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은 화음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주 가는 음식점에 앉아 술과 안주를 먹으며 풍류를 즐겼다. 제자를 받으라는 장문인의 잔소리를 피해 화음으로 내려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었다.
병나발을 불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제자를 들이라는 사형의 말에 청명은 단호하게 개 패듯이 패면 하게 되어있다!를 외쳤고, 그 이후로는 사형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청명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팽 내쳤다.
그래서 마음 편히 먹고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청명조차 그 이야기를 듣고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 그거 들었소? "
" 아아~ 지금 화음에서 유명한 이야기라면 나도 들었소. "
그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니 화음제일, 서안에서 제일 아름다운 서희에게 남궁 세가에서 청혼을 넣었다는 거였다.
술을 꿀떡꿀떡 마시던 청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다 듣다 이런 해괴한 소문이 다 있나 싶었다. 서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서희가 화산제일검이라 불리는 자신의 정인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 생각을 마치자 마치 옆자리 사람들이 청명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다시 속삭였다.
" 그 여인이 화산제일검의 정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말이오. "
" 확실히 남궁 세가라 그런지 모르는 모양일세. "
" 그러게나 말일세. "
" 우리는 앞으로 남궁 세가의 자제가 무사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
청명은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새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
속에서부터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분노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청명의 이성을 끊어지게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청명은 모습을 감추었다.
" 그나저나 지금 그 남궁 세가의 자제가 그 여인의 집 앞에 있다지? "
" 그렇다네. 받아주질 않으니 엄청난 금과 함께 찾아갔다더군. "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갑자기 부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느껴졌던 인기척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돌아보니 아무도 없자 두 사람은 덜컥 겁에 질렸다.
겁에 질린 둘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 이, 이만 마시고 돌아가세! "
" 아무래도 우리가 많이 마신 모양이네! "
청명은 곧바로 서희가 있는 가문으로 향했다.
경공을 펼치며 빠른 시간 안으로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어수선하게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큰 대문 앞에서 예의도 없이 쿵쿵 두들기며 서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었다.
청명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안에서 시종들이 쩔쩔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참다못한 청명이 상대를 부르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쏠렸다.
" 어이!! "
" 지금... 나를 부른 것이오? "
그 사람들 사이로 청명이 들어가더니 맨 앞에 문을 두들기던 남자의 앞으로 가 막아섰다. 청명이 말없이 서있기만 하자 남자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청명의 반응에 남자가 화를 참는 표정을 지었다.
" ... 비키시오. 지금 중대한 일이 있소. "
" 하! 과연 정인이 있는 아녀자에게 청혼하는 게 중대한 일이랍니까? "
" 뭐, 뭐?! 저, 정인이라니? 그 여인에게 정인이 있단 말입니까? "
" 그래. 화산제일검이자 매화검존의 정인이지. "
" 거짓말하지 마시오! 매화검존은 철벽 중의 철벽, 강철 철벽이라 여인에게 관심이 없단 말일세! "
" 하... 이 서안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
" ... 저... 청명 도장... "
중대한 일이 있다는 남자의 말에 청명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정인이 있는 아녀자에게 청혼하는 게 맞냐고 따지자 남자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서려졌다. 청명 특유의 비웃는 제스처에 남자는 처음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말을 더듬으며 현실 부정하기까지 했다.
남자가 내뱉는 말에 청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명이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힘없이 열렸다.
그 안에서 곱게 차려입은 서희가 나왔다.
서희가 조심스럽게 청명을 부르며 빠르게 문에서 나와 청명의 뒤로 숨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서희를 보며 물어보았다.
" 소저, 정녕 저 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정인이... 있었단 말입니까? "
" ... 예. 그러니 제가 따라오지 말라 분명 말씀드렸지요. "
" 허...! 그럴수가... "
남자의 물음에 청명의 뒤로 숨어있던 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답에 청명이 했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남자는 허탈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남궁 세가로 돌아갔다.
남자가 완전히 떠나고 나서 청명은 고개를 돌려 서희를 보았다.
서희의 손을 붙잡으며 평소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아닌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른 외간 남자를 만나지 않은 건 잘했다. "
" 청명 도장... "
청명의 칭찬에 서희는 부끄러워졌다.
며칠 전 있었던 일 이후로 오랜만에 보게 된 탓도 있었지만, 그 탓인지 평소보다 더 잘생기고 멋진 것 같아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설레고 있는 서희와는 달리 청명의 속은 질투와 집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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