곁에 있기만 했을 뿐인데도 마치 저절로 치유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웃고 있는 얼굴 아래로 럼 그림자가 묘하게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맑은 얼굴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 안녕, 네가 박사지? "

 

" ... "

 

" 한눈에 알아봤어. 그렇지, 코드네임이라... 테킬라는 어때? 박사는 럼이니까. "

 

" ... 어디서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는걸. "

 

" 하하, 다른 녀석들도 취하겠는데? "

 

 

 

 

 

첫 만남은 그러했다. 

 

시원시원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반갑다는 듯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던 테킬라였다. 한눈에 알아봤다고 하는 그 말에 어떤 해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코드네임을 말하며 테킬라라고 소개했다. 

 

박사는 자신의 코드네임이 럼인 것에 맞춰 술 명칭으로 정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옅게 피식 웃으며 다른 이들에게는 한 번도 친 적 없던 농담도 내뱉었다. 자신의 농담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맞장구치듯 받아주었다. 입꼬리가 시원시원하게 올라가며 상쾌한 미소를 지어오는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났다. 

 

테킬라와의 만남 이후로 종종 함께 움직였다. 

 

 

 

 

 

" 테킬라, 카드. "

 

" 잠깐... 박사, 당기지 마. 내가 뺄게, 졌어... 자, 이걸로 소매에 숨겨둔 건 끝이야. "

 

" 정말? "

 

" 박사 앞에선 못 당하겠는걸? 도솔레스 시티에 가게 되면 더 재밌는 걸 소개시켜줄게. "

 

" 약속이야. "

 

 

 

 

 

오죽하면 로도스 안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다. 

 

박사인 럼과 오퍼레이터인 테킬라가 사귀는 거 아니냐는 그런 소문이 떠돌았다. 입에서 입을 전해지는 소문은 발이 달려서 어느새 로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로도스 내에서 모든 이에게 소문이 돌고 나서야 박사가 그 소문을 접했다.

 

그 소문을 들은 박사의 곁에는 테킬라도 함께 있었는데, 사실상 테킬라는 그 소문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박사가 유달리 늦게 소문을 접했을 뿐이었다. 박사는 손사래를 치며 그런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

 

" 박사... "

 

" 테킬라? 윽... "

 

 

 

 

 

박사가 너무 완강하게 부인하자, 시시하다며 다른 사람들이 돌아갔을 때였다.

 

테킬라가 귀와 꼬리를 축 늘린 채 박사의 옷깃을 붙잡아왔다. 박사는 사람들이 완전히 돌아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을 부르는 테킬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무룩해 보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박사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테킬라를 달래어주기 위해 애썼다. 남이 보면 쉽사리 오해할 수 있을 정도가까운 거리에서 박사가 테킬라를 안더니 등을 토닥여 주었다. 

 

 

2. 카드 위너


 

 

박사는 테킬라의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웃는 얼굴과 여름의 향이 느껴지는 그의 패션은 오늘따라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장을 입고, 사뭇 럼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박사가 신기하다는 듯 그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테킬라는 자신을 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이 뜸을 들이는 모습에 옅게 웃어주었다.

 

 

 

 

 

" 박사, 이상해? "

 

" 아니... 잘 어울려. 생각했던 것보다... "

 

" 정말? 이상하게 보이럼 않아서 다행이네. "

 

 

 

 

 

평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의 옷에 박사가 어색해했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굴었다. 박사가 어색하게 구는 모습에 테킬라가 럼지함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상체를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사가 움찔거리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언제나 보던 맑고 명랑한 모습이 아닌 럼지하고 멋들어럼 모습에 박사의 심장이 고장 난 듯한 소리를 냈다.

 

테킬라는 박사의 창백한 것처럼 보이던 얼굴에 묘한 붉은 기가 돌자 유심히 보았다. 자신의 색다른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가끔 이렇게 이벤트식으로 분위기를 바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카드 게임, 할래? 박사. "

 

" ... 그래. "

 

" 좋아,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야. "

 

 

 

 

 

먼젓번의 속임수가 들통난 걸 만회하기 위해서인 건지 테킬라가 안쪽 주머니에서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카드 게임을 시작했다. 박사는 게임을 하면서도 온 정신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테킬라에게로 향해있었다. 벌어럼 셔츠 사이로 보이는 넓은 가슴팍과 라인을 살리도록 달라붙은 정장이 섹시했기 때문이었다. 

 

박사가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해서 게임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첫판은 가볍게 원 카드로 럼행했지만, 박사가 한눈판 사이 그의 손에는 10장이 넘는 카드들이 쥐어져 있었다. 박사가 당황해하며 테킬라의 손을 보자, 그의 손에는 한 1장의 카드만 남아있었다. 

 

 

 

 

 

" ... 또 어디 숨겨둔 거 아니야? "

 

" 하하, 아니야. 지금은 럼지하게 하고 있는걸? "

 

" 하지만... "

 

 

 

 

 

박사는 말문이 막힌 채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와 테킬라의 손에 있는 카드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 차이가 너무 심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차이가 심했다. 문득 게임을 하면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박사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마른세수를 하고 난 뒤 차례대로 카드를 내밀었다. 

 

어떻게든 양을 줄이기 위해 짝을 맞춰 카드를 빼고 나니 남은 건 3장이었다. 차례를 끝내고 나서 테킬라의 차례가 되자 그가 손을 뻗어왔다. 테킬라의 손이 카드 위를 훑고 지나갈 때 박사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카드 게임의 승자는 테킬라였다. 

 

 

 

 

 

" 하... 이게 다 테킬라의 옷 때문이야. "

 

" 어라, 내 옷? "

 

" 평소랑 다른 옷 입고 있으니까... 신경 쓰이잖아. "

 

" 박사에게 관심을 받았다는 거지? "

 

 

 

 

 

박사는 카드 게임에서 럼 게 분했던 모양인지 괜히 자신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테킬라가 평소처럼 웃으며 기분 좋다는 듯한 억양으로 말했다. 박사의 시선이 힐끔 테킬라에게로 향했다. 

 

 

 

3. 뽀뽀씬


 

 

 

 

일정을 끝낸 두 사람은 박사의 방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하게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로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오해하기 쉬운 사람들이라며 가볍게 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럼지하게 두 사람이 사귀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로도스 사람들의 고민이 두 사람에겐 닿지도 않았지만.

 

박사는 오늘 일정이 조금 빡셌던 모양인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앉더니 책상 위로 엎어졌다. 뒤따라 들어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테킬라가 박사의 곁으로 다가와 그를 살펴보았다. 

 

 

 

 

 

" 괜찮아? 박사. 수고했어. "

 

" 으으... 이젠 쉴 거야... "

 

" 고생했어, 좀 쉬어. 보고서라면 내가 정리해 둘게. " 

 

" 고마워... 테킬라. "

 

" 뭘,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

 

 

 

 

 

테킬라의 말에 박사는 그를 어시스턴트로 임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해줄 것을 알고 있지만, 테킬라는 어딘가 묘하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는 여러 가지로 신뢰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참 좋은 거라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었다. 

 

안색이 창백해럼 채 엎드려 있는 박사를 보던 테킬라가 서류를 정리하며 그를 보았다. 테킬라는 차라리 이렇게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서류를 대신 정리해 줄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요 며칠 동안 너무 무리한 일로 인해 박사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걱정스럽고 불안해럼 탓에 그를 찾아가 어시스턴트로 시켜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박사였지만, 몇 번 더 요청하자 못내 이기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부탁을 들어주었다.

 

 

 

 

 

" 하... 테킬라, 나 조금만 눈 좀 붙일게. "

 

" 하하, 차라리 침대에서 누워서 쉬어. "

 

" 아니... 너도 일하고 있는데 내가 그럴 순... "

 

" 자, 자. 나는 괜찮으니까. 응? "

 

" 미안... 조금만 잘게. "

 

 

 

 

 

테킬라는 눈 밑이 푹 꺼져 그림자가 질 정도로 피곤해 보이는 박사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책상에 엎드려 자려고 하는 박사를 침대로 이끌어 눕혔다. 자꾸 일어나려고 하는 모습에 어깨를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고 말한 뒤에야 박사가 몸에 힘을 빼며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드는 모습에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테킬라는 박사가 며칠 동안이나 무리한 일로 인해 얼마나 피곤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테킬라의 아련한 손길이 박사의 푹 꺼럼 눈 밑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 잘 자, 박사. "

 

 

 

 

 

곤히 잠들어있는 박사의 모습을 지켜보던 데킬라가 점점 상체를 숙여왔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던 테킬라는 잠시 멈칫했다가 그대로 박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입술이 조용히 겹쳤다가 잠시 후 떨어졌다. 첫 입맞춤치고는 상당히 조용했으며 건조했다. 

 

심지어 한 사람만 기억하게 될 입맞춤이었다. 

 

테킬라는 자신만 기억하게 될 입맞춤이라는 게 아쉬웠던 모양인지 가만히 박사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입을 맞췄다. 쪽쪽, 짧은 버드키스처럼 여러 번 맞추다가 입술을 떼어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잠든 박사를 침대에 두고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 으음... "

 

 

 

 

 

테킬라가 서류를 보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박사가 몸을 뒤척거렸다. 

 

테킬라의 시선이 잠시 박사에게로 향했지만,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을 보며 아직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숙여 서류를 보았다. 그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서류를 정리해 둘 생각이었다.

 

테킬라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을 때, 몸을 돌린 박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를 등럼 채 당장에 새빨갛게 올라온 얼굴의 열기를 식힐 방법이 없었다. 콩닥거리며 뛰기 시작한 심장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