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셔델은 자신의 앞에서 울먹거리며 울고 있는 박사를 보았다.
짧지만, 묵직한 한숨과 함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의 박사는 늘 권능적이었고, 냉철했으며 무서운 존재였다.
그날의 회의실은 유난히 밝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백색 조명이 머리 위에서 규일하게 쏟아지고, 벽면의 전술 홀로그램이 미묘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위셔댈은 그 밝은색이 싫었다.
살카즈의 피부 위로 내려앉은 빛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했다.
어쩌면 그 빛이 아니라, 박사와 함께 있는 게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 다음 작전, 살카즈 부대는 외곽으로. ”
“ ... ”
“ 중앙은 로도스 정예가 맡아. 위험도가 높으니까. ”
박사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철저한 지휘자로서 냉정하게 읽어내리는 듯한 말투. 위셔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미 예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항상 그 자리는 위험이나 소모의 영역이었다.
“ 외곽이면 포격 범위 안이야. 지형도 불리해. ”
위셔델이 말했다. 최대한 차분하게.
박사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서류에서 눈을 떼며 아주 잠깐 위셔델을 훑어봤다. 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부품의 상태를 점검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선이었다.
“ 그래서? ”
“ ... 손실이 커질 거야. ”
“ 손실은 고려해야지. 네 쪽은 전쟁에 익숙하잖아. ”
“ 그거랑은... ”
“ 살카즈는 원래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고, 살아남았고. 피 냄새, 폭발, 시체. 다 일상이잖아? 아닌가? ”
“ 그걸... 지금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
“ 팩트야. 그리고 효율적인 배치지. ”
박사가 피식 웃었다. 얇고 계산적이며 명백한 비웃음이 섞인 미소였다.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함께 회의를 하고 있던 이들조차 얼어붙은 채 박사와 위셕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른 간부들이 숨을 죽였다.
박사가 말을 이어갔고, 그 말에 위셔델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박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효율적인 배치라는 말에 위셔델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늘 참아왔다. 더러운 살카즈라며 능욕해도, 매번 위험한 임무지에 배치받아도 참았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니라 수십 번이나.
“ 네가 제일 적합해. 다른 종족보다 더럽게 굴려도 티가 안 나잖아. ”
“ 지금... ”
잠깐 호흡을 내쉬던 박사가 힐끗, 위셔델을 훑어보던 박사가 비웃으며 덧붙였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위셔델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위셔델의 손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날카로운 소리가 회의실 전체를 울렸다.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몸이 절로 움찔거렸으나, 박사만 무심한 눈으로 위셔델을 보았다.
“ 지금... 뭐라고 했어? ”
“ 흥분할 필요 없을 텐데. 사실이잖아. 살카즈 계딥들, 원래 걸레짝인 거 아니었... ”
“ 닥쳐! ”
박사는 오히려 눈썹을 찌푸렸다.
불쾌함보다는 예상 밖의 반응을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회의실에 완전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위셔델의 눈이 박사를 똑바로 노려봤다.
분노보다 먼저 올라온 건 오래 쌓인 모멸감이었다.
“ 네가 뭔데,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
“ 난 철저하게 계산하고, 계획하지. 그리고 넌 그 결과지. ”
“ 하! 그래. 넌 사람들을 소모품으로나 보겠지. 그래서 네가 역겨운 거다. ”
위셔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박사는 위셔델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 결과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위셔델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짧고 비틀린 웃음으로 박사의 역겨움을 집어 말했다.
박사의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 말조심해, W. ”
“ 그 이름으로 날 부르잖아. 더러운 살카즈, 걸레짝. 그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다른 동료들까지 그렇게 부르는 건 용납 못 해! ”
“ 그래서? ”
위셔델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인해 흥분한 탓에 거친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위셔델이 숨을 들이마시며 힘껏 박사를 노려봤다. 날카로운 시선에도 박사는 여전히 무심했다.
위셔델이 얼마나 주먹을 꽉 쥔 건지, 손톱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
“ 난 내 손에 피가 묻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넌 아니잖아. 넌 깨끗한 척하면서 사람을 죽이지. 그게 역겹다는 걸 넌 몰라. ”
“ 그게 문제가 되나? ”
그날 이후, 위셔델은 문제가 되냐는 듯이 바라보는 박사를 아군이 아닌 적으로 규정했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난 위셔델은 붙잡고 있던 펜을 꽉 쥐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종이에 아른거리며 비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펜대가 찌그러질 것 같은 기세에 위셔델이 손에 힘을 뺐다.
하지만 금방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 때문에 몇 번이나 펜을 쥐었다가 놓았다.
잊히지 않았다. 그날 맡았던 회의실의 냄새, 박사의 목소리, 물건 따위로 보던 눈빛. 그런데 지금의 박사는... 사소한 폭발음에 놀라 뒤로 물러서고, 전술 화면 앞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굳어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옷자락을 붙잡는다.
고작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이러는 건...
“ ... 말이 안 되잖아. ”
결국 참지 못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연기라기엔 너무 서툴렀고, 계획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펐다. 위셔델은 펜을 내려두고 이마를 짚었다. 동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을 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토록 당해놓고서 과연 박사에게 동정하고 싶은 걸까.
난 네 편이 아니야. 그래야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편지는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위셔델은 자신의 이름 옆에 마무리를 뜻하는 점을 찍었다.
편지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으로 인해 일렁거리는 촛불을 후, 불어 끈 다음 방을 떠났다. 문을 닫고,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발걸음이 박사의 방으로 향했다.
기계음이 작게 울리고, 복도의 소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어느새 도착한 박사의 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편지를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문틈 사이로 편지를 넣어두고서 방으로 돌아갔다. 밤이 될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방 안은 조용했다. 숨소리만 남았다.
박사는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문틈 사이로 끼워진 편지, 앞면에 보이던 위셔델의 이름. 위셔델이 보낸 편지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편지,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이 떨렸고, 숨이 가파르게 쉬어졌다. 편지에 억눌려진 그녀의 감정이, 자신을 탓하면서도 결국 용서해준 그녀의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눈물이 흘렀다.
편지를 붙잡고, 울었다.
그날 저녁, 위셔델은 자신이 말한 대로 박사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날 밤의 일은 서로의 감각에 기댔다. 말보다 숨, 질문보다 체온을 나누었다. 서로 마주 본 시선에서 많은 감정이 얽히고, 전달되었다.
아침, 거튼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위셔델은 낯선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셔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박사를 보았다.
한참 뜸을 들이던 위셔델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 ... 난 아직 널 믿지 않아. ”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위셔델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위셔델이 옅게 웃어주자, 박사가 위셔델의 품에 안겨들었다.
많은 감정이 뒤섞여 복잡했지만, 지금은 일단락된 듯해 보였다.
며칠 뒤, 갑작스러운 전투가 발생했다.
전투로 인해 발생한 연기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화약 냄새와 타버린 금속 냄새가 뒤섞여 폐 깊숙이 들어왔다. 전술 화면은 깜빡였고, 통신 채널에는 잡음이 섞인 숨소리와 비명이 끊임없이 오갔다. 박사는 화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정보가 너무 많았다. 표식, 붉은 경고선, 사라지는 아군의 신호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서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했고, 결론조차 내지 못했다. 박사는 평소보다 더 기가 죽어서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낯설게 울리는 게 느껴졌다.
“ 중앙... 중앙을 돌파하면... 포위가 풀릴 거야. ”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잠깐의 정적 뒤, 찢어질 듯한 호통과 함께 통신이 열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박사의 몸이 흠칫, 놀라며 떨었다.
통신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위셔델이었다.
[ 지금 그 말을 진심으로 한 거야?! ]
[ 전방 시야도 안 나와, 보급도 안 들어왔어! 지형은 본 거야?! ]
“ 그... 그러면 다른 방법이... ”
낮고, 날카롭고, 억눌린 분노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말에 박사의 손이 떨렸다. 우물쭈물하며 두려움이 가득한 박사의 눈동자가 옅게 떨렸다. 화면을 확대하려 했지만,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라며 말하려고 했지만, 머리가 안 굴러갔다.
[ 없어? 없겠지. 있으면 진작에 말했겠지. ]
위셔델이 박사의 말을 자르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한숨 뒤로 커다란 폭발음이 다시 울렸다. 전술 지도 위에서 아군 표시 하나가 꺼졌다. 위셔델의 숨이 거칠어졌다.
짧게 혀를 걷어차던 위셔델의 목소리가 화면 속에서 울렸다.
[ 젠장...!! 예전의 너였으면 이딴 판단, 안 했어. 절대!! ]
위셔델의 말이 날카로운 칼처럼 박혔다.
박사의 시야가 흔들렸다. 예전.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예전의 박사,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 모두가 알고 있는데, 자신만 모르는 유일한 사람.
“ ... 그만해. ”
[ 뭐? ]
“ 그만하라고...! ”
자신조차 놀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돌아오는 건 위셔델의 반문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온 말은 조금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떨렸다. 언제나 눈썹 끝이 내려가 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눈썹 앞이 아래로 내려갔다.
정신을 차린 이후로 줄곧 정신이 없는데, 쌓을 만큼 쌓였던 게 터진 느낌이었다.
“ 왜 자꾸 예전 이야기를 해? 난... 난 모르겠는데... ”
박사의 손이 콘솔 위에서 미끄러졌다.
억울한 감정 때문인 건지, 아니면 복잡한 머리 때문에 그런 건지. 시야가 흐려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함인지 구분이 안 됐다.
“ 난, 난... 진짜 기억이 없어. 어떻게 했는지도... 왜 잘했는지도... ”
박사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통신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쾅, 쾅. 폭발음이 계속 울렸지만, 계속 말하고 있던 위셔델은 조용했다. 박사는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침대에서 몸을 섞으며 서로의 진심이 통했던 것 같은데.
“ 그러면 내가 어쩌길 바라는 거야? 네가 말하는 예전처럼 차갑게 굴길 원해? 널 밀어내길 원해? 네가 말한 대로 널 매도하고, 걸레짝 취급하던 그 여자가 되길 원해?! ”
[ ... ]
“ 난... 난 그냥... 무서워서... 틀리면 또 다 망칠까 봐... ”
박사의 감정이 무너진 둑처럼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숨을 들이마시려고 했지만, 공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완전히 무너졌다. 눈물이 툭툭, 떨어지며 시야를 가득 채우는 탓에 눈앞의 화면을 흐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전장으로 가려던 위셔델을 막으려고 하던 자신이었다.
“ 지금의 난... 뭘 해도 틀린 것 같아... ”
전장 한복판에서 박사의 말을 듣고 있던 위셔델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삼켰다. 분노가 오르는 걸 삼켜내며 참았다. 박사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서 무언가를 자각한 듯싶었다.
위셔델은 짧게 혀를 걷어찬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지휘는 내가 한다. 넌 잠시 뒤로 물러나. ]
“ 으응... ”
[ ... 전투 끝나고 돌아가면, 도망치지 마. ]
위셔델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박사를 붙잡으려고 하는 온기가 섞여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 목소리에 박사의 목소리가 다시 줄어들었다.
험난한 다툼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다툼에 주변 사람들은 곤란한 상태였다.
위셔델의 말에 박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듯, 손을 꽉 쥐었다. 전장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위셔델은 돌아가는 대로 박사를 침대에서 혼낼 생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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