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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드림/240310] 시작되는 이야기

나비의 보관함 2025. 2. 6. 02:47



한 남자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깊은 속에서부터 절로 숨이 올라왔고,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남자는 결국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듯 내뱉었다. 하얀 입김이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멀리 날아갔다.

지운은 굿을 해달라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이곳까지 날아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한국 어디도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였다. 의뢰인이면서 당돌하게도 그에게 자신이 있는 곳까지 와달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 하... 굿은 한국에서 하면서 만남은 미국이라... "

 

 

그리 생각하니 깊은 속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시아에서나 있을 법한 무당을 미국까지 부르는 의뢰인이나, 큰돈을 준다는 말에 대뜸 미국으로 향하는 자신이나.

신병으로 인해 무당이 되고 난 이후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받아왔다.

굿판이 일어나는 곳이나 혹은 무당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그게 숲이든 밭이든, 무덤 앞이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지운을 향해 돈에 환장한 선무당이라며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 따위 지운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돈이었으니까. 무엇이 그리 돈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지운조차도. 지운은 어린 나이에 신을 모시고 살았고, 살다 보니 돈이 가장 좋다는 걸 알았을 뿐이었다. 이번 일도 돈이 아니었다면 미국까지 갈 일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운은 곧바로 의뢰인을 찾아 나섰다.

 

 

" 어서 오세요. "

" 무슨 일... 허어...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군. "

" 마, 맞아요.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어요. "

" 거기다 비슷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

" 마... 맞습니다! "

 

 

지운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풍기는 악취에 코를 급하게 틀어막았다.

어디에서 나는 악취인지는 몰랐으나, 사특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코를 막은 채 시선을 돌려 의뢰인을 보았다. 지쳐 잠들어 있는 듯한 아기와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아이의 엄마.

굳이 따지고 살피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병실을 둘러보던 지운이 말을 이어가자, 아기 엄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아이 엄마도 별 기대는 하지 않은 듯했다. 대충 설명을 들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중 지운이 짧게 혀를 찼다.

 

 

" 쯧, 빨리 해결해야겠군. "

" 어, 언제가 좋을까요? "

" 내 듣기로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도 있다고 들었네만. "

" 네... 조금 있다가 오시기로 하셨는데. "

" 그치들도 바쁘겠군. 그들과 이야기하고 정해진 시간을 나에게 알려주게. "

 

 

사실상 급한 일이었기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날짜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이야기하던 그는 손부채질하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법경을 읊는 건지 아니면 주문을 외우는 건지.

지운은 아기 엄마에게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여전히 코를 틀어막은 상태였다. 코를 막아도 점점 심해지는 악취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병실에 나오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운이 병원 복도를 따라 걷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한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 하... 이 악취는 익숙해지질 않네. "

" 이번에는 잘해야 한다. "

" 예~... "

 

 

지운은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또렷한 눈동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느껴지는 기운만 아니었더라면 한 번쯤 다시 돌아볼 정도로 잘생긴 외모와 낮은 목소리까지.

지운은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자신이 나왔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여자의 뒤로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알아차렸다. 그가 바로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지운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찼다.

어쩌면 저 남자와 많이 틀어지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운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이제는 그의 등 뒤로 병실에 들어가려던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 봉길! 빨리 들어와. "

" 예, 예~ "

 

 

봉길은 한참이나 복도 끝으로 가고 있는 지운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의 독특한 기운에 절로 시선이 갔다. 그러다 화림에게 혼난 탓에 병실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야만 했다. 지운은 병원에 들른 이후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운은 굿을 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작은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아주 작은 틀어짐이라도 생긴다면... 순간 서늘한 바람이 겨드랑이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누군가의 장난 같은 바람에 지운은 몸을 흔들며 기도에 열중했다.

지운의 앞에는 금빛으로 이루어진 석가모니 불상이 놓여있었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육중한 몸이 빛이 반사되었다. 지운은 불경을 외우며 기도를 드리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며칠 뒤에 펼칠 대살굿이 부디 좋게 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끝낸 지운은 무언가 계시라도 받은 사람처럼 다급하게 무언가를 챙기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대살굿을 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그간 지운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예약되어 있던 탓에 그러지 못했다. 오로지 다른 이들에게 현장을 맡겨야만 했었다. 기도를 드렸던 그날, 마치 계시가 내려오듯 번뜩이던 생각에 혹시 몰라 챙겼던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쉽게, 좋게 풀려갔으면 했던 것이었을 뿐이었는데.

 

 

"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이쪽에서야말로 잘 부탁하네. "

" ... 열심히 해봅시다. "

 

 

우려했던 것이 일어나자, 지운은 그저 착잡할 뿐이었다. 대살굿을 위해 화림과 중앙에 섰다.

화림의 제자인 봉길이 북을 쳤고, 지운의 도우미를 자처하고 온 다른 이가 꽹과리를 두들겼다. 대살굿을 시작하기 전, 지운이 고개를 하늘 높게 들어 올린 채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숨을 한 차례 내뱉고 할 준비를 하다가 봉길과 눈이 마주쳤다.

지운은 봉길을 보면서 느꼈다. 이상하게 그를 경계하게 되면서 자꾸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대살굿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계속 봉길이 신경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