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괴수의 시대, 현재 일본은 괴수가 득실거리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수는 사라지고, 이상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괴수 9호의 바이러스로 추측되는 코드 G-9 바이러스는 애석하게도 사람들에게 불리하고, 세상을 더 빠르게 무너트렸다.
인간형 괴수인 9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터트린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정확하진 않았다.
G-9 바이러스로 인해 일반 민간인에게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전 괴수라면 그저 민간인을 잡아먹는다면 G-9 바이러스에 감염된 민간인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며,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을 노렸다.
그들에게 물리거나 공격을 당하는 순간 최대 10분 내로 감염되어 살아있는 생명체를 덮쳤다.
" 꺄아아악!! "
" 으, 으아악!! 나, 나루미! 나루미...!! "
" 하, 감히 대장님의 이름을 부르다니. 벌 대신 나루미 대장 멋져 외치고 다니도록. "
" 응! "
콰아앙, 커다란 파공음이 들려오고, 민간인을 덮치려고 했던 G-9바이러스 감염자를 물리친 나루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G-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민간인이 감염되어 죽었고, 감염체가 되어, 또 다른 민간인을 공격했다. 이를 방위대에서는 '좀비'라고 명명, 방위대에게 토벌을 명했다.
방위대가 아무리 좀비를 물리쳐도,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탓에 버겁긴 마찬가지였다.
한 번 전투가 시작되면 좀비가 다 사라질 때까지 베고, 또 베거나 혹은 좀비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 바이러스가 터지고 얼마 안 가 수색부에서 아직 움직이는 좀비의 사지를 잘라 실험대에 올린 일도 있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통칭 '좀비'의 약점과 바이러스의 여부, 생체 반응 따위를 알아냈다.
" 자, 방위대 소속 대원들! 잘 들어라! "
" 예!! "
" G-9 바이러스, 통칭 '좀비'는 뇌를 침식하는 바이러스다. 좀비와 맞딱뜨리게 된다면 뇌를 단번에 없애는 게 중요하지. 이 바이러스는 괴수 9호가 나루미 대장에게 퇴치당하면서 마지막 발악으로 퍼트린 바이러스다. "
" ... "
"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대괴수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은 위대한 인류다!! 이딴 바이러스 따위에게 질 인류가 아니다!! "
" 와아아아!! "
" 바이러스는 비말과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 좀비의 침, 혈액에 쉽게 감염되며 좀비의 공격으로 상처가 났다면 그 즉시 상처 부위를 도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도려내지 못한다면 10분 내로 감염되니 우리 방위대는 즉시 자결해야만 한다. "
" ... "
" 민간인은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 방위대는 특수 훈련을 받은 존재! 좀비가 된다면 오히려 좀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다들 목숨을 맞길 자신 있는가! "
" 예!!! "
" 좋다!! 좀비는 시야가 퇴화하는 대신 청각과 후각이 매우 발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총기류는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상부의 명령이다. "
" 그러면 뭘로 공격해야 합니까? "
" 날붙이다. 검이나 도끼, 칼 같은 날붙이가 최적이더군. "
검의 시대는 가버리고 총기의 시대라고 했던가.
갑자기 판을 뒤집어버리듯 총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시 검의 시대가 찾아왔다. 옹고집처럼 검만 고집하던 소우시로에겐 희소식이었다. 날붙이로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대다수의 대원들의 시선이 소우시로에게로 향했다.
계속되는 강연은 아직 살아있는 인터넷 선을 통해 다른 지부에도 똑같이 강연 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며 1년을 다투었지만, 급격히 늘어나는 좀비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수세에 밀리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과연 인구수 세계 12위에 달하는 국가다웠다.
좀비의 감염 속도는 빨랐고, 항체나 백신을 만드는 속도는 느렸다.
" ... 그래서 지금 다른 지부들이 퇴각하고 중앙에 모이기 시작했어. "
" ... 상황이 좋지 않군. "
" 그래, 하필이면 대장 격 사람들이 감염당하는 바람에 공석도 생겼다던데. "
" 아, 안 그래도 이번에 대장 진급... 명 받았습니다! "
" 아. 저도요. "
" 이치카와, 시노미야가... 대장인가. "
괴수를 상대하던 이들이 좀비를 상대하기 시작하니 체계도 많이 바뀌었다.
여러 부대로 나뉘었던 부대가 합병하는 경우도 있었고, 분대를 나누어 대장을 차출하고 탐사 부대와 생존자 구조 부대, 식량 부대, 무기 제작 부대 등등. 다양한 부대로 나뉘었다.
뼈 아플 정도의 실책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체계를 바꾸는 걸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히비노는 아시로의 부대에 들어가 좀비 말살 프로젝트를 맞게 되었고, 이치카와는 탐사 부대, 시노미야는 또 다른 공격 부대의 대장이 되었다. 아시로 부대의 부대장, 소우치로의 형인 소우이치로는 생존자 구조 부대의 대장이었다.
그의 부대가 전체적으로 바뀌면서 유츠키 역시 생존자 구조 부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 하... 상황이 끝나긴 할지... "
" 희망을 가지자고요! "
" 그래야지. 생존자 구조는 잘되고 있는 건가? "
" ... 아, 생존자는 나름...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긴 헌디 아직까지는 무리 없이 구조 하고 있다이가. "
" 그러면 다행이고. "
위이잉, 위이잉.
[ 전 대원에게 알립니다. 현재 성벽으로 수십만의 좀비 군대가 나타났습니다. 전 대원 출동하여 제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
" 이런, 좀비가 또 찾아왔다카네. "
" 그라게... 좀비들도 할 짓이 읎다 본데. "
" 빨리 가기나 해, 소우이치로. "
" 아키~ 같이 가는기가? "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상황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서 있던 복도 전체가 빨간 경고등으로 빛나며 깜빡거렸다. 위급한 상황임을 알리는 경고였다. 모두가 다 같이 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미적거리며 느리게 움직이는 소우이치로를 향해 유츠키가 한마디 했다.
그러자 소우이치로가 유츠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장난스레 웃었다.
소우이치로의 행동에 유츠키가 그의 얼굴을 꾹 밀어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을 포함한 모두가 도착한 성벽에는 최소 1천만 명은 넘어 보일 정도로 앞을 가득 채운 좀비 군단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매달려 긁어댔다.
마치 벽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 ... 교육 들었을 때 기억하제. "
" 하지. 좀비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냄새를 잘 맡는다. "
" 하... 이참에 누가 더 많이 없애나 함 할래? "
" 아니, 굳이? 살아 돌아오기나 해. "
" 어야~ 니도 살아 돌아온나. "
모든 대원들이 줄지어 서서 준비를 마치고 무기를 들었다.
많은 좀비 군단이 들이닥칠 때면 유일하게 총기류가 허락되었다. 넘치는 소음에 근방의 좀비들을 모으고, 제거하면서 점점 숫자를 줄여나간 뒤 충분히 줄인 후에 검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투다다다다, 너나 할 것 없이 총을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파바박, 불꽃이 피었다. 좀비들이 서로의 몸을 밀고 넘어서 올라오려고 하다가도 하나, 둘 쓰러졌다. 하지만 문제는 좀비의 시체를 발판 삼아 올라오는 녀석들이 넘쳤다.
" 야, 제대로 좀 싸봐라! 레노! "
" 대장에게 하는 말투가 되게 불손한데요. 이하루. "
" 윽... 제대로 좀 쏴보시죠! 레노 대장! "
" 예, 저보다 더 열심히 하셔야겠네요. "
" 쟤넨 총질하는 와중에도 다투냐? "
" 한두 번이니? 집중이나 해. 하루이치. "
[ 좀비의 숫자가 충분히 줄어든 관계로 모두 총기를 내리고, 무기를 교체하신 뒤 출격하시길 바랍니다. ]
안내 방송에서 좀비 숫자에 대한 안내를 해주자, 대원들이 하나, 둘 총에서 날붙이로 무기를 바꾸었다.
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난간을 밟고 뛰어 내려가 좀비들의 목을 빠르게 베어냈다. 어수선하고 시끄럽던 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좀비 군단의 토벌이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내부로 다시 돌아온 유츠키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 하필이면 마주친 상대가 나루미였다.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이내 페이스를 유지하고서 경례만 하고 갈 길을 가려고 했었다.
나루미의 목소리가 유츠키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가끔은 쉬어라~ "
" ... 예, 명심하겠습니다. "
" 그래~ 가 봐. "
" ... "
" ... 아, 지금 훈련장에 아시로랑 카프카가 있단 걸 알려줬어야했나? "
유츠키는 그대로 나루미를 지나 훈련실로 도착했다.
정부에서 내려준 명찰로 신원 확인을 한 뒤 훈련실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사이좋게 서로의 훈련을 봐주고 있는 아시로와 카프카가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에 유츠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경례했다.
잔뜩 긴장이 들어간 몸과 절도 있는 팔의 각도, 총성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유츠키의 목소리.
유츠키는 인사라도 했으니 되었겠지, 싶은 마음에 경례를 풀고 빈자리로 가 머리에 차단 헤드셋을 끼고 총을 들어 올렸다. 탕탕, 앞에 있는 명중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유츠키는 아까 좀비 군단을 소탕할 때, 많은 수의 좀비를 없애지 못한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 ...야~ ...사카... 아키!! "
" 헉...! 무슨... "
" 밥 먹을 시간이 다 되도록 여서 훈련하고 있었나. "
" ...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 건가. "
" 그래, 인자 밥이나 묵으러 가자~ "
" 날 찾으러 온 건가? "
" 당연하지. 내가 니 안 챙기믄 누가 니 챙기는데~ "
유츠키는 너무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식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유츠키를 찾아 여기까지 온 소우이치로가 말을 걸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소우이치로가 다시 익숙하게 유츠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웃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유츠키는 군말 없이 따랐다.
식당에 도착하니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아시로와 히비노, 이치카와, 시노미야, 소이치로 일행이 보였다. 유츠키는 따로 먹길 원했으나, 소우이치로가 하필 아시로 일행의 뒤에 줄을 섰다.
소이치로가 등을 돌려 소우이치로와 유츠키를 발견했다.
" 지금 먹는기가? "
" 이 녀석 찾으러 다녔거든. 훈련실에 박혀있드라고. "
" 그래? 연습도 좋지만, 쉬어가믄서 해라. "
" 하... 나루미 대장이랑 똑같은 잔소리를 하네. "
" 뭐?? 내가 더 걱정을 많이 담았다아이가! "
" 그래, 그래. "
유츠키는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는 소이치로의 말에 심드렁한 얼굴로 나루미를 언급했다.
나루미와 소이치로가 견원지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부대 내에서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소이치로는 비교적 적은 적대를 가지고 있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다시 만나면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식량을 보급받고, 식사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상황도, 살아남은 생존자의 숫자도, 언제 망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모두 힘들어 보였지만, 히비노가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츠키는 히비노를 보았다.
인류의 남은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 히비노는 그런 존재였지만, 유츠키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 미사카, 니는 밥 먹고 나서 뭐 할기고? "
" 내일 있을 임무 준비해야지. "
" 아~ 맞네. 내일 생존자 수색 나가던가? "
" 그걸 대장이 잊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데. "
" 미사카 씨, 우리 형 좀 잘 부탁합니다. "
유츠키는 소이치로에게서 자신의 형을 잘 부탁한다는 부탁을 받았다.
한 번씩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행동을 하는 소우이치로 때문에 유츠키를 포함한 대원들이 많이 피곤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며 부탁을 하는 건지.
그 생각을 하자 유츠키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대원들은 그나마 성벽 안쪽에서 지내는 덕분에 매일매일이 위태롭진 않았다. 좀비로부터 성벽이 보호를 해주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다만 성벽 바깥에 있는 생존자들은 언제 구조될지 모른 채 위태로운 하루를 이어가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유츠키는 적어도 살아있는 생존자들을 구하고자 했다.
" 준비됐나! 대원들!! "
" 예!! "
" 내 한 가지만 부탁하께. 생존자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니들 목숨도 중하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도망치라!! "
" 하하! 생존자 구출 부대 대장이 그대로 됩니까! "
" 내는!! 생존자도 중요하지만, 내 대원들이 더 중요하다!! "
" 와아아아!! "
" 생존자 구출 부대! 전원 준비! "
소우이치로는 그런 사내였다.
당장의 눈앞에 있는 생존자보다 자신의 대원들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 유츠키가 다른 부대로부터 여러 차례 이적 권유를 받았으면서도 소우이치로의 곁에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장의 명령에 모든 대원들이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구출했던 생존자의 정보에 의하면 도쿄 시내에 아직 살아있는 생존자를 보았다고 했다. 미약한 정보이고, 그 정보로 탐색 인원이 겨우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생존자 구출 부대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일제히 차량에서 내려 주변을 탐색했다.
" 생존자와 탐색 부대의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생존자는 총 5명. 백화점 옥상에서 버티고 있다고 하니 빠르게 구출하고 돌아간다! "
" 예! "
" 미사카, 니는 내 뒤를 잘 따라와라. "
" 그래. "
잔뜩 긴장된 상태에서 백화점 진입이 시작되었다.
백화점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아수라장이 된 내부에 모두가 사색이 되었다. 물품들이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있는 것은 물론,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좀비의 사체.
무엇 하나 이곳이 안전하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비상구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와중에도 시체와 피 웅덩이는 계속 발견되었다. 4층쯤 올라왔을 때, 철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원이 조용히 철문에 귓가를 대는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손이 나타나고, 대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 으, 으아악! "
" 마츠모토 대원! "
" 흐... 흐억... "
" 괜찮아, 마츠모토 대원. "
" 예... 예! 감사합니다, 미사카 부대장님. "
"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
먼저 앞서던 유츠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재빠르게 오지 않았더라면 대원 하나를 잃을 뻔했다.
좀비가 대원의 목을 물려고 할 때, 유츠키가 빠르게 내려와 단검을 빼 들고, 단번에 좀비의 미간에 내리꽂았다. 정확히 뇌에 가격당한 좀비가 힘없이 쓰러지자, 대원이 덜덜 떨며 주저앉았다.
유츠키는 좀비의 미간에 꽂힌 단검을 빼낸 뒤 옷에 피를 닦아내고 다시 칼집에 넣었다.
대원을 보며 괜찮냐고 물어본 뒤 대원이 무사히 일어나자, 다시 앞으로 향했다.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부대원들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옥상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기 전. 이제 생존자를 구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사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 이런... "
" ...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 모두! 주변 상황을 살핀다! 실시. "
" 예! "
" ... 소우이치로, 이 상태를 봐선 생존자가 없을 수도 있겠어. "
" 미사카, 니는 그리 생각하나? 내는 그리 생각 안 한다. "
" 뭐? "
" 사람이란 건 생각보다 악바리 근성이거든. "
" ... 이건... "
옥상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부대원을 맞이해주는 생존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난장판이 되어버린 그들의 터전이 그곳에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난잡하게 휘저어진 텐트와 엉망이 된 식기구들, 바닥에 흥건하게 뿌려진 피 웅덩이.
이상한 건 시체도 없었고, 흔한 신체 조각조차 없었다.
모두가 주변을 수색하고 있을 때, 유츠키와 소우이치로가 대화를 나누었다. 희망이 없으니 돌아가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유츠키의 의견을 대변하듯 소우이치로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유츠키의 시선이 소우이치로의 손가락을 따라 향했다.
그곳에는 흥건한 피 웅덩이뿐만 아니라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핏자국은 길게 이어져서 부대원이 올라온 옥상 입구와는 다른 입구로 향했다.
" 가볼까. "
" 하... 가야긋지? "
" 대장이면 사람 살려야지. "
" 그렇제... 대원들! 옥상 수색은 끝났나? "
" 예! 그보다 엄청 이상합니다. "
" 그래... 시체도 안 보이것지. "
" 예! "
" 모두 나를 따른다! "
소우이치로의 명령에 따라 부대원들은 일제히 그를 따라 다른 문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핏줄기가 이어지는 곳으로 내려가다 보니 모든 부대원들이 묘하게 긴장한 상태였다.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놓지 않았다. 경계 태세를 갖추며 한층, 한층 내려갔다.
핏줄기가 멈춘 곳은 4층으로 들어가는 철문에서 멈추었다.
유츠키와 대원들은 아까 올라오면서 4층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더욱 긴장했다. 소우이치로가 가장 선두에 서서 검을 빼 들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대원 하나가 나서서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하자, 눈앞에 어둠이 나타났다.
소우이치로는 조용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 모두, 플래시를 켜고 조용히 진입한다. "
" 예. "
조용히 숨을 죽이고서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천천히 4층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4층 역시 다른 곳과 다를 것 없었다. 난잡하게 어지럽혀진 공간은 발 디딜 틈 하나 주지 않았다. 겨우 조심조심해서 안으로 모두 들어오고 좁아진 시야 속에서 바닥에 이어진 핏줄기를 따라나섰다.
잔뜩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백화점 내부의 불이 확 들어왔다.
어둡기만 하던 곳에 갑자기 빛이 켜지자, 모두 시야를 뜨기 힘들어했다. 모두가 주춤거리는 순간 뒤쪽에서 휙 하고 무언가 지나가면서 마지막에 있던 대원을 낚아채 갔다. 소우이치로가 손을 높게 올린 상태에서 무슨 신호를 보이는 듯 주먹을 쥐었다가 휘둘렀다. 그러자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서로의 등을 맞대었다.
유츠키가 숨죽이고서 지켜보다가 다시 나타난 존재에 검을 휘둘렀다.
키야아악!!!
" ... 소우이치로, 조심해라. 이 개체는 무리를 이루니까. "
" 으, 으악! "
" 대... 대장님! "
유츠키가 소우이치로를 향해 경고를 하자마자 좀비 무리가 일제히 대원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도 소우이치로와 유츠키가 좀비를 하나, 둘 물리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나서니 대원들도 안정감을 되찾은 건지 각자 무기를 꺼내고 공격을 시도했다.
마지막 남은 좀비는 아까 마지막으로 당했던 대원이었다.
그 대원의 목에 반쯤 베어진 채 고정되어 있는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처음에 교육받았던 대로 물리자마자 자결하려고 했으나, 자결하던 도중에 변이가 온 모양이었다.
소우이치로는 자신의 대원이 변한 모습에 차마 검을 들지 못했다.
" 호시노 소우이치로. 지금 대장이 돼서 뭐 하자는 거야. "
" 내는... "
" 네가 못 하면 내가 한다. "
" ... 아키! "
소우이치로가 말리기도 전에 유츠키가 빠르게 발도하면서 좀비가 된 대원의 머리를 베어냈다.
유츠키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대원의 머리가 잘려 나가자 소우이치로가 고개를 틀었다. 차마 대원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츠키는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얼어있는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 너희들, 대원들을 이대로 둘 건가? "
" 예, 예? "
" 빨리 시체 수습하도록.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 주어야지. "
" ...예! "
" 소우이치로, 이쪽으로. "
" ... 아키. "
"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 이쪽을 보라고. "
" 이건... "
유츠키는 냉정한 시선으로 대원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이 달려와서 순직한 대원의 시체를 수습하는 사이 유츠키가 소우이치로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아당겼다. 소우이치로는 유츠키의 행동에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딘가를 보라는 말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스스로 채운 건지 수갑을 찬 좀비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좀비는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좀비의 등 뒤로 어린아이 하나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수납장이 보였다. 유츠키가 검으로 좀비를 베어낸 뒤 수납장을 천천히 열었다.
그곳에는 울고 있는 한 아이가 인형을 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 ... 안녕, 꼬마야. "
" 흑... 흐엉... "
" 구하러 왔다아이가. 너무 늦어서 미안타. "
" 흐어어엉!! 음마아...!! "
" 이런... "
소우이치로는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가 된 아이를 보고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아이는 울음을 참고 있다가 오랜만에 느껴지는 온기에 목 놓아 울며 소우이치로의 품을 꽉 끌어안았다. 아이는 그렇게 울다 지쳐 쓰러지듯이 소우이치로의 품에서 잠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츠키가 고개를 돌리며 대원들을 통솔했다.
그렇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부대는 한 대원을 제외하고, 유일한 생존자를 안고 돌아오게 된다. 다시 돌아온 대원들은 전사한 대원의 장례를 치루고, 유가족들에게 사죄를 전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잘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게 무슨 말이고, 니. 다시 말해봐라. "
" ... 입양한다고. "
" 누구를? "
" 미카를. "
" 미카...? 설마... 저번에 구해온 그 아 말하는 기가. "
" 그래. "
" 아직 갸 항체 여부도 판명 안 났다!! "
" 알아. "
" 근데 와 고집인데! "
생존자 구출을 하고 돌아온 뒤로 며칠이 지나서, 소우이치로와 유츠키가 싸우는 일이 생겼다.
이유는 유츠키가 저번 구출에서 구해온 생존자를 자신의 본적에 그 아이를 넣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츠키의 결정에 소우이치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야 평소의 유츠키는 무심하고 까칠하면서 말수도 없는 녀석이라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 그게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유츠키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유츠키는 자신의 반대에도 입양을 할 것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입양을 하겠다는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밝혀지지도 않았고, 언제 좀비로 변할지도 모르는 아이를 입양하겠다니.
" 내 말 안 들리나!! "
" 잘 들려. 그날은 애를 잘 안아주더니, 왜 이제 와서 그래? "
" 설마... 그날 내가 애 안았다고 이카는 거 아이제? "
" ... "
" 아이라캐라. "
" 아니야. 그러니까 신경 꺼. "
" 뭐라꼬? "
유츠키는 소우이치로에게 무어라 설명할 방도가 없어 그저 인상만 찡그리고 눈을 굴릴 뿐이었다.
계속 몰아붙이는 소우이치로의 행동에 유츠키의 입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유츠키의 말에 소우이치로가 상처를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츠키는 차마 그 표정을 마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결국 그 아이는 유츠키의 아이로 입양 허락이 떨어졌다. 이후로 생존자 구출 부대 내에서의 분위는 조금씩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대장인 소우이치로와 부대장인 유츠키의 다툼으로 인해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알아차린 소이치로가 개인적으로 유츠키를 찾아왔다.
" ... 오랜만이네예. "
" 그러게, 오랜만이네. "
" 우짜다가 형이랑 다툰겁니꺼. "
" ... "
" 미사카 씨. "
" 내가 그걸 알려줄 의무는 없지. "
" 그렇긴 하지만서도... 계속 이라고 지낼 순 없다 아입니까. "
" 이건 나랑 소우이치로의 일이야. "
상황을 어떻게 정리라도 해보려고 유츠키에게 다가온 소이치로였지만, 본전도 못 건졌다.
유츠키는 아이를 입양한다는 사실을 번복하지 않았고,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보다 못한 다른 부대의 대원들이 유츠키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대부분의 말은 대장인 소우이치로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이었다.
유츠키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아이를 외면할 순 없었다.
사명감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저...
[ 생존자 구출 부대는 지금 즉시 광장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알립니다. 생존자 구출 부대는... ]
갑작스러운 호출에 유츠키는 아이를 다른 민간인에게 맡기고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하니 생존자 구출 부대뿐만 아니라 탐사 부대와 좀비 말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격 부대도 함께였다. 유츠키는 얼떨떨하긴 했지만, 부대장으로서 서야 할 위치에 섰다.
유츠키의 앞에 선 소우이치로가 유츠키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 모두들! 모여주어 고맙구나! 방금 막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도쿄 호텔에 생존자들이 있다고 한다. "
" ... "
" 하지만 생존자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숫자로 측정조차 되지 않는 좀비들도 포함이라고 한다! 이번 임무는 공격 부대와 탐사 부대, 생존자 구출 부대의 합동 작전이다! "
" 예!! "
" 호텔 앞에 농성하고 있는 좀비를 공격 부대가 말살하는 동안 탐사 부대는 호텔 내부를 탐사, 생존자 구출 부대는 생존자를 찾아 무사히 구출하는 것이 임무다! "
" 예!! "
" 그럼, 무사히 돌아오도록! "
갑작스러운 정보의 위기성은 없지 않았지만, 좀비를 말살할 수 있는 기회와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는 기회, 호텔이라는 좋은 탐사 목적지를 두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신중을 기해야 했지만, 많은 좀비를 헤치고 들어가기엔 탐사 부대의 화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급하게 합동 작전을 실행하게 되었다. 모두가 차례대로 이동하기 위한 차량을 타기 전, 소우이치로는 총지휘관을 찾아가 개인적으로 요청했다. 소우이치로를 따라간 유츠키가 그 요청을 듣고 있었다.
" 총지휘관님.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꺼. "
" 뭐지? "
" 이번 임무에서 미사카 대원을 제외시켜 주실 수 없습니꺼. "
" 흠... 하지만 미사카 대원의 출중한 능력을 뺄 순 없다. "
" 지가 다 하겠습니더. 빼주십셔. "
" ... 소우이치로! 나는 임무에 참여할 거다. "
" 아니, 니는 이번 임무에서 빠지라. "
" 왜! 혼자 결정을 하는 거지?! "
유츠키는 자신을 임무에서 빼려고 하는 소우이치로의 심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우이치로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생존자 구출 부대에 유츠키를 대신할 화력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유츠키는 결과적으로 임무에 참여하게 되긴 했지만, 자신을 빼려고 한 소우이치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이런 상태에서 임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돌아오는 대로 소우이치로와 대화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차량 안에서 유츠키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소우이치로에게 말을 걸었다. 거의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듣고 있던 소우이치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 소우이치로, 임무가 끝나고 나면 잠깐 나랑 대화 좀 하지. "
" ... "
" 하... "
생존자 구출 부대가 타고 있는 차량 안의 공기는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대원들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에서 다시 부대끼리 줄지어 섰다. 총지휘관이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 우리의 목적지인 호텔은 저곳이다. 보이는가, 호텔을 둘러싼 좀비들이. "
" ... 미친, 성벽으로 덤비던 숫자보다 많잖아. "
" 이거 괜찮은 거 맞냐... "
" 탐사 부대! 그대들은 지금 바로 목적지의 근처에 다른 좀비들이 있는지 확인해라. "
" 예! "
탐사 부대가 호텔 주변을 탐사하고 오는 사이 다른 부대들은 무기를 정비했다.
다행히도 호텔 주변에는 별다른 좀비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대원들의 무기는 검에서 총으로 변했다. 혹시 몰라 날붙이는 보조 무기로 장착한 뒤 탄약과 총을 챙기기에 바빴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출전 명령이 떨어졌다.
가장 먼저 공격 부대가 나서고, 그 뒤로 생존자 구출 부대와 탐사 부대가 나섰다. 공격 부대에서 호텔 앞에 있는 좀비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히비노, 아시로, 시노미야, 소이치로가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공격 부대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생존자 구출 부대와 탐사 부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 이때다!! 생존자 구출 부대와 탐사 부대! 실내로 진입! "
" 진입!!! "
크르륵, 크어억...!
타타타탕, 투두두둑
생존자 구출 부대와 탐사 부대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왔다.
유츠키는 등 뒤로 들려오는 공격 부대의 총성과 좀비들의 비명이 들려오자,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무사히 생존자를 구출하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1층에 들어온 두 부대는 흩어졌다. 탐사 부대는 1층과 지하를 살폈고, 생존자 구출 부대는 위층으로 향했다.
정보에 의하면 생존자가 거처를 잡고 있는 곳은 맨 마지막 층인 7층과 옥상이라고 들었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면서 튀어나오는 좀비를 소탕했다. 다행히 다치거나 죽은 대원은 없었다.
무사히 올라온 부대는 7층을 살폈지만, 생존자의 머리털조차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 조금... 이상한디. "
" 조금이 아니라 많이 이상하지. 전 대원,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
" 예! "
" 옥상으로 진입한다. "
소우이치로의 손짓에 대원들이 모두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생존자들이 있었다. 생존자들은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한 덩어리로 모여 서로를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었다. 소우이치로가 생존자들의 앞에 서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방위대에서 나왔습니더. 이제 안전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습니더. "
" 저, 정말입니까? 하... 하지만... "
" 예? "
" 하지만... 괴, 괴수가... 전부 죽을 거라고... "
콰아앙!!
" 윽...! "
" 대장! 부대장! 조심하십시오!! "
" 저건... 괴수 9호? "
" 한동안 안 보이더니...! "
구출 부대가 왔음에도 생존자들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괜찮다며 다독여 주는 소우이치로와 달리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유츠키가 주변을 살폈다. 제대로 대처를 하기도 전에 호텔 건물 가운데가 들썩거리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방위대에서 오랫동안 쫓고 있던 괴수 9호였다.
기존에 있던 정보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좀비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든 대원들의 총구가 9호를 향하고, 소우이치로의 명령에 맞춰 일제히 9호를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겉을 파괴하기만 하고 제대로 된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 대원들! 생존자를 우선으로 호텔을 탈출한다!! "
" 예!!! "
그 순간 아시로가 공격을 하면서 9가 비틀거렸고, 잠시의 시간이 생기자 소우이치로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10명이 넘는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부대원들이 원형을 유지하며 호텔 옥상을 벗어났다. 점점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싶었으나, 생존자 중에는 늙은 노인도 있었고, 어린아이도 있었기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겨우 어렵게 1층으로 내려오니 그곳에는 탐사 대원들 몇몇의 시체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 ... 이치카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겄나?! "
" 예! 1층에서 괴수 9호와 조우, 이후 격전이 벌어졌으나 9가 갑자기 크기를 키우면서 대원을 공격했고, 살아남은 자는 대장인 저와 부대장 및 대원 13명입니다! "
" 젠장... 일단 탈출을 목적으로 한다! 탐색 부대도 생존자 구출에 힘쓰도록! "
" 예! 탐색 부대! 이제부터 생존자 구출을 목표로 호텔을 벗어난다!! "
" 예! "
소우이치로의 질문에 이치카와가 현 상황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언제 천장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생존자들을 우선으로 하며 모두가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입구 근처로 왔을 때, 쿠구궁 큰 소리를 내며 입구에 커다란 돌이 떨어지고 말았다.
나갈 수 있는 길을 막힌 탓에 망연자실하던 것도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던 소우이치로에게 이치카와가 말했다.
" 호시나 대장님! 지하, 지하를 통해 나갈 길이 있습니다! "
" 그게 사실인가? "
" 예! 아까 탐색했을 때 발견했습니다! "
" 말해줘서 고맙다. 전 대원!! 지하로 향한다! 지하에 출구가 있다카이 그쪽으로 가자! "
" 예!!! "
이치카와의 의견에 따라 모든 대원들이 지하로 향했다.
밖에서는 괴수 9호와 맞서고 있는 건지 커다란 파공음과 총성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하로 내려갔을 때, 상황은 참담해 보였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좀비의 시체와 대원들의 시체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생존자까지 있는 마당에 대원들의 시체를 챙길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한탄하며 모두는 앞으로 나아갔다. 무사히 지하를 빠져나와 올라가는 곳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서는 아직도 공격 부대와 9호의 전투가 이어졌다. 다행인 건 9호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전투를 하는 사이에 생존자 구출 부대와 탐사 부대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 생존자 여러분, 이 차량을 탑승하시면 됩니다! 이 차량의 목적지는 도쿄 방위대 본부입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다른 생존자들이 맞이해줄 테니 안심하시면 됩니다! "
" 아...! 살았다! 살았어...! "
"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탐사 부대, 생존자를 태운 차량에 탑승해서 가도록. "
" 예! "
소우이치로는 이치카와에게 탐사 부대와 함께 방위대 본부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치카와가 불만이 많아 보였으나, 거절하지 못했다. 생존자 구출 부대는 방금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서 아직 호텔에 남아있는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우이치로는 그대로 자신의 대원들과 함께 공격 부대에 합류했다.
총기의 화력으로 9호를 밀어붙이며 가장 선두로 향했다. 9호를 공격하다가 뒤로 밀려난 시노미야와 소이치로가 소우이치로와 유츠키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 뭐야, 형! 왜 거기서 나와? "
" 생존자들은 무사히 구출하셨나요? "
" 구출했는데, 보다시피 1층이 막혀서 지하를 통해 나왔습니다. 생존자들은 탐사 부대와 함께 본부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호텔 내부에 아직 생존자가 남아있다는 소식에 돌아온 것이고요. "
" 아직도... "
" 이상합니다. 아까 분명 올라가면서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 ... 그러면 하나 뿐이겠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 "
" 아... "
" 혹시 모르니까 일단 9호 제거부터 한 뒤에 호텔 내부 살펴보도록 하께. "
그순간 아시로와 히비노의 강력한 한방에 9호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쓰러진 9호의 모습에 모두가 무장을 해제했다.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서로를 보며 수고했다고 다독여주고 있을 때였다. 유츠키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9호가 먼지처럼 흩어지더니 그 사이로 사람 크기만 한 9호들의 모습이 보였다.
9호를 발견한 유츠키는 빠르게 총을 들어 올리고, 총을 쏘아댔다. 유츠키의 외침에 모든 대원들이 다시 총을 들어 올렸고, 9호를 향해 무자비할 정도로 쐈다.
" 아직 9호가 살아있다!! 전 대원, 발사!!! "
" 뭐? 아직? "
" 분명... 헉! "
폭우처럼 쏟아붓는 총알에 먼지가 일렁거리고, 모두가 긴장한 채로 먼지가 걷어지길 기다렸다.
먼지가 서서히 걷어지면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보였다. 괴수 9호가 팔을 들어 올린 채 소우이치로를 향해 공격 태세를 가했다. 울룩불룩 피어오르던 팔이 움츠러들더니 순식간에 피슉하고 무언가를 쐈다.
소우이치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공격을 보고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공격으로 인해 이건 못 피한다. 라고 생각할 때, 그의 앞을 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탕, 깔끔하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소우이치로 앞에 유츠키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유츠키는 자신이 공격을 맞으면서도 동시에 9호의 핵을 노리고 총을 쐈다.
" ... 아키? "
" ... 쿨럭, 커헉...! "
" 아키...!! 니, 니 와...! "
" 시, 끄러워... 소우, 이치로... "
" 이, 일단 말하지 마라. 엉? 상처가 더 벌어진다아이가! "
" ... 이게 마지막, 일 줄은... 몰랐, 는데... "
" 문디야! 이기 와 마지막이고! 니는 살아서 돌아갈끼라! "
9호가 무너져 내리면서 다른 9호들까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허깨비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9호가 무너져 내리자, 모두의 시선이 쓰러진 유츠키에게로 향했다. 9호의 공격이 하필이면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는 바람에 당장 치료를 진행한다고 해서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스스로가 잘 안다고 하던가.
유츠키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억지로 붙잡으며 소우이치로를 보았다. 사색이 된 채 외치는 그 모습을 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우이치로의 외침에 귀가 윙윙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소우이치로의 외침에 모든 대원들이 숙연해졌다.
" 대화... 하고 싶었는데... "
" 어, 어. 대화... 해야지, 안 할기가? "
" 해야... 하는데... "
" 아... 아이다! 말하지 마라! 니 지금... 피 토하고 있다고! "
" ... 소우, 이치로... 나... 부탁, 하나만... "
" 어, 어... 뭐든지 들어줄게! 그카니까 그만 말해라! "
" 미... 카... 잘, 부탁... "
" 아... 아키? 야! 니 내랑 장난치나! 당장 눈 뜨라고! "
" 혀, 형! 고마해라...!! "
" 소우시로. 니도 지금 비나? 임마, 아키가 지금 내한테 장난치고 있다아이가? 니도 빨리 말리라. "
" 형... "
아슬아슬하게 끊어지는 숨소리에 소우이치로가 허공에서 휘적거리는 유츠키의 손을 붙잡았다.
유츠키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겨우 붙잡고 있던 숨은 조금씩 희미하게 스러졌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죽기 직전의 마지막 힘을 짜내어 소우이치로에게 부탁했다.
그 부탁조차도 끝을 맺지 못하고, 결국 소우이치로를 구한 유츠키의 숨이 멎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힘이 빠진 손이 툭하고 떨어지는 모습에 소우이치로가 이성을 잃고 유츠키를 불렀다. 장난치지 말라고, 이런 장난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득바득 따지며 점점 서늘하게 식어가는 유츠키의 몸을 쥐고 흔들었다.
소우이치로의 모습에 소이치로가 나서서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 죽지 말라 안 캣나... 내는, 내가 분명히 목숨 소중히 하라꼬... 캤는데... "
" ... "
" 아키, 인나봐라... 어? 니 내한테... 할 말 있다매... "
" 흑... 부대장님... "
" ... 전 대원! 모두를 구한 영웅, 미사카 부대장을 향해 경례!! "
소우이치로가 유츠키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며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소우이치로는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조용한 유츠키의 표정을 보니 깨우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왜 깨우냐면서 까칠하게 굴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유츠키는 일어나질 않았다.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전 대원이 유츠키를 향해 존경의 경례를 보였다.
무사히 본부로 돌아온 뒤 당일날 곧장 유츠키의 장례가 치러졌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구하고 간 유츠키의 행동에 모두가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소우이치로는 유츠키가 입양했던 아이의 손을 마주 잡고서 멍하니 그의 영정 사진을 보았다.
" ... 아빠는요? "
" ... "
" 아빠가... 돌아오면 가족...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
" ...! "
" 아빠... 어디갔어요...? "
소우이치로는 유츠키가 입양했던 아이, 미카를 통해 그가 왜 입양을 택했는지 깨달았다.
유츠키는 일전에 소우이치로가 말했던 것처럼 미카를 안은 소우이치로의 모습을 보고서 입양을 결심했던 게 맞았다. 정확히는 소우이치로와 유츠키 그리고 미카까지 해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소우이치로는 맞잡은 미카의 손을 꽉 쥐었다.
유츠키가 9호를 제거함으로써 세상에 만연하게 퍼져있던 좀비 바이러스가 종식되었다. 유츠키는 진정 인류의 영웅이었다. 소우이치로에겐 영웅이 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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