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타입

[HL/드림/250508] 돌고 돌아 너에게로

나비의 보관함 2025. 5. 10. 00:50

 

미즈키는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며,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초점이 흐려진 그의 눈동자에 시간이 지나자 점점 생기가 돋아나더니, 완전히 시야를 회복한 듯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시야에 새하얀 천장이 들어왔다.

벌떡, 몸을 일으킨 미즈키는 정신을 차리고서 주변부터 살펴보았다. 새하얀 천장과 셔터가 내려와 있는 공간이 일제히 일렬로 서 있었고, 드문드문, 열린 곳이 있었다.

미즈키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방을 보고서 그것부터 열어보았다.

 

 

이건... 뭐지? ”

 

 

가방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물과 에너지바, 그리고 손전등과 무전기가 들어있었다.

무전기를 들어 올리자, 거기서 치지직 소리가 나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높지 않은 톤의, 하지만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끊어지는 말, 아는 사람이었다.

미즈키의 목소리가 잔뜩 격양되어 소리쳤다.

 

 

우에노하라! 내 말이 들려? 우에노하라! ”

[ 꺄아악!! , 살려... 살려주세요! 제발...!! ]

우에노하라!! ”

[ 히익...!! ... 치지직, 카즈, 야 군... 치직... ]

 

 

미즈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끊어진 무전기를 꽉 쥐었다.

그 이름은 아무리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야, 제대로 라는 자아가 형성되었을 때부터 함께 해왔던 친구이자, 짝사랑하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겁에 질린 비명에 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미즈키는 무전기를 허리춤에 끼운 뒤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그가 눈을 떴던 곳만 불이 환하게 들어왔을 뿐, 다른 곳은 불이 꺼진 곳도 있었다.

 

 

“ ... 아까, 왔던 곳 아닌가? ”

 

 

미즈키의 시선이 데굴, 굴렀다.

소름 끼치도록 어둡고, 축축한 습도에 울렁거리는 속에 괜히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켜냈다. 어디에 있는지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계속 같은 곳이 반복될 뿐.

출구도, 카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감과 몇 시간 동안이나 돌아다닌 탓에 그의 체력이 점점 줄어들었다. 뺨과 이마, 등을 흥건하게 적셔질 정도로 땀이 흘렀다.

미즈키가 자신이 깨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자,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악!!

 

쇠를 긁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는 미즈키의 긴장감을 바짝 조여왔다.

미즈키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일 정도만 마셨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곳에는 그토록 찾던 카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손에 무전기를 든 채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몸을 흔들고 있었다.

미즈키는 눈을 굴려 카린이 어디 다친 건 없는지, 확인했다.

 

 

“ ... 우에노하라, 이쪽으로 와. ”

“ ... ”

우에노하라? ”

 

 

카린의 모습에 미즈키가 반가워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카린은 미즈키에게 오기는커녕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초점 잃은 눈으로 미즈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즈키가 천천히 카린의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녀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커져갔다.

이상함을 느낀 미즈키가 걷던 속도를 올려 카린에게로 다가가 손을 뻗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검은 그림자가 카린의 몸을 휘감았다.

찰나의 순간에 카린의 눈에 빛이 감돌면서 미즈키를 바라보았다.

 

 

, 즈야... ...!! 살려, ! ”

우에노... 유이카!! ”

꺄아악!! ”

 

 

미즈키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카린에게 닿으려고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닿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슬하게 닿을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카린으로 인해 닿지 못했다.

다급한 나머지 카린의 이름을 부르며 시합이었을 때도 낸 적 없던 속도로 달렸다.

바로 눈앞에서 사라진 카린의 모습에 미즈키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우당탕, 기이잉. 미즈키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붙잡지 못한 것이 분한 건지 주먹을 쥐고 바닥을 쾅 내려쳤다.

그러자 주변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

 

 

그는 입술을 짓이겨 물며 욕을 내뱉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미즈키에게 더한 혼란스러움을 안겨주려는 건지, 갑자기 탁하고 동시에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 미즈키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그것은 완전한 어둠, 아까 카린을 앗아갔던 그 그림자와 닮은 느낌을 주었다.

미즈키는 이곳에서 이대로 좌절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숨을 최대한 죽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져 손전등을 꺼냈다.

달칵, 손전등에서 빛이 나오면서 앞이 보였다.

 

 

우에노하라, 기다려... ”

 

 

미즈키는 충분히 쉬지 못해 지쳤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여전히 똑같이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돌아다니다가, 벽에 달린 버튼 하나를 발견했다. 그 버튼 위로 ‘DO NOT TOUCH!’라는 종이가 적혀있었다.

미즈키는 그걸 무시하고서 주변을 더 살폈지만, 버튼 말고는 없었다.

결국 버튼 앞에 선 미즈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 안에 가득 고인 땀이 그가 얼마나 긴장한 건지 알려주었다.

그는 손바닥을 옷에 닦아낸 뒤 버튼을 꾹 눌렀다.

 

 

, 흐으... ”

“ ... 우에, 노하라? ”

“ ... 카즈야 군...!! ”

 

 

버튼을 누르자, 굳게 닫혀있던 셔터가 올라가고 그 안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미즈키가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부르자,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울먹거리고 있던 카린이 벌떡 일어나더니 미즈키를 끌어안았다.

미즈키는 제대로 느껴지는 카린의 체온에 그녀를 꽉 안으며 안심했다.

이번에는 그녀를 제대로 찾았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과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을 때, 철컹, 올라갔던 셔터가 쾅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내려갔다. 그 큰 소리에 서로 안고 있던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아직, 두 사람은 만나기만 했을 뿐. 탈출하지 못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