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직, 허공에서 푸른 불꽃이 튀기더니 공간이 일그러졌다.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인 한 가운데에 생겨난 일그러짐 사이로 누군가가 떨어졌다. 속절없이 떨어지던 인물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크로스아이 알파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그 존재의 머리를 잘라냈다.
데굴데굴, 잘려 나간 머리가 질퍽한 바닥에 굴러다녔다. 구르고 있는 머리의 뒤로 뒤늦게 나타난 벨치스 7 영웅들이 모습을 보였다.
앤과 프레이, 디오가 나타나자마자, 크로스아이 알파와 교전을 벌였다.
“ 으으... 역시 머리가 재생되는 느낌은 언제 겪어도 적응이 잘 안되네... ”
크로스아이 알파가 교전을 벌이다가 성가신 녀석들이라며 물러났다.
앤은 싸움이 끝나고서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도착했을 때, 목이 잘려 나갔던 시체에서 다시 머리가 생겨나면서 말까지 하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다시 살아난 마르기엘라는 웅웅 울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기색에 한 번 겨워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앤의 곁으로 프레이와 디오가 다가와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 시, 시, 시, 시체가... 살아났어? ”
“ ... 재밌는 녀석이네. 얼마나 베어야 제대로 죽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은걸. ”
“ 벨치스에 파견된 기사 중에 이런 녀석이 있었던가. 어이, 너. 소속이 어떻게 되지? ”
“ 벨치스...? 기사...? 소속...? 그게 뭐야? ”
“ 수상한데. 일단 본부로 데려가지. ”
그날이 마르기엘라가 벨치스의 7 영웅과 만나게 되는 날이었다.
마르기엘라는 우선 이곳은 자신이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을 바로 파악했다. 데굴, 마르기엘라의 눈이 데굴 구르며 머리로는 빠르게 계산했다.
앞으로의 상황을 위해서라도 기억상실인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르기엘라는 세 사람의 앞에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 혼신의 연기를 펼쳐 보였다. 본부로 이동하는 과정 중에 마르기엘라는 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열렬한 시선이었다.
“ 이런 재생력은 콜드 히어로 중 피의 공작 카심이나 가능한 수준인데, 정말로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
“ 응. 그게 누군데? ”
“ 어디 십자회 같은 조직에서 연구하다가 벨치스로 파견 보낸 애송이인가. ”
콜드 어쩌고, 피의 어쩌고. 앤이 말하는 처음 듣는 단어들에 마르기엘라가 누구냐고 물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천연덕스럽게 구니 보는 사람으로썬 정말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마르기엘라는 정말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 드라이가 마르기엘라를 살펴보며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보았다.
이후로도 마르기엘라는 본사로 이동하는 내내 벨치스 7 영웅들의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본사에 도착한 뒤로 가만히 있을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본사에 도착하니, 테스트랍시고 실력을 보자며 실험에 등을 밀었다.
“ 이상하네요, 자세히 보면 생긴 것도 좀 다른 것 같고... ”
“ 흠... 일단 북부 기사단 소속으로 하지. 실전에 투입되면 알 수 있을 테니. ”
“ 네? 하필... ”
앤은 자신의 눈앞에서 마르기엘라의 머리가 자라나는 걸 봤기에,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인 만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부에서는 마르기엘라가 재생력이 좋으니, 리아 자일과 파트너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북부 기사단으로 넣은 것뿐이었다.
이후 마르기엘라는 리아와 함께 맨틀 아래의 둥지 공략에 나섰다.
크로스아이가 앤과 프레이와 교전하고 승리한 이후 리아와 함께 맨몸으로 둥지를 강습했고, 파괴하며 벨치스 전을 종결시켰다.
성공적으로 둥지 공략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마르기엘라를 벨치스의 8 영웅이라고 칭했다.
얼떨결에 8 영웅이 되어버린 마르기엘라에게 마더나이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시간이 흘러, 마르기엘라가 마더나이트와 대면했다.
“ 너는... 이곳 사람이 아니구나? ”
“ ... 네? ”
“ 제3의 존재야. 그렇지? ”
“ ... 내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존재인 건 맞지만, 생명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닌가요? ”
마더나이트는 귀신같이 마르기엘라가 이곳의 인류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제3의 존재, 괴수도 아니고 200번 인류도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르기엘라를 쏘아붙이듯 말하자, 마르기엘라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말했다.
마르기엘라의 강한 주장과 그 패기에 마더나이트가 흡족한 듯 기사단으로 편입을 허락했다.
마르기엘라는 북부 기사단에서 중앙 기사단이 된 이후, 가장 열악한 환경의 행성으로 파견을 도맡아서 나갔다. 쉬는 시간조차 없이 전투를 이어갔다.
마르기엘라가 전투하면 할수록 명성은 점점 드높아졌다.
은빛 섬광의 성녀라던가, 징벌의 천마리던가, 참살의 대죄라는 이상한 별명까지 붙었다. 사람들은 그 별명에 환호했으나,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싫어했다.
명성은 끝을 모르고 점점 높아졌지만, 끝이 없는 전투에 지쳐갔다.
“ 하하... 망할 전투가 끝나기는 하는 걸까. ”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무의미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승리하고, 패배하고, 물리치고, 피해당하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전투와 그 피해는 마르기엘라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러다가 중앙 기사단에 있던 기도 전쟁이 아린에서 발발했다.
때마침 아린 행성에 있던 그녀는 중앙 기사단으로서 또다시 전투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지켜야만 하는 기사가 되었고, 기사는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마르기엘라가 괴수들을 상대하며 잘 막고 있었으나, 그녀의 몸이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연이어 터진 전투로 인해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때마침 나타난 질과 함께 생존자들을 규합해서 어떻게든 버텼다. 결국 타나토스에게 잡혔을 때, 앤이 탄 알키오네가 나타났고, 마르기엘라는 오랜만에 앤과 만났다.
“ 앤...! ”
“ 적을 섬멸한다. ”
질과 마르기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알키오네의 포격으로 목숨을 연명했다.
알키오네가 타나토스의 코어를 쏨으로써 타나토스의 격파가 이루어졌다. 알키오네에 들어간 질과 마르기엘라는 오랜만에 보는 앤을 끌어안으며 환영했다.
하지만 그녀를 환영하는 것 이후로는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다.
‘죽음의 별’이라고 불리는 아린, 그곳에서 파견 나온 마르기엘라였지만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있다는 걸 오랜만에 만난 앤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기엘라뿐만 아니라 질 역시나 앤에게 같은 말을 했다.
“ 전투... 그걸로 인해서 시민과 군인 만 명 이상이 시체로 여기에 누워 있어. ”
“ 하지만 차라리 시체라도 있는 게 낮지... 당연히 실제 사망자는 그 몇십 배... ”
“ ... ”
“ 아린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을지도 몰라. ”
“ 일단 같이 보러 가자. 앤이 함께라면... 울지 않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
질과 마르기엘라, 앤은 추모비가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모두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곳, 아린의 추모비는 그런 곳이었다.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걸 각오하게 되는 곳.
마르기엘라는 두 사람과 거처로 지내고 있는 곳으로 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질과 앤, 두 사람만 알고 있는 대화부터 시작해서 앤과 마르기엘라만 알고 있을 대화와 마르기엘라가 처음으로 아린에 왔을 때, 질과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 괜찮아, 앤. 어떻게든 둘이 만나게 해줄게. ”
“ 맞아, 질과 내가 함께라면 가능할 거야. 그러니 뒤는 나에게 맡기도록 해! ”
“ 내가 널 지켜낼게... ”
질과 마르기엘라는 앤을 향해 마주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앤과 프레이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그녀를 위로하며 뒤를 맡기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쟁을 위한 출발선, 그 앞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다음 날, 마르기엘라는 질의 결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앤과 함께 있으라고 말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이후 그녀가 가속도로 떨어지는 제7콜로니 안에서 내부의 방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질이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통신선에서 앤과의 대화를 마치고 마르기엘라에게도 말했다.
“ 마리, 내 착한 친구 앤을 잘 부탁해. ”
“ 아니... 아니야, 왜 그런 말을 해... 질...! ”
“ 두 사람 다, 언제까지나 날 기억해 줘. ”
“ 치사해... ”
제7콜로니는 속도를 올리며 아린의 상공에 있는 괴수를 뚫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마르기엘라는 좌절하고 있는 앤을 안으며 함께 울었다. 이후 다시 전투를 이어갔다. 상공으로 올라오는 괴수들을 앤과 A-10, 마르기엘라가 제거했다.
어느 정도 처치했을 때, 먼지 사이로 제2 영식, 블루 비틀이 모습을 보였다.
압도적인 크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 1종 대요새무장 7식 중력포가 발사되면서 상공에서 내려오고 있던 제7콜로니를 격파시켰다.
이어 콜로니의 파편을 목표로 올라오고 있는 괴수들의 모습에 앤이 AB소드를 붙잡았다.
“ 앤...!! ”
“ 하아... 뽑지... 못했어... ”
“ 저건 재생력 좋은 나라도 무리야. ”
“ 빌어먹을... ”
앤과 마르기엘라는 하늘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광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광선들 사이로 교과서에서나 보던 전천후 침략형 요새 ‘푸른꽃’이 모습을 보였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린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되었다.
메이 자일이 앤의 엄호를 나섰다. 마르기엘라 또한 앤의 엄호를 하길 자처했다. 마르기엘라가 엄호를 자처하자, 앤이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앤이 메이를 말리지 못했던 것처럼 마르기엘라를 말리지 못했다.
“ 앤, 대의를 생각해. 질이 지켜낸 것을 우리가 지키는 거야. ”
“ ... 마르기엘라. ”
마르기엘라는 질과 함께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프레이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 직접 나서며 그녀의 뒤를 맡았다. 적에게 맞서는 메이와 함께 전투를 시작했다. AB소드를 쥐고, 끝나지 않는 전투에 임했다.
멈추지 않는 공세에 메리의 팔이 날아가고, 마스터피스 15번 검을 개방할 때도 멈추지 않았다. 겨우 승리로 이끈 전쟁은 피해가 막심했다.
자일 가의 장녀, 메이가 상처를 입었기에 제대로 된 승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마르기엘라가 함께 전투에 참여해서 메이의 부상이 팔 하나로 끝날 수 있었다. 치료를 끝낸 메이가 앤을 찾았다.
“ 마이어 씨. ”
“ 그래. ”
“ 앤... ”
“ 얄궃네요. ”
마르기엘라는 피로 얼룩진 붕대를 감고 있는 메이를 보고 있는 앤을 보았다.
혹여나 그녀가 자책하지 않을까, 어깨에 올라간 짐에 회의감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부상 상태가 그리 심각하진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이 적었다.
결과적으로 아린의 탈환 이후 치료하기 위해 메이를 냉동 수면 상태로 만들기로 했다. 냉동 수면 상태가 되기 전의 메이는 자신의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앤에게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메이는 냉동 수면 상태가 되었다.
밖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고, 마르기엘라는 무너지려는 앤을 보고 있었다. 친구의 마지막 부탁과 메이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르기엘라는 앤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
“ 앤... ”
“ 적과 싸우는 거겠지. 적? 누구와? ”
“ 너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마. ”
“ 맞아요, 마스터. 짐만 지다간 마음이... 부서질지도 몰라요. ”
“ 너희뿐이야. 나를 몰아세우지 않아 주는 건... ”
수많은 짐과 책임에 A-10과 마르기엘라만이 앤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괴수의 침입, 전쟁, 끊이지 않는 전투.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고, 지치게 했다. 하지만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언제나 끝없는 노력을 통해 승리를 쟁취했다.
침입한 괴수를 전부 쓰러트린 앤이 A-10과 마르기엘라를 보며 말했다.
“ A-10, 마르기엘라. 이 전쟁... 우리가 끝내자. ”
“ 맡겨둬, 앤. 네 등을 지킬게. ”
“ 마스터가 힘들 땐 쉬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이후로 앤은 자신의 한 말을 지켰다.
그녀가 전쟁을 끝냈고, 프레이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앤에게 있어 전혀 기쁘지 않은 승리였다. 그걸 지켜보는 마르기엘라 역시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다.
괴수 여왕인 프레이를 쓰러트린 앤의 앞에 피어가 나타났다.
프레이의 뒤를 따라 앤이 죽음을 선택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A-10도, 마르기엘라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하지만 피어가 앤의 검을 붙잡았다.
피어는 프레이의 시체를 들고 가면서 앤에게 말했다.
“ 앤...!! ”
“ 마스터! ”
“ 앤, 아니야... 넌 절대 비겁하지 않아... ”
좌절하고 있는 앤을 향해 마르기엘라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앤은 자신을 안아오는 마르기엘라의 팔을 붙잡으며 흐느꼈다. 그녀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마르기엘라의 팔에 스며들었다.
연합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린은 폐기 지정되고 말았다.
이 전투의 주역 기사인 앤 마이어와 마르기엘라는 전쟁 종료 후 은퇴했다. 앤은 외곽 행성인 가리온에서 자영업으로 카페를 개업하고, 마르기엘라는 앤의 곁에서 카페를 함께 이끈다.
“ 장사는 근성이야. 전쟁하고 똑같아. 선수 필승! ”
“ 그... 그런가요? ”
“ 겠냐고, 앤. 꾸준히만 하면 돼. ”
오픈하기 전, 가게를 꾸미는 중에 앤과 A-10, 마르기엘라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정식 개장 이후 손님이 좀처럼 오지 않자, 앤이 비장의 수라며 메이드 복을 공수해 왔다. 30살의 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마르기엘라는 옷을 입긴 했지만, 빈의 핀잔을 들었다.
마르기엘라는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뒤편으로 옮겨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로도 카페에는 빈 외에 다른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앤은 A-10을 에이미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학교에 보냈다. 불안에 떠는 앤을 위해 잠시 물을 가지러 간 사이, 누군가가 앤의 팬이라며 앤과 프레이의 인형을 두고 마리지는 걸 보았다.
마르기엘라는 하교하고 돌아온 에이미와 함께 앤을 끌어안아 주었다.
“ 정말... 이제 괜찮아. ”
“ 무리하지 마, 앤. ”
“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길 택한 만큼, 서로에게 기대어가길 선택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애니와 딜의 등장에 복귀를 명받지만, 에이미와 마르기엘라는 앤에게 도망치자고 말했다. 외려 두 사람의 말에 앤은 애니와 딜과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
앤이 딜과 앤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마르기엘라는 걱정이 앞섰다.
세 사람과 거리가 있는 곳에서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앤을 남겨두고 두 사람이 떠나자, 급하게 달려와 우는 앤을 달래어주었다.
“ 앤, 괜찮아. 도망가자. ”
다음 날, 평소처럼 짐을 정리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울림이 느껴졌다.
그다음 카페 안에서 뉴스가 울려 퍼졌다. 뉴스를 들은 앤이 카페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급하게 떠나는 사람들, 상처를 입어 침대에 실려 가는 이들.
상위 네임드 괴수 ‘관지기’의 습격으로 인해 부상자 발생 속도가 현격히 빨라졌다.
마르기엘라는 에이미와 함께 관지기를 상대하기 위해 달려갔다. 혼자 남겨진 앤이 신경 쓰였지만, 다른 이들을 구해야 했기에 발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미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러 향했고, 마르기엘라는 애니와 함께 관지기를 상대했다.
애니가 백화를 사용하며 관지기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려던 찰나, 다른 기체들이 나타나 애니의 팔을 자르려고 했다. 마르기엘라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애니를 대신해 팔이 잘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란 애니가 외쳤다.
“ 뭐, 뭐야! ”
“ 윽...! 괜, 찮아. ”
“ 혼자 슬퍼하다가 자기 연민에 빠져 결국 이 꼴이야. ”
마르기엘라가 애니를 안고서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앤이 나타났고, 빈이 앤의 무기를 건네주며 순식간에 괴수들을 베어냈다. 애니는 마르기엘라를 부축하며 앤의 뒷모습을 보았다.
눈으로 좇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검선에 관지기가 갈가리 베어져 나갔다.
마르기엘라는 옅게 웃으며 애니의 부축을 풀고 일어났다. 잘려 나갔던 그녀의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고, 그걸 본 애니가 화들짝 놀랐다.
애니의 반응에 마르기엘라가 아참, 싶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애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파, 파, 파, 팔이... ”
“ 아하하... 그런 걸로 하자고! ”
“ 딜...! ”
애써 웃어넘기는 마르기엘라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애니는 상처를 입은 딜을 향해 다가갔다.
관지기는 진짜 괴수의 침범을 가리기 위한 연막작전에 불과했다. 고랭크인 영식과 괴수들이 쏟아져 내리고, 앤과 마르기엘라는 다시 AB소드를 쥐었다.
압도적인 고랭크인 영식의 존재감 앞에서 공포를 느꼈다.
수십 명의 기사가 겨우 목숨을 걸고 쓰러트려야지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숙적. 그래도 두 사람과 에이미는 그 상대로 싸운다.
433년, 가리온에서 일어난 작은 전쟁이 끝났다.
다른 전쟁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피해가 기록되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괴수들의 침입 외에도 상대해야 할 적들은 많았다. 마르기엘라는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이나 앤에게 무정하며, 잔인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카발디, 그곳에는 오래전. 아린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냉동 수면 상태인 메이가 있다.
앤과 마르기엘라, 리아는 메이를 다시 깨우고, 새로운 신체를 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던 중, 리아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자밀 가의 수호자, 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잃은 것의 아픔은... 이 정도가 아니야. 똑같이 잃을 때까지 빼앗아 주마. 아무도 남기지 않아. ”
칸의 죽음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선이 마리졌다.
마르기엘라는 앤 쪽으로 붙어서 리아를 데리고 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괴수와의 전투가 아니라 명백한 사람과 사람 간의 전쟁.
그녀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냈다.
영웅 따위가 되기엔 너무나도 이상자였던, 개인플레이밖에 하지 못하는 제각각의 괴짜들이 처음으로 동료의 힘을 인정하고 의지했다. 뒷세계에 있던 악독하고 뒤틀린 괴짜들이 싸움을 거쳐 영웅으로 각성해 ‘이면’에서 세상의 전면에 나왔다. 그렇게 동료, 명성, 환희, 생명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손에 넣었다.
‘ 승전에 들뜬 마음을 가지고 귀향하는 도중 전쟁으로 게이트의 운용이 지체되어 작은 시골 도시에 발이 묶였었지. 24시간 흐린 날씨와 비, 탁한 매연, 숙소도 잡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린 조금 들떠 있었어. 세상을 지켜낸 자부심에 서로 간의 마음을 이을 수 있었던 것 같아. ’
낡은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 커피, 빗소리와 잡담.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처한 상황, 이상, 꿈, 고향에 관한 이야기, 일에 대한 고충, 개인적인 고민 같은 것까지 털어두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상황은 너무 슬프고, 힘들게 이어졌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괴수와의 전쟁보다 더 피로하고 괴로웠다. 없애야 할 괴수가 아닌 같은 인간을 상대한다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이 상당했다.
“ 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언젠가 이렇게 다시 모여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
“ 그래, 언젠가... 다시. ”
싸구려 커피 향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리아와 드라이가 전쟁을 벌이고, 전투를 하고 있을 때. 앤과 마르기엘라가 함께 난입했다. 마르기엘라는 메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메이와 마르기엘라, 앤이 리아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두 사람의 난입이 전투를 막을 수 있었지만, 리아의 복수는 막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리아의 눈앞에 메이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앤이 리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여기서 멈추면 콜드 히어로로 얼려지는 정도로 타협을 볼 수 있을 거야. ”
“ 검게 물든 종이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해... ”
“ 아니야, 검게 물든 종이도 종이잖아? 그러면 그 위에 하얀 잉크로 다시 좋은 것들을 써 내려가면 돼. 제발, 내 손을 잡아. 리아... ”
앤의 말에 리아가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메이의 앞에서 추한 자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마르기엘라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그렇지 않다고, 새로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굳게 다져진 그녀의 눈동자와 리아의 시선이 마주했다.
온건한 마르기엘라의 시선과 달리 리아의 눈동자는 보는 이에게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려왔다. 마르기엘라는 리아가 지금 내적으로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이전에 있었던 일을 꺼내며 말했다.
“ 그때, 왜... 벨치스 여왕 둥지에서... 기억나? 땅이 깊게 갈라진 사이로 내가 떨어지려고 했을 때. 그 찰나에 네가 내 손을 잡아서 들어 올려줬잖아. 네가 나의 추락(Fall)을 막아주었으니, 이번엔 내가 네 추락(Fall)을 막고 싶어. 부탁이야,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줘. ”
“ ... ”
진심 어린 마르기엘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리아가 ‘경계’를 반전시키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이 리아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으며 자기 입술을 꽉 물었다. 분함, 슬픔. 그 모든 감정을 제쳐두고, 리아의 목덜미를 쳤다. 제대로 기술이 들어간 건지, ‘경계’를 반전시키려던 리아가 힘없이 마르기엘라의 품으로 쓰러졌다.
마르기엘라는 쓰러지는 리아를 잡아주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 리아가... 그렇게 쉽게 제압이 가능했었어? ”
“ 드라이가 열심히 노력한 부분에 손가락을 좀 얹은 것뿐이야. ”
리아가 기절하는 모습에 당황한 앤이 마르기엘라를 보며 말했다.
아차, 싶었던 마르기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힘이 아니라 드라이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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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리아의 콜드 히어로 슬립이었다.
리아가 콜드 히어로 슬립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르기엘라는 착잡한 마음으로 보았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메이가 울먹거리며 서 있었다.
닫히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리아의 모습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지켜야 할 동생은 제 모습을 보며 울고 있는데, 지켜야 하는 사람은 누워서 콜드 히어로 슬립이라니. 마르기엘라는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 마리 언니... 고마워요. 리아 언니...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리 언니가 아니었으면 이런 결말도 맞이할 수 없었을 거예요. ”
“ 아니야, 네가 아니었더라면 리아가 과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흔들렸을지 잘 모르겠어. 언제 리아가 다시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네가 곁에 있다면 리아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지켜주렴. ”
“ 언니는요? 언니는 어디 가는 거예요? ”
“ 나는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
마르기엘라의 곁에 있던 메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감사함을 담아 꾸벅, 숙여진 허리를 보던 마르기엘라는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마치 어딘가로 떠날 것처럼 말하는 그녀의 말에 메이가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물어보았다.
메이의 질문에 마르기엘라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답했다.
메이와 헤어지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들판으로 향했다. 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 은연중에 느껴졌다. 자신이 이곳으로 왔을 때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차원 문이 열렸다는 것을.
그녀의 예감대로 들판 위에는 마르기엘라를 맞이하는 차원 문이 열려 있었다.
“ 어느 세계에서나 싸움은 끊이지 않는 것 같네. 하... 부디 남은 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
차원 문 앞에 선 마르기엘라는 고개만 돌려 자신이 잠시 머물렀던 곳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에, 뇌에, 기억에 담아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세계였지만, 마지막으로 이 세계를 위한 축복을 해주었다.
축복을 끝으로 마르기엘라는 차원 문 안으로 들어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이곳에서 그녀의 여정이 끝을 마치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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