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50512]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비의 보관함 2025. 6. 13. 15:18

 

늦은 시각, 집안을 온통 밝히는 환한 불빛은 평화로움을 보여주었다.

구름은 소파에 누워 너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가 신박한 것을 발견했다. 영상 속 아내로 보이는 촬영자가 상대를 보며 풀네임으로 불렀다.

그러자, 상대가 무언가에 찔린 모양인지 움찔거리며 당황한 모습이 나왔다.

그 모습에 순간 혹했던 구름은 영상을 끄고, 동영상 카메라부터 켰다. 띠롱, 밝은 소리와 함께 영상이 진행되었다. 카메라에는 아서의 뒷모습이 담겨있었다.

구름은 애써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참으며 아서를 불렀다.

 

 

아서야. ”

“ ...???? 구름아? ”

... 아서야! ”

, 구름아. 내가 혹시, ... 잘못했어? ”

 

 

구름이 아주 심각하게 낮은 목소리로 아서를 불렀다.

아서는 물을 마시려고 하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인지부조화가 온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기계가 고장 나서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오빠, 라고 다정하게 부를 목소리가 한없이 차가워진 채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의 떨리는 시선이 구름에게로 향했다.

아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그의 머릿속으로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구름에게 무언가 잘못했던가? 하고 떠올리고 있었다. 출근할 때 아침에 키스를 안 했던가? 지난밤마다 자신이 그녀를 너무 힘들게 했나? 아니면 매번 놀려놓고서 반응만 보던 거에 화난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잘못들에 그는 도저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구름아, 내가 비상금... 숨긴 거 알았어? ”

? 비상금을 숨겼어? ”

, 이게 아니구나. 그러면... 저번에 휴가 가서 바닷가에서 여자들 본 거? ”

“ ... 그때 안 봤다며? ”

이것도 아니네... 그러면 몰래 게임 팩 산 거...? ”

언제 또 산 건데? ”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구름의 웃음이 사라지고, 험악한 분위기만 남았다.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에 아서가 급하게 입을 다물고, 등을 돌려 자신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힐끗, 아서의 눈이 구름을 찾았다.

쿠구구, 마치 효과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의 머리 뒤로 잔뜩 낀 먹구름과 함께 번쩍 번개가 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서는 속으로 아, 이제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삐롱, 명쾌한 소리와 함께 구름이 손에 들고 있던 폰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던 그녀는 아서가 눈 깜빡할 사이에 그의 앞에 도착했다.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의 모습에 아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구름은 아서의 물음에도 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 구름아? ”

아서야. 나한테 숨기는 거 없다며? ”

... 그게... ”

숨기는 거, 더 있어? ”

... 없어! 그게 끝이야! ”

 

 

드디어 구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처럼 다정한 목소리와 존대가 아니었다.

주변을 얼음장처럼 만들어버리는 차가운 목소리와 반말이 아서에게 비수로 다가왔다. 아서의 떨리는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끝에는 구름을 보았다.

구름의 시선에 아서의 몸이 또 움찔거렸다.

아서는 속으로 자신의 입을 계속 때리며 자신도 모르게 숨겼던 것들을 전부 밝혀버린 스스로를 탓했다. 구름이 웃음기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아서를 보았다.

끝이 맞냐는 듯 다시 물어보기 위해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 진짜야... ”

아서야. 가서, 빨래 널어. ”

으응... ”

 

 

평소라면 집안일은 전부 구름이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아서가 구름의 명령을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화난 그녀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게 삐로로롱, 삥삥, 세탁기가 끝난 소리가 들려왔다.

아서가 보기 드물게 시무룩한 모습으로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로 가는 그의 모습을 구름의 시선이 뒤따랐다.

그녀는 예상치 못했던 아서의 거짓말에 화가 난 모양인지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았다.

생각할수록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비상금을 숨긴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안 봤다고 해놓고 여자들을 본 것에 화난 것이 아니었다. 몰래 게임 팩을 산 것에 대해 화난 것이 아니었다.

전체를 통틀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었다.

 

 

구름아. 이거... ”

알아서 해요. ”

... ”

 

 

젖은 빨래를 한가득 들고서 반대편 베란다로 향하던 아서가 구름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차갑고 냉정한 말이었다. 구름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아서를 보았다. 평소에 듬직하고 믿음이 가던 그 등이 오늘따라 너무 미웠다.

분명 너튜브에서 재밌는 상황인 것 같아 따라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서 오히려 제 기분만 나빠진 것이 못마땅했다. 구름은 씩씩거리면서도 부엌으로 걸어가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칼질을 하고 나니, 조금 분이 삭혀지는 것 같기도 했다.

 

 

“ ... ”

.. ”

 

 

! ! 부엌에서 들려오는 칼질 소리에 움찔거리던 아서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된 거, 예쁜 짓을 해서 분위기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서는 이주마다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해서 구름의 화를 풀 생각이었다.

그 생각 덕분인지 평소 청소하던 것보다 더 힘이 들어가 버렸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던 아서는 땀을 닦으며 씻었고, 그가 나왔을 땐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있었다. 킁킁, 아서가 냄새를 따라 부엌에 들어왔다.

분명 화가 난 상태인데도 구름은 저녁 밥상을 식탁이 휘청거릴 정도로 가득 담아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서는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요리하고 있는 구름의 뒤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구름이 식칼을 도마 위로 탁 내려치면서 고개를 돌려 아서를 보았다.

 

 

저 지금 칼 들고 있는 거 안 보여요? ”

, 미안... ”

... 수저부터 놔주세요. ”

. ”

 

 

오늘 하루는 아서가 구름에게 죄인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얼 잘못한 건지 몰랐던 아서도 화장실 청소를 하며 생각을 되짚어 보니, 그녀가 화난 이유를 알았다.

비상금을 숨겨서도, 여자를 몰래 본 것도, 게임 팩을 산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믿고 있던 자신이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저리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아서는 구름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름대로 애교를 피워보려고 했지만, 가차 없이 까였다.

평소라면 수줍게 웃으며 받아줄 그녀였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아서는 조용히 수저를 챙겨 식탁 위로 올렸다. 그다음 의자에 앉아 그녀가 오길 기다렸다.

구름이 마지막으로 찌개를 가운데에 내려두고서 자리에 앉았다.

 

 

“ ... ”

, 구름아... 미안해. ”

뭘요? ”

내가 거짓말한 거... , 앞으로는 절대 거짓말 안 할게! ? ”

“ ... 진짜요? ”

 

 

식사를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는 끝없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먼저 그 정적을 깬 사람은 아서였다. 찌개를 한입 먹어보던 아서는 여전히 변함없는 그 맛에 저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구름을 불렀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답이었지만, 아서는 냉큼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의 사과에 한풀 가라앉은 구름이 힐끗, 아서에게 시선을 주며 진짜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서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급하게 끄덕였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제가 뭐에 화났는지 아세요? ”

“ ... 내가 거짓말해서잖아. ”

잘 아시네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요. ”

, 절대 안 그럴게! ”

오빠도 참.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

구름아... 오늘도 밥 정말 맛있어! ”

 

 

구름이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아서를 보았다.

아서가 눈동자를 데굴,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가 말한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인지 구름이 짧게 숨을 뱉으며 다신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서의 행동에 구름이 반찬을 집어 아서의 수저 위로 올려주었다.

아서는 그녀의 화가 풀렸다는 걸 확인하고서 밥을 먹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식탁이 휘청거릴 정도로 차려진 밥상에서 구름의 사랑을 확인했다.

아서의 칭찬에 구름이 부끄러워하며 급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이름은 왜 부른 거였어? ”

. ”

? ”

그게... 영상을 하나 봤는데... ”

 

 

아서의 질문에 구름이 친절하게 이름을 불렀던 이유를 알려주었다.

구름의 설명에 아서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구름의 사랑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괜찮다고 넘어가야 할지 고민되었다.

아서가 설거지를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구름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아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화가 전부 풀린 게 느껴졌다.

속삭임 뒤로 짧은 입맞춤도 함께 남겼다. 설거지하고 있던 아서는 붉어진 얼굴로 구름을 보며 입을 연신 벙긋거렸다.

 

 

오빠, 사랑해요. ”

? ”

오늘 밤에 기대할게요? ”

, 구름아! 잠깐만, 왜 내가 설거지하고 있을 때...!! ”

아하하! , 오빠! 거품 튀잖아요! ”

 

 

아서는 구름에게 왜 하필 그 말을 지금 하냐고 물었다.

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구름이 마구 웃더니 다시 아서의 뺨에 입을 맞췄다. 연이은 뽀뽀에 아서가 설거지하던 손을 뻗어오던 순간, 거품이 구름에게 튀었다.

확 튀어오는 거품에 구름이 인상을 찡그리며 아서에게서 떨어졌다.

그대로 구름이 방으로 쏙 도망치듯 들어가 버리자, 아서가 급하게 설거지를 마치고 거품이 묻은 손을 헹궈낸 뒤 구름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아서가 방으로 들어가자, 뒤이어 꺄르륵 구름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