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1차cp/2407017] " 안녕 "

나비의 보관함 2025. 2. 8. 02:58


※해당 글은 한 웹툰 속 BL CP를 위해 재해석 된 글입니다. 작중에 원작과 동일 혹은 유사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부분이 거부감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볼까 한다.

얼마 전, 방학 때 있었던 혜영의 생일 파티가 끝난 뒤 은범은 개인적으로 혜영을 찾아와 선물과 함께 외투를 빌려주었었다. 사실 경준가 은범에게 연락을 하기 전에 이미 은범은 혜영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눈치가 없기로 소문난 은하를 제외하고 다들 어느 정도 눈치는 있었으리라.

그래서 모두가 아무런 말 없이 혜영과 은범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은범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혜영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다만, 은범이 느끼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혜영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은범의 마음 안에는 혜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으니까. 수학여행 때, 혜영이 대놓고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한 것도 있었고, 혜영이 하는 행동을 보고도 모르면 그건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물론 은진은 제외였지만.

 

 

" 하... "

 

 

누군가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은범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혜영의 마음을 거절하기 힘들었고, 거절하지 않고 두기엔 괜히 더 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은범은 학기 중이었지만, 자신이 태율에 대한 본인의 마음으로 인해 충분히 혼한스러웠기 때문에 혜영을 신경 쓸 틈조차 없었다. 

은범의 마음에 혜영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1반과 2반, 반이 달랐기 때문에 그리 자주 마주치지도 않았고, 혜영의 마음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 그리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컸기에 돌려서 거절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랬다. 생일인 혜영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말할 기회조차 안 생길 것 같아서.

 

 

" 은범이는? "

" 어? "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혜영은 자신의 마음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개학을 맞이해 복도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자아이들은 사이좋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던 은범은 그저 묵묵히 대화를 들으며 걷고 있었다.

그때 혜영이 몸을 돌려 은범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생일 때 있었던 일이 마치 꿈인 것처럼. 은범에게 있어 이보다 더 당혹스러운 일은 없었다. 혜영이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부터는 은범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기다 은범은 자신도 짝사랑 중이었기에 혜영에게는 계속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태율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분명 혜영이도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할 수가 없었다. 은범은 이후로 다시 평상시처럼 지내는 혜영을 보고 자신도 그냥 평소처럼 지내기로 했다. 그 탓인지 시선이 언제나처럼 태율에게로 향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흘끗거리며 보기 바빴다. 

 

 

" 아... "

 

 

그때 혜영은 은연 중에 깨달았다. 은범의 마음이 자신을 향할 리 없다는 걸.

은범이 워낙 표정이 무표정하고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찌 쉽게 변하랴, 혜영은 자신의 마음이 보답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 ... 괜찮아! 노력하면... "

 

 

노력하면, 과연... 은범이 자신을 봐주기는 할까.

혜영은 잠시 쥐고 있었던 주먹을 풀었다. 은범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걸 알아차린 이후부터 조금 의기소침해진 혜영이었다. 

 

 

*

 

 

방학이 끝을 맞이하고, 모든 학생들이 학교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호랑신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포함이었다. 방학 전에 연락을 끊어내고 방학 때 아무런 연락도 없던 수혁이도 등교를 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이미 교실에는 경준, 태율, 은하, 은범, 방금 막 도착한 은진까지.

모두가 와있는 상태였고, 뒤늦게 도착한 수혁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 야, 류수혁. 너 뭐냐? "

" ...! "

" 방학 때 연락 한 번 안 되고? "

" 응? 연락했었ㄴ... "

" 아, 야야야~!! 도경준, 도경준! 쟤 감기~! "

" ? "

 

 

경준가 수혁이에게 왜 연락이 되지 않았었냐고 물어보니 태율이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설명했다.

태율은 그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어째서 이런 설명을 붙이고 있는지, 경준에게 거짓말을 하며 둘러댄다고 생각해 괜히 진땀이 흘러내렸다. 분명 그랬는데.

 

 

" 어?! 너네 나 감기 걸렸던 거 어떻게 알고 있어? "

" 엉? "

" ? "

 

 

태율은 자신이 애타게 설명한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것에 멍해졌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인 수혁이 정말로 아팠다는 것과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라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경준와 수혁이 대화를 나누는 걸 가만히 보았다. 

등 뒤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 복잡한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 ... Suiba, 이게 뭐야? '

 

혹여나 수혁이가 친구들에게 개 같이 까일 것 같아 애타게 둘러대던 말이었는데, 허무해지기만 했다.

태율은 조회를 마치고 나서 이동 수업이 있어 교과서를 챙기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반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았다. 수혁이와 방학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 태수라는 녀석이었다. 

태율은 기다리다 보면 수혁이 먼저 말해줄 거라 생각하며 교과서를 들고 먼저 컴그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업 종이 울려도 수혁이 오지 않자, 태율은 눈썹을 찡그리며 문 너머를 보았다.

선생님이 들어와 학생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데도 오지 않는 수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 ... 류수혁!! 여기 왔습니다~!!! "

" 너 이 녀석, 뭐하다가 이제 들어와? "

" 죄송합니다. 똥 싸다가 늦었어요^^; "

 

 

태율의 시선이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혁에게로 향했다. 

그 녀석은 태평하게,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바람이와 대화를 했고,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도 잠시였다. 수업에 집중해야만 했으니까.

태율은 수업을 마치고 나서 주머니에 있던 막대 사탕의 비닐을 까서 입에 넣었다. 

친구들과 반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수혁이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간 제대로 듣지도 못할도 모른다고. 그러다 반으로 돌아온 은범이 검은 종이가방을 받아온 걸 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이랑 상당히 어색해서 거리감은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제 단둘만 남게 되면 어색해 미치려고 해서였지. 항상 어디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면 자신을 보고 있던 은범을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태율은 괜히 더 머쓱해졌다.

 

 

" 은하수, 너 혼자 뭐 할 거냐? 집에 가냐? "

" 아니? PC방 가서 놀 건데. 나? "

" 너 혼자? "

 

 

태율은 학원을 가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은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곁에 있던 수혁과 대화하는 모습을 빤히 보았다. 혼자서 PC방을 갈 거라는 은하의 모습에 괜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곁에 있던 수혁이 학원 째자는 말을 해왔다.

태율은 힐끔 수혁을 보다가 수혁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그대로 학원으로 들어갔다.

 

.

.

.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더운 열기를 싹 흘려보내 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태율은 창밖을 보며 좀처럼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는 비를 보며 말하고 있는 경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이미 여러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던 탓인지 이런 소소한 장난이 편했다.

 

 

" 금방 안 그칠 거 같은데. 그냥 맞고 가야 하나? "

" 가긴 어딜 가? 박쌤이 주신 문제풀이 해야지ㅋㅋㅋ 어딜 튈라고 "

" ... "

" 문제 다 풀면 비 그쳐 있을거다. 그때 가~ㅋㅋㅋ "

" 비가 얼마나 오나 좀 볼까... "

" ㅁㅊ놈아!!! "

 

 

비록 그 장난의 결말이 아찔한 복수를 받았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장난만 치려고 했던 것이 단체의 일탈이 되고 말았다. 은범, 은진, 은하, 경준, 태율까지. 특히 방과후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은범, 은진, 경준는 간이 크게도 수업을 째버린 것이었다.

택시를 타기 전, 다섯 명은 사이좋게 가위바위보로 앞자리에 탈 사람을 정했다.

가장 먼저 진 것은 은범이었다. 이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태율은 은범을 보며 가위바위보를 잘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태율은 백미러로 은범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은진의 무게 때문인 건지 아니면 압박되는 느낌 탓인 건지 사색이 되어 파들파들 떨고 있는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 바로 방학 중에 놀러 갔을 때. 은진이 자신을 끌어안고 잠들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은범의 모습에 덩달아 사색이 되어선 시선을 돌렸다.

한참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은하가 말을 걸어오자 태율이 대화를 이어갔다. 비록 은하가 마지막에 헛소리를 지껄이긴 했지만, 태율은 그게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에 크게 화내진 않았다. 

 

 

" 뭔 개 삽소리를... 아, 저기서 세워주세요. "

" 뭐, 삽소리? "

" 야 택시비 보태. "

 

 

피시방 앞에 택시가 멈추자, 결제를 마치고 하나같이 비를 맞지 않기 위해 후다닥 뛰어갔다. 

어차피 뛰어봤자 젖을 건 알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서였다. 피시방으로 올라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비가 오니까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은 언제나 깨지기 마련이었다. 

자리를 찾기 위해 둘러보다가 그곳에서 수혁을 발견했다. 

 

 

" 어? 백은하! "

" 류수혁! "

" 야 뭐야 너네ㅋㅋㅋ 박쌤한테 뒤지려고 수업 쨌냐? "

" 류수혁 ㅁㅊㅋㅋㅋ "

 

 

웃으며 떠드는 수혁이를 보고 있으니, 평소처럼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수혁이를 따라 자리로 가서 태율과 은범의 몸이 동시에 멈칫했다. 은범은 애초에 성격부터가 낯을 가렸고, 태율은 의외로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다행인 건지 시간이 지나자 낯가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태율은 새로운 게임 진행을 위해 화장실 간 두 놈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음식도 오지 않으니,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튄 거라면 잡으러 가야 하니까. 분명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놈들을 잡으러 화장실에 왔을 때는 기분이 진창에 박혀버렸다.

 

 

" 그럼 너는? "

" ...? "

" 하나 줄까? "

" 언제 왔냐? "

" ...!!! "

 

 

태율은 자신의 등장에 놀란 은하와 수혁이를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며 말없이 수혁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계속 피울 거냐고 물어오는 태수의 말에 태율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 안 피워. "

" 아 그래? 의외네, 피우는 줄 알았는데. "

" 나도 의왼데. 류수혁. "

" ... 어?! "

" 넌 언제부터 피웠냐? 담. 배? "

 

 

태율은 상당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덜컥 겁을 먹고 몸을 움찔거리거나 식은땀을 흘려도 화가 나는 건 멈출 수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지냈기에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자신에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것과 학생의 신분으로 담배를 피웠다는 것에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그렇게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하고 나서 친구들은 하나 같이 수혁을 두고서 취조실 분위기를 만들었다. 

제일 충격을 받은 태율은 어제부터 계속 저기압이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흡연했던 수혁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체육 수업이 있다고 박쌤이 와서 알려주었다.

태율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친구들에게 까이고 있던 수혁이 태율을 불렀다. 

 

 

" ... "

" 야, 남태율... "

" 너 혹시 뭐... 기분 안 좋냐...? "

" 아니? 내가 왜 너 때문에 기분 나빠야 하는데? "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태율은 먼저 길을 나섰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쁜 건 비단 수혁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수혁이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당으로 가는 길 내내 수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와도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심정이었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장난까지 치니 짜증이 났다. 담배를 끊겠다는 수혁의 말에 태율은 결국 졌다는 듯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돌려 수혁을 보며 말했다.

 

 

" 진짜 끊어라. 네 목숨을 끊어버리기 전에. "

" 이 ㅅㄲ; 말하는 거 봐라. 사람을 아예 보내버리네. "

" 도경준 말대로 뒤지게 혼나야 정신을 차리지. "

" 박쌤한텐 비밀이다~ㅋㅋㅋ "

" 담배 끊고, 이참에 친구도 좀 정상적인 애들이랑 놀아라. "

 

 

태율은 온갖 고민 중에서도 자신의 친구를 위해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었지만, 욱해서 내뱉은 말이기도 했다.

자신과 놀던 수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수혁이 흡연을 하게 된 이유를 다른 곳이 아닌 다른 친구가 이유라고 판단했다. 되물어오는 수혁이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태율은 자신의 말이 너무했던가 생각이 들었다.

 

' 아... 방금전에 한 말, 좀 그랬나? '

 

거의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수혁이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내뱉은, 그런 말이었다. 진심은 거의 없는 수준의 빈 말과도 가까웠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수혁의 모습에 태율은 아차 싶었다.

그렇게 오해했다며 해명하려 했지만, 수혁은 듣지 않고 발걸음을 강당으로 옮겼다.

체육 수업을 마치고 반으로 돌아온 태율은 내내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시 되짚고 나서야 자신이 실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혁이에게 어떻게든 사과하고 해명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하교하는 시간이 될 때까지도.

 

.

.

.

 

두 사람 사이에 차갑다 못해 냉하기까지 한 분위기에 은하는 어리둥절했다. 

지하철 안에서 은하는 또 눈치 없이 태율과 수혁의 사이에서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태율은 긴 대답 대신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고, 보다 못한 은하가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하마터면 그게 도화선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수혁이 짜증을 냈다. 

 

 

" 내가 쟤 때문에 왜 끊어야 해? 왜 그래야 하는데?! "

" ...! "

" 어? "

 

 

버럭 소리치던 수혁이 내려야 하는 곳도 아닌데 내려버렸다. 

남겨진 은하가 다급하게 수혁이를 불러보지만, 수혁이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태율은 수혁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도로 돌려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수혁이 한 말이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된 만큼 자신이 한 말도 수혁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

.

.

 

" 야...!! 남태율!! 류수혁이...!! "

" ? "

 

 

태율은 은하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몸을 돌렸다.

하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나가려던 순간 박쌤이 들어오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수혁이도 함께 들어왔다. 태율은 박쌤의 뒤를 이어 수혁이가 들어오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애써 아무런 느낌도 안 받은 척 장난을 치며 말을 걸었다.

 

 

" 야, 너 언제 왔냐ㅋㅋㅋ "

" 박쌤이 류수혁 킬 각 재는 거 생방송 하시려는 거임? "

" 삼가 중렬의 명복을 빕니다... "

 

 

친구들끼리 저마다 장난을 치는 말도 잊지 않고 나왔다. 

모두가 웃으며 떠들고 있을 때, 수혁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 박쌤의 입에서 나왔다. 순간 놀란 경준가 덜컹거리고, 은진이 화들짝 놀랐지만, 태율은 자신이 느꼈던 쎄한 느낌을 알게 되자 가만히 수혁을 볼 뿐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도 태율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전부 몰래카메라인 것 같아서? 장난인 것 같아서? 전부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혁이의 모습에 태율은 자신도 모르게 팔이 뻗어나갔다. 

 

 

" 어디로 가는데 "

" 말 했잖아. 엄청 좋은 데로 간다고~ "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쏙 빠져나갈 정도로 멍하게만 있었다. 수혁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도 태율은 멍하게 있었다. 수혁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잠시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 뒤를 쫓듯 빠르게 달려 나갔다. 복도를 걷고 있는 수혁의 모습에 태율이 다급하게 불렀다. 

 

 

" 야! 류수혁...!! "

" 어? 뭐야. 나 바래다주려고? "

" 하아... 너 어디로 전학... 아니, 너 언제 전학 가기로 정한 거였어? "

 

 

태율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표정 하나 변화없이 말을 하지 않는 수혁의 모습에 더 열을 받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건 저 혼자라는 듯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이 어디로 이사를 가는 건지, 어느 학교로 전학을 가는 건지. 

언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지도 전혀 모르고 지냈다.

참다못한 태율은 교무실로 들어가 박쌤에게 말했다. 

 

 

" 뭐? 수혁이가 이사간 곳을 알려 달라고? "

" 네! "

" 안돼. "

 

 

태율은 앞뒤 분간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박쌤에게 알려달라고 청했다. 

아무리 하소연해 봐도 박쌤은 개인정보라며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듯했다. 태율은 갑갑한 마음에 수혁이와 중학교를 같이 나온 것과 같은 반에 서로 부모님도 알고 지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생각했던 것보다 묵직하고 뼈 아픈 옳은 말이었다. 

분해서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이 절로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박쌤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펄펄 끓어서 잔뜩 뜨거워진 쇠달구지에 찬물을 퍼부은 것처럼 화가 가라앉았다.

잔뜩 힘이 빠진 태율이 반으로 돌아와 경준에게 폰을 돌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생각에 휩싸였다. 박쌤이 했던 말,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수혁이가 했던 말, 지하철에서 은하의 말에 욱해서 짜증을 부리던 수혁이의 말. 

자신이 느꼈던 쎄함을 무시한 결과가 이것이라는 게 짜증이 났다. 

 

 

" ... "

 

 

혹시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수혁이네 집으로 돌렸다.

그간 수혁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기를 원하기라도 하는 듯이. 사람이 떠나간 집안에, 가구 하나 없고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는 공간을 보자 태율은 그제야 수혁이가 내뱉은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갑작스럽던 전학의 통보, 뒤늦게 쫓아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그때를.

태율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손으로 눈을 가리며 눈물을 참아냈다. 자신은 울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참았다. 

 

*

 

그러기를 며칠, 여전히 태율의 기분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태율이 신경 쓰이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태율이 몰래 친구들끼리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율의 옆에 앉아있던 은진이 힐끗 태율을 보다가 자신이 먹으려고 했던 초코바를 보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 태율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초코바를 건넸다. 다만 태율은 지금 입안에 무언가를 넣고 싶지 않았기에 은진의 배려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율아, 이거라도 먹고 힘내... "

" ... 괜찮으니까 너 먹어라. "

" 단 거 먹으면 긍정적으로 생각이 될걸? "

" ... "

 

 

태율은 항상 먹는 것에 욕심이 많은 은진이 저에게 초코바를 건네주는 것이 놀랐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수혁이의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른 친구들은 태율의 반응을 살피며 저들끼리 숙덕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태율의 일상은 그저 책상 위에 엎드려 있거나 아니면 창밖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때 경준가 태율이를 불렀다.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묘하게 바라는 게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 야! 남태율 "

" ? "

" 어디 가냐? 학원? "

" 어, 왜 "

" 아, 별건 아니고~ 너 괜찮으면 오늘 하루만 학원 째라. "

 

 

태율은 어이가 없었다. 

기운이 없었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있는 상태였는데 친구들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그마저도 차게 식어버린 기분이었다. 하루만 학원을 째라고 말하던 경준가 데려온 곳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태율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부르라는 친구들의 등쌀에 이기지 못해 결국 예약하려고 할 때였다. 시선에 들어온 노래 한 곡, 그걸 말하며 경준에게 불러달라고 청했다. 

 

 

" 달의 전자 셀라문ㅋ ㅁㅊ 언제 적 거야 ㅋㅋㅋ "

" 선곡 센스 봐라~ "

" 불러줘. "

" ...? 뭐를? 뭐, 설마 저거 불러달라고? "

 

 

기겁하는 경준에게 태율은 아무렇지 않게 부탁했다. 

부르지 않겠다는 경준의 모습에 우울한 모습을 보이며 마이크를 쥐는 시늉을 하자 경준가 급하게 마이크를 뺏어가더니 불러주기 시작했다. 

태율은 노래 간주를 들으며 어릴 적 수혁이와 함께 귀를 뚫던 날을 회상했다.

경준는 우울해 하고 있는 태율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최소한 이 녀석이 우울해하는 걸 보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래방을 온 거였기에 보다 못해 결국 불러주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 아, 키 개 높네... '

 

여자 키의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높게 올라가는 음만큼 혈압도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힐끗 시선이 태율에게로 향했다. 태율의 표정이 어째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복잡한 심경이 더해지자, 노래 부르는 게 더 빡세게 느껴졌다. 

 

 

"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

" 셀라문? 만화 주제곡 아냐? "

" 경준 잘 부른다~ "

"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

 

 

그렇게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태율이 여전히 혼자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고, 다른 친구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경준가 자신에게 온 연락을 보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태율은 경준가 폰을 주고 가자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상대는 은하였다. 경준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보는 문자였다. 태율은 걱정이 담겨있는 문자에 짧게 남겼다.

 

 

[야 남태율 좀 어때 ]

[ ㄱㅊ ]

 

 

태율은 생각이 많아졌다.

부르기 싫다더니 우울해 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 높은 키의 노래를 불러준 경준, 먹을 거라면 환장하는 놈이 양보까지 해주는 착한 먹보인 은진, 함께 있진 않았지만 계속 걱정하고 있는 은하, 말은 없었지만, 곁에 있어 주는 은범.

어찌 보면 외면해도 될 문제를 친구가 겪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게 고마웠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놀고 나왔을 때, 결국 참지 못한 분노가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한 번 내뱉은 말이 계속되자 잇따라 나왔다. 계속 터지는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웠지만, 짜증이 분노가 되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이... 망할... 개새끼야아아아!!!! "

" ...!!! "

" 내가 박쌤 책상 뒤져서라도 너 ㅅㄲ 사는 곳 찾아간다!!! "

 

 

아주 찰진 욕을 거리 한복판에서 냅다 지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쌓이기만 한 이 분노를 내보내야만 했으니까. 울분이 터져 화를 쏟아내자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울기만 하거나 멍하게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화를 내는 게 나았으니까.

가장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와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져야만 한 분노를 풀고 싶었다. 

 

 

" 야, 퍼피...!! 뭐해...!! 저 자식 말려! 권은범 어디 갔어?! "

" 아~~!!!! "

" 야~!! 진정 좀 해! 남태율!! 아니면 차라리 울던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뭐 하는 거야!! "

 

 

길거리 한복판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태율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며 웅성거렸다.

경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은진을 부르며 태율을 말리기 시작했다. 짜증 나고 속상해서, 그러한 이유로 오랜 친구였던 수혁이를 욕하는 모습에 은진과 함께 달라붙어 태율에게 말했다. 

차라리 울라고,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할 테니까. 

그 말에 갑자기 태율이 조용해졌다. 소리를 꽥꽥 질러대던 걸 멈추자 오히려 더 이상한 느낌에 경준는 긴장했다. 

 

 

" 울어? 내가 왜, 내가 왜 울어야 해? 내가 그 새끼 때문에 울어야 해?? 내가 왜!!! "

" 악! 이 ㅁㅊ놈아!! 소리 좀 작작 처질러!! "

" 류수혁 이 개 ※★!?자식아!!! "

" 야 이은진 뭐해! 힘 좀 써봐!! "

" 경준야... 나... 밥을 안 먹었더니 힘이 안 나... "

" **!! "

 

 

바둥거리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태율 때문에, 태율을 말리기 위해 힘을 쓰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서로의 힘이 맞물리는 탓에 그대로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모두가 지켜보는데 거리 위로 세 사람이 나란히 바닥에 누워버렸다. 

 

 

" 아 진짜 쪽팔리게...!! "

" @#!#$%#%!%^~*!!!! "

" ... "

" ... 울어도 괜찮아, 남태율. "

" ... "

 

 

누워서도 소리를 지르며 분에 못 이겨하는 태율의 모습을 지켜보던 은범이 가만히 태율의 앞에 앉아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내고 있던 태율이 계속해서 욕을 지껄였다. 은범의 말 한 마디에 태율의 욕이 줄어들더니 조용해졌다. 은범이 태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주고 있었다.

은범의 그 작은 행동이 태율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토닥거리는 그 손길을 지켜보고 있던 경준와 은진은 당황하고 있었다. 

낯선 손길이 토닥거려 오는 손길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건지 태율이 결국 참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중한 이를 잃은 것처럼 목 놓아 울지 못하고 울음을 삼키는 모습에 세 사람이 당황하고 말았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은진이 태율이의 몸을 앉혀주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주저앉은 채 끅끅, 울음을 참아가며 우는 태율의 모습에 당황한 은범이 태율의 등을 토닥여 주며 안아주었다. 그러자 태율이 은범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서 울었다. 

 

 

" ... "

" 끅... 흡, 흐엉... "

" ... "

 

 

태율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세 사람이었기에 당황한 상태였다.

물론 태율이 그동안 속상해하고 있다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경준의 경우엔 방금까지 자신이 차라리 울어라고 말하기 까지 했었지만, 막상 울고 있는 태율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넘어졌을 때,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일어나 쪽팔리다고 했던 경준가 창피해 하던 것도 잊고 태율을 달래주었다.

은진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파서 힘이 없지만, 그래도 눈앞에 친구가 울고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세 사람이 울고 있는 태율을 달래기 위해 어정쩡하게 다독여 주고 있었다. 

은범은 자신의 품에 안겨 우는 태율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귀 끝을 붉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