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
" 선배, 일어나셨어요? "
혜원은 평소처럼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허리랑 엉덩이 쪽이 욱신거림을 느꼈다.
어제 뭘 얼마나 처놀았길래 이렇게 아픈 건가, 하면서 기억을 떠올리려던 찰나에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자신의 집에 있으면 안 될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자 혜원은 놀란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바로 어리디어린 후배, 은혁이였다. 은혁이 티끌 없이 맑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을 걸어왔다. 혜원은 그 모습을 보고 계속 얼빠진 표정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제야 밤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전부 떠오른 듯 헉, 숨을 삼켰다.
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려버렸다. 어쩌다가 자신이 은혁이랑 술을 마시게 된 건지도 의문이었지만, 술에 취해 미성년자를, 그것도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혁을 꼬셨다는 것에 현타가 심하게 와버렸다. 혜원이 떠올린 기억 속에서는 자신이 은혁에게 매달려 울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욕을 해대고 밀어내기만 했는데.
" 선배? 괜찮으세요? "
" ... "
은혁이 괜찮냐고 물어보아도 혜원은 답을 줄 수 없었다.
자괴감과 충격에 빠져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혁을 자신이 직접 꼬셨다는 게 뒤지고 싶어질 정도로 환장할 수준이었다.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과 같았다.
어제 어쩌다가 자신이 술을 마시게 된 건지 기억을 더듬어 떠올려 보려고 했다.
시작은 모의전을 치르게 된 것이었다. 은혁과 혜원이 적팀이 되었고, 다른 팀을 다 제치고서 두 팀이 맞붙었다. 그런데 그 모의전에서 혜원이 하드캐리를 하는 바람에 혜원의 팀이 이겨버렸다.
모두의 칭찬과 축하 속에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그때까지가 제일 좋았었던 것 같다. 회사 입구에서 은혁이 혜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혁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혜원을 보는데, 혜원은 그 눈빛이 아니꼬웠다.
[ 뭐, 왜. 야! 눈 안 깔아? 씨발!! 한 번 졌다고 뭐, 복수라고 하게?? ]
[ 그런 게 아니에요. 역시 선배는 대단하네요. ]
[ 뭐? ]
[ 시력이 전혀 죽지 않았어요. 오늘 아주 멋지던데요? ]
[ ... ]
혜원은 최대한 아니꼬운 말투로 은혁에게 말했다.
혜원의 날카로운 말에 은혁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혜원을 보며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혜원은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이렇게 칭찬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경계부터 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던 어쩌다 보니 혜원이 자신의 집으로 은혁을 데리고 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우선 은혁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혜원만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혜원이 오늘따라 기분이 너무 좋았던 모양인지 평소에 마시던 주량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던 모양이었다. 혜원이 기억하는 마지막은 대차게 술에 취한 자신이 은혁에게 다가가 그의 몸 위로 올라타고는 어깨에 팔을 걸치고 풀린 눈으로 은혁을 불렀다.
거기까지가 기억의 끝이었다.
[ 은혁아... ]
" ... 아!!!! 씨발!!!!!! "
" ?! "
혜원은 욕을 외치면서 패닉 상태에 잠겼다.
' 시발, 내가 거기서 왜 쟬 꼬셨지? 저 새끼는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으면서 대체 왜 날 받아준 거고? '
혜원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생각에 잠겼다. 온갖 생각을 떠올리는데, 그러다가 마지막 기억 뒤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난 밤사이에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관계였는지.
온통 살색의 향연이 이어지는 관계가 떠오르자, 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고 뜨거워졌다.
혜원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냅다 아악 소리를 질렀다.
모든 기억들이 떠오르자, 혜원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비명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공포와 자괴감, 두려움과 짜증, 번민과 현타.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며 지금의 감정을 나타나게 했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섞이다 보니 금세 패닉이 오고 만 것이었다.
" 아악!!! 아! 씨발!! "
" 선배, 괜찮아요? "
" 넌 씨발, 내가 괜찮아 보이냐!? "
혜원이 공포에 빠져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 은혁은 오히려 기분 좋아하고 있었다.
그 탓에 혜원의 타박에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솔직히 항상 밀어내기만 하던 혜원이었다. 밀어내면서 욕을 박는 건 기본이었고, 어쩔 땐 주먹이 날아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솔직하게 자신을 탐해줬다는 것이 그저 좋기만 했다.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평소의 혜원이라면 야라고 말하는 건 애기 수준이었고, 시발에 개새끼냐가 기본적인 호칭이었다. 비록 그따위의 호칭이었지만, 어제의 혜원은 되게 사랑스러웠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전부 받아주던 모습이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먼저 다가와서 꼬시던 혜원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은혁은 속으로 가끔 혜원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자신은 미성년자라서 술을 사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어제오늘처럼 혜원이 술을 마시게끔 꼬드겨서 스스로 사서 마실 수 있도록 꼬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렸다. 게임을 잘하는 머리였기에 이 정도는 가볍게 머리를 굴려 생각할 수 있었다.
" 야, 야!! "
" ... "
아까는 혜원이 답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은혁이 답이 없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이미 딴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혜원과 결혼식까지 진행해 버린 상태였다. 하얀 턱시도를 입고 버진로드를 혜원과 함께 걸으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마지막에 모두의 축하를 받으면서 퇴장하고 거기다 자신을 닮은 아들 하나, 혜원을 닮은 딸 하나 입양하고서 키우는 것까지 상상했다. 거기다가 그 아이들이 커서 각자 결혼하고 혜원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은 덤이었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시시때때로 혜원과 한 침대 위에서 잠들고 깨어나길 반복하며 밤마다 잠자리를 가지는 것까지 상상했다. 어려서 그런지 그런 쪽으로 열정이 가득한 것 같았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은혁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전혀 티가 나질 않았다.
은혁을 부르다가 돌아오는 답이 없자 혜원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욱신거려 오는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서 고개를 절레 저었다. 저 새끼한테 답을 바란 자신이 죄라며 타박하기도 했다.
" 하... 오늘이 주말이라 다행이다. "
" 선배랑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
혜원은 순간 아차 싶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평일이면 어쩌나, 했던 걱정과는 달리 오늘은 빨간색의 주말이었다. 혜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러 의미로 주말이라 다행이라고 말한 거긴 했지만, 은혁이 말한 이유는 아니었다. 혜원이 허리를 짚으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은혁은 부엌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찬장을 뒤적거려 머그잔을 꺼냈다. 머그잔 안으로 커피를 두 잔 탄 뒤 잘 저어주었다.
머그잔을 들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을 때, 혜원이 주말이라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은혁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혜원에게 주며 웃어주었다. 혜원은 자연스럽게 커피잔을 받아 들고는 은혁의 말이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주말이라 다행이라는 혜원의 말에 은혁은 진심으로 혜원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욕과 불호령이었다.
" 야! 씨발, 당장 안 꺼져?! 내 집에서 당장 나가!! "
" 선배. 진짜 나가요? "
" 나가! 나가라고!! 개새끼야!! "
혜원은 계속 이 새끼 이거 뭔 개소리지 싶은 표정으로 은혁을 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은혁의 모습에 혜원은 꼴 받아버리고 말았다. 찰진 욕과 더불어 불호령을 내리며 외쳤다. 당장 나가라고 외치며 쫓아내고 싶었으나, 혜원은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누구 씨가 밤새 괴롭히는 바람에 허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탓이었다.
끝까지 안 나가고 버티는 은혁의 행동에 혜원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쫓아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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