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1차cp/240706] '정면돌파'를 하기엔...

나비의 보관함 2025. 2. 7. 04:51

※해당 글은 한 웹툰 속 BL CP를 위해 재해석 된 글입니다. 작중에 원작과 동일 혹은 유사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부분이 거부감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는 건 사실상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범은 하염없이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채 생각했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웃음이 나와도 충분했지만, 이범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 보면서 멍때릴 뿐이었다. 

그 이유는 물론 이범만이 알 이유겠지만.

이범은 자신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좀처럼 쉬이 잊히지 않는 모습에 충격이라도 받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잊히지 않는 건지 의문이었다.

분명 중학생 때, 그를 봤을 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 오빠~!! 하수도 또 터졌어!! "

" ... "

 

 

이범은 깊게 생각하던 걸 멈추고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생각을 멈추었다고는 하지만 이범의 머릿속은 복잡할 정도로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평소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이범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상당히 드물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친구들 중 한 명이라면.

그것은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까웠다. 무뚝뚝해 보이고 말수가 적은 이범이 상대에게 반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정작 본인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비록 지금이 아닌 조금 더 이전부터 진행되었지만, 당사자가 모르니 지금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입학 초기, 이범은 같은 중학교 출신인 태율이 처음에는 그저 시끄럽기만 했다.

 

 

" 친구 X나게 없어 보이는 데 있는 척 안 해도 돼 "

" 아, 아니거든!! "

" ㅋㅋㅋㅋㅋ맞나봄 "

 

 

이범은 자신의 뒷자리에 있는 태율과 앞자리에 있는 은하가 자신을 사이에 두고 떠들기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시끄러웠고, 또 시끄러웠다.

한시라도 조용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범은 그저 선생님이 빨리 자리를 바꿔주시길 바랐다. 그게 2주나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하지만 태율에게로 향하는 관심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듯이 서서히 스며들어 갔다. 아무도 모르게, 스며드는 이범조차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서서히, 발끝에서부터 잠식되어 갈 정도로.

물론 정작 당사자인 이범이 그 감정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아무래도 제일 처음으로 겪었던 감정은 혼란이긴 했다. 심지어 제일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다.

 

 

" 냥냐냥냐... "

" ... 고양이... "

 

 

이범은 쉬는 시간에 돌아다니다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발걸음이 절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집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였기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귀여운 고양이가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막상 도착하니 고양이치고는 굵은 목소리였다. 

 

 

" ... 남태율? "

" 냥냐냐ㄴ... ...궈, 권이범?! "

" ... ... 방금 고양이 소리... "

" 하, 하하! 고양이가 여기 있었네! 어, 애들이 나 부른다! 이만 가볼게!;; "

" ... "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한 이범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안쪽에서 들려오던 고양이 소리는 다름 아닌 태율이 내는 소리였다. 옅게 물든 홍조로 귀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내며 앞에 있는 고양이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범은 평소에 알고 있던 이범과는 색다른 모습에 몸이 절로 굳어버렸다.

낯설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다른 친구들이 저런 소리를 내었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일 텐데. 태율이 한 소리에는 왜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너무 놀라 구경하던 것도 잠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양이 소리를 내며 울고 있던 태율이 이범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는 이범의 모습에 태율은 당황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태율이 떠나고 남아있던 이범에게 고양이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 냐아~ "

" ... 조금... 귀여울지도. "

 

 

이범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중얼거리며 읊조렸다. 이미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이범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방금 내뱉은 말은 태율이 아니라 고양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이범은 태율을 볼 때마다 묘하게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넘겼다.

그렇게 금세 잊어질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이범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서였다. 이범이 생각하는 태율은 생긴 것처럼 싸가지가 없었고, 활발하며 입이 거친 녀석이었다.

그나마 고양이 흉내를 내던 모습을 보고서 조금 이미지가 바뀌긴 했지만,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태율과 은하가 크게 다투던 날, 이범의 안에서 태율의 이미지가 크게 변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리가 넘치는 모습이 이범에게 크게 다가왔다. 

 

 

" 너 같은 애는 이해 못 해 "

" 야! 백은하!! "

" ... "

 

 

그날, 모두가 하교하고 나서 태율이 은하를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바람의 곁에는 이범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범은 은하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태율이 은하를 친구라고 생각하며 은하를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평소 은하를 놀리기 바쁜 태율이었기에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은하가 교실을 나가버리고 남겨진 바람과 이범은 은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나온 태율과 마주쳤다.

 

 

" 어? 바람... 윽, 권이범... "

" ... "

 

 

태율이 바람을 보며 부르려다가 이범을 발견하고 움찔거렸다.

이범은 태율이 자신을 볼 때마다 움찔거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은 태율에게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언제나 어색해하는 반응이었다.

결국 그날, 세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헤어졌다. 은하의 이야기에 대해 나눌 대화조차 없었다. 이범은 그저 집으로 돌아와 종일 태율을 생각할 뿐이었다. 하려고 하는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먹으려고 하던 밥은 입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남태율, 그 한 사람뿐이었다. 

이런 감정이나 생각이 처음이었던 이범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러는 게 맞는 건지. 가까이 지내는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맞는 건지. 그런 의문들이 들었다. 

중학생 때는 그냥 얼굴을 아는 정도일 뿐이었다. 

자신은 조용히 학교에 다니길 원했고, 태율은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항상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가까워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 하... "

 

 

깊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은하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들진 않지만, 은하의 이야기보단 태율이 더 신경 쓰였다. 태율이 생각했던 것보다 정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의리가 상당히 좋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제까지 생각하고 있던 태율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단순히 이미지가 바뀐 수준이 아니었다. 이범은 태율을 생각할 때마다 두근거려 오는 심장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슴 위로 손을 올려 심장 고동 소리를 확인했다.

자신이 혹여나 잘못 착각하고 있는 거라면, 미약한 마음으로 확인했지만, 이범의 심장은 주인의 의지를 거절하듯 미친 듯이 두근거려 왔다.

이범은 생각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공부도 포기하고 밥까지 대충 때우는 수준에 이르렀다. 침대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뒤척거려 보아도 생각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아무리 생각해도... "

 

 

이건 단순한 좋아함이 아닌 감정이었다.

좋아함을 넘어 사랑, 일지도 몰랐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심장이 반응하고 머리는 계속 태율을 떠올렸다. 

정반대의 사람이기에 관심이 가는 건지, 아니면 태율이기에 반응을 하는 건지. 그날 이후로 이범의 고민은 날로 갈수록 심각해져갔다. 

밤을 꼬박 세어버릴 정도였다. 

다음 날, 밤을 세워버린 탓에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상황이야 언제든지 그랬으니, 평소처럼 무시하고 잠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반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태율과 은하의 이야기를 하는 탓에 잠들지 못했다.

 

 

" 야, 그거 들었냐? 남태율 지금 간쌤한테 혼나고 있는 거? "

" 엉? 왜??? 걔 또 뭐 했대? "

" 백은하 울렸대 "

" 엥???? 걔네 얼마 전에 싸우지 않았냐? "

" 그니까. 둘이 뭔 일이래 "

" ... 걔네 지금... 어디 있는데? "

" 엄마야!!?! ㄱ, 권이범? "

" 걔네 지금 교무실에 있을걸? "

 

 

이범은 태율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를 하고 있던 애들 곁으로 가서 두 사람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교무실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범은 교무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은하의 목소리에 멈춘 손을 거두었다. 벽에 기대어 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 두 사람, 잘 풀렸구나. '

 

같이 놀거나 밥을 함께 먹거나, 친구라고 부른다면 친구인 관계.

이범은 은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은하를 뺀 태율과 자신의 관계는 무엇일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상대 쪽에서 어색해하는데.

태율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태율에게 부담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이 혼자 가지고 있다가 잘 맞는다면 사귀고, 아니라면 혼자 앓다가 잊어버리면 그만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지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태율이나 은하의 편을 들어줄 위치던가? 

언제까지나 자신은 은하의 이야기를 몰래 들은 사람이었고, 3자였다. 

이범은 자신이 제 3자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짜증이 났다. 

 

 

" 와, 창문 깼다고 화장실 청소? "

" 야~ 사이좋네~ 진작에 화해하지 그랬냐~ "

" ... "

 

 

결국 태율과 은하가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을 보며 놀리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 속에는 놀릴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이범도 포함이었다. 

모두가 태율을 놀리고 있을 때, 이범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태율을 보았다. 

화장실 청소하는 두 사람을 두고서 다른 애들과 돌아갔다. 

운동장을 건너고 있을 때, 함께 걷고 있던 유준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 야! 백은하가 고기 쏜대!! 갈 사람?! "

" 나! 나나!! "

" 다 가는 거지? "

 

 

그렇게 다 같이 '설레는 고기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범은 어쩌다 보니 태율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태율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태율이 식은땀을 흘리며 옆에 있던 은하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까지 지켜볼 뿐이었다. 

태율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은하가 크게 웃으며 이범에게 말을 걸어왔다.

 

 

" 푸핰!!?? 야! 권이범! 이 새끼가 너한테 뭐 했어? "

" ... 아니? "

" 근데 왜 얘가 나한테 이런 말 하냐? "

" 무슨 말? "

" 그게... 우읍?! ...!! "

" 조용흐흐르... "

" ? "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다른 애들이 떠드는 소리에 묻혔다.

태율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은하가 하는 말에 사이다를 마시려던 이범이 고개를 들어 은하와 태율을 보았다. 

무슨 말인지 궁금했던 이범은 은하에게 되물어 보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건 태율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은하였다. 이범은 마시던 사이다를 내려두고서 태율을 보기만 했다. 

태율은 어색하게 웃으며 은하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었다. 

 

*

 

다음 날, 화장실 청소를 튄 탓에 선생님께 혼나고 있는 태율의 모습이 보였다. 

전에 느꼈던 감정이 한순간의 착각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내 반응이 없었다. 이범은 잔뜩 당황한 채 자신의 가슴 위로 손을 얹어 더듬거렸다. 

뒤이어 들어오던 유준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자신을 보았다. 

 

 

" ... 너 입구에서 뭐 하냐? "

" 아... 아무것도. "

" 뭐... 그래... "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유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은하도 교실에 도착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께 혼나고 있던 태율이 악다구니를 쓰며 은하를 일러 받쳤다.

이범은 평소에 자신이 알고 있던 태율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자신의 심장이 이제껏 태율을 보며 두근거렸던 이유는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의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가? 그래서 그런 거라고. 이범은 생각하기로 했다. 

간혹가다가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면 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걸 어딘가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인터넷이었는지 여동생이었는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 야! 피시방 갈 사람!! "

" 오늘 팀전 ㄱㄱ? "

" ㄱㄱ! 딱 조져주지 "

" 응~ 조져지는 건 은하수구요~ "

" 야!! "

 

 

이범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렸지만, 아직 인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었고, 승부는 승부였다. 게임에서 질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복잡한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수 있는 게 게임이기도 했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5시간 정도밖에 못 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이범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잠기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하루 일과 중 절반 이상이 태율과 관련되었다. 태율이 떠오른다거나 태율을 떠올릴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라던가. 한 번 떠올리면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더더욱 큰일이었다. 

특히 아까 있었던 일은 자신으로썬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태율이 펀치 기계 앞에 있을 때, 은하가 밀치고 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리는 태율을 받아주기 위해 나설 뻔했다. 

알아서 잘 중심을 잡던 태율의 모습에 조금 나섰던 손이 뻘쭘해지며 뒤로 물렸다. 

 

 

" 오빠! 엄마가 밥 먹으래! "

" ... "

 

 

이 감정을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저 갑갑하기만 했다. 

힐끗, 이범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테이블 시계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폰으로 시선이 향했다. 

밝게 켜진 화면 속에 보이는 단톡에는 다들 밥을 먹는다는 대화가 오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율도 밥을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범은 문득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자각하고 얼굴을 확 붉혔다. 거실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문 앞에서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손등으로 뺨을 가렸다. 

보나 마나 지금 자신의 모습은 꽤나 흉할 게 분명했다. 얼굴에 이만큼 열이 올라오는 걸 보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이범은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 아, 오빠!! 빨리 나와! 안 나오고 ㅁ... 오빠? 거기서 뭐 해? "

" ... "

" 얼굴 엄청 빨간데? 어디 아프기라도 해? "

" 아니... 밥 먹으러 가자. "

" ??? "

 

 

이범이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이진은 문 앞에 서 있는 이범의 모습에 외치던 목소리를 줄이고 놀란 눈으로 보았다. 불러도 답이 없는 혈연 메이트의 모습에 걱정이라도 하는 듯한 말을 건네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짧았다. 

거기다가 이범은 이진을 지나쳐 식탁으로 향하기만 했다. 이범은 이진을 지나치며 자신의 감정을 이젠 인정하기로 했다. 더 이상 거부하다가는 더 끝도 없이 빠져들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했기에.

이범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쥔 폰을 꽉 쥐며 식탁에 앉았다. 

당장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다. 태율에게 감정을 보일 생각도, 그에게 부담을 안겨줄 생각도 없으며 그 감정으로 인해 제 스스로가 상처를 받는 일 자체가 없길 바랄 뿐이었다.

이범의 반응에 이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범의 맞은편에 앉았다. 

 

 

" 오빠, 정말 괜찮은 거 맞아? "

" 응. "

" 이진아, 왜 그러니? 이범이가 무슨 일이 있었어? "

" 아니, 아까 오빠가... "

" 밥 먹자. "

" 허... "

 

 

이진이 숟가락을 들고서 다시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짧고 간결한 답뿐이었다. 

이진이 엄마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하려고 하니 이범이 그걸 막았다. 이범은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태율과 그에 대한 마음으로 복잡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