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40902] 거리에서

나비의 보관함 2025. 2. 11. 07:16

 

에스티니앙은 개인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해서 자신을 화나게 하는 에스텔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았다. 잘 지내고 있겠거니, 했지만 그게 다른 남자와 만나서 잘되라고 한 생각은 아니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에스텔이 기다리고 있을 그리다니아로 겨우 복귀했을 때였다. 

여관에 보이지 않는 에스텔의 모습에 마을을 둘러보게 되었고, 그러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보았다. 그 모습을 보게 되자 에스텔을 볼 생각에 조금씩 회복되던 기분이 바로 진창에 처박혔다. 

 

 

" 그래서 있잖아, 그 사람이... "

" ... "

" 듣고 있어? 에스티니앙? "

" ... "

" 뭐, 됐나? 넌 언제나 그랬으니까. "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에스텔은 평소보다 더 조잘거리며 떠들었다. 

평소에는 일상에 관한 내용, 일에 관한 내용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온통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이야기에 에스티니앙의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에스티니앙은 평소 자신이 듣고 있지 않다면 언제나 화를 내며 씩씩대던 에스텔이 오늘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게 못마땅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이어지는 남자의 이야기에 에스티니앙의 손이 절로 주먹을 쥐었다. 

분한 듯 파르르 떨리는 손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에스티니앙은 이러려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다. 그녀의 곁을 지켜왔던 이유는 가족인 이유도 있지만, 언약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래서 내일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

" ... 왜? 내일은 임무가 있는 날일 텐데. "

" 어라? 정말? "

" ... "

" 진짜네! 세상에, 에스티니앙. 미안한데 임무... 혼자 갈 수 있을까? "

" 임무가 먼저 잡힌 약속일 텐데. "

" 그건 그런데... "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이 말할 때마다 어이가 없는 게 늘어갔다. 

혼자 임무를 할 수 있겠냐던 그녀의 말에 자신과의 임무가 먼저 아니었냐고 물으니 그 남자에게 약속을 이중으로 잡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게 기가 찼다. 

그럼, 자신에게는 이중으로 약속을 잡고, 먼저 잡은 약속보다 다른 이와의 약속을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괜찮은 건가?

에스티니앙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에스텔을 보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말을 그대로 하며 그녀의 부탁을 명확하게 거절했다. 거절은 생각도 못 한 모양인지 벙찐 표정이 볼만했다. 

자신으로 인해 그녀의 표정이 바뀌는 게 괜찮았다. 

 

 

" 그러면 나와 한 약속을 이중으로 잡고, 먼저 잡은 약속보다 다른 이와의 약속을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괜찮은 건가? "

" 어...? "

" 명확하게 말하지만, 난 그 어이없는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

" 에, 에스티니앙? "

" 내일 보도록 하지. "

 

 

에스티니앙은 당황해하고 있는 에스텔을 두고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잊은 것도, 다른 이에게 빠져 안중에도 없었던 것도, 그 약속을 미루고 다른 이에게 가려고 한 것까지도 화가 났다. 분했다. 신경질이 났고, 숨이 막혀왔다. 

당장 에스텔을 붙잡아 산속에 몰래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 그녀를 가두고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이게 비록 더럽혀진 질투와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일지라도. 온전히 에스텔을 가질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래도 에스티니앙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게 했다간 정말 미움을 받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에게 환멸감을 느꼈다. 

 

 

" ... "

" 에스티니앙,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

" 하하... 안녕하세요? "

"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

" 설명했는데... 같이 가보고 싶다고 해서... "

" 모험가조차 되지 못한 일반 마을 사람 주제에? 용기도 가상하군. "

" 어떤 일을 하는 지 알고 싶거든요. "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이 아무리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도, 저와의 약속을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일 그녀가 나올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나오긴 했다, 혹을 달고서. 그게 더 당황스럽고 환멸감을 느끼게 했다. 어제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는 에스텔의 뒤에서 팔로 그녀의 몸을 둘러 안으며 사내를 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떨어트려 놓고서 상대의 몸을 위아래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매우 무례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먼저 무례를 끼쳤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에스텔과 자신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모잘라 그녀에 대해 알고자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에, 에스티니앙! 왜 이래? "

" 평소대로 하는 건데, 문제가 있나? "

" 지금은 있지! "

" 거기, 너. 가는 건 상관없다만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에스텔도 임무로 바빠서 널 지켜주지 못할 테니 알아서 버텨야 할 텐데. "

" 그 정도는 예상했어요. 여기, 단검도 들고 왔다고요. "

" ... 기개는 대단하군. 그런데 그게 정말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어. "

 

 

사내는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을 안고 있는 걸 상관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사전에 에스티니앙과 에스텔의 사이가 가족과 같고,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며 평소 마을을 돌아다니던 두 사람이 스킨십이 잦은 걸 알고 있는 상태였다. 

도발조차 되지 못한 것에 에스티니앙의 화를 돋우었다. 

에스티니앙은 서늘한 시선으로 사내를 보며 혀를 찼다. 당장에 창을 휘둘러 목과 몸의 안녕을 고하도록 하고 싶었으나, 에스텔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는 듯 발걸음을 옮기며 에스텔을 끌고 갔다. 

 

 

" 에스티니앙, 꼭 그래야만 했어? "

" 어. 그래야 했으니 했지. "

" 뭐? 그게 뭐야. 내가 아는 사람인데 좀 부드럽게 대해줘. "

" 넌 내가 다른 사람을 잘 대하는 걸 본 적 있던가? "

" 으음... 그것도 그렇네. "

 

 

임무를 위해 향하는 숲길에서 에스텔이 에스티니앙을 향해 불만을 토해냈다. 

에스티니앙은 에스텔의 말에 답을 해주면서 시선을 힐끔 뒤로 돌렸다.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려고 하는 사내의 모습이 마땅찮았다. 꼴도 보기 싫은 놈, 에스텔에게 한없이 부족한 놈. 

그 사내를 본 에스티니앙의 의견은 그러했다. 

지금 있는 곳이 검은장막 숲 남부삼림이었다. 그곳에서 넘어가기 전, 나무정령을 잡아야 했다. 에스티니앙과 에스텔은 계획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두 사람이 전투를 시작하자 사내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에스티니앙은 잘 싸우고 있다가 사내를 힐끗 보더니 일부러 몬스터의 공격을 흘렸다. 나무정령이 사내를 공격하고 나서 빠르게 아무렇지 않은 듯 베어내며 없애버렸다. 

 

 

" 세상에...!! "

" ... "

" 큭, 쿨럭... 하아...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 거군요... "

" 말하지 말고! 얼른 슈퍼 포션 마셔. "

 

 

에스텔과 에스티니앙은 전투를 마무리한 다음 쓰러진 사내 쪽으로 향했다. 

피를 토해내며 거친 숨을 사내를 보며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에스텔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포션을 꺼내 사내에게 먹이려고 했고, 에스티니앙은 급소를 피한 것에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부상으로 인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사내를 보다가 에스텔을 보았다. 

 

' 내가 저 새끼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

 

속으로 중얼거리던 에스티니앙의 시선은 계속해서 에스텔을 보고 있었다. 

가볍게 다쳤을 뿐인데, 포션까지 사용하려고 하는 모습에 절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에스티니앙은 어제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가 조용히 묻어두었던 계획을 떠올리며 실행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며 어디서 시작하는 게 좋을지 확인했다. 

 

 

" 에스티니앙! "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에스티니앙에게 다가와 에스텔이 왜 그랬냐며 물어보아도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