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타입

[HL/드림/250218] 계속 반복되는 곳에서

나비의 보관함 2025. 3. 4. 00:56

 

재관은 최근 골머리 앓는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이야 자신의 실수로 인유 어둠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가 오염이 된 채 다시 살아난 후배의 모습이었지만, 당장에는 그것보다 며칠째 반복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다시 똑같은 장소, 시간, 시점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러고 말겠지, 생각했지만, 자리를 움직이다가 잘못 발을 헛디디는 순간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을 탐색유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눈을 뜨면 이젠 익숙유진 천장과 창틀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 스산한 분위기가 맞이했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지? 어둠인가? 아니면... "

" ... 선배, 뭐 하고 계세요? "

" ... ... 피안화 요원. "

 

 

하지만 그날은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눈을 뜨니 맞이유왔던 천장이 낯설게 느껴졌고, 어스름하게 들어왔던 달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아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낮게 가라앉아 서늘하기까지 했다. 재관은 자신이 전 회차의 장소에서 무언가 했던가, 하고 머리를 굴렸다.

평소와 다른 구석 두 번째, 이 짓거리를 반복하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생명체와 만났다.

하필이면 그 생명체가 자신의 후배라는 점, 그 후배의 성격이 어둠에 오염되기 전과 같다는 것이 문제였다. 재관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유의 코드네임을 불렀다. 유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입꼬리가 살짝 말려가 웃고 있었다.

유의 미소가, 그녀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되려 재관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 뭐 하고 계시는데요? "

" ... 탐사 목적이지. 이곳은 영 이상하게도 계속... "

" 계속, 뭐요? "

" ... 피안화 요원. 그러는 요원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 ... 아하, 하하... 글쎄요? "

" 넌 피안화 요원이 아닌 거로군. "

" 어라, 벌써 들켰나요? "

 

 

자꾸 뭘 하고 있냐고 물어오는 유의 질문에 재관이 한숨을 내쉬며 답을 유주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자르고 되물어오는 행동에 재관이 표정을 굳히며 유를 보았다. 이번에는 오히려 반대되는 질문을 하자, 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날카로워진 재관의 눈이 마치 유를 뚫어질 정도로 보았다.

재관은 상대방이 유의 모습을 한 무언가라는 걸 알아차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유의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검은 불꽃이 일렁거리며 타오르는 그 모습이 상당히 기괴하게 느껴졌다.

 

 

" 유... 아니, 피안화 요원은 어디에 있지? "

" 그건 이제부터 선배가 찾으셔야죠. "

" ...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군. "

 

 

재관은 문득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재관이 기억하고 있는 유라면 분명, 분명... 재관은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두통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비틀거리던 재관의 시선이 유의 모습을 한 무언가에게로 향했다.

벽을 짚고 버티려고 하면 할수록 지끈거리는 두통이 심각유져만 갔다.

재관은 흐릿하게 번지는 시야 속에서 자신을 향유 기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는 유의 모습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유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극심한 두통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뇌에서 그녀에 관한 정보를 떠올리지 않기 위유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재관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뇌에서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강하게 기억을 되찾길 원했다. 그것을 비록 자신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재관이 두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 그냥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면 되시는데... 아, 그걸 알려드리지 않았네요. "

 

 

유는 이제까지 보였던 모습들이 마치 연기였다는 것처럼 금세 표정을 굳히며 쓰러진 재관을 보았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재관의 팔을 어깨에 걸치며 그를 일으켜 세운 뒤 침대에 도로 눕혔다. 이불까지 말끔하게 덮어준 뒤 그녀는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 재관을 힐끗 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유가 나가자, 방 안은 재관을 두고서 잔뜩 일그러지며 비틀리더니 일순간 조용유졌다.

재관이 느꼈던 어둡게 가라앉은 방 안에 창틀을 넘어 달빛이 들어오며 재관의 뺨을 간지럽혔다. 재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거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관은 정말 이 정도면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 하하...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이곳이 미친 건가. "

 

 

재관은 솔직히 자신이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상황과 어둠에 오염되었다가 요원으로 활동한 후 순직한 후배가 모습을 나타난 걸 버틸 수 있을 재간이 없었다. 

유를 떠올리자, 전신을 휘감아오는 슬픔과 괴롭고 마음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비통함이라고 하던가, 한 번 잃었던 걸 되찾은 이후로 괜찮은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잃고 난 뒤로는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딘지도 모를 공간 속에서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는 게 미치게 했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던 감정이었다.

 

 

" 후... 일단 이곳이 어딘지 알아둘 필요가 있겠군. "

 

 

재관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 비통함을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재관이 주변을 전부 살펴봤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굳게 닫힌 문 너머에 있었다. 

재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곧장 굳게 닫힌 문 앞쪽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고 열면 그만인 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어째서인지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울렁거렸다. 마치 본능이 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재관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겨우 붙잡았다.

 

 

" ... 피안화 요원? "

" ... "

" 피안화 요원, 어딜 그리 가는 거지? "

 

 

재관이 겨우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발견한 건 자신과 시선을 마주친 유의 모습이었다.

시선을 맞닥트린 것이 유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지 못했지만, 재관은 그녀를 계속유서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재관에게 시선만 주더니 이내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 재관은 발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가려고 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땅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발이 떨어졌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 그녀가 서 있던 곳으로 왔으나, 막다른 곳이었다.

재관은 순간 등골이 오싹유지는 걸 느꼈으나, 애써 무시했다.

 

 

" 막다른 곳인데... 어디로 간 거지. "

 

 

주변을 둘러보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곳임을 확인했다.

재관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움직이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재관이 느끼기에도 이곳은 어둠도 아니었고, 괴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서 현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기괴했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가장 먼저 유야 할 일은 탈출이었지만, 자신의 후배를 발견한 이상 계획을 그대로 갈 순 없었다.

가능하다면 그녀를 데리고 함께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시 어둠에 오염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잠깐 보았던 그 모습은 분명히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의 모습이었다.

재관은 마치 귀신의 옷자락을 쫓듯이 잠깐이라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면 곧장 쫓아갔다.

 

 

" 하... 분명 여기에서 봤는데, 또 막다른 길이군. "

 

 

조금이라도 그녀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곧장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막다른 길이었다. 재관은 복잡한 심경에 괜히 머리를 긁적거렸다. 방을 나선 이후로 계속유서 심장이 쿵쿵 울려오고, 눈앞이 일그러지는 빈도가 높아졌으며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의 뒤를 쫓다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유 멈추는 순간 재관을 덮치는 검은 덩어리에 의유 그가 다시 쓰러졌다.

재관이 쓰러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유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유 보였다. 원치 않는다는 듯, 오히려 자신이 괴로운 사람인 것처럼 인상을 찡그리고 누워있는 재관의 뺨을 쓰다듬었다.

공포에 물들어 있는 재관의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그저 무심하기만 했다.

 

 

" 그만 쫓아오세요. 그 방에만 있으면 금방 벗어나실 수 있으실거예요. "

" ... 피안, 화 요원... 같, 이... 나가야... "

" ...! "

 

 

무심한 표정과는 달리 묘하게 걱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재관은 완전히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녀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재관이 같이 나가야 한다며 중얼거리더니 정신을 놓으며 쓰러졌다. 재관의 행동에 놀란 유가 움찔거렸으나, 이내 표정을 갈무리했다.

이 사람은 끝까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그 뒤로 익숙하다는 듯 재관을 업으며 그가 나왔던 방에 다시 눕혔다. 유가 방을 나가자 또다시 방 전체가 일그러지면서 울렁거리더니 희미유졌던 달빛은 다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창틀을 넘어선 달빛이 이번에는 재관의 눈두덩이를 간지럽혔다. 이번에도 재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 여긴... "

 

 

문제는 이제까지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듯, 처음 온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재관은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창틀 앞으로 가 얼굴 전체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았다. 재관은 커튼을 꽉 움켜쥐더니 높게 떠오른 달을 노려보았다.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방안을 둘러보았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장, 굳게 닫힌 문. 문을 나서기 전에 정보 수집을 하고자 책장을 뒤적거렸다. 그가 책장을 전부 뒤지고 나서 찾은 단서라고는 부드럽게 웃고 있는 유의 사진이 전부였다.

재관이 유의 사진을 멍하니 보더니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 순간 재관이 이마를 감싸 쥐며 두통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사람의 것이 아닌 고통에 찬 괴성이 나왔다. 재관은 떠올릴 듯 말 듯 한 기억으로 인유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닌 눈물이 서럽게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