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타입

[BL/2차 CP/250515] 달이 아름답네요

나비의 보관함 2025. 6. 13. 15:35

 

통통, 키타는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체육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체육관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샛노란 금발 머리가 혼자서 배구공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키타는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아츠무의 모습에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느새 체육관 안으로 붉은 노을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연습하다가 지친 모양인지 아츠무가 무릎 위로 손을 올리고, 상체를 숙인 채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냈다.

지켜보기만 하던 키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서브 넣을 때, 발 각도를 조금만 더 돌리야 되긋는데. ”

?!?!? , , 키타 상?! ”

와 놀라고 그라는데. ”

언제부터 계셨던 겁니꺼? ”

니가 토스에서 서브로 연습할 때부터 있었다. ”

“ ... 완전 처음부터잖아요! 오셨으면 말씀하시지... ”

됐다, 집중하고 있는데 만다고. ”

 

 

키타는 아츠무의 뒤로 다가가 그의 잘못된 습관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연습에 집중하고 있던 아츠무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힌 채 소리쳤다. 보면 안 될 거라도 본 것처럼 구는 아츠무의 모습에 키타가 조용히 그 얼굴을 보았다.

짙은 눈썹이 찡그려진 채 잔뜩 붉어진 얼굴에 괜히 불끈거렸다.

그는 꾹 참아내며 아츠무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옷을 끌어 올리며 땀을 닦아내는 모습에 절로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켜냈다. 키타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며 몸을 돌렸다.

겉은 전혀 흥분하지 않은, 평소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 ... 늦었으니, 인자 가자. ”

. 잠시만 기다리 주이소! ”

밖에서 기다리꾸마. ”

 

 

키타의 시선이 힐끔, 창밖으로 향했다.

붉은 노을이 지나 어느새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키타가 발걸음을 옮겨 체육관을 나가려고 하자, 아츠무가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키타는 아츠무의 말대로 체육관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

저녁 하늘인데도 구름이 잔뜩 낀 걸 보니,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타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츠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츠무는 급하게 밖으로 나오다가, 하늘을 보고 있는 키타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하면서 키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고,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보랏빛 하늘을 보았다.

아츠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키타를 불렀다.

 

 

키타 상. ”

왔나. ”

, 가입시더. ”

“ ... 내일 비가 올 것 같은데, 우산 챙기는 거 잊지 마라. ”

내일... 말입니꺼? ”

 

 

키타의 말에 아츠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에 구름이 가득 낀 상태라,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아츠무는 급히 시선을 돌려 키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키타는 정면을 보고 있었지만, 아츠무는 그의 표정을 하나, 하나 살폈다.

그러다 키타가 힐끗, 아츠무에게 시선을 주더니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흠칫 놀란 아츠무가 으리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키타가 물어보았다.

 

 

와 부끄러워하는 긴데? ”

그래 보시니까 당연히 부끄라븐 거 아이겠습니꺼? ”

수줍어하기는. ”

 

 

괜히 수줍어하는 척한다고 말하던 키타는 아츠무의 손을 붙잡았다.

키타의 행동에 아츠무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평소 남들 앞에서는 날카롭게 굴고, 사람들에게 정겹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독 키타의 앞에서는 약해지는 것도 아츠무였다.

아츠무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가는 걸음마다 발끝에는 마른 나뭇잎들이 채였지만, 그건 계절이 가을이라고 알려주기만 할 뿐, 아츠무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두 사람의 뺨을 스쳤다.

 

 

, 키타 상! 오늘 키타 상네 집에서 자고 가도 됩니꺼?! ”

오늘? 개안타. 할머니가 집에 계시긴 할낀데... ”

, 그카믄... ”

문제 된 건 없다. 아마도겠지만... 할매도 반길끼라. ”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따뜻했고,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날,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츠무는 키타의 집에서 하루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키타의 할머니와 아츠무가 대면했다. 아츠무는 바짝 긴장한 채 무릎까지 꿇은 채 어깨를 움츠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절로 식은땀까지 흘렀다.

키타는 아츠무가 긴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자,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키타의 할머니인 유미에가 가장 먼저 입을 열어버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키타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얇은 눈은 아츠무를 향하고 있었다.

 

 

“ ... 이기 최선이가? ”

하모요. 지 딴에는 최선인겁니더. ”

? , 키타 상? ”

 

 

아츠무는 자신을 앞에 두고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키타를 보았다.

당황한 시선이 다급하게 키타를 향해 무슨 뜻이냐는 듯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키타는 아츠무를 힐끗 보기만 할 뿐, 그의 시선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키타는 오히려 자기 할머니를 보기만 했다. 그의 표정에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긴장감이 살짝 엿보였지만, 더 크게 긴장한 아츠무의 눈에는 보일 리 없었다. 혼란스러운 탓에 아츠무의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츠무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속이 울렁거리고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지만, 정신을 꽉 붙잡아야만 했다.

유미에는 키타를 보며 말했다.

 

 

신부가? ”

“ ... , ... 그칼 수 있죠. ”

... 이기 최선이라카믄 어짤 수 없제. ”

그래도 참한 압니더. ”

 

 

아츠무는 키타와 그의 할머니가 대화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상견례를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게 착각이 아니라는 듯 의심쩍게 보던 유미에의 시선이 달라진 것만 알 수 있었다.

유미에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더니 식탁 위로 음식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하던 아츠무만 혼자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유미에가 잠시 부엌으로 간 사이 키타에게 물어보았다.

키타는 일어나려다가 아츠무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키타 상... 방금 상황 뭡니꺼? ”

뭐기는. 내 최근 고민 알고 있지 않나? ”

알기는 하죠. 인터뷰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꺼. ”

할매한테 내 신부 보여준 것밖에 없다. ”

, 신부예?! ”

 

 

신부라는 말에 아츠무가 화들짝 놀라면서 펄쩍 뛰었다.

그 탓에 식탁이 덜컹거리면서 하마터면 음식들이 쏟아질 뻔했다. 그걸 지켜보던 키타가 아주 티 나지 않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불만 있으믄 말로 해라. ”

, 아니예!! 불만 없습니더! ”

아그야... 그래 말라가 큰 일은 하것나. ”

, 많은데예... ”

 

 

하나, 둘 나오던 반찬들이 마치 식탁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았다.

많이 먹으라는 할머니의 말에 아츠무는 배가 불러도 끝까지 밥공기를 비워낼 수밖에 없었다. 배가 가득 불러올 정도로 밥을 먹으면서 계속 추가되는 반찬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키타가 말려주고 나서야 반찬이 멈추었고, 아츠무는 음식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키타는 손님 방에서 이불을 깔아주며 아츠무를 보았다. 아츠무가 배불러서 바닥에 늘어진 채 통통하게 오른 배를 문질러댔다.

 

 

바로 먹고 자면 살 찌니까네, 가볍게 차라도 마시면서 소화나 시키자. ”

예에... ”

 

 

두 사람은 마룻바닥에 앉아 잠시의 여유를 즐겼다.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스산한 느낌을 주었지만, 환하게 뜬 보름달이 그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은은한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키타는 따뜻한 차를 마시다가 힐끗, 아츠무를 보았다.

배가 너무 부른 모양인지, 아츠무는 차를 홀짝거리며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입맛을 다시던 키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마 밑에 달려있는 종에서 딸랑, 딸랑.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 ... 별이 아름답네. ”

? 뭐라캤습니꺼? ”

아무것도 아이다. ”

 

 

키타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츠무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유명한 나츠메 소세키의 글을 인용하여 바꾼 말을 꺼냈지만, 아츠무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키타가 찻잔을 올려 천천히 마시는 순간, 아츠무가 슬쩍 웃더니 키타를 보며 말했다. 그는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 뿐,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훅 들어오는 공격에 키타가 차를 마시다 말고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키타 상, 달이 아름답지 않습니꺼? ”

“ ... , 알고 있던... 콜록! ”

제가 알고 있는 게 그래 당황할 일입니꺼? ”

...! ”

 

 

아츠무의 말에도 키타는 기침을 하느라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츠무는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키타의 기침이 멈추지 않자 등을 두들겨주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겨우 기침을 멈춘 키타가 물기 어린 시선으로 아츠무를 보았다.

기침으로 인해서 키타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기 아이라... 갑자기 훅 들어와 가... ”

그랍니꺼. 그래서 답은예? ”

그라네. 달이 아름답다. ”

 

 

키타의 말에 아츠무가 큭큭, 아직 소년티가 나는 웃음을 보였다.

아츠무의 장난기 가득한 그 시선에 키타 역시 옅게 웃으며 답했다. 직설적인 말보다 은유적 표현으로 둘러서 말했다. 고백에 답을 하기보단 고백 위로 고백을 얻은 꼴이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만월이 비치는 밤하늘 아래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뭔들 어떠하랴. 키타는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아츠무의 뺨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아츠무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키타가 그대로 아츠무의 어깨를 붙잡고 눕히면서 그 위로 올라타, 다시 입을 맞췄다.

깊은 키스가 이어지자, 아츠무의 팔이 자연스럽게 키타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푸른 달빛이 두 사람을 찬란하게 비추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