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사건 하나가 터지고 말았다.
리치너스 행성의 법을 잘 몰랐기에 친 사고이긴 했으나, 리치너스의 입장에선 엄연히 사고였고, 범죄였다. 비비안이 친 사고가 살인이나 고문, 강간과 같은 심각한 범죄들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바가 가볍게 실드를 쳐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녀의 죄는 다름 아닌 왕실 건물 무단 퇴거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비비안과 에이바가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거대한 버섯을 발견했고, 비비안이 호기심에 그 버섯을 만졌다.
그 버섯으로 인해 몸이 튀어 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버렸다.
비비안의 몸은 리치너스 행성의 왕이 있는 성까지 날아갔고, 성의 벽을 부수고 왕의 생일파티를 침범했다. 본의 아닌 사고였다고는 하나, 봐줄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었다.
그 사고로 인해 비비안이 리치너스의 군주를 대면하게 되었다.
처음 절대 군주를 대면했을 때 비비안은 자신의 죄를 듣고서 겁에 질린 듯 어깨를 움츠렸다. 지구에서도 그렇게 당하고도 여기에서까지 이런 신세가 되었다는 게 억울하고, 슬펐다.
" 이, 이익...!! 감히 짐의 생일파티를 방해해?! 당장 저년을 지하 감옥에 처넣어라! "
" 그... 그게 아니라...!! "
" 군주시여...! 그녀는 저와 함께 버섯 채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파티를 망치려는 고의는 아니었어요! "
" 에이바... "
비비안은 자신의 행동에 의해 절대 군주의 분노를 단단히 사버리고 말았다.
그때 에이바가 비비안의 앞으로 나서더니 군주를 보며 그녀를 대신해 대변하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자신과 함께 버섯을 채취하고 있었고, 거대한 버섯에 의해 튕겨져 나간 것이지 고의로 파티를 망친 게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군주의 파티를 망쳐버렸기 때문에 없던 일이 되진 않았다.
결국 비비안은 가석방 불가 종신형을 선고 받아버렸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비비안이 종신형을 받으면서 함께 체벌도 진행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비비안이 받게 된 처벌은 다양했다.
개들에게 발이 핥아지는 것과 종이에 발 도장을 반복해서 찍는 형벌 그리고 맨발로 쌀을 찧어 떡방아가 되는 형벌이었다.
" 아힉...! 흐읔, 큽... 흐흨... "
" 똑바로 해라, 죄수! "
" 간, 지러워서... 아핰! "
챱챱챱, 츄릅, 낼름낼름
" 꺄하핰, 아하하하! 아하앜! "
맨 처음 진행하게 된 건 양쪽 발이 개들에게 핥아지는 것이었다.
처음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었을 때, 개들에게 핥아지던 것보다 더한 간지럼이 느껴졌다. 우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수준으로 간지럼을 느끼게 되고, 그녀는 미친 듯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비비안이 웃어댈 때마다 병사들은 비비안이 진지하게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겼다.
그 말이 군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조금 더 강도가 높은 간지럼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간지럼 형벌이 끝난 다음에는 새하얀 종이 위로 발 도장을 반복해서 찍는 형벌의 시간이 다가왔다.
병사들이 비비안의 발바닥에 잉크를 골고루 발라주었다.
빈틈없이 진하게 바른 뒤 종이에 비비안의 발로 도장을 찍어댔다. 비비안은 병사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그걸 계속해서 반복해서 도장을 찍어냈다. 발바닥에 잉크가 발릴 때마다 느껴지는 붓의 감촉에 웃음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 아하하, 아핫!!! "
비비안이 발 도장을 찍어내는 사이, 잉크가 부족하면 병사들이 곁으로 와 잉크를 발라주었다.
잉크가 묻은 발로 도장을 찍는 건 오히려 쉬웠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되려 어떻게 하면 예쁘게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잉크가 부족해지면 발바닥에 닿는 붓의 감촉이 너무 간지러웠다.
붓이 발바닥 끝에 닿을 때마다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에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와 미칠 노릇이었다.
비비안은 자신의 옆에 쌓여있는 종이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종이에 발 도장을 찍을 때마다 잉크가 부족해지면 잉크를 바를 테고, 그럴 때마다 붓의 감촉을 느껴야 한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리치너스 행성으로 오고 난 이후로는 힘든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육체적인 피로를 느꼈다.
" 하으윽... 앜! 하핫...! 힠! "
" 이 정도면 그냥 간지러운 거 같은데... "
" 그러게 말이야. 제대로 벌을 받고 있군. "
반복해서 발 도장을 찍으면서 간지럼을 참지 못해 웃음을 참으면서 울고 있는 비비안의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비비안이 제대로 처벌받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들은 비비안을 이끌고 다른 형벌장으로 향했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절구통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병사들은 비비안을 바닥에 앉혀두더니 수갑을 채워 묶어두었다. 그다음 그녀의 양쪽 발을 깨끗하게 씻고 닦은 뒤 쌀이 담긴 절구통을 가져와 그녀를 그 안에 세웠다.
비비안은 그대로 자신의 맨발로 쌀을 전부 찧는 걸 반복하는 떡방아 형벌을 받았다.
" 이힠...!! 아하하! 꺄하하하! "
절구 안으로 쌀을 한껏 붓고, 비비안의 발이 정성스레 찧길 반복하는 사이에도 그녀의 입가엔 웃음이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왜 웃는 것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쌀 낱알이 육구와 발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비비안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한참을 밟고 나서 쌀이 떡으로 변해 뭉쳐지고 나서야 그녀의 웃음이 멈추었다.
잘게 빻아진 쌀에 찰기가 더해지면서 챱챱, 육구와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겨우 쌀을 찧어서 떡으로 만들기를 성공했다. 이제야 좀 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병사들이 계속해서 반죽이 되지 않은 떡 반죽을 잔뜩 가져왔다. 그 수많은 떡 반죽에 비비안의 사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 으윽... 감촉이 이상해... "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든 말든 병사들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떡을 찧을 것을 명했다.
비비안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양쪽 발로 반죽하는 형벌을 반복했다. 이번 형벌은 그리 간지럽지 않겠지, 생각했지만 발바닥에 물을 묻히고서 떡을 꾹꾹 짓밟는 순간 육구에 닿아오는 진득한 감촉이 느껴졌다.
육구에 떡이 붙은 채 늘어나면 다시 물을 묻히고 밟기를 반복했다.
비비안의 발바닥에는 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떡이 건조해지는 걸 막기 위해 계속 물을 묻혀야만 했다. 물을 묻혀서 밟을 때마다 쩍쩍 달라붙어오는 떡의 찰기에 비비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다음으로는 병사들이 가져오는 수많은 떡들 하나하나에 발 도장까지 찍어대는 형벌을 받았다. 그게 어떤 형벌인가 설명을 하자면, 그녀가 앞서 쌀을 직접 밟으며 찧었던 떡의 반죽을 쪄서 완성된 떡 위로 발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병사 하나가 비비안의 발목을 붙잡더니 그녀의 발을 떡 위로 꾹꾹 찍어눌렀다.
발을 떼어내자 떡 위로 선명한 육구가 자리잡았다.
" 어이, 이대로 떡에 도장을 찍어라. "
" 흐으... "
병사는 비비안을 향해 진행 방법을 알려준 뒤 물러났다.
그녀가 알려주는 대로 잘 행하는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비비안의 발바닥에 붙은 분홍빛 육구에 그대로 떡의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대로 꾹꾹 눌러대면서 찰기를 느꼈다. 그녀가 발을 떼어내자, 떡 위로 선명한 발 도장이 새겨졌다.
작은 4개의 구멍과 가장 큰 구멍 하나, 그 아래로 중간 크기의 구멍이 선명했다.
2개 정도 찍어내니 병사가 다시 다가와 비비안의 발자국이 찍힌 떡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씹어대더니 다른 병사를 불러 다른 하나를 쥐여주며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 이렇게 먹어도 되는 겁니까? "
" 신참, 초반에 나온 건 한 두개 정도 집어먹어도 돼. "
" 그나저나 떡이 맛있네요. "
" 막 나온 거라 그래. 어이! 죄수! 빨리빨리 안 해?! "
" 힉...! "
비비안은 호통을 치는 병사의 외침에 움찔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빠르게 발을 움직여 발 도장을 꾹꾹 눌러가며 찍어대기 시작했다. 떡 위로 비비안의 육구가 선명하게 새겨지고, 옆으로 치워질 때마다 병사들이 하나, 둘 집어먹었다.
그중 맛에 예민했던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와 떡을 집어먹더니 감격에 찬 눈으로 우물거렸다.
" 으음~!! 적당한 찰기와 만족스러운 달달함... 입안에 퍼지는 떡의 감칠맛도 완벽합니다! "
" 이녀석... 요리 평가사로 유명한 놈이잖아? "
" 발도장도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으니 더 즐겁네요! "
병사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비비안은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떡 위로 힘을 주며 눌러 더 선명한 자국을 만들었다. 3시간가량 발 도장을 찍고 나서야 준비되었던 모든 물량을 끝낼 수 있었다. 모든 떡을 다 찧고 발 도장까지 찍고 나서야 비비안에게 꿀같이 달달한 휴식이 쥐어졌다.
휴식이 끝나면 다시 형벌을 시작하고 끝나면 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가끔씩 발로 그림을 그리라는 군주의 명령에 따라 발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서예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 와서 비비안의 발바닥에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도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비비안은 간지럼에 고통스러워했다.
발로 그림을 그리는 건 간지러움을 타지 않았다.
다만 발바닥에 잉크를 묻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고통이 상당했다. 세세한 부분을 그릴 때 다리 근육이 끌렸고,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건 힘들었고, 발바닥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건 간지러웠다.
" 아하학! 자, 잠시... 꺄하하하! "
수천 개의 털로 이루어져 있는 붓의 감촉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지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요청에도 서예의 장인은 멈추지 않고 발바닥에 계속 세밀하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붓이 닿기도 전에 비비안의 발이 움찔거렸다. 그림이든 글씨든 둘 다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다가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비비안에게 면회가 들어왔다.
면회가 들어왔기에 면회장으로 끌려갔다. 비비안은 자신이 가석방 불가 종신형을 받은 사람이라 면회를 할 수 없을 텐데 누가 온 건지 의문이었다.
" 비비안...!! 괜찮아?? "
" 에, 에이바... "
" 비비안, 이제 매일마다 면회가 가능하게 됐어. "
" 그럼 널 매일 볼 수 있겠네... "
면회를 찾아온 것은 그녀의 연인이자 아내인 에이바였다.
에이바는 지친 비비안을 보며 이제 매일 면회로 찾아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에이바와의 면회를 마친 비비안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감옥 안으로 돌아간 비비안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까 마무리한 줄 알았던 발 도장 찍는 일이었다.
비비안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떡 위로 발 도장을 찍어대는 일을 이어갔다.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힘들고 지쳤지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
.
.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나 감옥에 있던 비비안에게 군주로부터 또 다른 명령이 내려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감옥 밖으로 나가 하루 동안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명령이었다. 비비안은 어째서 이런 명령이 내려온 건지 궁금했다.
그 이유는 첫 외출에서 에이바를 만나 듣게 되었다.
" 아, 그거... 군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받은 적이 있어서 딱 한 번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하신 적 있으시거든. "
" ... "
" 그래서 내가 군주께 평일 중 하루랑 주말 중 하루, 총 일주일에 두 번씩 자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어. "
" ... 그걸 그렇게 써도 괜찮은 거야? "
" 응, 널 위해서잖아. "
에이바는 자신이 과거, 몰락 귀족이었으며 이 나라의 군주가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적 있고, 은혜가 있었기에 그걸로 협의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에 놀란 비비안이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고, 에이바는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평일 중 하루, 주말 중 하루, 총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비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그런 소원권을 쓴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군주와 병사들은 자신에게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았었다. 그저 명령서만 내려왔었고, 나오자마자 만난 에이바가 설명해 준 게 전부였다. 참다못한 비비안이 에이바에게 물어보았다.
" 에이바, 왜 그렇게 했어? "
" ... 너에게 깜짝선물을 주고 싶었어. "
" ... "
"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너를 보고 싶었으니까. 너를 봐야 좋으니까... "
" 에이바... "
" 그리고 이건 더 서프라이즈야. "
" 이건...! "
비비안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에이바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에이바가 비비안에게 깜짝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리움과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비비안은 자신의 질문이 멍청했다는 걸 깨달았다.
충격받은 표정으로 이마를 짚던 순간 에이바가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만지더니 비비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 다음 자신의 배 위로 올려주었다.
비비안은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옅은 파동에 귀를 움찔거렸다.
놀란 눈으로 에이바를 보았다. 그러자 에이바가 더욱 수줍게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 우리 둘의 아이야. 나, 임신했어... "
" 에이바...! "
비비안은 너무 기쁜 마음에 에이바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하루가 지나서 비비안은 다시 지하 감옥으로 돌아가서 형벌을 받아야만 했지만, 전처럼 괴롭거나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과 에이바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된 주말, 외출을 허락받고 나온 비비안은 에이바를 찾아갔다.
에이바는 집으로 돌아온 비비안을 맞이해주며 안아주었다. 두 사람은 일상을 즐긴 뒤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던 도중 에이바가 틈만 나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비안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며 말을 걸었다.
" 에이바,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
" 하... 그게... 지금 엄청 큰 근심과 걱정이 생겼어. "
" 어떤 걱정인데? "
" 그게... "
에이바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비비안을 보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그녀의 근심과 걱정은 바로 비비안과 만났던 숲에서 우연히 발견한 마법의 돌이었다. 에이바는 마법의 돌을 만졌고, 그로 인해 자신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걸 알게 된 이유가 에이바의 눈앞에 홀로그램 화면처럼 나타나 설명을 해주었다고 했다.
에이바의 말을 듣고 있는 비비안은 그녀가 자신처럼 불로불사가 되었다는 소식에 놀라고 말았다. 에이바가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내가 영생을 살더라도 비비안은 시간이 지나면 죽게 되잖아... "
" ... "
" 나는 비비안 없이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 "
" 에이바, 사실... 나도 너랑 같은 효과를 받은 적이 있어. "
" ... 뭐? 정말? 정말이야? 진짜로?? "
" 그래,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우주를 오랫동안 떠돌아다녔거든. 마지막으로 세어본 게... 몇백 년하고도 1000년이었어. "
" 정말...? "
" 그리고 땅속에 박힌 채 2년? 이라는 시간 동안 동물들에게 발이 핥아지고 있었지. 그걸 발견한 게 너였어. "
" 헉... "
"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 "
에이바는 자신의 귀가 축 늘어질 정도로 시무룩한 표정을 보이며 슬퍼하고 있었다.
비비안은 그녀가 자신과 같이 영생을 살아간다는 소식에 기쁜 나머지 에이바에게 말해주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자신도 에이바와 같은 영생을 살아가노라고.
그러자 에이바는 화들짝 놀라며 몇 번이고 비비안에게 물어보았다.
비비안과 함께 살아가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비비안이 행성에 오기 전부터 해당 효과를 부여받았고, 이후에 우주를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다는 것과 긴 시간 동안 땅속에 박힌 채 있었던 일까지 말했다.
그 모든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사실이라는 것까지 덧붙였다.
"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난... "
" 울지 마, 에이바. "
" 네가 가버리면 나는 버틸 수 없었을 거야... "
" 이제 영원히 함께하자. "
그렇게 비비안과 에이바, 두 사람은 서로가 영원히 살아가면서 더 이상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상태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에이바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로를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 행복하게 사랑을 하며 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에이바의 집으로 다시 비비안을 감옥으로 데려가기 위한 병사들이 찾아왔다.
다음 주말이 오기 전까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 비비안, 몸조심해야 해... "
" 에이바. 내 몸보다 네 몸을 더 챙겨야지. 이제 너는 홑몸이 아니잖아. "
" 응, 그렇지. 우리의 아이가 커가고 있으니까. "
" 주말에 보자. "
비비안이 병사들에 이끌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후 비비안은 감옥에서 지내면서 이전과 같은 형벌을 다시 반복했다. 자유시간 같은 것도 누리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밖으로 나와 에이바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비비안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루였지만, 그녀는 에이바와 함께 지내는 것이었기에 모든 것이 행복했다.
다만 헤어져야 할 때가 많이 아쉬워서 힘들기는 했지만.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다가 비비안을 면회 온 에이바가 그녀에게 갓 태어난 아기 동물을 보여주었다.
비비안은 처음 자신의 자식을 만나게 된 날에 깨달았다.
" 아... 너무, 너무 사랑스러워... "
" 비비안, 눈이 당신을 닮았어. "
" 코와 입은 에이바, 너를 닮았네... "
자신과 에이바의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우리라는 것을.
처음 만난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비비안은 코끝이 찡해오는 것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울음을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참아냈다.
최근에 태어난 듯 포대기에 싸져 있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분홍빛 털이 보송보송한 게 한 번쯤 품에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감히 감옥에 들여올 수 없었기에 에이바를 보며 말했다.
" 주말에... 주말에 가면... 안아볼 수 있겠지? "
" 지금 안아봐도 되는데... "
" 아니, 아니야. 이 아이에게 감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
" 응. 주말에 아이랑 당신을 기다릴게. "
" 고마워, 에이바. 고생했어... "
" 아이의 이름은 뭐로 정할까? "
" ... 잭, 잭이 좋겠어. "
에이바는 혼자 아이의 이름을 정할 수 없었기에 비비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비비안이 고민하더니 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 여전히 비비안은 감옥에서 형벌을 받았으며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에이바와 잭을 생각하고서 버텼다.
휴일을 받아 나갈 때마다 에이바와 잭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덧 잭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때였다. 주말이라서 집으로 돌아온 비비안은 어설프게 걸어오면서 자신을 향해 팔을 뻗어오는 잭을 보았다.
벌써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잭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 아팝... 팦... 파파! "
" 그렇네, 잭. 아빠 저기 있구나. "
" 뭐...? 지, 지금 내가 아빠가 된 거야? "
" 어머, 나한테는 마마라고 하던걸. "
" 좋아... 기꺼이 잭의 아빠가 되어줄게! "
" 꺄아...! 파파, 맘마...! "
그렇게 다가오던 잭이 웅얼거리더니 비비안을 향해 파파라고 말했다.
잭의 말에 에이바가 웃으며 비비안을 보고서 말했다. 비비안은 잭이 자신을 보고서 파파라고 부르는 말에 아빠가 된 거냐며 에이바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에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안은 감격한 표정으로 잭을 안아 들며 기꺼이 잭의 아빠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그녀는 여성이었지만, 에이바의 신랑이자 남편으로, 잭의 아빠가 되었다. 그날 또한 비비안에게 있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잭의 무게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비비안은 힘들어했다.
애석하게도 악어 수인이 내렸던 절대 법칙 중 하나 때문이었다.
" 좀처럼 비비안의 체력이 늘어나질 않네... "
" ... 아마도 그 악어 수인이 내린 마법때문인 것 같아. "
" 어쩔 수 없지... "
" 그래도 앉아 있으면 잭을 안을 수 있으니까... "
시간이 지나고, 잭이 스스로 걸으며 유치원생이 되었을 때.
그때는 비비안이 완전히 잭을 안아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비비안은 그 부분을 매우 아쉬워했다. 언제든지 자신의 자식을 품에 안고 싶었으나, 체력의 한계로 안고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앉아 있을 때나 잭을 안을 수 있다는 게 분하고 한스러웠다.
.
.
.
시간은 유구하게도 흘러갔다.
어느새 잭이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될 정도로 자랐고, 엄마인 에이바와 함께 손을 잡고 매일 비비안에게 면회로 찾아왔다. 비비안은 잭이 커가면 커갈수록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미안함이 커져가는 걸 느꼈다.
집에서 봐도 좋았을 것을, 자신이 무지하여 감옥에 갇힌 채 어린 잭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면회실에서 비비안은 잭이 그간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과 만나 노는 일들, 어제는 무엇을 먹었고 뭘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매우 아꼈다.
" 아빠, 오늘은 엄마가 있지. 토마토 스튜를 해줬어! "
" 그랬구나, 맛있었니? "
" 응! 내일 아빠 오면 엄마한테 해달라구 해! "
" 그러자. 이틀 연달아 토마토 스튜 먹으면 안 질리겠어? "
" 아빠랑 같이 먹는 게 중요하지! "
" 어머, 우리 아들이 이렇게 다정하네요. "
비비안은 잭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귀를 기울였다.
시선은 언제나 잭을 향해 있었고, 그녀의 손은 잭의 뺨에 머물러있었다. 포동 포동 하게 살이 오른 촉감 때문에 뺨에서 손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비안의 눈빛에서 잭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면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비안이 다급하게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비비안이 형벌로 받고 있던 떡이 있었다. 그녀의 발 도장이 꾹꾹 눌러 담긴 작은 절편이었는데, 그걸 잭과 에이바에게 내밀었다.
떡을 발견한 에이바가 비비안을 보며 말했다.
" 비비안, 이게 무슨 떡이죠? "
" 내가 만든 거야. 두 사람 생각하면서... "
" 우와... 엄청 맛있어요! 엄마! 엄마도 얼른 먹어봐요! "
" ... 으음!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
비비안이 건넨 떡을 받아먹은 두 사람은 입안에 감도는 떡의 감칠맛에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맛이었던 것도 있지만, 비비안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해 주었다는 것에 더 놀란 것이다. 쑥스러워하고 있는 비비안의 곁으로 병사들이 면회 시간이 끝났다며 다가왔다.
비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잭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에이바와 잭이 돌아가고 나면 비비안에게 다시 형벌의 시간이 다가왔다. 비비안은 절대 법칙에 따라 영원히 간지럼에 적응할 수 없었고, 육체적인 힘듦에 적응할 수 없었으며 미칠 수도 없고, 기절조차 할 수 없었다.
끔찍하기만 한 형벌의 시간 사이에 있는 쉬는 시간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 하... 잭... 에이바... "
비비안이 형벌을 참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 에이바와 잭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에이바가 광장에서 화가에게 그려달라고 한 것이라며 에이바와 잭이 함께 있는 그림을 주었다. 쉬는 시간이면 항상 품에 넣어두었던 그림을 꺼내 두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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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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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 외출을 허락받은 비비안이 집으로 오자마자 두 사람을 불렀다.
" 어머, 무슨 일이야? "
" 아빠! 왜 불렀어? "
" 오늘 우리 광장에 가서 가족 그림을 그리자. "
" 좋은 생각이네? "
" 와! 나도 드디어 가족 그림 생기는 거야?? "
" 그래, 잭. 얼른 모자 쓰고 오렴. "
비비안은 에이바가 준 그림을 가진 뒤로 계속해서 생각했다.
제대로 된 가족 그림조차 없는 가족이 되고 싶진 않다고. 그래서 외출을 나온 오늘, 에이바와 잭을 데리고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많은 인파에 휩쓸려 가족을 잃지 않기 위해 비비안이 잭을 안았다.
그러자 에이바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비비안을 보며 물었다.
" 비비안, 괜찮겠어? "
" 괜찮아. 체력이 늘진 않았지만... 잭을 보고 있으면 힘든 걸 모르겠으니까. "
" 잭, 아빠 힘들게 하면 안 된다? "
" 응! 그래도 아빠가 안아줘서 좋아! "
잭의 말에 비비안이 웃으며 아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손으로 잭을 안자, 에이바가 비비안의 팔에 팔짱을 껴왔다.
그렇게 한 가족이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한 화가를 발견하고서 가족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화가에게 그림 두 장을 부탁하게 되자 화가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비비안은 귀중한 하루의 시간을 그림에 쏟아부어야 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 단란한 가족이구려, 허허... 아이가 참 사랑스러워. "
" 그렇지요? 제 아들이랍니다. "
" 자자, 자세를 잡아보시게. 속도를 올려볼 테니. "
" 고맙습니다. "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 화가가 최대한 속도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화가의 오랜 노력 덕분인지 저녁까진 가지 않았다. 노을이 지는 하늘이긴 했지만, 두 장을 그린 것치곤 빨리 끝난 편이었다. 잭이 비비안과 에이바의 손을 맞잡은 채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들의 집에는 단란한 가족 그림이 벽에 걸리게 되었다.
한 장은 비비안이 내일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들고 가기로 했다. 그날 저녁, 비비안은 에이바와 잭이 해준 밥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비록 형벌을 버티는 건 힘들었지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과 자신을 위해주고 기다려주며 생각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하루가 지나고, 비비안은 또다시 가족과 헤어져 감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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