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40630] 세실리아의 일기장

나비의 보관함 2025. 2. 7. 04:48
  • 일기라는 건 어떻게 쓰는 거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나 내면의 감정을 쌓는 글이라고 배웠는데 모르겠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처음 만났어.
    축축하고 어두운 뒷골목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방이 내 방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글이라는 것도 처음 배워서 어렵지만 신기하다!
  • 오늘 내 이름이라는 걸 받았다... 아직도 신기하다
    세실리아... 그게 내 이름이다
  • (마구잡이로 그려져 있는 낙서)
  •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뒷골목에서 살던 때보다 더 좋다!
    다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도, 무뚝뚝하시지만 나를 생각해 주시는 아버지도, 상냥하고 맛있는 쿠키를 만들어주는 유모도 좋다!
    하지만... 아직 무섭고 두려운 건...언제 사람들이 변해서 날 때리고 모르는 척하고 굶길지 모른다. 사람들의 표정을 잘 살피고 움직여야 한다!

 


 

옅은 은발 머리의 단발머리 소녀가 엎드린 채 크레용을 쥐고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젖살이 덜 빠졌지만,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볼살이 핼쑥하게 빠진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 막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모양인지 삐뚤빼뚤 자세히 봐야지만 알 수 있는 형체의 글자도 끄적였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모로 보이는 여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침대를 정리하던 유모는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았다. 유모가 다가가자, 아이는 몸을 흠칫거리며 떨리는 눈동자로 유모를 보았다.

 

 

" 세실리아 님, 이제 그만 잠드실 시간이세요. "

" 우웅... "

 

 

아이는 어색하지만, 유모에게 안아달라는 듯 양팔을 벌렸다.

그 모습에 유모는 대견하다는 듯 아이를 안으며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주었다. 부드러운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세실리아는 처음 맛보는 다정함에 욱하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감정에 약한 아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 금세 세실리아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유모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 뒤 이마에 입을 맞추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실리아가 잠들기 전까지 함께 있어 줄 모양이었다.

유모는 이리 여리고 착한 아가씨가 어째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리 난폭해지는 건지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다. 세실리아는 잠들기 전, 자신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 지냈던 곳을 떠올렸다.

 

 

" 이딴 쓰레기가...!! "

" 우윽... "

 

 

세실리아는 자신이 기억하던 갓난아기일 적부터 뒷골목에서 생활했었다.

포대기에 싸여있을 때, 뒤집기를 시작할 때, 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 걸음마를 떼어냈을 때. 그때마다 곁을 지켜주던 누군가는 있었다. 하지만 마치 망각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말을 떼어내고 눈치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세실리아는 혼자였다. 

그렇게 뒷골목 생활을 하게 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며 구걸하게 되었을 때. 세실리아는 제대로 된 말을 배우지도, 글을 배우지도, 감정이 무엇인지 배우기도 전에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 공부는 너무 힘들다... 이렇게 힘든 걸 엄마, 아빠는 왜 시키는 걸까?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궁금해! 힘들지만 재밌어.
    마법 이론이라는 게 제일 재밌었다
    기하학적으로 굴러가는 마나의 흐름과 마법진도 매우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여러 종족과 여러 나라가 있다는 것도. 여러 언어가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걸 배운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는다...!!지금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일기장을 쓰고 있는 중인데, 일기를 다 쓰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너무 안 자고 있으면 내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혼날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혼나기 전에 가장 먼저 유모가 알아차리고 잔소리할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혼나는 것보다 유모의 잔소리가 더 무섭다.
    어쩔 땐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 오늘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을 보러 갔다.
    처음 보는 그 사람은 어딘가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왕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안내를 받아 화원을 구경했다. 꽃이 많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왕은 다시 보기 싫지만 거기는 다시 가보고 싶다!
    화원에서 꽃을 구경하고 있다가 천사님을 만났다!
    햇빛에 비춘 모습이 막 하늘에서 날개를 잃고 떨어져 버린 천사님 같았다. 천사님이냐고 물어보니까 천사님이 아니라 왕자님이라고 했다... 왕자님이 먹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아까 만났던 왕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아저씨한테서 천사님이 태어날 수 있을까? 신기했다
    화원에서 왕자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가야만 했다
    왕자님이랑은 다음에 또 시간이 나면 만나기로 했다.
    왕자님이 만들어준 화관이 시들지 않게 할 방법은 없을까?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보관마법이 있다며 화관에 마법을 걸어주셨다.
    이런 마법이 있구나, 보자마자 나도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아버지께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아버지께 칭찬을 들을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ㅎㅎ
    장난을 치거나 말을 안 들으면 무서운 아버지지만 칭찬해 주시는 게 더 좋다!

어린 소녀가 중후한 남자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는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자신의 어린 양딸을 무서운 왕궁 안으로 들여도 되는지 걱정이 앞섰다.

언제 어디서 하이에나들이 자신의 딸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예민해졌다.

 

 

" 아버지? "

" 그래, 세실리아. 아버지랑 왕에게 인사드리자꾸나. "

" 네! "

 

 

남자는 다른 무엇보다 세실리아가 부디 알현실에서 얌전하게 있기를 바랐다.

자신과 아내가 딸을 볼 때는 얌전했지만, 다른 시녀들 앞에서는 망나니처럼 굴었으니. 혹여 왕에게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만 했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발걸음은 마차에서 내렸을 때보다 더 무거웠다. 세실리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만 할 뿐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 왕이 앉아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그래, 그 아이가 이번에 입양한 딸이던가? "

" 예. 왕이시여. "

" 소개를 해보거라. "

" 이름은 세실리아입니다. 세실, 왕님께 인사를 드리거라. "

" 안녕하세요. 세실리아입니다 "

" 귀여운 아이로군. "

 

 

왕에게 인사를 마친 세실리아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졌다.

움찔 몸을 떨다가 아버지의 다리 뒤로 몸을 숨기며 왕을 노려보았다. 세실리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사고라도 칠까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밖으로 내보내며 시녀를 붙여주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이이니 화원을 구경시켜 주라는 말까지 아끼지 않았다.

세실리아는 아버지를 왕에게 남겨두고 알현실을 나오는 내내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시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즐비한 화원이었다. 세실리아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시녀의 손을 놓고 빠르게 달려가 꽃들 사이를 누볐다.

 

 

" 아가씨, 조심하세요! "

" 우웅... "

 

 

세실리아의 귀에는 이미 시녀의 주의가 안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세실리아가 한참 화원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상대는 다름 아닌 소국의 왕자인 오수 고나달테스였다.

오수의 화려한 외모에 세실리아는 멍하니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 와... 처, 천사님이야? "

" 천사는 아닌데? "

" 그럼? 신이야? "

" 신도 아니고, 나는 왕자님이야. "

" 왕자님이 뭐야? 먹는 거야? "

" 뭐? 너... 하하!  재밌구나? "

 

 

세실리아는 자신의 말에 호탕하게 웃는 오수의 모습을 멀뚱히 보기만 했다.

오수는 눈물을 흘릴 만큼 웃고 있다가 세실리아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까 세실리아가 만났던 왕이라는 자의 아들이라는 것. 

그 말에 세실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오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 어떻게 그 아저씨한테서 천사님이 나와? "

" 그러게...? "

 

 

그렇게 두 사람은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데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세실리아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세실리아는 고개를 들어 올리고 한 곳만 지긋이 보았다. 

그걸 본 오수가 말했다.

 

 

" 리아? "

" 아빠가 나 찾아. "

" 어? "

" 오수! 다음에 또 올게! 아빠가 나 불러. "

" 부른다고...? "

 

 

오수의 귀에는 세실리아가 말하는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세실리아는 오수에게 일방적으로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 오수의 시선이 세실리아를 계속 쫓아갔다. 

희미해졌을 무렵, 세실리아가 누군가에게 안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오수랑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오수는 어딘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어른들이 보는 앞이라서 달려가 안아줄 수 없었다... 오수야!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오수는 매일 나를 망나니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오수는 언제나 나를 나로 봐준다.
    뒷골목의 거지도 아니었고, 공작가의 망나니도 아니었다.
    세실리아는 세실리아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나의 천사님.
    그런 오수가 노래를 불렀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노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오수의 노래와 어울리는 악기를 찾아 배울 거다.
    집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어딘가 그리 좋지 않으셨다.
    왕이라는 사람과 대화가 잘되지 않으셨나?
    걱정이 되어 아버지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안색이 안 좋아지셨다. 한숨을 쉬시더니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려주셨다. 아버지는 왕에게서 나와 오수의 약혼을 하자고 말하셨다고 했다. 약혼이 뭔지 몰라서 물어보니 함께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한집에서 살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하기 전에 하는 약속이라고 했다.
    오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뻤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
    왜일까? 아버지께 약혼 소식을 들었던 어머니는 결국 쓰러지시고 말았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는 침상에 누워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계신다.
    아버지께선 아직 내가 어려서 모든 걸 알려주실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아직 10살이라서 그런 걸까?
    나도 얼른 아버지랑 어머니처럼 빨리 커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버지랑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않으실 텐데

 


 

  • 얼마 전, 성인식을 치렀다. 이젠 엄연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성인이 된 셈이었다.
    어릴 적 뒷골목을 전전하던 나를 입양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하니 부모님이 우셨다. 울리려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는데...부모님이 우시니까 원래 목적인 말을 하지 못 할 뻔했다.
    왕국을 나서 여행을 떠난다던 오수가 나에게 함께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려드렸다.
    처음 부모님이 반대를 하긴 하셨지만...결국 내 뜻을 굽히진 못하셨다.
    일주일 뒤, 오수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기로 했다. 아직 일주일 전이지만 벌써 여행을 떠날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침대에서 잠들지 않고 짐 꾸릴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유모가 얼른 자라고 잔소리했다.

  • 오랜 여행 끝에 차원을 열고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
    차원 안에서 야차왕을 만난 오수가 그에게 마법을 배우게 되었다.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그저 쉬면서 오수를 응원할 생각이었는데... 야차왕이 나에게 내 뿌리이자 근원을 알려주었다.
    솔직히 그 진실이 두렵고, 기꺼웠지만 그래도 나는 나였다.
    오수가 어릴 적에 해주었던 말은 나를 나로 있게 해주었다. 내 뿌리이자 근원의 절반이 비록 드래곤이라고 해도 나는 언제나 세실리아다.
    야차왕이 나를 보더니 나에게 너도 마법을 배우라고 말했다.
    마법... 이론은 학자 못지않게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실전은 해본 적 없었는데...야차왕에게서 오수와 함께 마법을 배우게 되었다.
    오수는 힘들어하는 내색이 전혀 없었는데... 나는 조금만 해도 숨이 차오르고 힘들었다.
    야차왕이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뿌리이자 근원을 인정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 오늘도 오수와 다투고 말았다...오수는 정말 바보인 게 틀림없다. 마법을 잘하고 똑똑하면 뭐 해,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데
    자꾸 오수와 다투다 보면 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항상 뒤늦게 내뱉고 나서야 아차 싶어진다. 이게 바로 후회라는 감정일까? 오수에게 너무 미안하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리치가 된다는 건 너무 무모한 방법인 것 같다.
    분명 리치가 되면 오수가 언제나 말했던 팔고(八苦), 칠정(七情), 오욕(五慾)을 모두 벗어던질 수 있지만...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
    나는 내 친구가 무엇으로 있든 말든. 내 친구인 건 변함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리치는 다른 문제다.
    애초에 리치가 되는 게 합법이어도 이후가 문제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그 길을 굳이 가야만 하는 걸까?
    오수는 정말 바보다. 바보
  • 오수랑 정말 크게 다투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나도 모르게 오수에게 그동안 느끼고 있던 감정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오수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고백을 했으면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다.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다.
    오수의 굳어가는 표정을 봐서 그런 걸까...아무리 생각해도 그 표정은... 오수가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그 표정이 오히려 상처였다. 고백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너에게 내 감정을 들키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적어도 네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비참한 기분이 싫다. 이 감정이 너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것조차도 나는 싫다.
    네가 나를 싫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네가 좋아.
    너는 나의 천사님이자 왕자님이고, 나의 하나뿐인 구원자니까.

모든 여행을 마치고 충분히 쉬어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한껏 예민해진 두 사람이 있었다. 언성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시선이나 목소리가 매서웠다. 

차가운 얼음장이나 다름없는 시선, 낮게 깔린 목소리는 서로를 향해 경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서로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알고 있음에도 바뀌는 건 없었다.

 

 

" 그러니까 왜 굳이 리치가 되어야 하는 건데! "

" 팔고(八苦), 칠정(七情), 오욕(五慾)을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 그, 그 방법 말고도 있을 거야! "

" 아니. 이 방법뿐이야. 리아...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이걸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

" ... "

 

 

오수의 말이 맞았다.

유년기부터 함께 해왔던 두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실리아는 오수가 가장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세실리아가 원하는 걸 오수는 모를 테지만.

오수의 마지막 말에 결국 세실리아의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그 말에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게 비록 왕이라고 하더라도.세실리아는 분한 감정을 느끼며 입술을 짓물렀다. 절로 힘이 들어간 주먹은 파르르 떨릴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 

모든 걸 벗어나기 위해 리치가 되어야 한다는 오수와 리치가 되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는 세실리아.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주제.

세실리아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 오수... 리치가 되면 그 이후는 어쩔 거야. 리치가 된 사람들의 80%가 폭주하고 죽었대! 아무리 너라도 잘못될 수 있는 거라고! "

" 알아. 하지만 20%가 있잖아. "

" 너무 무모해! "

 

 

끝까지 오수를 말리는 세실리아였다.

세실리아의 다급함에도 오수는 그저 살며시 웃으며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세실리아는 오수의 변함없는 고집스러움에 속이 갑갑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절대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굳건한 다짐과는 달리 너무나도 허무하게.

 

 

" 오수, 내가... 내가 널 좋아해서 그래. 제발 리치가 되지 말아. "

" ... "

" 그러니까... 흡! "

" 부디 그 말이... 진심이 아니길 바라. "

 

 

세실리아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오수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차갑다 못해 냉기가 스치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됨에도 세실리아는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고개를 들고 오수를 보는 순간 그의 서늘함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처음으로 오수가 세실리아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세실리아는 그의 반응에 상처라도 받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로 입을 꾹 다물더니 발걸음을 돌려 두 사람이 같이 있던 공간을 벗어났다. 세실리아는 뛰쳐나가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너무 미웠다.

 

 

" 오수는... 바보야... "

 

 

한없이 달려오던 세실리아는 한 호수 앞에 멈춰서 중얼거렸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도 쉴 틈 없이 계속 눈물이 났다. 마치 눈물이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세실리아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실연에 마음이 아파 목 놓아 울기만 했다. 

 


  • 오수에게 감정을 내뱉은 이후로 서먹해지고 말았다.
    무슨 말이라도 걸려고 하면 오수가 피하기 시작했다... 너와 이런 서먹한 관계가 되고 싶어서 내가 모험을 택한 것도 아니었고, 너의 전쟁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는데...
    오수에게는 편지 하나를 남기고 멀리 떠나기로 했다.
    이 편지 하나로 오수가 나를 붙잡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이고 미련일까? 앞으로 일기는 쓰지 않을 것 같다.

얼떨결에 오수에게 고백을 해버리고 난 뒤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실리아는 그날 이후로 오수와 어색해져 버린 게 못내 아쉬웠다. 결국 세실리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수는 리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리치가 되어버린 오수를 보고도 세실리아는 떠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아무리 자신을 피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어색함과 오수가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세실리아는 결심했다.

 

 

" 오수는... 진짜, 진짜 바보야... "

 

 

오수가 일어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그의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을 두었다.

편지를 두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던 세실리아는 오수와의 추억을 되짚어 보았다. 추억을 되짚어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소매로 눈가를 닦아낸 세실리아는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발걸음을 떼어냈다.

 

 

" 잘 있어, 바보야. "

 

 

닿지 못할 마지막 안부를 전하며 세실리아는 조용히 사라졌다.

마법의 흔적을 일부러 남기며 그녀는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오수의 곁을 떠났다.


(이후 마법 학원~해결사 전까지 일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