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은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한 버스 터미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릴 적부터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에서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로 상경하던 저였다. 하지만 서울은 생각보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회 초년생에게는 터무니 없이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수연은 포기하지 않고 버티려고 했지만, 5년이 지나서야 포기선언을 외쳤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결국 목표로 삼았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도, 일도, 인맥조차도 모조리 손안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나갔다. 버티려고 했지만, 이젠 지쳐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벌써 포기하는 거냐고 따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지친 수연에게 닿지 않는 말이었다.
" 이곳도 오랜만이네... "
아스팔트 도로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20살이 되고 나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곳이었다. 시골 특유의 느낌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시골에서는 제 꿈을 이루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사랑도 버리고 서울 상경을 택했었다.
그 끝이 좋지 않아 이렇게 시골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수연은 이게 후회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속도 모르고 푸른 하늘을 보며 쓸데없이 날씨만 좋다고 투덜거렸다. 캐리어에 한 짐 가득 넣고서 무작정 시골로 내려온 건 좋았다.
부모님에게조차 연락하지 않고 내려온 게 문제였다.
" 어디로 가지... "
" 웜메, 니 승 여인 아이가? "
" 어? 안녕하세요! 그, 과일 가게 아주머니 맞으시죠? 더 예뻐지셨네요. "
" 하이고~ 마, 젊은 아가 그리 말해주니께 기분 좋네. 아따 이거 무라. "
" 감사합니다. 가게는 어쩌고 여기 계세요? "
" 울 아들램 반찬 줄라꼬 가는 길 아이가. "
" 아~ 동현이 말이죠? 걘 아직 서울에 산대요? "
" 어유~ 말도 마라. 금마는 완전 서울깍쟁이 다 돼부렸다이가. "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수연의 앞으로 익숙한 풍채를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아는 척 말을 걸었다.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상대를 보며 수연은 당황했지만, 이내 떠오른 인물에 화사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어릴 적 유치원에 다녔을 때부터 함께 놀며 돌아다니던 친구의 어머니였다.
사고를 치면 엄마처럼 타박하며 걱정을 해주시던 다승한 분이었다. 대화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금색 보자기로 둘러싸인 짐들을 보았다. 양손 가득 쥐고 가기에 힘들어 보일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아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아는 척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손을 내저으며 여전히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 닌 여 우짠 일이고? 니도 서울 간다꼬 현이가 이야기해사트만. "
" 아... 잠시 휴가받아서요. 부모님도 뵐 겸 내려왔죠. "
" 아따... 현이가 니를 좀 닮아야 하는 긴데... "
" 하하... "
" 그캐도 집가믄 윽수로 좋아할기라. "
" 오랜만에 뵙는 거니까요. "
" 아니믄 전화해 줄까? "
" 아, 아뇨! 괜찮아요! "
이야기하다가 어쩐 일이냐는 질문에 수연은 제 일을 말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자랑이 되겠다고, 오랜만에 보는 분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휴가를 핑계 삼아 말했다.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서 갈 집도 없는 주제에.
수연은 제가 말하면서도 입안이 무척 썼다.
어설프게 웃자 과한 친절을 베푸는 아주머니의 말에 손사래까지 치며 한사코 거절했다. 멋쩍어하는 모습에 아주머니께서는 목에 걸고 있는 휴대전화를 내리시고는 시계를 보았다.
" 하이고~ 버스 시간 다 됐네. 내는 이만 가볼테니께 얼렁 집에 드가라. 알긋제? "
" 네. 아주머니. 동현이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
" 오야~ 드가레이. "
버스 시간이 다 되었던 모양인지 아주머니께서는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서 부리나케 달려가셨다.
수연은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시선을 돌렸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며 화면을 켰다가 끄길 반복했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눌러대자, 반항이라도 하는 듯 화면이 꺼졌다 켜졌다.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수연은 가방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 휴대전화에 연결했다. 그러자 화면이 밝아지면서 충전되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는 '사랑하는 엄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수연은 크게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 어, 엄마... 왜? "
[ 너, 이 가스나야! 본가에 내려왔으면 내려온다고 연락해야지! ]
" 어, 어? "
[ 과일 댁이 전화 와서는 터미널에서 너 봤다더라! ]
" 아... "
한사코 거절했던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까 수연이 거절했던 걸 까먹으셨든 모양인지 터미널에서 마주쳤든 아주머니께서 엄마에게 전화해 알려준 모양이었다. 수연은 당황해서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말을 단번에 잘랐다.
이미 터미널로 수연을 데리러 갈 사람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엄마의 말에 수연은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데리러 올 만한 상황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장사 중이실 테니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마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어, 엄마! 누가 온다는 거야?! "
[ 엄마랑 아빠가 안 되는데 누구겠니? 승한이가 시간이 비니까 갈 거야. ]
" 어? 엄마! 걔, 걔는 안 돼! "
[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거야. 가스나야! 넌 오면 보자. ]
수연의 엄마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남겨진 수연에게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어쩐지. 시간도 안 되시는 분들이 올 리가 없었다. 수연에게 있어 승한은 설렘을 안겨다 준 첫사랑이자 따끔거리는 아픔을 안겨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온다면 가급적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의 계획이 무산되긴 했지만. 수연은 일방적으로 전화가 종료되어 까맣게 변해버린 화면만 노려보았다. 절로 짜증이 일어왔다.
" 아씨... 진짜 안 되는데... "
여기서 집으로 향하지 않고 도망칠 생각을 했지만, 수연은 금세 포기했다.
도망친다면 분명 엄마가 알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혼나는 게 두 배가 될 게 뻔한 앞날이었기에 수연은 도망치는 건 포기해야 했다.
여느 엄마들과 자식들이 그렇듯, 수연 역시 엄마의 등짝 스매시는 무서워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녀는 큰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 입구까지 걸었다. 초조함과 떨림이 동시에 수연에게로 찾아왔다. 괜히 휴대전화만 만지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아서 파란 봉고차가 하나 수연의 앞으로 멈추었다.
" 뭐야, 이 차는? "
" 아, 안녕. 오랜만이야. 꽁아. "
" 어...? 어?! 윤승한?! "
수연은 제 앞에 서는 차량에 미간을 찌푸리며 차창을 노려보았다.
중얼거리고 있을 때 차창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조금 더 낮은 목소리 톤에 자세히 봐야지만 기억하고 있던 모습이 남아있는 승한이었다.
수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승한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학창 시절에 여전히 머물러있었다. 저는 학생 때보다 더 성숙해지고 피부 결 자체가 바뀌었는데도. 하지만 승한은 여전히 연한 선을 가진 채 수려한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학생 때의 설렘을 안겨주었던 그 얼굴 그대로.
" ... 진짜 윤승한이야? "
" 하하... "
일을 하다가 말고 온 모양인 건지 땀에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목뒤로 넘겨져 있는 밀짚모자,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하얀 나시, 후줄근해 보이지만 그게 더 잘 어울리는 청바지.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입었더라면 질색할 패션조차 그의 얼굴에 밀리는 느낌이었다.
당황해하는 수연의 모습에 승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일단 탈래? 꽁아. "
" 어... 어? "
" 여기 주차 금지 구역이라... "
" 아, 어... 어어... "
오랜만이라 더 어색해 보이는 승한의 모습에 수연은 멍하니 보기만 했다.
우선 타라는 그의 말에 되물어 보자 돌아오는 대답에 그제야 주변의 소음이 귀에 들려왔다. 정말로 주차금지 구역이었던 모양인지 주변에서 시끄럽게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다.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트렁크에 캐리어를 넣어둔 뒤 조수석에 올라탔다.
수연이 당황해서 아무것도 안 한 채 멍하니 있자 승한이 팔을 뻗어왔다. 팔을 뻗으면서 그의 상체와 얼굴이 수연에게 가까이 붙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수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아... 안전벨트 안 하면 벌금 물어. "
" 아. 미, 미안... "
" 아니야. 서울에서 언제 내려왔어? "
수연이 움찔거리자, 승한은 흐려지게 웃으면서 수연의 옆에 있는 안전벨트를 끌고 와 채워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운전대를 잡고는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물어오는 질문에 수연은 저도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승한이 운전하면서 가는 시골길을 창밖으로 지켜보았다.
높낮이가 다른 건물들이 지나가고 나니 논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렸을까, 문득 궁금해진 수연이 승한을 보며 물어보았다.
" 잘... 지냈어? 오빠. "
" 어? 그럼. 잘 지냈지. 꽁이는? "
수연의 오빠라는 말에 승한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웃음을 보였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지만, 수연의 질문에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수연이 괜스레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이 혼잡한 건 여전했지만, 조금씩 다시 느껴지는 설렘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 애칭을 기억하는 모양인지, 애칭을 부르며 물어오는 질문에 수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 뭐... 나는 나름... "
수연은 승한의 물음에 답을 해주며 웅얼거렸다.
수연이 힐끗 곁눈질로 승한을 보는데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5년 전, 승한이 졸업하고 제가 졸업할 때까지. 동년배 중에서 유일하게 시골에 남아있던 게 승한이라는 소식을 들었었다.
시골에서 벗어나지 않고 집안의 일을 물려받은 동창은 승한이 유일했다.
제가 알기론 승한의 집안은 과수원을 하고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보았던 과수원네 사람들은 전부 야외 활동으로 인해 햇빛에 따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거나 무거운 걸 주기적으로 나르는 탓에 눈으로 보아도 선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곁눈질로 보는 승한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10분만 더 가면 돼. "
" 응. "
수연의 눈에 승한은 큰 짐은커녕 과일 한 박스도 겨우 들 정도로 보였다.
근육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생활 근육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외모 탓인지는 몰라도 더 여리게 보였고,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 것처럼 피부는 타지 않아 뽀얀 흰색에 가까웠다.
수연은 저보다 더 하얀 승한을 보며 의문이 들면서도 억울하게 느껴졌다.
저는 서울에서 그 고생을 하고 왔는데도, 승한은 오히려 시골 라이프를 제대로 즐긴 것 같아서. 그의 말대로 10분 정도 더 갔을까 수연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다.
" 안 가? "
" 아. 아주머니께서 너 데리고 가게로 오라 하셨어. "
" ... 잠시만 기다려 줘. "
수연이 내리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린 뒤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승한이 따라왔다.
그의 행동에 수연은 뭐하냐는 눈빛으로 보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가 데려오라고 했다는 말에 속으로 조졌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승한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오고 나니 그리운 느낌이 그녀를 감쌌다. 서울에서 그간 고생했던 것들이 조금씩이나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 여긴 그대로네. "
2층으로 올라온 수연이 제 방문을 여는데, 떠나기 전 남겨두었던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와중에 먼지 한 톨 없는 방안을 보고서 엄마가 그동안 꾸준히 청소해 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생각이 들자 울컥 차오르는 기분에 입을 꾹 다물었다.
캐리어를 방 안에 넣어두고서 바로 내려와 승한의 차에 올라탔다.
지금 바로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먼저 차에 올라탄 수연을 보며 승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 빨리 가자. "
" 아, 어. 그래... "
승한이 다시 운전대를 잡고서 시동을 켰다.
가까운 곳에 있던 수연의 부모님 댁 가게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고깃집 장사를 하는 부모님답게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시골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다.
수연은 승한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서 바로 가게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와 홀에서 서빙하고 있던 아빠의 모습에 수연은 냉큼 달려가며 부모님을 불렀다. 그러자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수연에게로 향했다.
" 엄마! 아빠!! "
" 아니 이게 누구여!? 우리 딸랑구 아녀?! "
" 아빠! 보고싶었어... "
" 수연아! 어여 와라! "
아빠가 수연을 향해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기쁜 얼굴로 딸을 반겨주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주방에서부터 수연에게 다가오면서 팔을 걷어붙였다. 점점 다가오는 엄마의 모습에 수연은 움찔 떨었다.
팔을 걷어붙인 엄마는 수연에게 다가와 그녀의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따끔거림을 넘어 통증이 느껴지는 아픔에 수연은 제가 정말로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왔다는 걸 자각했다. 따가운 등에도 수연은 여전히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었다.
" 문디 가스나야! 니는 오면 온다꼬 연락을 했어야지! "
" 아! 아파!! 엄마! 바빠서 연락할 수가 없었어! "
" 요 문디 가스나!! "
" 고마해라. 우리 딸랑구 잡것다. "
계속 등짝을 때리는 손길에 아프면서도 어릴 때보다 덜 하다는 사실에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수연은 아빠의 말에 와락 엄마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엄마는 놀란 듯 말을 더듬거렸다. 수연의 등을 때리던 손길을 멈추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어느새 커버린 키에 엄마의 품에 안기니 엄마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
수연은 아마도 이래도 제가 시골에 내려오기 싫었나보다,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겨우 생활할 텐데, 시골에 내려오면 분명 독하게 먹었던 마음이 풀릴 게 분명했으니까.
" 어, 어머? 얘 좀 봐? "
" 하하! 우리 딸랑구 왔으니 밥 묵어야지. "
" 승한이는 어디 가고 니 혼자고? "
" 아. "
엄마의 말에 수연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그때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승한의 모습이 보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엄마가 수연을 두고서 냉큼 달려가 수고했다며 승한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수연은 저와 승한의 차별적인 반응에 기가 막힌다는 듯 아빠를 보았다.
그 시선을 이해한 모양인지 아빠가 너스레 떨며 말했다.
" 승한이가 너 없는 동안 우리 많이 챙겨줘서 그래. "
" 진짜? "
" 그럼. 가게 힘들 때면 와서 도와주고, 퇴근하고도 들러서 정리도 해주고. 얼마나 고마운데. 우리 사위로 딱이야. "
" 아, 아빠!! "
사위라는 말에 수연이 화들짝 놀라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버럭 소리쳤다.
수연이 소리를 치자 승한과 다가오고 있던 엄마가 호들갑을 떨듯 수연에게 타박을 주었다.
" 가스나가 어데 아부지한테 소리 높이노! "
" 아, 아니 그게 아니고... "
" 손님들 계시니까 승한이랑 같이 어데 가 있어라. 밥 다 되면 부를 테니까. "
" 응, 엄마! "
또 잔소리를 듣는가 했지만, 엄마는 손님이 계시니 다른 곳에 가 있으라는 말을 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한 뒤 힐끗 승한을 보았다. 갈 곳이 있을까, 싶다가 문득 떠오른 장소에 승한을 보았다.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승한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말에 승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 우리가 다니던 학교 아직 남아있지? "
" 어디? 고등학교? "
" 아니, 초등학교. "
" 아직 남아있긴 한데... "
승한이 말끝을 흐렸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승한이 수연에게 알려주었다. 수연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졸업 후 인원이 적어서 근처 마을의 학교와 통합되었고,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고 했다.
그 폐교를 최근에 8090 추억의 박물관으로 개장했다는 말을 전했다.
수연은 자신이 다녔던 옛 학교였던 건물이 박물관으로 변했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았다. 박물관을 다 둘러본 뒤에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뒷산으로 들어가던 길을 발견했다.
" 어, 여기는... 윤승한! 여기 기억나? "
" 알지. 기억해. "
" 우와... 풀만 자랐지, 완전히 그대로잖아! "
수연과 승한은 차에서 내려 뒷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연은 숨겨진 뒷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굉장히 행복해했다. 길을 잃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면서도 어릴 적 기억을 따라 잘 찾아갔다.
뒷산에 어느 정도 오르자 큰 고목 나무와 그 위에 있는 판잣집이 보였다.
어릴 적과 변한 거라고는 나무가 더 커졌다는 것과 판잣집이 어른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 어!? 비밀기지... 아직 있었네?! "
" 내가 손보고 있었어. "
" 허어... "
초등학생때부터 꾸준히 이곳에서 친구들과 비밀기지라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났다.
20살이 된 성인 때부터 시골로 내려오지 않았으니 당연하게도 오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어렸을 때와 달라진 건 없었다.
변한 거라고는 성인이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는 것.
수연은 신기하다는 듯 올라가며 살펴보았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벽면을 둘러보았다. 어릴 적 그렸던 그림들과 보물 지도랍시고 붙여두었던 것들도 함께였다. 인형과 작은 담요도 있었다.
" 이걸 다? "
" 응. 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
" ... 5년을? 그것보다 더 걸릴 수도 있었을 텐데. "
" 얼마나 걸리든 네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 "
" 승한아... "
수연은 승한의 말에 적잖게 충격받은 느낌이 들었다.
제 첫사랑.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겨주기도 했고, 따끔거리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제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거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그 느낌이 수연을 감쌌다.
알싸하고 후덥지근하던 늦여름에 승한이 저에게 고백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저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과거를 떠올려 보기로 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던 여름날, 그 바람에는 열기가 담겨 있어 시원하지 않고 후덥지근했다. 귀가 아릴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산 아래로 부끄러운지 숨어버리는 해, 마치 수연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한 붉은 노을, 높이 날아오르는 붉은 잠자리. 더위에 주륵 흘러내리는 땀.
더위를 잊기 위해 입에 물었던 아이스크림은 어느새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 다시... 말해봐, 오빠. "
"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귈래? "
" 조, 조금만... 생각... 해볼게. "
승한의 수줍은 고백에 수연은 결국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떨구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수연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생각해 보겠다는 답을 남기고 허겁지겁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뒤로 1년이 지나도록 승한의 연락을 피했던 건 수연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수연은 승한을 피해 무작정 서울로 도망쳤다.
다시 기억이 떠오른 수연은 아차 싶었다. 승한이 고백했던 장소가 바로, 이 나무 밑이었다. 힐끗 승한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 왜... 기다리는데? "
" 나는 여전히 너를 좋아하니까. "
부드러운 미소로 웃으며 여전히 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주는 승한의 모습에 수연은 울컥 목이 막혀왔다. 연락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떠나버린 제가 밉지도 않았던 건지.
충분히 미워할 만도 할 텐데.
수연은 괜스레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승한의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너무 혼란스럽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아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였다.
결국 용기를 낸 수연이 승한의 고백에 답했다.
" 나, 나도... 좋아해. 그때... 답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 괜찮아. 지금이라도 답해줘서 고마워. 꽁아. "
울먹거리면서 말하는 수연의 말에 승한은 그녀를 소중하게 안아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승한의 입술이 수연의 뺨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고맙다는 말에 수연이 웃었다.
그때처럼 후덥지근한 날씨, 흐르는 땀방울, 시들어 가는 해, 점점 붉어지는 노을. 마치 그 시간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두근거려 오는 느낌과 크면서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수연은 승한에게 기다려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이 북받쳐 올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 승한 오빠. 기다려줘서... 고마워. "
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승한은 수연이 떠나고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위해 일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나, 수연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힘들게 생활했던 것들을 말했다.
부모님의 가게로 도착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들어갔다.
부모님은 손을 맞잡은 채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며 놀랐다. 수연과 승한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들어오는 그 모습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큰 충격인 것처럼 보였다. 그걸 지켜보던 아빠가 먼저 다가와 화색이 띤 얼굴로 말했다.
" 축하한다! 승한아! "
" ...어? "
수연은 들어올 때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 부끄러움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응을 깨고 들려오는 축하한다는 말에 놀라서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손님은 전부 빠져나가고 조용한 가게에 딱 4인분만 밥상에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있던 엄마가 일어나더니 다가와 승한을 안아주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살가운 엄마의 모습에 수연은 더 놀랐다.
" 정말 축하한다. 아들! "
" ... 이게 무슨 일이야? "
" 일단 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하자꾸나. "
" 으응... "
수연이 어리둥절해서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빠가 밥부터 먹자고 했다.
그 말에 상황 파악이 덜된 수연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앉아서 일단 밥부터 먹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밥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엄마가 설명을 해주었다.
20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가버린 수연을 승한은 5년 동안 꿋꿋이 기다렸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말렸다고도 했다. 오히려 매번 가게로 찾아와서 도와주는 승한의 행동에 타박도 하고, 밀어내기도 했단다. 수연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오매불망 기다리냐면서.
" 연락도 없이 가버린 여자는 기다리는 거 아니라고도 했지. "
" 하하... "
" 그때 승한이가 뭐랬는지 아니? "
" 뭐라고 했길래... "
" ... 사랑하니까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고 했어. "
승한의 말에 수연은 더 놀란 얼굴로 보았다.
사랑하니까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은 어찌 보면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승한은 제가 했든 말이 부끄러웠든 모양인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거기에 듣고만 있던 아빠가 말을 거들었다.
어째서인지 당사자인 수연과 승한보다 더 들뜬 사람 같아 보였다.
" 그런데 너희가 손잡고 들어오는 걸 딱 봤을 때 드디어 승한이의 마음이 이루어진 거구나! 한 거지. "
" 윤승한... 너, 그렇게나... "
" 우, 우리 밥부터 먹을까? "
" 난 거의 다 먹었는데? "
아빠의 말에 부끄러워진 승한이 일부러 말을 돌렸다.
그런 승한의 모습에 수연은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에 과일을 먹던 수연에게 부모님이 질문을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수연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승한과 부모님의 표정을 살펴보던 수연은 용기 내 말했다. 어찌 보면 트라우마라고 여겨도 될 정도로 힘들었던 생활을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니 힘들었지만, 감정을 다 담아내면 걱정할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 수연아, 너 잠시 내려온 거니 금방... 올라가야겠지? "
" ... 사실... "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수연은 승한이 제게 보여준 용기만큼 저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수연의 입에서는 그간 서울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성울로 막 상경해서 고시텔부터 시작했다고.
운 좋게 좋은 회사로 취직되어 들어갔지만, 인턴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엄청나게 고생했던 것도 이야기했다. 실수로 인해 상사에게 구박도 받아보고, 거래 쪽 회사에 타박도 받고, 그러다 능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에 팀장의 위치까지 올라갔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의 스파이로 들어왔던 신입 때문에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그 모든 걸 수연이 뒤집어쓰고 말았다는 거였다.
" ... 서울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켜서 다시 내려온 거라, 다시 올라갈 생각은 없어요. "
" ... 감히!! 어딜 남의 귀한 딸랑구한테!! "
" 이제 괜찮아요. "
" 그 자식들이...!! "
" 그동안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어서 버틴 걸지도 몰라요. 이렇게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아요. "
" 수연아... "
" 엄마, 이젠 내가 가게도 도와주고 할게. 걱정하지 마! "
" 당연한 걸 말하고 그러니! "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수연의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빠가 화가 난 모양인지 버럭 소리를 쳤다. 테이블의 쾅 내려치자, 접시가 흔들렸다.
아빠의 화에 수연은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했다.
수연의 이야기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엄마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괜히 괜찮은 척하면서 답했다.
옆에 앉아있던 승한이 조용히 수연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 이제 정말... 괜찮아. "
" 수고했어, 꽁아. "
수연은 승한의 어깨에 기댄 채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울고 싶었지만, 곁에서 이렇게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눈물을 보이는 것보다 웃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가게에 남아서 뒷정리하고 간다며 두 사람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했다.
수연은 남아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오는 동안 피곤했을 테니 먼저 가서 쉬라는 말만 돌아왔다. 승한이 수연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군데군데 있는 가로등을 지나면서 수연과 승한이 손을 맞잡았다.
" 이 길도 오랜만이네. "
" 그렇지? "
수연은 시선을 돌려 승한을 보았다.
어릴 때는 저보다 작았던 손과 키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고등학생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비슷한 키였고, 눈높이도 비슷했다.
궁금했던 수연은 승한에게 물어보았다.
수연의 시선이 승한의 시선에 맞닿기 위해 위로 향했다. 시선이 맞닿자, 수연은 어릴 적 승한이 떠올랐다. 저보다 작아서 지켜줘야만 할 것 같던 예쁘장한 아이가 이제는 저보다 컸고, 오빠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사실에 수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언제 그렇게 컸어? 어릴 땐 나보다 작았는데. "
" 20살 지나고 과수원 일 하면서 크기 시작하던걸? "
" 키가 몇이야? "
" 지금 178cm. "
수연과 승한은 걸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걸음은 천천히 느려졌지만,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수연은 아쉬웠던 모양인지 엄지손가락으로 승한의 손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승한은 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자는 말에 승한과 수연은 다시 걸었다. 아까보다 더 느려진 걸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아까보다 더 넓은 반경으로 걸었다.
" 우리... 한 바퀴만 더 돌고 갈까? "
" 그럴까? "
이야기하는 사이에 또 금방 한 바퀴를 돌아버려서 이제는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꺼져있던 집안의 불이 지금은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 앞에 선 수연은 아쉬운 티를 팍팍 냈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승한은 귀엽다는 듯 보면서 말했다.
수연 못지않게 승한 역시나 아쉬웠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드디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게 싫었다.
하지만 여기서 집에 보내지 않으면 분명 그녀의 부모님께서 혼낼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성인이기에 무슨 상관인가 싶으면서도 미래를 생각해 오늘은 수연을 집에 보내주기로 정했다.
" 우리 내일 데이트 할까? "
" 데이트? "
" 응. 내일 나 일 마치고. 어머님네 가게에 있으면 내가 데리러 갈게. "
" 그래! 내일 데이트 해! "
내일 데이트를 할 생각에 들뜬 수연은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을 잊은 지 오래였다.
승한이 고개를 숙여 수연의 뺨과 입술에 짧게 입 맞추었다. 그의 입맞춤에 수연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승한을 보았다.
멀뚱거리며 보는 시선에 승한이 웃으며 수연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승한 손길이 떨어지자, 수연은 다시 아쉽다는 눈빛으로 승한을 보았다. 수연이 발끝을 세워 승한의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맞추고는 수줍게 웃었다.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다급하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허겁지겁 대문을 열었다.
" 조심해서 들어가. 잘 자고. 꽁아. "
" 저, 승한이도 조심해서 들어가! 잘 자고. "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서야 수연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집에 들어왔던 엄마가 뒤늦게 들어온 수연을 보며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서 매섭게 노려보는 엄마의 눈빛에 수연은 움찔거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승한과 했었던 이야기를 전부 할 생각은 없었지만,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러자 매섭게 노려보던 엄마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 닌 우째된 게 우리보다 먼저 가놓고 이제 들어오니? "
" 승한이랑 있었어요. "
승한이랑 있었다는 말에 잔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다.
수연은 바로 방으로 올라가선 짐 푸는 건 내일 하기로 했다. 침대에 지친 몸을 그대로 눕히자 축 늘어졌다. 그때 휴대전화에서 띠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화면을 보자 승한에게서 카톡이 온 거였다.
귀여운 스티커와 함께 잘 자고 내일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걸 본 수연이 웃으면서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승한이와 카톡 한다는 게 너무 기분 좋아서.
바보같이 20살의 나는 왜 설레던 그 사랑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간 건지. 후회가 조금 들었지만, 내일 있을 데이트를 기대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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