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50528] 두 사람의 여행

나비의 보관함 2025. 6. 16. 07:36

 

태의가 보낸 서신을 읽던 은수는 조용히 창밖을 보았다.

서신이 도착했을 땐 이미 그가 출발하는 날이었다. 그간 그가 보내왔던 서신을 읽었지만, 그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과 이대로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다투어 답을 보내지 못했다.

그가 체탐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서신을 통해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신에 답신을 보내지 못했던 건, 아주 사소한 조심스러움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그가 부러우면서도 그와 같은 용기가 저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그는 가벼운 친구 느낌이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서 관계도 멀어졌다.

태의가 체탐인이 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니, 자신이 따라가봤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였다.

자신은 이 자리에 그대로인데, 그는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어쩌면 부러웠던 걸지도 몰라.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그는 눈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

그와 동시에 이제 자신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아서 쉬이 답장을 주지 못했다. 한낮 자신이 어찌 그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자신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을 받고 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다고 하니, 이대로 태의를 보지 못하고 끝을 맺는 것이 싫었고, 이 서신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그걸 끝으로 맺고 무시로 일관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녀는 얼굴이라도 보고 끝맺음을 짓고자 했다.

 

 

아직, 아직 늦지 않았어. ”

 

 

은수는 늦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며 채비를 빠르게 했다.

그리 챙길 게 없다고 여겼지만, 그에게 주고 싶다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자, 채비를 하는 것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허겁지겁 도착한 선착장에는 홀로 서 있는 태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은수는 바삐 달려온 탓에 달아오른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후, 내뱉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가 돼서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태의가 인기척을 알아낸 듯 몸을 돌렸다.

 

 

그대, 와주었군. ”

태의... 내가 온 건... ”

그대가 내 서신을 보고 있을 줄 알았다오. ”

태의... ”

 

 

은수는 자신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는 태의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출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 마지막을 제대로 끝맺기 위함이라 다짐하며 왔었는데, 막상 그의 앞에 서니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믈스믈 기어 나왔다.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을 꾹 짓누르며 그의 앞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태의는 그걸 알아차린 모양인지 급히 달려오느라 잔뜩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리를 해주며 말했다.

 

 

이런, 급히 달려왔나 보오. ”

마지막 서신이... 오늘 아침에 도착해서... ”

그런 것이오? 천천히 왔어도 되었을 것을... 배는 술시까지 있는데. ”

그 전에 보고 싶어서... , 아니! 이대로 끝내기엔... ”

알고 있소. 이제 답을 해주는 것이오? ”

“ ... , 내가 함께 가도... 도움이 안 될 거고... ”

왜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오? 그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 될 텐데. ”

“ ... 정말로? ”

 

 

다정한 그의 손길에 은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출발 전에 세웠던 그녀의 다짐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태의를 바라보자, 태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은수가 시선을 굴리며 자신이 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유에 태의는 왜 그리 생각하느냐며 답을 해주었다. 그는 다그치지도, 강압적으로 가야 한다고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은수가 함께 간다면 좋은 점을 말해줄 뿐이었다.

 

 

그렇소. 혼자 하는 여행보단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

그러면... ”

물론 나는 그 누군가가 은수, 그대이길 바랄 뿐이오. ”

그럼... 같이 갈까? ”

좋은 생각이오. ”

 

 

은수가 흔들리던 마음을 꺾고, 함께 간다는 말을 하자, 태의가 환하게 웃었다.

태의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 은수의 답답했던 마음이 한풀 풀려나갔다. 그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다.

태의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오? ”

가지고 온 전낭을 왜나라 화폐로 바꾸려고 해. ”

아무래도 그대는 갈 마음이 가득했던 모양이오. ”

, 그렇진 않아! 이건... 그러니까... ”

하하, 화폐변환소로 안내하겠소. ”

 

 

태의의 말에 은수가 품에서 전낭을 꺼내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전낭을 챙겨왔다는 말에 태의가 가만히 은수의 얼굴과 전낭을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에 은수는 마치 숨겨둔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다급하게 고개를 저어대며 아니라고 부정을 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아무리 변명하려고 해도 태의는 이미 그걸 받아들인 듯 웃으며 그녀를 화폐변환소로 이끌었다. 태의의 뒤를 따라가던 은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서홍시처럼 붉어졌다.

화폐변환소에서 통보를 증지로 바꾸었다.

 

 

저 자는 이곳, 항구에서 나름 유명한 변환소를 운영하고 있는 자라오. ”

믿어도 되는 거야? ”

물론이오. 다른 곳은 수수료를 크게 물지만, 저곳은 좀 적게 받거든. 거기다 내가 함께했으니, 수수료는 없었을 것이오. ”

그렇구나... ”

 

 

은수는 처음 보는 증지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전낭 안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무게가 사라지고, 종이 특유의 가벼움이 남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태의는 은수의 곁에서 나란히 걸으며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태의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은수를 보았다.

은수는 자신을 향해 바라보는 태의를 보며 자신도 걸음을 멈추었다. 항구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태의가 은수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어떻소. 와보길 잘한 것 같지 않소? ”

그렇네... 엄청 예뻐. ”

왜나라로 향하는 표는 내가 미리 구매해 두었소. ”

내가 안 오면 어쩌려고 그랬어? ”

“ ... 한편으로는 그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미리 준비한 셈이지. 그대가 오지 않았다면 이 표는 쓸모가 없으니 버렸을지도 모르겠어. ”

너도 참... ”

 

 

은수와 태의가 한참이나 항구에서 바다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은수는 자신이 오지 않았더라면 쓸모가 없어져 버려졌을 표를 생각하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바다를 좀 더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바다만 보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던 배가 항구에 정착하는 게 보였다.

주변에 있던 태의가 은수에게로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은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큰 배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의는 은수가 바다를 구경하고 있을 때, 준비한 물건을 들고서 배로 다가갔다.

 

 

그대에게 필요한 물건은 방금 샀다오. 이제 왜나라로 가기 위해 배에 올라야지. ”

? 내가 바다 구경하는 사이에 샀어? ”

그렇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샀다오. ”

얼마였어? 내 물건은 내가 값을 치룰게. ”

괜찮다오. 그대가 나와 함께 여행을 해주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오. ”

아니, 태의. 내가 낼게. ? ”

조심해서 오르시오. ”

 

 

은수는 태의가 자신이 바다를 감상하고 있을 때 물건을 샀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물건인데, 제가 값을 치루는 게 맞다는 생각에 그를 향해 외쳤지만, 태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박에 머무는 배 위로 올라갔다.

은수가 뒤늦게 태의의 뒤를 따라가며 값을 말하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웃으며 배 위로 올랐고, 값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은수는 배 위에 올라 넓은 바다를 보았다. 그러다 몸을 돌려 항구 쪽을 보았다.

이대로 배를 타고 떠난다면, 언제 조선 땅을 밟을지 몰랐다.

 

 

걱정되오? ”

아무래도... 태어나 한 번을 떠난 적 없던 내 고향이니까. ”

고향이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오. ”

그렇겠지? ”

내가 돌아오게 해주겠오. ”

. ”

 

 

선박에서 은수가 멍하니 항구를 바라보는 모습에 태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잔뜩 이고 있던 짐을 배 안에 있는 방에 두고 온 듯 보였다. 짐따위 없는 가벼운 모습으로 은수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의 두려움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태의는 은수에게 자신이 고향으로 데려다주겠노라고 약조했다.

왜나라로 향하는 그 배는 은수의 두려움을 싣고 출항했다. 드넓은 바다는 보고 있을 땐 기분이 좋았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안겨주었지만, 막상 배를 타고 떠나니 바닷길로 인해 심하게 흔들렸다. 은수는 마치 몸이 붕 뜬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그마저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나마 바닷바람이 속을 가라앉혀주긴 했지만 미미했다. 은수는 피부 위로 느껴지는 바다 특유의 짠 기운을 느끼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힘들어하고 있는 은수의 곁으로 다가온 태의가 약 하나를 내밀었다.

 

 

멀미환이오. 그대가 멀미를 할 줄 몰랐소. ”

아무래도 나는 땅만 밟고 살아온 사람이니까. ”

그건 나도 그렇소만... ”

너는 체탐인으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니까 괜찮겠지. ”... 그럴 듯하오. 앞으로 10각은 더 가야 하니 환을 먹고 들어가서 한숨 자는 게 좋겠소. ”

그렇게나 오래 걸려? 이미 반각에 이각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

아무래도 배로 가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소? 하늘을 나는 방법이 있다면 모르겠소만... ”

약 고마워. ”

 

 

은수는 태의가 내민 멀미환을 먹으며 더부룩해진 속을 진정시켰다.

앞으로 10각은 더 가야 한다는 말에 혼란스럽긴 했지만, 처음부터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이 정도 일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멀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배 안에 구비된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몸을 눕혔다.

태의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면 그땐 왜나라에 도착해 있기를 바라면서.

 

.

.

.

 

시간이 지나, 은수가 잠에서 깨어나며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깜빡깜빡,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곁에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태의가 보였다.

그가 자신을 깨운 것이 아닌 스스로 일어났다는 것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짐작했다.

은수는 방 안에만 있기에 갑갑했던 모양인지 몸을 일으켜 담요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바닷바람이 그녀의 몸에 추위를 안겨주었다.

은수가 함께 들고 온 담요로 몸을 감싸고, 배의 선미로 향했다.

 

 

... ”

쌀쌀할 텐데, 답답해서 나온 것이오? ”

엄마야! 너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

체탐인으로서 깊은 잠에 빠져들진 않는다오. ”

항상 사주경계를 해야 하니까? ”

그렇소.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잠도 쉬이 자질 못한다오. ”

그렇지만 태의, 넌 이제 체탐인이 아니잖아. 그러니 조금 정도는 편히 눈을 감고 잠에 들어도 되지 않을까? ”

“ ... 그 생각은 하지 못했구려. ”

그럴 수 있지. 이젠 마음 편하게 먹고 쉬어. 이렇게 예쁜 밤하늘도 구경하고! ”

“ ... 아름답군. ”

그렇지? ”

 

 

은수는 천천히 걸어 나오며 밤하늘을 보았다.

까만 밤하늘 위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벅차오르는, 눈물이 맺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짧게 숨을 내뱉으면 찬 공기로 인해 입김이 절로 나왔다.

밤하늘을 감상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뒤로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은수가 화들짝 놀랐다.

놀란 것도 잠시, 은수와 태의가 익숙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은수는 잠조차 쉬이 들지 못하는 태의의 모습에 안쓰럽게 느껴졌던 모양인지 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양팔을 활짝 벌려 하늘을 향해 들어 보이고, 밝게 웃었다.

그녀의 행동에 태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은수는 태의의 말이 밤하늘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말한 것은 밤하늘이 아니었다.

 

 

도착했소, 그대. 일어나시오. ”

으음... ”

이러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내리겠소. ”

...! ”

 

 

밤하늘을 보던 시간을 지나, 다시 눈을 붙였던 은수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는 태의가 은수를 깨웠고, 은수는 자연스레 도착했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며 짐을 챙기고, 배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항구부터 시작해 걸어가는 길목 속에서도 전부 처음 보는 것이고, 생소한 것들로 가득했다.

은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는 걸 겪으며 신기한 듯 주변을 살펴보았다. 골목을 지나가는 도도한 고양이, 활기찬 목소리로 웃고 떠드는 어른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어오는 아이들, 음식을 만드는 소리, 모든 것이 신기했다.

태의가 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숙소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니, 인력거를 타야겠소. ”

, 이게 뭐야? ”

인력거라고 하오. 대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지. ”

... 사람이 끌고 가는 거야? ”

그렇소. 저들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돈을 주면, 거기까지 데려다준다오. ”

 

은수는 눈앞의 생소한 물건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태의의 설명에도 눈이 동그레져서 얼떨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의가 웃더니 인력거를 모는 인부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증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인부가 호탕하게 웃으며 은수에게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은수는 평생을 조선에서 살아온 이라, 인부가 말하는 왜나라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은수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태의에게로 향했다.

태의는 은수를 인력거에 태우면서 방금 인부가 한 말을 번역해 주었다.

 

 

인부가 그러는데, 그대의 반응이 참 귀엽다는군. ”

? ?? ”

그대의 귀여움은 왜나라에서도 통하는 모양이오. ”

뭐래!! ”

하하! ”

 

 

은수는 태의와 함께 인력거를 타고서 가는 길에 지나치는 주변을 구경했다.

신기한 것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순식간에 목적지로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기와를 얻은 집이었다. 은수가 신기하다는 듯 건물을 바라보자, 또다시 태의가 손을 붙잡고 그녀를 이끌었다.

안으로 들어왔을 땐, 보폭이 짧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여성이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하얗게 분칠된 얼굴이 은수를 놀래켰지만, 상대 여성은 수줍게 웃어줄 뿐이었다. 태의가 방을 잡고, 안내원이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은수가 짐을 내려두며 방을 구경했다.

 

 

태의, 방금 봤어? 여자 얼굴이 완전 새하애! ”

왜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분칠을 저렇게 한다더군. ”

우리나라는 안방마님들도 저렇겐 분칠 안 해! ”

하하! 짐부터 풀고 주변을 다니는 게 어떻소? ”

좋아, 그런데 바닥 되게 감촉이 이상하다. ”

 

 

은수는 바닥에서 느껴지는 까슬한 느낌이 이상했던 모양인지, 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은 분주하게 짐을 풀었다. 다행히도 짐이 별로 없었던 탓에 오래 걸리진 않았다. 태의와 함께 밖으로 나온 은수는 신기한 듯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걷던 이들이 저마다 지나가면서 은수와 태의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이 낯설어서, 은수가 움찔거리며 태의에게 바짝 몸을 붙이고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다 보니 그 두려움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녀의 행동에 태의까지 덩달아 긴장한 듯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왜 그러시오? ”

사람들이 다 쳐다봐. ”

아마 우리 복장 때문일 것이오. 전쟁이 얼마 전에 끝났으니... ”

, 그렇네... 우리 옷... 살까? ”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

 

 

태의와 은수는 근처에 있던 옷 가게로 들어갔다.

옷 가게의 주인은 두 사람의 복장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입구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더니 밖에서 볼 수 없게 커튼을 쳤다.

사장의 행동에 당황스러운 은수가 자신도 모르게 태의의 소매를 붙잡았다.

 

 

자네들, 그러고 다니다간 큰코다치네! ”

어라? 조선인... 이신가요? ”

그래, 아무리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서로 악감정이 남아있지 않나. ”

... 그래서 아까... ”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것이오? ”

아직 이 근방에서는 조선인을 향한 혐오가 남아있으니 조심해야 하네. ”

 

 

두려움에 떠는 것 같던 사장은 친절하게도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태의와 은수에게 갈아입을 옷을 안겨주며 밖을 지켜보기도 했다. 은수는 탈의실 들어가 자신이 입고 있던 한복을 벗어 고이 개켜두고, 사장이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깔끔한 셔츠와 외투, 상당히 짧은 치마, 단아한 모자.

은수는 짧은 치마가 너무 어색한 탓에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를 꾹꾹 내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쭈뼛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태의는 기다란 코트와 깔끔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상... 하지 않아? ”

“ ... , 치마가 너무 짧은 것 아니오?! 사장, 아녀자에게 이런 치마라니! ”

진정하시게!! 요즘 왜나라에서는 이 정도 길이는 입는다네. ”

뭣이오?! ”

 

 

사장과 대화를 하던 태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은수를 보았다.

훤히 드러난 맨다리에 태의까지 서홍시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을 더듬었다. 은수는 처음으로 태의가 큰 소리로 버럭 외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색하긴 했지만, 태의의 행동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의, 안 어울려? ”

... 어울... 어울리긴 하지만... 너무 짧은 것 아니오? ”

어색하긴 한데... 요즘 이렇게 입는다잖아. ”

, 그래도... ”

 

 

어쩔 줄 몰라 하는 태의의 모습에 은수가 입을 비죽 내밀더니 품에서 전낭을 꺼내 태의의 옷까지 값을 치루었다. 그러곤 자신의 옷을 들고서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은수의 모습에 태의가 다급히 옷을 챙기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태의는 난감한 듯한 목소리로 은수의 뒤를 따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괜찮은 것이 맞느냐고, 아녀자가 어쩌고저쩌고, 길게 이어지는 말에 은수가 조용히 속을 삭이며 말했다.

 

 

태의, 나 배고파. ”

, 그렇지.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이 근방에 맛집이 있다오. ”

어떻게 알아? ”

그대가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사장에게 물어봤소. ”

얼른 가자! ”

 

 

은수의 말 돌리기는 쉽게 성공했다.

두 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 옷 가게 사장이 알려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같은 조선인이다 보니, 소개받은 음식점도 조선인이 운영하는 가게로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배가 터질 정도로 든든하게 밥을 먹은 두 사람은 시내를 돌아다녔다.

해가 저물고,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 은수가 태의를 향해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배 위에 올랐을 땐 상당히 힘들었지만, 막상 왜나라에서 여행을 하다 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다음 여행이 될 곳이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그저 태의가 가는 대로 가도 괜찮았지만, 물어만 보고 싶었다.

 

 

태의, 우리 다음 여행은 언제야? ”

일단 왜나라에서 삼일 정도 있을 예정이라오. ”

... 그 뒤에는? ”

영길리국은 어떠하오? ”

거긴 어떤 곳인데? ”

 

 

석양을 등지고, 두 사람은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저물고 있는지도 모른 채,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는 끝을 맺을 줄 몰랐다. 은수는 왜나라에서의 여행도 즐겁지만,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도 기대되기 시작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