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미 타입

[GL/드림/250502] 끝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

나비의 보관함 2025. 5. 7. 03:35

 

To. 나의 오랜 친구, 히아신스에게.

 

 

안녕, 나의 친구.

아마 이 편지를 받았다는 건 내 목숨이 끝을 맺고, 신들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뜻이겠지.

테바이 왕가의 공주로서 친구 하나 없는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 수도 있었던 한 생명을 살려준 너에게 정말 고마워. 결혼을 막아준 것도 포함해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생명이 꺼지기 전에, 모든 힘을 끌어모아 편지를 써 봐.

 

기억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

 

꽃밭에 산책하러 나왔던 너와 마주 보던 그날, 나는 아직도 기억해. 너에게서 나는 향이, 분위기가, 네 미소가 너무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거든.

눈을 감기 전 마지막에 가장 소중하던 순간이 떠오른다면 그때가 아닐까 싶어.

 

한때는 너와 헤르메스의 사이에서 괜히 끼어든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아.

내 감정을 알아차린 헤르메스가 그래서 날 더 경계했겠지. 그도, 너도 신이기에 오랜 삶을 살아갈 테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부디 날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해.

 

나 역시도 너와 친구였던 그 시간들을 절대 잊지 않을게.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도 나와 친구가 돼주지 않을래?

그때는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러지 못했거든. 그래서 난 너희가 부러웠어. 서로에게 솔직하고, 그 누구보다 당당하며 밝게 웃는 너희들이.

그리고 그런 너희가 내 친구가 되어준 게 정말 고마워.

 

너희에게 나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부르지 않았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해. 이해해 줘, 영원을 사는 너희의 앞에서 나 홀로 추레하게 늙어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 정말 추악하지.

그럼에도 너희는 내 친구가 되어줄 텐데.

 

이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을 용서해.

 

그리고

 

부디, 영원의 빛이 너희와 함께하길 바랄게.

 

 

from. 너의 친구, 필리아가.