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GL/나페스/240405] 멀티 가이딩

나비의 보관함 2025. 2. 7. 03:04



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건물이 무너져 잔해가 바닥에 떨어졌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높게 뛰어들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유독 튈 정도로 거칠게 능력을 사용하며 전투를 했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과하게 능력을 사용했던 여자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여자의 주변으로 몰려와 하나 같이 소리쳤다.

 

 

" 여기 응급차 불러와!! "

" 혜민 씨, 정신 차려요! "

 

 

여자는 급하게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혜민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하얀 천장이 지금 있는 곳은 병원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 전에 눈을 떠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혜민은 자신의 옆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모습에 움찔거렸다. 그 사소한 움찔거림에 잠든 줄 알았던 여자가 몸을 일으키며 혜민을 보았다.

혜민이 일어난 걸 확인한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 아, 일어나셨네요. "

" 당신은... "

" 저는 가이드 협회에서 파견된 A급 가이드, 이은설이라고 해요. "

" 아... 저는 S급 센티널, 김혜민... "

" 알고 있어요. 제가 파견된 이유도 혜민 씨거든요. "

 

 

자신을 은설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혜민에게 주었다.

혜민은 건네받은 명함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어 은설을 보았다. 파견된 이유가 자신이라는 말에 멍해졌다. 자신이 또다시 폭주하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센티널로 각성하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혜민에게는 파트너가 없었다.

가이드 협회나 길드에 수많은 가이드들이 있었으나 혜민과 파트너를 맺으려고 하질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러질 못했다. 혜민의 능력이 워낙 뛰어난 탓에 가이드들이 힘겨워했고, 그런 가이드들의 가이딩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혜민이었다.

혜민은 침상에서 어렵게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 어차피 가이딩 안 되실 테니 돌아가시는 게... "

" 어머, 가이딩은 이미 끝났는데요? "

" 예? "

" 가이딩 끝나서 폭주 진정되셨다구요. "

" 어라? "

 

 

혜민은 체념한 듯 은설에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미 끝났다는 말이었다. 이미 끝났다는 말에 상당히 놀란 혜민이 은설을 보았다. 은설은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혜민을 보며 상황 설명을 이어갔다.

혜민은 은설의 말에 자신의 손을 보았다.

괜히 손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분명 오늘도 폭주를 했었다면 그 잔재가 남아있어야 할 내부는 오히려 능력을 쓰기 전처럼 잠잠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혜민은 멍하니 은설을 보기만 했다.

그러자 은설이 웃으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 뭐... 보통은 가이드당 여러 명 배정 되는 건 알지만... 보다시피 저희 99% 확률이래서 제가 파견됬어요. "

" ... 99%? "

" 네,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긴 하죠? "

" 그렇... 네요... "

" 아, 저는 다른 파트너 분 가이딩하러 가야 해서... 이만 가볼게요. "

 

 

은설이 내민 서류에는 자신과 은설의 일치율이 99%라는 게 적혀있었다.

한국에서 이례적인 %에 놀란 혜민이 멍하니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다른 파트너에게 가야 한다며 은설이 일어났다.

혜민이 그녀를 붙잡기도 전에 은설은 이미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물러난 후였다.

멍하니 있던 혜민은 이불을 걷어내고 침상에서 내려와 은설의 뒤를 따라갔다. 병원복을 입은 상태에서 그녀의 뒤만 쫄래쫄래 쫓아갔다.

은설이 도착한 곳은 혜민의 병실보다 아래층에 있는 병실이었다.

 

 

" 안녕, 민희 언니. 오랜만이야. "

" ... 뒤에 또 뭘 달고 나타난 거야? "

" 어? ... 어?! 혜민 씨?! "

" 아... 은설 씨 파트너가 너였어? "

" 네, 그렇네요. 무슨 일인데요? "

" 내 파트너인 은설 씨가 다른 파트너가 있다고 하길래 따라왔는데. "

" ... 이게 무슨 말이야, 이은설. "

 

 

은설은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민희에게 말을 걸었다.

창밖을 보고 있던 민희가 고개를 돌려 은설을 보았다. 정확히는 은설의 뒤에 서있는 혜민이었다. 민희의 말에 은설이 고개를 돌렸고,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사람이 있자 화들짝 놀랐다.

혜민은 민희를 아는 듯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냐는 말에 혜민이 웃으며 은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흔한 연인들 같은 포즈에 민희가 인상을 찡그리며 은설을 보았다.

당장 설명하라는 말투에 은설이 움찔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 협회에서 내려온 거라 어쩔 수 없었어요. "

" 협회? 그 영감탱이가? "

" 네~ 민희 언니 같은 특이 체질도 가이딩 하니까 혜민 씨도 가능할 거라면서... "

" 그 망할 영감탱이가... "

" 근데 막상 하니까 또 되버려서... 계약이 되어버렸네요. "

" 그렇지. "

 

 

은설은 한껏 눈썹 끝을 아래로 축 늘리며 말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협회를 이야기하자 민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매번 은설을 압박하는 몹쓸 영감탱이.

결국 계약했다는 말에 민희의 시선이 은설에서 혜민에게로 넘어갔다.

은설의 어깨에 올라간 혜민의 손이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은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희의 행동에 은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민희의 손을 붙잡았다.

곧바로 은설이 가이딩에 들어갔다.

은설을 사이에 둔 혜민과 민희가 서로 눈싸움하고 있었다.

 

 

" 이제 제 가이딩 시간이니 돌아가 주세요. 선배. "

" ... 그건 싫은데. "

" 어라? 언니가 말하던 그 선배가 혜민 씨야? "

" ... 뭐? 너 내 이야기 하고 다녔니? "

" 아, 아니야! 그건 다른 선배고. "

 

 

돌아가달라는 민희의 말에 혜민이 단칼에 거절했다.

가이딩이 끝난 은설이 혜민을 부르던 민희의 호칭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 혜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민희에게 따지듯 물었다.

두 사람의 반응에 민희의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은설과 민희 두 사람의 일을 전혀 알 리 없는 혜민은 그저 둘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