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드림/240706] 핀의 개그적인 삶

나비의 보관함 2025. 2. 7. 04:53




핀은 자신의 일상을 개그라고 칭하기로 했다.
멍하니 무료하게만 보내던 시간들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이한과 함께할 때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졌고,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핀은 유독 이한의 곁에 있기도 했다.
어제는 어떤 것 때문에 웃겼고, 그저께는 또 다른 걸로 웃겼고. 오늘은 또 무엇으로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어줄지 궁금해졌다.
다시 눈 떴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기다리던 사람이 자신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핀의 시선이 이한에게로 향했다.


" 이게 다 이한 때문일지도 몰라. "
" 응? "
"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은 일 없어? "
" 글쎄. "


핀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만 한다는 걸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이한이 다시 물어오는 것에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즐겁게 해줄까,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한을 찾았다.


" 이한 워다나즈! 여기 있어? "
" 내가 이한 워다나즈인데, 무슨 일이야? "
" 교장님이 널 찾으셔. 교장실로 오라고 하시던데? "
" 교장님이? "
" 핀도 같이 찾더라고. "
" 나도? "


이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가 이어지다가 핀의 이름이 나왔다. 핀은 다른 교수도 아니고 교장이 자신을 찾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당황한 탓인지 앉아있던 의자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이한이 의자가 넘어가지 않게 뒤에서 받쳐주었다.
핀은 당황스럽다는 눈으로 이한과 알려준 학생을 번갈아 보았다. 이한은 멋쩍게 웃으며 핀에게 말했다.


" 일단 가보기라도 하자. "
" 하... 그 해골을 봐야 한다고? 리치를? "
" 또 그러면 내가 때려줄게  "
" 윽... "


핀은 리치인 교장을 만나야 한다는 것에 심히 짜증이 몰려왔다.
재미있는 일상을 기대하고 있던 와중에 실망스러운 일과가 생기고 만 것이었다. 핀은 인상을 찡그린 채 이한과 함께 교장실로 향했다.
자신이 리치를 보면 PTSD가 오는 탓에 제정신이 아닌 것을 이한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싶었지만, 이것만큼은 잊지 못했다. 리치 외에도 무리한 상황이 오면 PTSD가 터지는 건 여전했다.
처음에 PTSD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이한이 알려주었기에 그 단어를 쓰고 있었다. 사실상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하고 물어온다면 핀은 답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이한을 데려와서 자기 대신 답하라고 했으면 했지.


" 교장은 날 왜 부르는 거지? 이한, 너라면 이해하겠는데. "
" 그러게? 일단 가보면 알겠지. "
" 아, 이유를 모르겠네? "


핀은 교장실로 가는 길에 계속 구시렁거렸다.
곁에 있던 이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핀이 먼저 앞서 걸었고, 뒤이어 이한이 따라가듯 걸었다. 핀이 보지 못하는 것에서 이한은 조금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이한의 웃음을 모르고 있던 핀은 계속 구시렁거리며 앞서 걸었다.
교장실 앞에 도착한 핀은 문을 열지 않고 한참을 서있었다. 보다 못한 이한이 대신 노크하며 문을 열었다.


" 교장님, 무슨 일이세요? "
" ... 뭐야? 리치 없는데? "
" 어? "


하지만 교장실 안에는 정작 핀과 이한을 불렀던 오수가 보이지 않았다.
빈 교장실에 들어선 이한과 핀은 주변을 살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망할 달그락 소리를 내는 리치는 없었다.
이한은 소파에 앉으며 핀을 보며 말했다.


" 핀, 일단 앉아서 기다리자. "
" 음~ 조금만 구경하고. 그 리치가 있으면 구경 못 하잖아. "
" 그래도 주인이 없는데... "
" 헉? "
" 어? "


이한은 자꾸 돌아다니는 핀의 모습이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앉으라 말했다.
하지만 핀은 이한의 말에도 계속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교장실 안을 살펴보았다. 별 볼 것 하나 없었고, 그나마 있는 서재는 책만 빼곡했다.
책과 책 사이에 놓인 트로피를 발견한 핀은 호기심에 툭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쿠구구... 무거운 게 옮겨지는 소리를 내며 책장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갑자기 책장이 열리는 탓에 핀도 놀라고 이한도 놀라고 말았다.
잔뜩 얼어붙은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한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 ... 이게 대체... "
" ... 새로운 모험이다!! "
" 앗, 핀?! "


이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핀과 열린 서재를 번갈아 보았다.
그 사이 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생각 따위 없다는 듯 쏜살같이 달려가 열린 문안으로 들어갔다. 이한은 자신이 막을 새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핀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발걸음을 옮겨 핀이 들어가 버린 입구 앞에 섰다.
입구 안은 마치 칠흑같이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저런 곳을 두려움도 없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착잡하지만, 이한의 입장에서 핀은 상당히 신경 쓰이는 녀석이었기에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핀! 어디 있어? "
" 핀?? 분명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
" 우... 이한, 여기 완전 리치 녀석 취향 소굴인가 봐. "
" 왁?! "


이한은 핀을 찾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두리번거렸다.
어두컴컴한 곳에 빛 한 줄기 없이 오로지 벽에 손을 올리고 감각대로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한의 등 뒤로 핀이 갑자기 나타났다. 머리에는 해골을 끼고 온몸에 질척거리는 무언가를 맞은 것처럼 어깨를 축 늘린 채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두워서 잔뜩 긴장했던 이한은 갑작스러운 핀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다급하게 뒤로 주춤 거리다가 벽에 솟아난 무언가를 누르자 동시에 어둡던 공간을 밝혀주는 촛불이 켜졌다.


" 여긴... "
" 웩, 리치 녀석 취향 이상하네... "
" 취향이라기보단 실험실에 가까운데? "
" 실험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모아둔다고? "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아까와는 달리 환하게 밝혀진 지금은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음산한 벽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얼음보다 더 차가워 보이는 철창이 즐비해 있었다. 거기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실험체들과 마법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까지.
핀은 이전 삶에서 보았던 흑마법의 잔해가 겹쳐 보여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려 했으나 돌아가는 길 따위 기억나지 않았다. 이한은 호기심이 돋은 듯 주변을 살폈지만, 핀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 우욱... 이한... 그만 나가자... 너 나가는 길 알지? "
" 알긴 하지. 그런데 잠시만, 핀... 이건...! "
" 이한... "


핀은 이한을 마치 헤어지기 싫은 연인처럼 불렀다.
하지만 이한에게 있어 이곳은 미지의 공간이자 많은 지식이 쌓인 보고 와도 같았다.
그의 행동에 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구석에서 이한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었을까, 익숙한 웃음소리가 바로 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 크하하하! 요 무쇠 대가리 녀석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나!! "
" ... "
" 왁?! 어...?? 핀! 핀...!! "
"크하하하!! "


갑작스럽게 나타난 오수의 등장에 놀란 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영혼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굳은 채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PTSD를 넘어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고 만 것이었다.
이한은 다급하게 핀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핀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몸에 힘이 빠진 건지 비틀거리는 것도 없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걸 이한이 다급하게 받아주었다.

*


" 으음... "
" 핀, 정신이 들어? "


핀이 정신을 차린 건 그날 오후를 넘어선 저녁쯤이았다.
핀이 기절하고 난 이후 계속 곁을 지켰던 이한은 깨어나는 핀의 이름을 불렀다. 핀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고서 이한을 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이를 갈며 눈에 불을 켜고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 망할 리치 어디 갔어?! "
" 진정해, 핀... 여기에 교장은 없어. "
" 그 망할 리치가...!! "
" 하지만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어. 알지? "
" 알지만... 그건 모험이었는데... "
" 핀. "


핀은 깨어나자마자 오수를 찾으며 부르짖었다.
다만 곁에 있던 이한이 오수는 여기에 없다는 말을 하자 울컥 다시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한이 차분한 목소리로 핀을 다독이듯 말하자 결국 핀의 화가 가라앉았다.
왁왁 내뱉어대던 핀은 이한의 요구대로 얌전히 앉으며 힐끔 이한을 보았다.
핀의 행동에 이한이 웃어 보이다가 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굿 보이~ "
" 그거 대체 무슨 뜻이야? "
" 착한 소년이라는 뜻이야. "
" 착한 소년... "


이한의 말에 처음 듣는다며 물어보던 핀은 이한이 뜻을 알려주자 중얼거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핀은 그저 이한이 신기하기만 했다. 언제나 즐겁게 해주고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이한이었다.
그런 이한의 곁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기에 그의 말에 동의하듯 얌전히 있는 것이었다. 이한만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칼을 뽑고 그 리치를 잡았을 수도 있었다.
물론 리치를 잡으면서 제 힘과 목숨도 바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 오늘 종일 안 먹었지? 빈속이니까 이거라도 먹어. "
" 응... "


이한이 핀에게 건네준 것은 죽에 가까운 스튜였다.
덩어리가 몇 없는 스튜였지만, 빈속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핀은 수저로 스튜를 떠먹으며 창밖을 보았다. 오늘은 이런 모험도 있었으니 내일이 더 기대되었다.
이한 덕분에 또 오늘 하루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다.
스튜를 다 비우니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핀, 내일 보자. "
" 이한도 잘 자. "


마지막 같은 저녁 인사를 하자 이한이 조용히 방을 나갔다.
핀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밖을 다시 보다가 평온한 밤하늘에 웃음을 짓고 누워 잠들었다.
곤히 잠든 핀의 얼굴에는 이전 생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미소가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