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시가 봉쇄된 이후 며칠이 지났다.
유즈루는 봉쇄된 오사카시에 남아 순찰을 돌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자신이 어릴 적 지냈던 추억과 슬픔이 잠긴 오사카시를 다 둘러보고 난 뒤 돌아가려던 길에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유즈루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발걸음이 도착한 곳은 넓은 강당이 있는 건물이었다.
굳게 닫혀있는 줄 알았던 건물 안쪽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즈루는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문고리를 잡아 돌려보았다.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문이 열려있었다.
유즈루는 열리는 문안으로 들어가 강당 안을 살펴보았다.
강당 안쪽에 있는 무대가 보이고, 그 위에서 음악을 틀고서 춤을 추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유즈루는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강하게 인상을 찡그리고서 보았다.
" 히카리...? "
자세히 보니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은 히카리였다.
오사카시가 봉쇄된 이후에도 계속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 히카리라는 사실에 유즈루의 표정이 살짝 놀라 눈이 커졌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히카리를 보았다.
흘러나오는 음악 리듬에 맞춰 히카리가 춤추는 걸 보다 보니 발걸음까지 멈춘 채 멍하니 서서 보게 되었다.
유즈루는 히카리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히카리는 유즈루에게 있어 자신과 같은 오사카시의 사람으로서 이그드라실 코퍼레이션에 같은 피해를 입었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유즈루가 넋 놓고 히카리를 보고 있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전과 다름없이 춤 연습을 하는 히카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 강하고 아름답군. "
유즈루에게 히카리가 어릴 적 친구라서도 아니었고, 그녀가 강하다고 인정한 상대여서 아름답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그녀의 춤은 아름다웠다.
세계를 바꿀 정도로.
히카리의 춤이 노래가 끝나가기 시작하니 멈추었다.
노래가 끝나자 지친 건지 아니면 격한 움직임 때문인지 히카리가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그걸 지켜보던 유즈루는 손을 올려 박수를 쳐주었다.
단둘 밖에 없는 강당 안에서 유즈루의 박수 소리는 크게 울렸다.
무대 위에서 쉬고 있던 히카리는 강당이 떠나라가 울리는 박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박수 소리를 쫓아 유즈루에게 닿았다.
" 유즈루? "
히카리는 뒤늦게 자신이 춤을 추고 있던 걸 유즈루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수를 쳐준 사람이 유즈루라는 것에 그녀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즈루를 발견한 히카리는 음악을 잠시 꺼둔 뒤 냉큼 무대 아래로 내려가 유즈루에게로 걸어갔다.
유즈루는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히카리의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마치 춤을 출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그란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히카리가 가까이 왔는데도 유즈루는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보기만 했다. 유즈루의 앞까지 도착한 히카리는 아무 말이 없는 유즈루의 모습에 눈동자를 굴리다가 유즈루에게 말을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골라 말을 걸었다.
" 유즈루, 잘 지냈어? "
" ... "
" 오랜만이야, 방금 춤추고 있었는데 본 거야? "
" 그래. 잘 추던데. "
잘 지냈냐고, 오랜만이라고, 방금 춤추고 있었는데 본 거냐는 물음이 쏟아지자 유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히카리는 유즈루의 끊어지는 대답에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 보려고 노력했다. 그와는 어릴 적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자신에게 강하다고 말해준 사람이었기에.
무엇보다 그렇기에 더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히카리는 살짝 입가가 저려올 정도로 말을 계속 걸었다.
"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야? 오사카시는 봉쇄되었잖아. "
" 순찰 중이다. "
" 아, 순찰은 다 끝냈어? "
" ... 가려던 길에 노래를 들었지. "
히카리는 겨우 말이 이어지자 대화를 계속 이끌어갔다.
봉쇄된 오사카시를 순찰 중이었다는 유즈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지막 말에 히카리는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순찰을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 노래를 들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히카리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이어가기도 애매했고, 계속되는 정적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히카리는 대화를 포기한 대신 유즈루에게 손을 내밀면서 다른 권유를 했다.
유즈루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유즈루, 같이 춤 춰보지 않을래? "
" ... "
" 음... 아니면 말고. 나는 더 춤추다가 갈 거야. 먼저 가도 돼. "
" ... 좋아, 추겠다. "
히카리는 유즈루에게 같이 춤을 춰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유즈루는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손을 하염없이 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리둥절한 건지 당황한 건지 얼굴에서도 티가 전혀 나질 않았다.
히카리의 말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럼에도 유즈루는 말이 없었다.
히카리는 계속되는 유즈루의 침묵에 그가 거절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손을 거두려고 했다. 아니, 했었다.
그러던 찰나 유즈루가 히카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듯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그러자 히카리의 고개가 돌아가며 유즈루를 보았다.
히카리의 눈빛에서 왜 붙잡았냐는 듯 유즈루를 보았다. 유즈루의 말에 히카리는 화색이 되어 정말이냐고 물어보았다.
" 정말? "
" 그래. 가끔 같이 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유즈루의 답이 믿기지 않았던 히카리는 정말 같이 출 거냐고 다시 되물어보았다.
유즈루는 자신을 보는 히카리의 눈빛과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주었다. 같이 춘다는 것만으로도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그녀의 반응이 귀엽게 느껴졌다.
히카리는 유즈루에게서 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그에게서 자신의 제안이 받아졌다는 것에 살짝 놀라웠다.
하지만 이내 유즈루를 향해 살짝 웃어주며 말했다.
예상했다는 듯 그녀가 막상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했다. 사실 히카리는 거절할 거라 예상하기도 했지만, 유즈루라면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유즈루는 히카리의 말에 의문을 품은 듯 되물어 보았다.
" 같이 춰 줄 거라고 생각했어. "
" ... 그런가? "
" 응, 저기로 가서 추자. "
히카리는 유즈루의 손을 꽉 붙잡고서 이끌었다.
무대 중앙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그런 히카리의 뒤를 유즈루는 주체 없이 따라나섰다.
유즈루는 무대의 중앙에 올라와 무대의 반대편에 있는 관객석을 보았다. 봉쇄된 탓에 관객이 없어 텅 하니 비어버린 강당과 먼지만 점점 내려앉고 있는 좌석들에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물었다.
히카리는 항상 이런 풍경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즈루는 가슴이 부풀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삼켰다가 멈추었다. 코 안쪽까지 메케한 먼지 냄새가 훅 들어왔다. 그때 히카리가 새로운 노래를 틀어주었다.
노래를 틀고 난 뒤 급하게 유즈루의 곁으로 달려온 히카리가 몸을 풀며 유즈루를 향해 웃었다.
" 같이 춤춰줘서 고마워. "
" ... "
" 그럼 같이 즐겨보자. "
히카리는 웃으면서 유즈루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노래가 나왔고, 두 사람은 반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유즈루도 히카리와 함께 춤을 추었다.
박자에 맞춰 춤을 추자 두 사람의 몸이 흔들렸다.
히카리와 함께 박자를 맞춰 팔을 흔들고 골반도 튕겼다가 다리도 흔들어주고, 머리도 흔들었다가 가슴까지 튕겨주었다.
격한 춤을 추기 시작하니 점점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유즈루는 그 땀이 찝찝하기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빨라지는 템포에 두 사람의 춤이 더 빠르고 격앙되어 갔다.
노래가 완전히 끝나자 강당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대화 대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객석을 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아가고,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마치 드라마 같은 일에 히카리가 유즈루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반응에 유즈루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끝내줬어! 유즈루! "
" ... 나도 그렇게 생각해. "
" 이제 아지트로 돌아가자. "
" 그래. "
유즈루는 흥분해 신난 히카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방금 두 사람의 춤은 정말 끝내줬기 때문이었다.
아지트로 돌아가자는 히카리의 말에 유즈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유즈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새 땀이 가득 차버린 자신의 손아귀를 보았다. 흥건하게 젖어있는 손을 쥐었다가 피길 반복했다.
유즈루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히카리는 먼저 옷을 챙겨서 아지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히카리가 유즈루의 팔을 살짝 툭 치며 말했다.
" 이제 가자. "
" ... "
히카리가 먼저 길을 나섰고, 유즈루가 그 뒤를 따라갔다.
히카리는 유즈루의 행동에 살짝 웃었다. 헬헤임에서는 유즈루가 자신보다 먼저 앞서가고 자신이 그 뒤를 쫓아갔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카이톼 자신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나란히 가주고 있었다.
히카리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것과는 별개로 자꾸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가고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면서 길을 걸었다.
웃음을 참아내던 히카리는 힐끗 유즈루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전과 달라진 행동이 눈에 보이자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히카리는 아무 의미 없이 유즈루를 살짝 보다가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유즈루는 계속 앞을 보고 있다가 힐끗 옆으로 시선만 돌려 히카리를 보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무런 대화도, 말도 하지 않았다.
" ... "
" ... "
유즈루는 히카리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히카리는 그런 유즈루에게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지트에 거의 도착한 히카리가 발걸음 속도를 올리자 유즈루도 덩달아 따라 올라갔다.
아지트의 앞에 도착해 멈춰 선 히카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쑥스러운 듯 말했다.
유즈루의 눈에는 그런 히카리가 아름다워 보였다. 춤을 출 때처럼. 말을 이어가는 히카리의 모습을 보기만 했다.
히카리는 수줍게 말을 계속 이어갔다.
" 이 상황이 정리가 되고 난다면... "
" ... "
" 겟카이도, 피에톤도 다 같이 무대에서 춤추자. "
히카리는 겟카이와 피에톤이 함께하는 공동 무대에서 춤을 추자고 말한 뒤 눈동자를 한차례 굴렸다. 힐끗 유즈루를 보더니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후다닥 아지트로 들어가 버렸다.
유즈루는 히카리가 했던 말을 곱씹어가며 후다닥 들어가 버리는 히카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히카리의 말대로 이후에 상황이 모두 정리가 되고 난다면 정말로 겟카이와 피에톤이 함께 무대에서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풀리고 나면 오사카시도 봉쇄가 풀릴까, 풀리고 난다면.
유즈루는 히카리의 말 하나에 계속 반복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히카리 쪽으로 향했다.
"... 정말 만약에. "
그렇게 된다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카리가 어느새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 이제는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유즈루는 이런 생각을 계속해봤자 답이 나오진 않는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겨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지트 안에서 히카리와 잠깐 마주치긴 했지만, 바로 시선을 돌리며 부끄러워하는 히카리의 행동에 유즈루는 일부러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그러다 생각에 잠겼다. 히카리가 강하다는 건 인정했다. 그리고 어릴 적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지금 두근거리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미어터질 듯한 두근거림에 유즈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자신의 심장 위로 손을 올려보았다.
" 이건... "
미칠 듯이 울려오는 심장 소리가 마냥 나쁘지 않은 듯 눈을 감았다가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쿵, 쿵, 쿵. 찰나의 희망일지라도 히카리의 말이 현실이 되든 거짓이 되든 그녀가 원하는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유즈루는 1분 뒤에 눈을 뜨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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