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방 테이블 위에 놓인 액자 속, 낯선 여인이 어째서인지 낯설지 않아서 빤히 보았다.
어쩌면 이 사진 속에 담긴 여인이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근거는 없는 믿음 때문에. 그리고 사진 속의 여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갑자기 닥쳐온 혼란스러운 감정에 그녀를 찾아야 하는 여러 가지의 변명을 붙이며, 그 변명은 자기합리화가 되었다.
비겁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북받쳐 올라 내뱉은 한 마디.
"누군지 궁금하니까."
이 사진을 액자 속에 넣어 보관한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가족이나 지인일 텐데, 자신은 지금껏 이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였고, 그 이유 하나를 변명 삼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나 어머니 귀에 들어가는 건 숨겨야 한다는 본능 때문에 아버지의 비서나 그와 비슷한 직급의 사람에겐 부탁하지 못할 테고 수중에 있는 용돈으로 합법적이진 방법은 아니지만, 사람을 잘 찾는 사람들에게 가서 핸드폰으로 몰래 찍은 그 사진을 넘기며 이 사람이 누구인지, 현재 어디에서 거주 중인지를 찾아달라고 했다.
자신의 앳된 모습에 얕보이거나 거절당할까 봐 괜히 다리를 꼬거나 현금으로 선수금을 줄 수도 있고 이른 시일 내에 찾는다면 돈을 좀 더 내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불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인 만큼 돈 냄새를 맞고 수락했다.
2주 정도 지나서 사진 속의 여인을 찾지 못했지만, 그녀임을 아는 사람은 찾아냈다며 주소 하나를 문자로 받았다. 마침 집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겠다, 행적이 알려질 수도 있으니 10분쯤 걸어서 사람이 많은 도로 쪽으로 가 택시를 타고 이 주소로 가달라고 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를 보고 택시 기사는 차이나타운이네요? 이곳은 치안도 좋지 않고 험해서 귀하게 자란 것 같은 도련님이 갈 곳이 아닌데... 라고 했다.
그 뒤로 경찰 단속이 뜨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차이나타운으로 가려고 했던 사실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들켰다는 사실보다는 그곳으로 가려 했다는 것에 혼나고 말았다.
이후로 얼마 뒤에 일방적인 파혼 통보와 함께 어머니와 장일승은 버려졌다. 어머니는 귀하게 자란 아가씨여서 그런지 손에 물 한번 튄 적이 없는 사람이라 제대로 된 일자리는커녕 생활고가 금방 동나서 둘 다 며칠은 굶거나 운 좋게 말라비틀어진 밥이나 빵 쪼가리 정도만 먹고 지냈다.
장일승은 한순간에 인생이 백팔십도 변했지만 얼마 안 있어 잘 적응한 케이스였다.
길거리엔 마약을 팔려고 하지만 들키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처음엔 푼돈을 받고 약을 대신 전달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잔심부름 정도만 했었는데 나이가 차면서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곧 그 일대에서 알아주는 마약 밀매자가 되어있었다.한 두 번 정도 술기운 돌고 있을 때쯤 경찰에게 음주 운전 단속으로 잡혀 걸릴 뻔했지만, 태평 무역 회장이 그것을 막아주었다. 먼저 손을 내밀거나 다시 데려다 키울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성정인지 감옥에 들어가는 거나 벌금 하나만큼은 막아준 것이다.
그것 때문인지 장일승은 아버지를 뒷배로 새워 더 막 나가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예전에 받았던, 자신이 찾고 싶었던 여자의 주소가 갑자기 떠올라 홀린 듯 그곳으로 갔다.도착한 곳은 시끄러운 음악과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클럽이었고, 장일승은 돈을 지불할 테니 여기 지배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넓고 조용한 룸을 잡아서 기다리니 곧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자 예전에 프린트로 뽑아둔 낡은 사진을 꺼내 들고 그 여자를 아냐고 물어보았다.그 여자가 예전에 자기 밑에 있던 아가씨들 중 한 명이고 조선족 출신이며 돈 많은 회장, 혹은 그런 기업의 아들들을 접대하던 사람이며 어느 날부터 약에 손을 대더니 마약 중독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약에 손을 대기 전에 사내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그때쯤에 접대를 한 사람에게만 했다고 한다.
장일승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고는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자 태평 무역 회장이고 유부남이라서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말했다. 장일승은 그 여자가 낳았다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하니까 그 여자가 아이의 친부에게 데려다주고 올 거라고 한 뒤부터 약에 손을 댔다고 했다.
몰래 낳았던 아이인 터라 병원비를 자기가 냈다면서 태어난 날짜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 그 아이는 자라서 내 눈앞에 있다고 했다. 장일승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정체 모를 그리움, 애틋함. 그리고 실망과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 아버지는 어째서 서자인 자신을 친자식으로 탈바꿈해 키웠는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받아준 건지.
클럽을 빠져나와 차이나타운 거리를 방황하다가 후미진 골목에 익숙한 무리들이 보였다.
누가 봐도 마약을 사고 파려는 현장. 지금 이 기분으론 마주치기 싫어서 뒤를 돌아 그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그들이 장일승을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IBIZA라는 곳에서 거래해야 하는데 자기들은 그곳에 못 들어가서 대신 팔아줄 수 있겠냐고.
중간 수수료는 두둑하게 때줄 테니까 부탁 좀 하자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장일승에게 담배로 보이는 걸 한대 물려주고는 불을 피워주었다. 장일승은 뭔가 담배보단 독하고 몽롱한 기분이 들어 이거 담배 맞냐니까 그 무리 중 한 명이 농담하냐면서 약쟁이가 약을 하지 평범한 담배를 피우는 거 봤냐고 웃었다.
장일승은 한 모금 더 깊게 빨아내면서 약쟁이의 아들이라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라며 자조적인 쓴웃음을 띄우곤 하얀색 지퍼백에 담긴 마약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서 넣고선 피던 대마초로 추정되는 것을 버리고 클럽으로 이동했다.
지정된 룸으로 들어가 마약의 금액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클럽에서 싸움이 일어났으니 연락받고 둘러보러 온 치도랑 만나게 되었다. 둘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나고 치도에게 한 대 맞아버리고 말았다.
장일승은 자신이 누군지 아냐면서 한마디 하려다가 됐고, 약 거래 하는 거 눈감아주면 내가 여기 매출 배로 올려준다.
라며 자신감 있게 말하는 걸 보자 치도는 이 새끼는 뭐 하는 새끼인가 싶긴 하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동질감과 룸이야 넓고 구석진 방에 잡아주면 되니까 한 달 정도만 시간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장일승은 거기서 술을 마시거나 치도가 내준 구석진 룸에서 약을 하거나 대마를 피우는 등 백수처럼 지냈다.
이제는 중간에서 수수료만 받아먹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거래했던 약쟁이들에게 따로 웃돈을 더 받고 손님을 대신 소개 해주거나, 거래 자체를 트게 해 주고 안전한 거래 장소까지 제공해주니 치도의 클럽에서 종일 죽치고 있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치도는 약속했던 한 달 뒤에 매출을 정산해 보니 장일승이 말한 거 이상으로 매출이 상승해서 가끔 툭툭 되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의 약쟁이자 클럽의 vip, 혹은 동갑내기 친구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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