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가와현에 위치한 도쿄와 가까운 바닷가 도시, 요코스카시.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있는 3층 주택에서 작은 소란이 생겼다. 그 집에는 단란한 가족 5명이 살고 있는데, 오늘따라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찾았다.
새벽을 새고 아침에 겨우 잠들었던 타마는 소란에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타마는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입에 담배를 물고서 어슬렁 내려왔다. 느릿하게 내려오던 그녀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는 블러 처리된 유리 위로 그림자가 울렁거렸다.
“ 뭐야, 저거...? ”
그어어어, 현관문 너머로 절대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케반 출신이던 타마조차도 현관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에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본능이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경고를 보냈다.
새빨간 경고등이 깜빡거리며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타마는 자신의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곧장 부모님의 방으로 달려갔다. 마치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덜컹, 문이 열리고, 안에 있어야 할 부모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던 타마가 이번에는 막냇동생인 타마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 따위 할 겨를이 없었다. 타마가 있다면 그녀를 챙겨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 야! 타츠!! ”
평소라면 굳게 닫혀있을 방문을 열어젖히니,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건 망할 남동생이었다. 타마는 남동생을 찾으러 가기 전에 화장실, 부엌, 거실, 테라스까지 살펴보았다. 그 어디에도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타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테라스 위에서 현관 쪽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에는 처음 보는 이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긁어대며 들어오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마을을 오가며 한 번쯤 본 적 있던,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 그나마 다행인 건 차가 하나 없다는 건가. ”
상황의 심각성 안에서 그나마 안도감을 찾았다.
가족들이 많다 보니 집에는 두 대의 차량이 존재했다. 하나는 가족들이 전부 타고 다녀도 무방한 중형 SUV였고, 다른 하나는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닐 때 쓰기 위해 구비한 박스카였다. 주차장에 있는 차량은 SUV였다.
가장 높은 확률로 가족들이 마을에 장을 보기 위해 나갔을지도 모른다.
타마는 거기까지 생각이 끝나자, 아직 가보지 않은 유일한 방으로 향했다. 아까처럼 방문을 열면 되는데, 타마는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문고리를 붙잡고 돌리며 들어가자, 어머니를 닮은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 야, 꼴통 새끼야! 지금 상황도 안 보냐? ”
“ 누, 누나... 어? ”
“ 지금 상황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으니까, 테라스부터 다녀와! ”
타마의 호령에 화들짝 놀란 시게이에는 두려움이자 존경의 대상인 타마를 보았다.
잔뜩 찡그려진 표정에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테라스부터 다녀오라는 말에 시게이에가 허둥지둥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가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타마가 말로 설명하면 될 일이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시게이에가 테라스로 올라가고, 몇 초 뒤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시게이에가 잔뜩 사색이 된 채 헐레벌떡 내려와 타마의 앞에 섰다.
타마는 사색이 된 시게이에를 보며 생각했다.
‘ 사내새끼가 그딴 거나 보고 놀라? ’
“ 누, 누나...!! 저게 다 뭐야?? ”
“ 보면 모르냐? 세상이 망한 모양이지. ”
“ 미... 미쳤어... 헉! 엄마랑 아빠랑 타츠가 마을에 나갔는데... ”
“ 그러냐? 일단 그쪽은 아빠가 있으니까 그리 큰 걱정은 안 드는데, 흠... ”
타마는 팔짱을 낀 채 깊은 고민에 잠겼다.
평소 혐오하기만 하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망했는데도 그녀의 입꼬리는 계속해서 씰룩거리기에 바빴다. 천하 태평한 그녀의 반응에 시게이에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만 했다.
시게이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타마와 함께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가장 최적의 보호자이지만, 지금 상황상 아버지는 외출 상태였기에 믿을 수 있는 건 누나인 타마 뿐이었다.
아무리 좆같고 버티기 힘들지라도, 살기 위해선 붙어있어야만 했다.
“ 야, 나는 나간다. 너는 알아서 해라. ”
“ 어, 어? 누나...!! 가, 같이 가! ”
“ 따라올 거면 따라오던가. ”“ 그런데 보니까 현관문에 달라붙어 있던데 어떻게 나가려고...? ”
“ 똘추 새끼야, 그 머리는 장식이냐? ”
시게이에의 질문에 타마가 답 대신 거실에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큰 창문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시게이에가 무언가 깨달은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마가 그런 시게이에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혀를 걷어찼다.
이놈이 따라온다고 해서 좋은 전력이 될지.
타마는 멍하니 있는 시게이에를 보며 다시 호통쳤다. 그대로 있을 거냐고, 그대로 있다간 저놈들에게 좋은 먹잇감밖에 더 되냐고, 챙길 것만 챙겨서 빨리 가야 하니 움직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시게이에가 정신을 차리고 이래저래 움직이며 물건을 챙겼다.
“ 누나, 이 정도면 되겠지? ”
“ 이제 머리가 좀 굴러가냐? ”
“ 하하... 누나, 그런데 뭐 타고 가려고...? ”
“ 당연히 발칸이지. ”
“ ... 오토바이? ”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타마의 말에 시게이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갔다.
당장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저들의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선 어찌 보면 오토바이가 맞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남아있는 게 오토바이거나 중형 SUV거나.
SUV는 자동차라서 저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너무 커서 이동에 방해될 수 있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으니 다행인데, 문제는 사방이 뻥 뚫린 탓에 저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자, 시게이에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어댔다.
“ 야, 머저리. 빨리 안 와? ”
“ 아... 가, 가! ”
타마가 오토바이 열쇠를 챙기며 시게이에를 보았다.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던 시게이에는 타마의 목소리에 다급히 움직이며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생수 두 병을 챙겼다. 창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숨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조심히.
마당을 둘러 주차장으로 향하자, 힘없이 흔들리는 놈들이 보였다. 색이 잔뜩 죽어 거무죽죽한 피부에 무언가에 뜯겨 늘어난 살점,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뼈.
그들을 직접 대면하자, 시게이에는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진해졌다.
“ 야, 잘 따라와. ”
“ 누나... 그런데 어디로 갈 거야? 엄마랑 아빠랑 타츠한테 갈 거야? ”
“ 아니. 회사에 있는 내 트럭부터 가지러 갈 거야. ”
“ 트럭? 지금 그게 중요해? ”
“ 어. 중요해. ”
시게이에는 타마의 뒤를 따라가며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당연히 부모님과 동생을 찾으러 가는 줄 알았던 시게이에는 타마의 목적지가 마을이 아닌 회사라는 것에 경악하듯 말했다.
중요하냐니까,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단칼에 답하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당장에 혼자서 가족을 찾으러 갈 용기가 없었던 시게이에는 별수 없이 타마의 의견을 따라야만 했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무사히 오토바이가 있는 곳까지 왔다.
타마는 오토바이의 손잡이 걸쳐져 있는 헬멧을 보다가 시게이에를 보았다.
“ 야, 대가리 깨지기 싫으면 이거나 써. ”
“ 이거 나한테 주면, 누나는? ”
“ 난 필요 없어. ”
타마는 시게이에의 머리에 대충 헬멧을 씌워주고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녀는 챙길 짐이 딱히 없었기에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애초에 회사에 있는 트럭이 대형 트럭이라, 그 안에 이동식 집처럼 꾸며둔 상태라 들고 가야 할 짐이 없었다.
시게이에는 그렇지 않아서 갈아입을 옷과 이래저래 챙긴 모양이었지만.
타마가 시동을 걸자, 현관문에서 얼쩡거리던 것들이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점점 다가오자 덜컥 겁을 먹은 시게이에가 허겁지겁 타마의 뒤에 올라탔다. 차마 당장 죽는다고 해도 타마의 허리를 잡을 수 없었던 시게이에는 오토바이 뒷좌석의 의자 끝을 붙잡았다. 시게이에가 탑승하자마자 타마는 곧바로 속도를 올렸다.
한순간에 달려드는 것들을 피해 집을 벗어났다.
“ ... 누나, 우리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겠지? ”
“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
“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가족들이 오면 어떻게 하지? ”
“ 알아서 잘하겠지. 아재도 있는데. ”
시게이에는 고개를 돌려 점점 멀어지는 집을 보았다.
어쩔 수 없이 타마를 따라야 하니 집을 떠나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건 여전했다. 어째서인지 이대로 떠나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입을 꾹 다물었다.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 덕분에 타마의 회사까지 오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게이에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구석으로 달려갔다.
오는 동안 스쳐 지나갔던 참상들이 뇌리에 너무 깊게 박혀버린 탓이었다.
여즉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지 못해 결국 겨워 내고 말았다. 구석에서 힘겨워하고 있는 시게이에의 모습을 한심하게 보던 타마가 자신의 트럭 앞에 서더니 뒷문을 열어 그 안에 시게이에가 들고 온 가방을 대충 올려두었다.
밍기적거리는 시게이에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느낀 타마가 자신의 한심한 동생 녀석을 불렀다.
“ 야!! 바로 출발하게 빨리 와!! ”
“ 으, 으응... 누나, 잠시만... 우욱! ”
“ 어휴... 남자 새끼가 담이 저렇게 작냐. ”
“ 하아... 누나가 대단한 거야... ”
타마는 그대로 트럭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마련해 두었던 무기를 꺼냈다.
스케반 시절 때부터 애용해 왔던 쇠 방망이, 그건 그녀의 오랜 파트너였다. 방망이를 들고서 다시 내려온 타마는 아직도 미적거리는 시게이에를 보았다.
시게이에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상대가 놀리기 좋고, 타격감 좋은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본능이. 그래, 본능이 그녀를 이끌었다. 빠르게 치고 달려간 타마는 시게이에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며 그대로 쇠 방망이를 휘둘러 벽에 내다 꽂았다.
콰직, 뼈와 살덩이가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누, 누나? 무슨... ... 우웨엑... ”
“ 쯧... 니 새끼가 밍기적대니까 이런 게 따라오는 거 아니야. 버리고 가기 전에 정신 차려라, 엉? ”
“ 미, 미안... ”
시게이에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시게이에의 시선에는 자신의 멱살을 잡아당긴 타마만 보였다. 등 뒤로 콰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거무죽죽한 피부가 쇠 방망이에 의해 짓이겨진 채 꿈틀거렸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신을 노리기 위해 팔을 허우적거렸다. 눈앞의 상황에 당장이라도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반쯤 날아갈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타마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꽉 붙잡았다.
“ ... 야, 머저리. 차 키 줄 테니까 시동이나 걸어. 시동걸 때 클러치 밟고 걸어야 한다! ”
“ 어, 어? ”
“ 빨리 가라, 엉? 또 미적대면 진짜 두고 갈 테니까!! ”
“ 으, 으아악!! ”
타마는 벽에 박힌 쇠 방망이를 빼내기 위해 짓이겨진 몸뚱어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녀는 쯧, 짧게 혀를 걷어차며 골목길 안쪽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을 보았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트럭 열쇠를 꺼내 시게이에에게 던져주며 명령을 내렸다.
당황한 시게이에가 허둥거리며 골목 안쪽과 타마를 번갈아 봤다.
그 순간 골목 안쪽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이 달려 들어왔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것들에 놀란 시게이에가 다급하게 달렸다. 달리는 도중에 헛다리를 짚어 넘어질 뻔했으나, 우월한 신체 능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다시 달렸다.
허둥지둥 운전석에 올라타 클러치를 밟으며 시동을 걸고 나서야 타마가 신경 쓰였다.
“ 누나! 시동 걸었어!! ”
“ 쯧, 야!! 패달 밟아!! ”
“ 누, 누나는?! ”
“ 아!!! 썅! 걍 밟으라고! ”
시게이에는 타마의 외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타마였지만, 그래도 엄연히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두고 패달을 밟으라니. 그 말은 곧 자신을 두고 떠나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시게이에는 목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꾹 참았다.
패달을 밟지 않으면 죽는다, 타마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어를 옮기고, 패발을 천천히 밟았다. 그러자 트럭이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시게이에의 시선이 힐끗, 힐끗. 계속 타마를 보았다.
타마는 시게이에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저 혼자서 무쌍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쇠 방망이를 휘둘러 그것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정확하게 머리만 노리며 으깨고 있었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팔과 허리, 강속구로 휘둘러지는 쇠 방망이에 그것들이 우후죽순으로 떨어져 나갔다. 시게이에는 타마의 모습을 보며 정녕 저게 사람이 맞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 누나!! 빨리 타! 점점 속도 올라가! ”
“ 하하!!!! ”
“ 누나!! ”
평소 타마가 여유롭게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드레날린이 터져서 쾌락과 살육에 미친 사람처럼 쇠 방망이를 휘둘러댔다. 타마는 손을 뻗는 족족 그것들의 머리가 힘없이 터지고, 여기저기 피가 튀기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들을 보며 입꼬리가 계속 씰룩거렸다. 머릿속에는 본능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모조리 죽여!
쇠방망이에 새까만 핏덩어리가 뭉쳐서 달라붙어도 팔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도로 위의 트럭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을 때에도 여전했다.
시게이에의 목소리는 그녀의 귓가에 전혀 닿지 않았다.
“ 누나!!!!! ”
“ 와, 시발... 개째진다. 진짜! ”
“ 진짜... 제발 부탁인데, 너무 무서워. 그러지 마... ”
“ 야. 너도 휘둘러보면 안 되냐? 혹시 알아? 너도 나처럼 잘 휘두를지? ”
“ 싫어, 이제 가족들 찾으러 가자. ”
“ ... 시시한 놈. 그러던가. ”
타마를 향해 달려들던 것들이 서서히 숫자가 줄어들고 나서야 타마의 흉흉한 기운이 사그라들었다. 마지막 놈의 머리를 만루 홈런처럼 멀리 날렸을 때, 겨우 정신을 차렸다.
타마는 땀에 묻은 걸쭉한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돌렸다.
여즉 천천히 가고 있는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천천히라고는 하나, 시동이 걸려있고 엄연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트럭을 붙잡고 문을 열더니 순식간에 올라탔다.
시게이에는 타마를 보며 간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누이라고는 하지만, 미친 듯한 피지컬에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절대 나대지 말고, 까불지 않기로 다짐했다.
타마는 아까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모양인지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 아재랑 아줌마랑 바보가 어디에 갔는지 아냐? ”
“ 누나가 자고 있을 때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고 갔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마트에 있을 거야. ”
“ ... 야, 한 번만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 ”
“ 어, 어? ”
“ 똑바로 좀 하라고! 머저리야! ”
창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던 타마가 시게이에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뒤에 쫓아오는 그것들을 보았다. 시선은 백미러를 보고 있었으나, 그녀가 말하는 상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시게이에였다.
그녀는 마을에 있는 마트로 향하는 길 내내 시게이에에게 트럭 운전을 알려주었다.
한 번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시게이에가 다시 되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는 내내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시게이에에게 화난 타마가 버럭 소리쳤다.
시동을 몇 번이나 꺼트리는 탓에 욕과 더불어 타박을 몇 번이나 듣고 난 뒤에야 트럭을 제대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타마는 시게이에를 보며 생각했다.
‘ 이 새끼, 아까는 어떻게 킨 거지? 초심자의 행운인가 그런 건가? ’
타마의 생각대로 방금 전의 상황은 워낙 위급했을 때라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모든 걸 알려주고 난 뒤에는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는 조용했고, 타마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시게이에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마트를 향해 가던 길, 방어선이 무너진 군부대가 보였다.
“ 야, 잠시만 멈춰봐. ”
“ 어? 왜? ”
“ 왜긴. 대가리 텅텅 비었다고 놀렸더니, 진짜로 비었냐? 아직 안 털린 거 같으니까 털어야지. ”
“ 누나... ”
시게이에는 타마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몇 시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런 결론이 나오는 건지. 혹시나 지금 상황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게이에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타마는 트럭에서 내려 군부대로 향했다.
잠시 후, 한짐 가득 들고오는 타마가 트럭의 뒤를 열더니 들고 온 짐을 그 안에 넣었다. 문을 닫고 다시 조수석에 올라타는 타마를 보며 시게이에가 물어보았다.
“ 누나, 뭘 들고 온 거야? ”
“ 좋은 거. ”
시게이에는 타마의 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물어보는 대신 운전에 집중했다.
어찌저찌 마을의 마트에 도착해 아무 곳에나 트럭을 주차했다. 타마가 트럭에서 내리더니 쇠 방망이를 쥔 팔을 휘두르며 근육을 풀며 시게이에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시게이에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타마를 보았다.
“ 야, 만약에... 내가 뒈지면 시체는 걍 버리고 내 유품으로 드넛이랑 마린 3형제만 챙겨놔라. 그거만 있으면 되니까. ”
“ 어? ”
“ 그리고 트럭이랑 오토바이하고 트럭 뒤에 있는 것들은 니가 다 가져가도 돼. ”
“ 누나... 왜 그런 말을 해? 살아야지. ”
“ 세상이 이 지랄인데 내가 끝까지 버틸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냐. ”
타마는 자신이 할 말을 마친 뒤 트럭 뒤로 가더니 그 안에서 Type 20과 Type94를 꺼내더니 시게이에에게 주었다. 여분의 탄창 여러 개가 담긴 가방까지. 시게이에는 타마가 자신은 쇠 방망이 하나만 들고 있으면서 저에겐 총을 건네주는 걸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뒤에서 사격하면서 보조하라는 말인 건가? 생각하며 앞서가는 타마의 뒤를 따랐다.
타마는 몸을 낯추며 주차장에서부터 득실거리는 것들을 보았다. 질리지도 않는 건지, 그것들은 그어어, 그르륵, 그륽., 괴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떠돌았다.
그녀는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육식동물처럼 기를 죽이고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 ... 누나, 아까 보니까 우리 집 작은 차 있던데, 가족들 여기 있는 거 같아. ”
“ 그래? 그럼, 저 안에 있겠네. ”
“ 으응... ”
“ 야, 가방 안에 소음기 있으니까 그거 껴라. 이 새끼들 보니까 소리에 반응하는 거 같은데. ”
“ 어, 어... ”
타마의 능숙한 명령에 시게이에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소음기를 꺼내다가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소음기와 탄창 하나를 떨구고 말았다. 땡그랑, 조용하던 주차장에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타마가 고개를 홱 돌려 시게이에를 노려보았다.
시게이에는 찰나의 실수에 매서운 타마의 시선을 받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하게 탄창과 소음기를 주워들었다. 다급하고 떨리는 손으로 총구에 소음기를 끼울 때였다.
시게이에가 타마를 보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 누, 누나...!! 위험해! ”
“ 이 씹...!! ”
당황한 시게이에가 총구를 올리더니 그대로 타마를 덮치려고 하는 것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총질을 해댔다. 푸슉, 푸슉! 소음기로 인해 적은 소리가 나며 총알들이 빠르게 박혔다.
머리가 날아간 그것은 힘아리 없이 타마의 위로 쓰러졌다.
타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쓰러지는 그것을 옆으로 치우고,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시게이에가 얼마나 한심한 녀석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 넘긴 자신에 대한 한탄이 섞여 있었다. 타마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음에 몰려드는 그것들에게 달려들며 시게이에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게이에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 머저리야!!! 냉큼 달려서 마트 안으로 들어갈 문이나 열어! ”
“ 으, 응...! ”
“ 달려!! ”
“ 누나! 부르면 바로 와야 해! ”
“ 씨발!! 달리라니까!! ”
타마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점점 차오르는 희열에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녀의 명령에 시게이에가 마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을 막아서는 것들이 나타나면 예고도 없이 총을 쏘며 해치우고 달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타마를 보는 순간, 그녀가 또 아까처럼 무아지경으로 싸우고 있는 걸 발견했다.
시게이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마트로 향했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전투에 겁을 먹고 말았다. 시게이에가 다급하게 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잠긴 듯 덜컥거리며 걸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게이에는 건물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
“ ... 바, 밖에... 그것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오셨어요? ”
“ 아. 저 총 들고 있습니다. ”
“ 군인... 이세요? ”
“ 그건 아니지만... 가족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
주차장 한복판에서 타마가 그것들을 주로 상대하며 쇠 방망이를 휘둘렀다.
카앙, 카앙! 날카로운 쇠 방망이소리가 시게이에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시게이에는 다급하게 안에 있는 것이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하던 도중,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것에 대고 총을 쐈다.
소음기 덕분에 그리 큰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짐작건대. 이대로 시간을 끌면 타마에게도 좋지 않았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게이에가 입구에 대고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
“ 아들? 정말 시게이에냐? ”
“ 아빠! 엄마랑 타츠는요? ”
“ 시게이에, 타츠랑 나도 여기 있단다. ”
“ 다행이다... 지금 누나랑 함께 왔어요. ”
“ 뭐? 타마가? ”
시게이에의 목소리가 들렸던 건지, 안에 있던 가족들이 응답을 해주었다.
시게이에는 그토록 찾고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감격하던 것도 잠시 냉정하게 답해야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 안쪽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지만, 막혀오는 목을 뚫기 위해 고인 침을 힘겹게 삼켜내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안에서는 우당탕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보니, 안에 있는 가족들과 다른 생존자들이 다툼이 있는 모양이었다. 가족들은 당장에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으나, 다른 생존자들에 의해 막혔다.
그 대화를 전부 들은 시게이에가 애써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 아빠, 엄마. 잠시... 누나를 도와주고 올게요. ”
“ 시게이에! 잠시 기다리거라, 나도 당장 나가서... ”
“ 사콘,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
“ 큭... ”
“ 잠시면 돼요. ”
“ 오빠! 조심해야 해! ”
“ 응, 타츠. 조금 있다가 보자. ”
시게이에에게 있어 타마는 무쌍인지라 도와주지 않아도 될 테지만, 이대로 있다간 안쪽에선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시게이에는 생각이 많은 만큼 두려움도, 겁도 상당한 사내였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두려움과 겁은 온전히 타마의 앞이라 유독 심한 편이긴 했지만, 여전히 시체조차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행동이 조금 굼뜬 편임에도 피지컬적으로 따지자면 타마 못지않았다. 시게이에는 Type94를 꺼내며 총탄을 채웠다.
타마에게 지원사격을 해주기 전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녀석들부터 없앤 뒤 자세를 잡고 조준경에 시야를 두었다. 타마가 무력을 휘둘러 머리를 없애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놈들의 다리나 몸을 겨냥하며 차근차근 하나씩 쓰러트렸다.
처음에는 제대로 맞추질 못해서 총알이 튀거나 엉뚱한 곳을 맞출 때도 있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세가 엉성하긴 하지만, 제대로 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총질했을까, 준비해 온 탄창이 두 개 정도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 ... 야, 내가 분명 문이나 열라고 했지. ”
“ 누나... 그게... ”
시게이에는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타마를 보며 딸꾹질 해댔다.
자신이 어째서 문을 열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묵묵히 시게이에를 바라보고만 있던 타마가 쇠 방망이를 들고 마트 입구에 휘둘렀다.
와장창, 단단할 것만 같던 유리문이 부서지면서 내려앉았다.
타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으로 들어가며 더 안쪽에 있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시게이에는 타마의 뒤를 따라 들어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이봐, 거기에 우리 아재랑 아줌마 있지? ”
“ 어? 언니!! ”
“ 저, 정말 저 괴물이 언니라고요? ”
“ 여자치곤 겁도 없고 힘이 무식하긴 하지만 괴물까진 아닙니다만. 엄연히 인간이지. ”
“ ...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
“ 밖에 있는 놈들은 다 처리했으니까 이제 문 좀 열지? ”
“ 네? 뭐라고요? ”
타마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자, 가장 먼저 타츠가 반가운 듯 반응을 보였다.
그 목소리에 놀란 다른 이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그러자 연이어 가족들이 그 사람을 타박하는 말이 들렸다. 모든 걸 듣고 있던 타마가 발로 문을 툭툭 치며 말했다.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또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타마의 말에 놀란 건지, 안에 있던 모든 생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입구를 막아두었던 물건을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타마와 시게이에를 지나치며 주차장을 보았다.
여기저기 난잡하게 쓰러져 있는 그것들을 보더니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어이, 무식이. 한 건 또 했구나. ”
“ 아재. 내 능력 쩔지? ”
“ 타마... 많이 더러워졌구나, 다친 곳은 없느냐? ”
“ 언니!! 언니라면 구하러 와줄 거라고 생각했어! ”
“ 타츠, 오빠는? ”
“ 오빠도! 너무 좋아! 고마워! ”
타마의 능력으로 인해 그리 힘들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이로써 시마 가문이 전부 모였다.
다른 생존자들이 주차장의 모습을 보고 멍하니 있을 때, 시마 가문 가족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타마는 더럽혀진 쇠 방망이를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고, 시게이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들고 갈 식량을 챙기기 바빴다.
어느 정도 적당한 양을 챙긴 뒤로 모든 짐을 트럭의 뒤에 싣고, 각자 차량에 올라탔다.
시게이에는 트럭을, 사콘은 박스카의 운전석을 잡았고, 쇠 방망이를 깨끗하게 씻고 온 타마가 트럭에 탑승하자, 시동을 키고서 여유롭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시마 가족이 향한 곳은 그들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집이었다.
정말 웃기게도, 시게이에와 가족들은 감동의 상봉을 했으나 타마와 가족들은 그러지 않았다. 사실상 가족들은 타마를 반겼지만 타마가 질색하며 도망쳤다.
집 앞에 있을 그들은 도착하는 대로 타마가 전부 쇠 방망이로 없애버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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