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40902] 여름 휴가

나비의 보관함 2025. 2. 11. 00:01



이른 아침, 일찍 눈을 뜬 에스텔은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다니아의 여관 창문을 타고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텔은 창문을 열어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마을을 지키는 기사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분주해 보였다. 

에스텔은 하품을 하며 입을 가리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칸막이 뒤로 들어간 그녀는 잠옷에서 생활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하루만 임무를 빼고 에스티니앙과 여유를 가지기로 한 날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날이 생겼냐 하면, 그 이유는 에스티니앙에게 있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무작정 무리하는 그의 모습에 에스텔이 권유한 것이었다. 

 

 

" 에스티니앙, 좋은 아침. "

" 일찍 눈 떠지는 건 여전하군. "

" 그렇지. 쉬는 날이어도 말이야. "

" 흠... "

" 뭐 보는데? "

 

 

에스텔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1층 칼라인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에스티니앙을 향해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그와 합석하고 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이었다. 쉬는 날이라고 정했으나 다른 날과 다름없이 똑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는 건 습관 같은 거라 어쩔 수 없다며 중얼거렸다. 

에스티니앙이 대화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짧게 침음했다. 

그 모습에 에스텔이 그를 향해 물어보았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계속해서 그녀가 말을 걸었고, 돌아오는 답 없이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에스텔의 화를 돋우기 충분했다.

에스텔이 화를 내려고 할 때 뮨이 그녀의 앞으로 문두이 콩을 갈아 만든 두유를 내주었다. 

 

 

" 안녕, 에스텔. 두유라도 마시면서 화를 삭여. 그가 그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

" 맞아! 뮨! 에스티니앙은 언제나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지! "

" 음... 고의는 아니다. "

" 고의가 아니어도 답은 해주는 게 좋아. "

 

 

뮨은 에스티니앙의 앞에도 문두이 콩으로 갈아 만든 두유를 밀어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웃는 얼굴에는 화도 내지 못한다고 했던가, 에스티니앙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행동에 에스텔은 꼴 좋다! 생각하며 콧방귀를 꼈다. 뮨이 만들어준 두유를 항상 아침마다 마시다 보니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에스티니앙과 투덜거리는 에스텔을 보던 뮨이 입을 열었다. 

 

 

" 오늘 쉰다고 들었는데... "

" 응, 맞아. 오늘 하루는 쉬기로 했어. "

" 그럼, 아침은 화려하게 차려도 될까? 언제나 간소하게 먹고 갔잖아. "

" 음... 어때? 에스티니앙. "

" 나쁘지 않군. "

"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음식들로 선보여줄게. "

 

 

뮨은 자신 있게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떠난 사이 에스텔이 두유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잔이 여전히 입가에 머물렀지만, 그녀의 시선은 빙글 굴러다니며 에스티니앙을 보고 있었다. 

에스티니앙은 자신을 향해 느껴지는 시선에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에스텔을 보았다. 

자꾸 힐끔거리는 그녀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을 보며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없이 무심해 보이면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듯 보였다. 

 

 

"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

" 으,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 에스티니앙, 오늘 모처럼 휴가니까 바다라도 보러 갈래? "

" 바다? "

" 응, 곧 여름이 끝나가잖아. 완전히 끝나기 전에 우리도 바다 놀러 가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

" 흠... 나쁘지 않군. "

" 그렇지? 밥 먹고 바로 갈까? "

" 그러지.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뮨이 준비한 음식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바바 가누쉬가 나왔고, 그다음은 브로코플라워 스튜, 메인 디쉬로 그라다니아 고향의 맛이라고 불리는 피피라 찜까지. 음료는 가볍게 용과 스무디가 나왔다. 

뮨이 음식을 차례대로 내려주며 두 사람에게 잘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에스텔과 에스티니앙은 가볍게 바바 가누쉬와 브로코플라워 스튜로 입가심을 시작으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식사를 하며 입을 여는 사람은 대부분 에스텔 쪽이었다. 

에스텔이 이야기를 하면 에스티니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주는 게 반복되었다. 

 

 

" 음, 이번에 신메뉴라더니 엄청 맛있네. "

" 음... "

" 아, 배부르다. 너는 배부르게 먹었어? "

" 그래. "

 

 

어느새 먹다 보니 그릇이 하나, 둘 비워졌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며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스티니앙이 뮨에게 다가가 식사 값을 지불한 다음 에스텔에게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바로 출발해도 상관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의 시선에 에스텔에 닿았고, 그녀가 에스티니앙을 보며 말했다. 

 

 

" 이제 슬슬 갈까? "

" 어디로 가려고? "

" 음... 우선 여름 휴양지라고 불리는 코스타 델 솔은 어때? "

" 괜찮은데. "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목적지로 동부 라노시아에 있는 코스타 델 솔로 향했다. 

코스타 델 솔에 도착한 두 사람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가로 나왔다. 에스텔과 에스티니앙은 끝없는 여름 수영복으로 맞춰 입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두 사람을 보며 커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에스텔은 에스티니앙의 앞에서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양손으로 어떻게든 배를 가려보려고 애썼다.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가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하지 않았을 말을 꺼냈다. 

 

 

" 왜 가리는 거지? "

"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

" 이미 다 봤던 건데? "

"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야!! "

 

 

에스텔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에스티니앙이 얄미웠다. 

애초에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에스티니앙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와 함께 바다를 왔다거나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보인 적 없었기에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한 손만이라도 배를 가리려고 애썼다. 

주춤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에스티니앙은 계속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먼저 발걸음을 떼어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지만, 그들에겐 전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에스텔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괜히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 에스티니앙, 바다는 와봤어? "

" 너랑은 처음인 거 같은데. "

" 응. 맞아, 너랑 오는 건 처음이지. "

" 휴가니 놀아야지. "

" 네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

 

 

에스텔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에스티니앙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이 해변가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손을 마주 잡고서 걷는 모습은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 지나가는 이들 중에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에스티니앙은 자신이 들고 온 돗자리를 깔며 그 자리에 앉았다. 

 

 

" 바다에는 안 들어갈 거야? "

" 나중에. "

" 음... 그럼 나도 나중에 들어갈래. "

 

 

두 사람은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할 때까지 해변에 앉아 수평선 너머를 보았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바다에 붉은빛을 흩뿌렸다.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보석이 반짝이는 것처럼 빛나고 있는 바다가 아름다웠다. 에스텔은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멍하니 바다를 보기만 했다. 

에스텔의 머리가 에스티니앙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었다. 

에스티니앙은 그녀의 행동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낮춰주었다. 

 

 

" 내가 말한 건 생각... 해봤어? "

" ... 음 "

" 야! 몸 좀 사리라구!! "

" ... "

" 듣고 있어?! "

 

 

이전부터 에스텔은 계속해서 에스티니앙에게 몸을 사리라고 권했었다. 

하지만 에스텔이 그럴 때마다 에스티니앙은 말을 삼키고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에스텔이 더 매달리듯이 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에스티니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