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40917] Denial, Projection and Dissociation.

나비의 보관함 2025. 2. 13. 15:07



 

이 이야기는 에스텔의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야기다.

그녀의 어린 시절, 방어기제가 생겨난 이유는 드래곤족에 의해 가족을 잃었음이 가장 컸다. 그나마 방어기제를 보이는 게 적은 편인데, 총 3단계로 나누자면 1단계를 넘어 2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가장 큰 건 부정과 투사 그리고 해리였다. 

방어기제가 생겨난 과정은 이러했다. 당시 갑자기 난폭하게 폭주하기 시작한 사룡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에스티니앙과 에스텔이 살고 있는 마을에 일어난 사태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룡으로 인해 멸망해 버리는 과정을 전부 지켜본 사람은 에스텔이 유일했다. 

 

 

" 에스티니앙, 나 먼저 가볼게! "

" 응. "

" 엄마가 불렀어. 내일 봐! "

" 잘 가, 에스텔. "

 

 

에스티니앙은 마을 밖으로 양을 몰고 있었고, 에스텔은 그런 에스티니앙의 곁에 있다가 오후가 되었을 때.

엄마가 불렀다며 먼저 마을로 돌아갔었다. 에스텔이 마을로 돌아와 집 문을 열고 엄마를 불렀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 뒤였다. 에스텔의 눈앞에서 사룡의 공격으로 인해 가족들이 전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 어머니의 하체뿐이었다. 

에스텔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입을 벙긋거리며 말도 하지 못하고 겨우 떨어지는 발걸음을 옮겨 남겨진 하체에 매달렸다. 

그때 뒤늦게 돌아왔다가 가족을 잃은 걸 확인하고 온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을 불렀다. 

 

 

" ... 비, 에스텔! "

" 에... 에스티니앙... 어, 엄마가... "

" 여기에 있다간 우리까지 죽겠어, 얼른 도망치자! "

" 하, 하지만 엄마가... 엄마가 아직 저기에... "

 

 

에스티니앙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에스텔의 팔을 무작정 끌어당겼다.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에스텔을 이끌며 사룡의 시야에서 벗어난 게 어릴 적의 일이었다. 이후로 에스텔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눈앞에서 목도해버린 가족과 고향의 최후를 보고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에스티니앙조차도 힘겨워했지만, 그는 에스텔을 위해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이날 이후로 에스텔에게 방어기제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가장 큰 건 사룡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과 집, 부모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에스티니앙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분명 가족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로 인해 에스티니앙과 잦은 말다툼이 있기도 했다. 

 

 

" 거짓말! 에스티니앙, 또 거짓말하지! "

" 에스텔... "

" 우리 가족이 날 두고 죽어버렸을 리 없잖아! "

" 하지만 사룡이... "

" 보기 힘든 사룡이 왜 하필이면 우리 마을에 들이닥친 건데?! "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의 말에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그야 사룡이 마을을 덮친 이유를 자신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텔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정을 한 뒤에는 항상 투사가 따라왔다. 

에스텔은 혹시나 에스티니앙의 말이 전부 사실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인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잘못은 에스티니앙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족과 떨어트리고,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고.

자신이 알고 있는 에스티니앙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를 탓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가족이, 오래도록 살아왔던 고향이 사라졌다는 걸 인정해 버리는 꼴이 돼버릴 것만 같았다. 그를 탓하며 자신이 이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이게 전부 에스티니앙 때문이야! "

" ... "

" 얼른 날 가족들 곁으로 돌려보내 줘! 왜 그리다니아에서 이러고 있는 건데! "

" 에스텔, 당장 못 가. "

 

 

사실상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을 데리고서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갔다간 에스텔이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게 뻔했기에, 가지 못한다고 둘러대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건 부정도, 투사도 아니었다. 제일 위험한 건 해리였다.

가족과 마을을 잃었다는 비현실적인 일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 

특히 마을을 벗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평화로웠던 마을에서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했다. 라벤더 숲에서 있었던 일도, 교황청에서 남자에게 당할 뻔했던 일도, 처음으로 에스티니앙과 관계를 맺은 사실조차도.

이 사실을 에스티니앙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 정말 기억 못 해? "

" 응... 미안해, 에스티니앙... "

" ... "

 

 

에스티니앙은 그녀가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심각성을 깨달았다. 

라벤더 숲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매일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자신은 잊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을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마을 남자의 인사를 받고 나서야 알은척하던 모습이나, 교황청에 있을 때 피해를 입었음에도 타인의 일처럼 말하던 모습까지. 

에스티니앙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그녀의 상태를 몰랐다는 것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분했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에스티니앙은 잠들어 있는 에스텔의 모습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상체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 에스텔,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 "

" 으음... "

 

 

에스티니앙이 낮게 중얼거리던 그 말처럼, 그는 에스텔에게 이전보다 심한 집착을 보였다. 

집착이라고 하기엔 애매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을 알려고 했고 함께 하려고 했다. 그의 그런 행동에 에스텔이 처음에는 짜증을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진 모양인지 이젠 상관 없다는 듯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