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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드림/240817] 도박사의 사랑

나비의 보관함 2025. 2. 9. 03:30



200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케이오 플라자 호텔의 지하.

그곳에는 한참 카지노에 빠져 흥청망청 불타오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곳에 처음 들어와 본 이리아는 신기한 듯 눈을 반짝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입구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익숙한 사내가 다가왔다. 

손에는 언제 들고 온 건지 모를 칵테일이 들려있었다. 

 

 

" 아가씨, 내가 뭐라고 했더라? "

" 아, 아차차... 포커페이스! "

" 맞아. 아가씨는 순한 편이니까 포커페이스 잘 유지해야 해. "

 

 

두 사람은 서로 종알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맑고 명랑하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낮게 가라앉아 차분해져 지적인 아가씨 느낌으로 바뀌었다. 이리아는 자신에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며 지적해오는 어벤츄린의 말에 놀라면서 부끄러워했다.

하마터면 기껏 바꾼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뻔했다. 이리아의 표정 변화에 만족한 듯 어벤츄린이 웃더니 이리아에게 팔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이리아는 기꺼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어벤츄린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었다. 

호텔 라운지에서부터 신기하다며 둘러보던 이리아를 드레스로 갈아입히고 카지노까지 데려온 사람이 어벤츄린이었다. 

카지노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이리아가 원했기 때문에.

 

 

" 여기에는 전부 아가씨 등쳐먹을 사람들밖에 없다고 생각해. "

" ...네, 알았어요. "

" 오늘은 여기서부터 해볼까? "

" 어, 이건... "

 

 

어벤츄린이 이리아에게 처음으로 추천한 건 칩을 가지고 숫자 21을 만들어 내는 '블랙 잭(BlackJack)'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의외로 이리아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어벤츄린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 이유는 6시간을 연달아 게임을 바꿔가며 진행 중이지만, 한 번을 지지 않았다. 

카지노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녀의 행동을 보며 기적이라 환호했다. 

블랙잭(Blackjack), 룰렛(Rouleete), 포커(Poker), 바카라(Baccarat), 다이사이(Tai Sai), 키노(Keno), 빅휠... 등등, 다양한 도박판에서 전부 승리를 거머쥐었다. 빠이 카우나 판탄, 죠커세븐이나 라운드 크랩스, 프렌치 볼, 챠카락에 트란타 콰란타까지 섭렵한 이리아의 행적에 어벤츄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어벤츄린 씨! 이거 봐요! "

" 아가씨, 표정. "

" 앗! ... 크흠, 어벤츄린 씨도 참 짖궂어요... "

" 이런, 바로 들켰나? "

 

 

이리아는 자신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어벤츄린을 향해 등을 돌리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잔뜩 따버린 포커 칩을 한 아름 안고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뿌렸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그 모습에 어벤츄린이 이리아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어벤츄린의 지적에 이리아는 부끄러워하며 다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도도한 아가씨 흉내를 내던 이리아가 어벤츄린에게 짖궂다고 말했다. 

아까부터 어벤츄린의 입꼬리가 쉴 새 없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벤츄린은 들켰다는 듯이 자신의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리아가 들썩거리더니 그래도 기쁜 마음을 참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벤츄린은 아직 이리아가 자신이 뒤에서 몰래 도와준 걸 모르는 것 같아 안심했다. 블랙 잭부터 트란타 콰란타까지. 

그 모든 승부는 게임을 못 하는 이리아를 위해 어벤츄린이 뒤에서 남몰래 도와주고 있었다. 물론 이리아도 몰랐고, 다른 이들도 몰랐을 정도로 은밀하게. 

그 사실을 모르는 이리아가 처음으로 맛보는 짜릿함에 어벤츄린을 끌어안았다. 

 

 

" 어벤츄린 씨! 엄청나게 땄잖아요...! "

" 아가씨에게 승리의 여신이 있는 모양인데? "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고 하던 어벤츄린도 결국 이리아의 미소에 넘어가고 말았다. 

안겨 오는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팔을 받쳐주며 입가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리아는 어벤츄린의 품에 안긴 채 그를 부끄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코끝을 맞추었다. 

수줍어하던 눈이 곱게 휘어지며 어벤츄린을 눈동자에 담아냈다. 이리아가 어벤츄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순간 어벤츄린에겐 주변의 시끄럽던 소음이 잦아들고 그 넓은 카지노 안에는 두 사람만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멍청한 아가씨. 

 

 

" 이래도 멍청한 아가씨 같아요? "

" ... 아니, 지금 내 눈에는 승리의 여신이지. "

" 그러면 조금 반했나요? "

" 난 언제나 당신에게 반해있다는 걸 잊지 마. "

 

 

멍청한 아가씨 같냐는 물음에 어벤츄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이리아를 보며 자신의 멍청한 아가씨라고 생각한 걸 들킨 것만 같아서. 고민하던 어벤츄린은 웃으며 그녀에게 승리의 여신이라고 말했다. 

어벤츄린의 말에 이리아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그러자 어벤츄린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쳤다. 어벤츄린의 말에 이리아는 상당히 부끄러워졌던 모양인지 다급하게 내려달라 하며 두 다리로 바닥 위에 섰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벤츄린에게 말을 거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연달아 승리한 사람이 이리아로 보였으나 실상은 어벤츄린이 전부 도와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어벤츄린이 이리아를 매우 아끼는 걸로 보여 입을 다물 뿐이었다.

검은 양복의 사내들 앞으로 안경 쓴 남자가 나와 말을 꺼냈다.

 

 

" 도박사님,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향해 웃고 있군요. "

" ... "

" 안쪽에 VIP실에서도 놀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 아가씨, 이제 그만... "

" 어벤츄린 씨! 우리 가봐요! "

" 그쪽 아가씨께선 즐길 줄 아시는 분이시군요. "

 

 

어벤츄린은 도박을 아는 사람으로서 찾아온 상대가 라운지에서 대박을 딴 사람을 상대을 VIP로 영입하는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상대가 이리아가 아닌 자신을 지목했다는 게 기분 나빴다. 

보통 VIP실로 안내하는 이유는 라운지에서 딴 금액을 VIP실에서 도로 가져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걸 잘 알고 있던 어벤츄린이기에 이리아를 보며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곁에 있던 이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VIP실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어벤츄린의 팔을 붙잡고 가보자며 말을 걸더니 안경 쓴 사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어벤츄린은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이리아의 뒤를 따라갔다. 

 

 

" 아가씨, 포커페이스. "

" 아... 미, 미안해요... 처음으로 따봐서 자꾸 무너져요. "

" ... "

" 이곳입니다. VIP실에서 더 많은 이득을 보고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리아의 곁에 선 어벤츄린은 풀려버린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 말했다. 

그러자 이리아가 당황한 듯 허둥거리더니 다시 표정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이리아에게 저들의 속셈을 말해줄 수 없었던 어벤츄린은 자신이 상대하기로 다짐했다. 

안내받은 VIP실로 들어오자, 안경 쓴 사내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문을 닫고 가버렸다.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라운지와는 달리 VIP실은 정숙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이 느낌마저도 색달랐던 이리아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어벤츄린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 여긴 되게 조용하네요. "

" VIP실이니까. 아가씨, 여기서부터는 절 따라오길 바랍니다. "

" 네, 알겠어요. "

 

 

이리아가 어벤츄린의 팔에 팔짱을 끼며 포지션을 바꾸었다. 

라운지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한 게 이리아라면 VIP실에서 움직인 건 어벤츄린이었다. 이리아가 정말로 행운의 여신이라도 되는 건지 어벤츄린이 하는 게임마다 전부 대박을 터트리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실상 라운지에서도 VIP실에서도 실력을 숨긴 채 게임에 임하고 있기에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앉아 있는 어벤츄린과 그의 뒤에 서 있는 이리아의 옆으로 칩 상자가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VIP실에 있는 모든 도박사들이 어벤츄린을 경계하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 돈 좀 꽤나 만져본 듯한 거부의 향기를 풍기는 노인이 어벤츄린의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껄껄, 호탕하게 웃었다. 

 

 

" 이봐, 어린 도박사. 이번에는 저 계집을 걸고 한 판 하지 않겠나? "

" ... 내가 왜 굳이 그 게임에 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

" 자신이 없는 모양이지? "

" 나에겐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니 질 자신이 없긴 한데, 차라리 내 목숨을 걸지. 당신은 뭘 걸 생각이지? "

" 어린 도박사의 목숨을 가져봤자 의미가 없지. 내가 원하는 건 저 계집이야. "

 

 

늙은 거부는 가상하게도 어벤츄린에게 내기를 걸었다. 

하필이면 어벤츄린에게서 건들면 안 되는 이리아를 걸라고 말했고, 어벤츄린은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가다 이리아가 움찔거리며 어벤츄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늙은 거부의 손가락 끝이 이리아를 향했다. 

늙은 거부의 시선이 이리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더럽고 추잡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 모습에 상당히 열이 받친 어벤츄린이었으나, 그 화를 꾹 참아내며 카드를 섞었다. 

하필 이리아가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가 몸매를 부각시킬 정도로 딱 달라붙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였고, 그 드레스가 한쪽이 허벅지까지 탁 트여있었다. 늙은 거부의 시선이 이리아의 가슴과 허벅지에 머물렀다. 

어벤츄린이 늙은 거부에게 카드를 한 장 던지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 그녀를 그런 더러운 눈으로 보지 말지 그래? "

" 흠... 어린 도박사도 그런 의미로 곁에 두는 계집이 아닌 건가? "

" 그녀는 내 행운의 여신이지, 그런 의미가 아니거든. "

" 어벤츄린 씨... "

" 아가씨,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

 

 

어벤츄린이 늙은 거부에게 설명하면서 곁에 있는 이리아의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마치 늙은 거부에게 감히 네까짓 게 탐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에 이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벤츄린을 불렀고, 어벤츄린은 이리아를 다독이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벤츄린과 늙은 거부의 승부는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승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VIP 도박사들과 했던 게임이 더 오래 걸렸을 정도였다. 늙은 거부는 질 때마다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 새로운 돈을 올리며 어벤츄린에게 승부를 걸어왔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어벤츄린의 편.

승리는 항상 어벤츄린이었다. 늙은 거부는 자신이 가져온 돈까지 탈탈 털리자,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테이블을 보았다. 그 어떠한 사기도 없이 정직한 판이었다. 분명 중간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부였지만, 이미 다음 판까지 끌고 갈 재력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 어벤츄린 씨...!! 대단해요! "

" 행운의 여신이 곁에 있기 때문이지. "

" 이익...!! 당장 저 두 년놈을 잡아 와!! "

" 이런, 아가씨.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

" 추하네요. 저 할아버지. "

 

 

어벤츄린의 승리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리아의 행동이 고까웠던 모양인지 늙은 거부가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외쳤다. 마치 준비라도 되어있던 것처럼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벤츄린은 더 몰리기 전에 칩 상자와 이리아를 챙기며 VIP실을 벗어났다.

어벤츄린의 품에 안긴 채 VIP실을 떠나오면서 이리아는 바들바들 떠는 늙은 거부를 보고 추하다고 말했다. 어벤츄린과 이리아는 돌아가기 전, 환전소에 들려 오늘 라운지와 VIP에서 땄던 모든 칩을 현금으로 바꾸었다. 

이후 두 사람은 위층에 있는 럭셔리 스위트 룸으로 돌아왔다. 

 

 

" 아하하! 어벤츄린 씨가 아까 그 할아버지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요. "

" 안 봐도 알 것 같은데. "

" 그래도요. 엄청나게 분해하던걸요? "

" 아가씨가 즐거우면 됐어. "

 

 

이리아는 침대 위로 환전해 온 현금을 뿌리며 그 위에 누워 발을 동동 굴렸다. 

해사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까 마지막으로 보았던 늙은 거부의 표정을 봐야 했다며 어벤츄린에게 말했다. 그녀의 미소에 정장을 벗고 있던 어벤츄린이 이리아에게 다가와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어벤츄린은 상체를 숙여 이리아의 입술에 짧게 여러 번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맞춤에 해맑게 웃고 있던 이리아의 웃음소리가 멈추었다. 그녀의 팔이 자신의 입술을 가려냈다.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얼굴을 붉히며 어벤츄린의 시선과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히고, 어벤츄린의 손이 노골적으로 이리아의 드레스를 헤집고 들어가 다리를 쓸어올렸다.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길게 맞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