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의 이야기
나인과 리아가 처음 만난 건 청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만남 이후로, 종종 알프스로 나인이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나인이 굳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면서 리아를 만나러 온 이유는 단순했다. 푸른 초원 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배경 삼아 해맑게 웃고 있는 주근깨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잠깐의 관심으로 그칠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나인은 단순한 감정일 거라고 치부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했다. 마치 소용돌이치는 파도 한 가운데 쪽배에 올라타 거센 바람과 파도에 저항하고 맞서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연갈색 머리카락, 연분홍빛 눈동자, 콧등에 콕콕 박힌 사랑스러운 주근깨.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한 어수선하게 땋은 양갈래도 이젠 귀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감정이 중증이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교적 빨랐으면 빨랐다고 볼 수 있었다.
" ... 리아. "
" 어서 와요, 나인. "
" 네. "
" 오늘은 크림 스튜에요. "
" 기대되네요. "
그리고 무엇보다 알프스로 찾아올 때마다 마치 둘의 집인 것처럼 반겨주는 리아의 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푸른 들판 위에 서 있는 소녀는 나부끼는 바람을 등지고서 햇살보다 더 따사롭고 다채로운 미소로 언제나 자신을 맞이해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이 설레고 있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아마도라고...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라면 다른 이유 따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연상의 여유라고 하던가. 포근하게 감싸오는 리아의 포옹과 식사라면 힘든 것도, 외로운 것도 쉬이 물리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화려한 밤사이에 부드러운 상냥함이 피로를 풀어주었다.
신뢰하고, 애정을 가지고, 마음을 주고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리아를 품었다.
리아의 이야기
어릴 적부터 쭉 알프스에서만 산 소녀, 시골이라고 한다면 또 할 수 있는 알프스.
그곳에서만 살아온 리아에게 갑작스럽게 방문한 이방인은 새롭게 찾아온 자극과도 같았다. 친해지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워지는 건 애초에 바라지 않았다.
그야, 고작 시골 소녀인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알프스로 오면 자신을 찾아주는 나인의 모습에 설레는 건 왜일까. 알 수 없는 감정과 나인의 얼굴을 볼 때마다 확 올라오는 열기는 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했다.
" 오늘은 데이지 꽃이네요? "
" 리아랑 닮은 거 같아서 사 왔어요. 귀엽지 않나요? "
" 네? "
어린 연하의 플러팅은 시골에서만 살아온 소녀가 버티기 버거운 문제였다.
작은 꽃을 선물하며 내뱉는 말에도 리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심장이 콩콩 뛰면서 귓가를 간지럽히면 또다시 우물쭈물하며 답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그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대화를 하던 도중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선명한 소리에 서로 웃음이 터진 날이 있었다.
서로의 배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에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마주 보며 웃어댔었다. 그날 이후로 나인이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가거나, 하루 머물다가 가는 것도 점점 늘어났다.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요리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포근하고 따스하게, 이리저리 치이는 삶 속에서 잠시의 휴식이 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나인에게 닿은 걸까, 상냥하고 부드럽던 그의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 오늘은 빨간 장미예요. "
" 활짝 폈네요. "
" 장미의 꽃말을 아세요? "
사랑, 로맨스, 깊은 열정.
내가 생각하기에 나인과 나는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이 호감을 가졌고, 그 호감이 점점 커져 애정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일상 속의 따사로움과 다정함에, 특별한 날의 즐거움과 행복함에.
그렇게 서로에게 한 스푼씩 주거니 받거니.
내 생각에도 지금 나인을 향한 내 감정은 사랑임이 틀림없었다.
'줄리아 차일드 타입' 카테고리의 다른 글
[BL/1차cp/241222] 그해 겨울의 끝에서 (0) | 2025.02.18 |
---|---|
[HL/드림/241221] 첫 눈에 반한다는 것 (0) | 2025.02.18 |
[NL/드림/241218] 탐사 기록 #1 ~ #3 (0) | 2025.02.18 |
[HL/드림/241209] 동거가 오래되면 벌어지는 일 (0) | 2025.02.16 |
[HL/드림/241130] 붕스 서사 (0) | 202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